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현대정치남북 관계와 통일을 위한 노력

6⋅15 남북 공동 선언

대통령공고 제167호

(중략)

남북공동선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였으며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 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 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2000년 6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 위원장 김정일

대한민국 『관보』 제14546호, 2000년 7월 5일

대통령공고 제167호

(중략)

남북공동선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였으며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2000년 6월 15일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

대한민국 『관보』 제14546호, 2000년 7월 5일

이 사료는 2000년 6월 15일 남한의 김대중(金大中, 1924~2009)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 위원장이 합의하여 발표한 공동 선언이다. 이를 「6⋅15 남북 공동 선언」이라 한다.

「6⋅15 남북 공동 선언」은 2000년 6월 14일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에서 북한의 김정일 국방 위원장을 만나 정상회담을 가진 뒤 탄생하였다. 남북한이 분단된 지 55년 만에 처음으로 만난 남북한의 두 정상은 6월 14일 한반도의 화해⋅협력과 통일 방안을 논의한 뒤 5개 항에 합의하였다.

6월 15일에 발표된 「6⋅15 남북 공동 선언」은 5개 항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첫째,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 둘째, 1국가 2체제의 통일 방안 협의, 셋째, 이산가족 문제의 조속한 해결, 넷째, 경제 협력 등을 비롯한 남북 간 교류의 활성화, 다섯째, 합의 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한 당국 사이의 대화 개최 등이다. 또한 북한의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서울 방문 등에 관한 합의 사항도 포함하였다.

「6⋅15 남북 공동 선언」은 2000년 3월 9일 김대중 대통령이 유럽 순방 중 독일의 베를린자유대학 연설에서 대북 경제 지원과 평화 정착, 이산가족 문제 해결 및 당국 간 대화 등에 관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 화해 협력」(일명 「베를린선언」)을 제안하면서 비롯되었다. 「베를린선언」에 북측은 남북 정상회담 개최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 뒤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과 북한의 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비공개로 접촉하였고, 2000년 4월 8일 남북 양측은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최종 합의하였다.

2000년 4월 22일부터 5월 18일까지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 접촉이 5차례에 걸쳐 개최되었다. 양측은 정상회담 의제를 ‘민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는 문제’로 정했고, 최소한 2~3회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북한을 방문했고, 김정일 국방 위원장과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가지며 남북 간 화해와 협력 등에 대해 합의하였다.

「6⋅15 남북 공동 선언」은 1972년의 「7⋅4 남북공동성명」이나 1991년의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약칭 「남북기본합의서」) 등에 나타난 원칙을 단계적으로 실현하는 방안을 협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즉, 통일의 원칙을 구체화⋅현실화하기 위해 남북한 당국이 어떤 정책을 마련해야 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제시한 것이다. 「6⋅15 남북 공동 선언」은 이산가족 문제를 단계적이지만 제도화된 틀 안에서 해결하는 기초를 마련하였다. 또한 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신뢰 구축을 위해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에서의 호혜적 교류와 협력을 확대해 나가는 기초를 마련하였다.

남북 간 대립의 역사는 「6⋅15 남북 공동 선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평가된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 위원장이 「6⋅15 남북 공동 선언」에 서명함으로써 남과 북은 화해 협력, 공존공영의 새 시대를 열었다. 남북 정상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열린 정상회담에서 공동 선언문을 만들어 냄으로써 상호이해 증진과 남북 관계 발전 및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 또한 이 선언은 2007년 10월 4일 오후 1시,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 위원장이 공동 서명한 「남북 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약칭 「2007 남북정상선언문」)의 기초가 되었다.

하지만 보수 정권인 이명박 정권은 출범 이후 이전 정부의 대북 정책과 차별화를 시도하였다. 이명박 정권은 북한의 핵 실험 및 미사일 발사 등을 이유로 대북 압박을 시작했고, 그 결과 「6⋅15 남북 공동 선언」과 「2007 남북정상선언문」은 거의 사문화되기에 이르러, 한반도는 다시 냉전시대로 회귀하고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6⋅15의 의미와 한반도에 미친 영향」,국회한반도평화포럼 주최 6.15 공동선언 10주년 기념 심포지엄 발표문,고유환,국회한반도평화포럼,2010.
「남북정상회담의 평가와 향후 실천과제」,『지역별 경제정보』,조명철,대외경제정책연구원,2000.
편저
『외교백서』, 외교통상부, 외교통상부, 2000.
『남북 화해와 민족 통일』, 전국대학북한학과협의회, 을유문화사, 2001.
『통일백서』, 통일부, 통일부, 2001.

관련 이미지

제1차 남북 정상 회담

관련 사이트

국가기록원 나라기록
링크연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