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현대정치남북 관계와 통일을 위한 노력

6⋅23 평화 통일 외교 정책 선언

평화통일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성명

친애하는 5천만 동포 여러분!

나는 오늘 우리가 그 동안 추진해 온 남북 대화의 경험과 국제 정세의 추이에 비추어, 민족의 숙원인 조국 통일의 여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우리의 평화 통일 외교 정책을 내외에 천명하고자 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우리는 해방이 되었으나 우리의 의사에 반하여 국토는 양단되고 민족은 분열되었습니다.

당초 일본군의 항복을 받기 위한 군사적 경계선이라고 하던 38선이 그 후 철의 장막으로 변하고 남과 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완전히 차단되어 버렸습니다.

그 동안 미⋅소 공동 위원회가 개최되어 38선의 해소와 통일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한 교섭이 있었으나, 미⋅소간의 근본적 대립으로 실패에 돌아가고 결국 한국 문제는 국제 연합에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1947년 제2차 국제 연합 총회는 남북한을 통한 자유로운 총선거의 실시를 결의하고 이를 위해 임시 한국 위원단을 파견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거부로 남한에서만 자유선거가 실시되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국제 연합에 의하여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받게 된 것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불의의 침략으로 인한 한국동란으로 무수한 동포가 생명을 잃고 전 국토는 초토화되었으며, 3년 간의 끝에 휴전은 성립되었으나 분단은 계속되고 통일은 요원해졌습니다.

나는 이 분단으로 말미암은 동족의 고통을 덜고 평화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하여 1970년 「8⋅15 선언」에서 남북한 간의 긴장 완화를 촉구하였습니다.

그 다음 해 8월 12일 우리 측은 남북 적십자 회담을 제의하였으며, 작년 7월 4일에는 평화 통일을 위한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리하여 남북 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근 2년이 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성과는 우리 기대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용이하고 실천 가능한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감으로써 남북 간의 장벽을 점차 제거하고, 구체적인 실적을 통해서 상호간의 불신을 신뢰해 대체해 나가는 것이 대화를 생산적으로 운영하는 길이며, 평화 통일을 성취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북한 측은 불신 요소를 남겨 둔 채 대한민국의 안전 보장을 위태롭게 할 군사 및 정치 문제의 일괄 선결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북한측은 통일을 위한 남북 대화의 진행 중, 밖으로는 사실상 조국의 분단을 고정화시키는 행동을 계속하여 왔습니다.

이러한 남북 관계의 현상으로 보아 우리가 기대하는바 남북 대화의 결실을 얻기까지에는 앞으로도 많은 난관이 예견되며, 상당히 긴 시일이 소요되리라고 판단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태가 그대로 방치된다면 결과적으로 불신의 심화와 긴장의 고조마저도 우려되는 바입니다.

한편, 최근의 국제 정세는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냉전 시대가 끝나고 현상 유지를 기조로 하는 열강들의 세력 균형으로 평화 공존을 유지하려는 것이 그 주된 조류라 하겠습니다.

또한, 그간 이 지역에 있어서의 일련의 주변 정세의 발전으로 미루어 보아서도 국토 통일이 단시일 내에 성취되기는 어렵다고 보여집니다.

이러한 국제 정세는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하나의 커다란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즉 조국 통일이라는 민족 지상의 염원과 목표를 국제 정세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친애하는 5천만 동포 여러분!

우리는 객관적 현실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조국 통일을 국내외의 현실 속에서 실현하는 현명하고도 확고한 방안을 수립하고 이를 강인하게 추구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곧 현실을 직시하고 평화를 이 땅에 정착시킴으로써 그 바탕 위에서 우리의 자주 역량으로 통일을 기필코 이룩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에 다음과 같은 정책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1. 조국의 평화적 통일은 우리 민족의 지상 과업이다. 우리는 이를 성취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계속 경주한다.

2. 한반도의 평화는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며, 남북한은 서로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침략을 하지 않아야 한다.

3. 우리는 남북 공동성명의 정신에 입각한 남북 대화의 구체적 성과를 위하여 성실과 인내로써 계속 노력한다.

4. 우리는 긴장 완화와 국제 협조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이 우리와 같이 국제 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5. 국제 연합의 다수 회원국의 뜻이려면 통일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우리는 북한과 함께 국제 연합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국제 연합 가입 전이라도 대한민국 대표가 참석하는 국련 총회에서의 「한국 문제」 토의에 북한 측이 같이 초청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6. 대한민국은 호혜평등의 원칙하에 모든 국가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이며, 우리와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들도 우리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을 촉진한다.

7. 대한민국의 대외 정책은 평화 선린에 그 기본을 두고 있으며, 우방들과의 기존 유대 관계는 이를 더욱 공고히 해 나갈 것임을 재천명한다.

나는 이상에서 밝힌 정책 중 대북한 관계 사항은 통일이 성취될 때까지 과도적 기간 중의 잠정 조치로서, 이는 결코 우리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여 둡니다.

친애하는 남북 동포 여러분!

나는 우리 조국이 처해 있는 오늘의 내외 정세를 냉엄히 평가할 때 이 길만이 긴장완화의 국제 조류 속에서 민족의 위신과 긍지를 유지하면서 조국의 평화 통일을 자주적으로 성취하는 지름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슬기롭고 용감한 민족 앞에서 결코 실망이나 좌절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희망찬 용기화 슬기로 한반도의 평화, 겨레의 번영, 그리고 조국 통일을 위해 힘차게 매진합시다.

1973년 6월 23일

박정희

〈조선일보〉, 1973년 6월 23일

평화통일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성명

친애하는 5천만 동포 여러분!

나는 오늘 우리가 그 동안 추진해 온 남북 대화의 경험과 국제 정세의 추이에 비추어, 민족의 숙원인 조국 통일의 여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우리의 평화 통일 외교 정책을 내외에 천명하고자 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우리는 해방이 되었으나 우리의 의사에 반하여 국토는 양단되고 민족은 분열되었습니다.

당초 일본군의 항복을 받기 위한 군사적 경계선이라고 하던 38선이 그 후 철의 장막으로 변하고 남과 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에 걸쳐서 완전히 차단되어 버렸습니다.

그 동안 미⋅소 공동 위원회가 개최되어 38선의 해소와 통일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한 교섭이 있었으나, 미⋅소간의 근본적 대립으로 실패에 돌아가고 결국 한국 문제는 국제 연합에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1947년 제2차 국제 연합 총회는 남북한을 통한 자유로운 총선거의 실시를 결의하고 이를 위해 임시 한국 위원단을 파견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거부로 남한에서만 자유선거가 실시되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국제 연합에 의하여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받게 된 것입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불의의 침략으로 인한 한국동란으로 무수한 동포가 생명을 잃고 전 국토는 초토화되었으며, 3년 간의 끝에 휴전은 성립되었으나 분단은 계속되고 통일은 요원해졌습니다.

나는 이 분단으로 말미암은 동족의 고통을 덜고 평화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하여 1970년 「8⋅15 선언」에서 남북한 간의 긴장 완화를 촉구하였습니다.

그 다음 해 8월 12일 우리 측은 남북 적십자 회담을 제의하였으며, 작년 7월 4일에는 평화 통일을 위한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리하여 남북 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근 2년이 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성과는 우리 기대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용이하고 실천 가능한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감으로써 남북 간의 장벽을 점차 제거하고, 구체적인 실적을 통해서 상호간의 불신을 신뢰해 대체해 나가는 것이 대화를 생산적으로 운영하는 길이며, 평화 통일을 성취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북한 측은 불신 요소를 남겨 둔 채 대한민국의 안전 보장을 위태롭게 할 군사 및 정치 문제의 일괄 선결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북한측은 통일을 위한 남북 대화의 진행 중, 밖으로는 사실상 조국의 분단을 고정화시키는 행동을 계속하여 왔습니다.

이러한 남북 관계의 현상으로 보아 우리가 기대하는바 남북 대화의 결실을 얻기까지에는 앞으로도 많은 난관이 예견되며, 상당히 긴 시일이 소요되리라고 판단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태가 그대로 방치된다면 결과적으로 불신의 심화와 긴장의 고조마저도 우려되는 바입니다.

한편, 최근의 국제 정세는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냉전 시대가 끝나고 현상 유지를 기조로 하는 열강들의 세력 균형으로 평화 공존을 유지하려는 것이 그 주된 조류라 하겠습니다.

또한, 그간 이 지역에 있어서의 일련의 주변 정세의 발전으로 미루어 보아서도 국토 통일이 단시일 내에 성취되기는 어렵다고 보여집니다.

이러한 국제 정세는 우리 민족사에 있어서 하나의 커다란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즉 조국 통일이라는 민족 지상의 염원과 목표를 국제 정세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친애하는 5천만 동포 여러분!

우리는 객관적 현실에 대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조국 통일을 국내외의 현실 속에서 실현하는 현명하고도 확고한 방안을 수립하고 이를 강인하게 추구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곧 현실을 직시하고 평화를 이 땅에 정착시킴으로써 그 바탕 위에서 우리의 자주 역량으로 통일을 기필코 이룩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에 다음과 같은 정책을 선언하는 바입니다.

1. 조국의 평화적 통일은 우리 민족의 지상 과업이다. 우리는 이를 성취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계속 경주한다.

2. 한반도의 평화는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며, 남북한은 서로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침략을 하지 않아야 한다.

3. 우리는 남북 공동성명의 정신에 입각한 남북 대화의 구체적 성과를 위하여 성실과 인내로써 계속 노력한다.

4. 우리는 긴장 완화와 국제 협조에 도움이 된다면 북한이 우리와 같이 국제 기구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5. 국제 연합의 다수 회원국의 뜻이려면 통일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우리는 북한과 함께 국제 연합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국제 연합 가입 전이라도 대한민국 대표가 참석하는 국련 총회에서의 「한국 문제」 토의에 북한 측이 같이 초청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6. 대한민국은 호혜평등의 원칙하에 모든 국가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이며, 우리와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들도 우리에게 문호를 개방할 것을 촉진한다.

7. 대한민국의 대외 정책은 평화 선린에 그 기본을 두고 있으며, 우방들과의 기존 유대 관계는 이를 더욱 공고히 해 나갈 것임을 재천명한다.

나는 이상에서 밝힌 정책 중 對북한 관계 사항은 통일이 성취될 때까지 과도적 기간 중의 잠정 조치로서, 이는 결코 우리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여 둡니다.

친애하는 남북 동포 여러분!

나는 우리 조국이 처해 있는 오늘의 내외 정세를 냉엄히 평가할 때 이 길만이 긴장완화의 국제 조류 속에서 민족의 위신과 긍지를 유지하면서 조국의 평화 통일을 자주적으로 성취하는 지름길이라고 확신합니다.

슬기롭고 용감한 민족 앞에서 결코 실망이나 좌절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희망찬 용기화 슬기로 한반도의 평화, 겨레의 번영, 그리고 조국 통일을 위해 힘차게 매진합시다.

1973년 6월 23일

박정희

〈조선일보〉, 1973년 6월 23일

이 사료는 박정희(朴正熙, 1917~1979) 대통령이 1973년 6월 23일에 발표한 「평화통일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성명」이다. 「6⋅23 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성명」(이하 「6⋅23 선언」)이라고도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6⋅23 선언」에서 남북대화가 우리 기대와는 달리 성과가 없었다고 평가하고, 남북대화에 임하는 우리의 입장이 실천 가능한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는 점진주의적인 것이었다고 회고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또 남북한이 대화를 통해서 구체적 실적을 쌓아 나가면 남북 사이에 가로 놓인 불신의 벽을 허물 수 있고, 궁극적으로 평화통일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열강들이 세력균형으로 평화공존을 유지하려는 흐름을 지적하면서, 평화의 정착과 자주 역량으로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7개 항을 선언하였고, 여기에서 대북한 관계 사항은 통일이 성취될 때까지 과도적 기간 중의 조치임을 명백히 밝혔다.

「6⋅23 선언」은 1970년 8월에 발표한 「8⋅15 선언」과 1972년 7월의 「7⋅4 남북공동성명」의 연관성상에 있었다. 1970년 8월 15일 북한의 공산 정권이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상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남북 간의 평화공존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남북대화의 계기를 마련한 「8⋅15 선언」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1972년 7월 4일 자주적⋅평화적⋅민족적 대단결의 원칙을 토대로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여 조국 통일을 추진하고, 상호 비방을 억제하며,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신뢰성 있는 조치를 취하고, 남북조절위원회를 발족한다는 취지의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즉, 앞으로의 한국 외교와 대북 정책, 통일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6⋅23 선언」에 북한의 김영주가 분단 고착화 정책이라고 비난하고 남북대화 중단을 선언하면서, 1970년대 초 남북대화 국면은 종지부를 찍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남북대화와 한미동맹관계의 이해 1969∼1973」,『한국정치외교사논총』26-1,우승지,한국정치외교사학회,2004.
편저
『남북대화백서』, 국토통일원, 국토통일원, 1985.
『우리의 평화통일정책』, 외무부, 외무부, 1977.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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