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장관회의(한해 대책회의) 유시
1970. 4. 22.
(전략)
지방을 다니면서 보면 어떤 부락, 어떤 농촌은 몇 년 전에는 기와집이 한 채도 없던 동네가 최근에 보면 거의 기와로 다 이어졌거나 기와를 이지 못한 집도 작년 가을에 추수한 벼짚을 가지고 깨끗하게 이어서 처마를 하고, 담장도 깨끗이 하고 담위에도 짚으로 담 지붕을 이고 퇴비장도 알맞은 장소에 알뜰히 해 놓았고, 동네 전체를 보면 부락 앞에 있는 논은 대부분이 경지 정리를 해 놓았고, 또 농로가 자로 쪽 그어 놓은 것처럼 꼿꼿하게 되어 있어 그 정도면 자동차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중략) 이런 농촌은 앞으로 몇 년 안 거서 다른 나라 농촌에 지지 않는 잘 사는 농촌, 희망에 찬 농촌이 되리라고 확신하며 대단히 흐뭇하게 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런 농촌은 몇 군데 눈에 안 띄고 대부분이 그와 반대입니다.
(중략) 산에 나무 한 포기 가꿀 줄 모르고 부락 주변에 하천이나 제방이 허물어져 있어도 그 지방 주민 자체가 보수를 하고 내 고장을 알뜰하게 다듬는다는 정신도 없고, 자기집 담이 허물어져도 고칠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들에 나가서 일을 하느라고 바빠서 미쳐 손이 안 돌아가서 그런 것도 아닐 것입니다. 들에 나가 일하는 농민이 한 사람도 없다면 필연 집에 들어 앉아 있을 게 아닙니까.
들에 나가 할 일이 없으면 농민들은 집을 고친다든지, 담을 고친다든지, 마당을 가꾼다든지, 퇴비장을 만든다든지, 그래도 여유가 생기면 나무라도 한 포기 심고 새로운 정서를 가꾸기 위한 꽃을 심는다든지, 이런 일을 해야 될텐데, 전연 침체 상태에 빠져있습니다.
나는 농민만 나무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농촌 지도원, 면장, 면직원, 군수, 군직원, 그뿐 아니라 농촌 진흥원, 농어촌 개발 공사, 외국에서 나와 있는 기관, 국민 학교 교사 등 수없이 많은 기관과 사람들이 있고, 그 부락만 하더라도 고등학교, 대학을 나온 청년이 얼마든지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무얼 하고 있느냐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지역 사회 개발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기는 합니다만, 문제는 그 부락, 그 고장에 사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우리 고장을 어떻게 하면 살기 좋은 고장을 만들까 하는 노력이나 열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살기 좋다는 건 산에 나무가 많고, 꽃나무가 많고 경치가 좋다는 것만으로는 안 될 것입니다. 우선 먹어야 되고 입어야 되겠지만, 좀 더 부지런히 일해서 사는 집도 깨끗이 하고, 결국 거기서 소득도 더 많이 올리도록 하고, 동시에 산이나 하천의 환경도 정리하고 경지도 정리하고 도로도 닦고, 더 여유가 생기면 부락 공동의 오락이나 교양 시설을 만든다든지 이런 걸 그 고장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연구하고, 찬반 의견이 있겠지만 모두 같이 일을 하자고 이끌어 나가며, 사람들의 의욕을 북돋우도록 해서 이러이러 하면 우리 고장도 잘 살 수 있다, 이웃에 어느 부락은 벌써 이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 이 정도는 우리가 하고, 이 정도는 우리 부락의 힘만으로는 안 되니까 정부에 도와 달라 요청을 하자, 이런 의욕이 밑에서 끓어 오르면 그 농촌은 불과 2, 3년 이내에 전부 일어설 수 있습니다.
현지 주민들의 그런 자발적인 의욕이 우러나지 않는 농촌은 5천년이 가도 일어나지 못하고 현 상태와 같은 생활을 반복할 것입니다.
의욕이 밑에서 용솟음치고 지도자 특히 젊은 사람들이 해 보겠다는 의욕을 갖고 나서면 정부에서 조금만 도와줘도 2, 3년이면 다 일어납니다.
부락민들끼리 협력해서 훌륭한 업적을 쌓아올린 농촌이 여기저기 많이 있기는 합니다만, 한국 농촌이 전반적으로 못 사는 것은 그런 지도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지에 있는 일선 행정 책임자들이 어떤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즉, 그 지방에서 지도급에 속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지도하고 권장해서, 그 사람들이 눈을 뜨고 자기들이 모여 앉아서 계획을 짜내고 연구를 하고 자기들이 할 일, 도 국가에서 도움을 받을 일을 구분해서 일해 나가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역시 우리 공무원들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앞으로 이런 사업은 한동네 힘으로는 안 되니까 근처에 있는 몇 개 부락이 같이 협조해서 하자는 분위기가 자연적으로 조성되면 모르되, 처음 시작은 부락 단위가 좋겠습니다.
(중략) 사람들이 바쁜 시기를 피해서 가을이나 봄 같은 때에, 우리 고장에 들어가자면 자동차가 들어올 길도 없어 마을 십리 밖에서 짐을 나르자면 지게로 져야 하는 이런 고장이 발전하겠느냐, 내년에는 우리 힘으로 길을 닦자, 들어오는 데 다리를 하나 놓아야 하는데, 이것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없으니 군이나 도에다 지원 요청을 해 보자, 나머지는 우리 힘으로 하자, 뒷산이 나무 하나 없이 뻘건데 내년 봄에 식수 주간에 마을 사람들이 총동원해서 이러이러한 나무를 심어서 몇 년 내에 우리 마을을 푸른 마을로 만들어 보자.. 그런 계획을 가지고 군을 거치고 도에 올려 도지사 심사를 거쳤을 때 그 사업 자체가 대단히 좋고 현지 주민이나 향토 예비군의 의욕이 대단히 왕성하고 또 자기들 부담이 대부분이고 지방 정부나 중앙 정부에 대해서 도와 달라는 부분이 비교적 적은 사업이면 국가가 점차 이걸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중략) 정부가 금년 예산에서 특별 교부금으로 한 30억원을 각 도에다 나누어주었는데, 내년쯤 가면 특별 교부금도 더 많아질 겁니다. 도지사는 그 중에서 몇 천만원 정도는 그런 사업에 쓸 수 있도록 하되, 그 대신 심사를 철저히 해 가지고 가장 의욕적이고 가장 효과가 큰 좋은 것 몇 개만 골라서 지원 육성하고, 한 일년 후에 가서 다시 심사를 해서 그 중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잘한 부락에는 도지사가 상금을 한 100만원씩 주는 방법도 좋겠습니다. 그러면, 그 부락은 그 돈을 가지고 도 다른 사업을 해 나가도록 해서 이런 부락을 점차 늘려가는 운동을 우리가 앞으로 추진해 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그 운동을 『새마을 가꾸기 운동』이라고 해도 좋고 『알뜰한 마을 만들기』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중략) 자기들이 연구하고 아이디어를 자내고 계획을 세우고 하는 분위기를 점차 불어 넣어야겠습니다. 이런 것이 제대로 잘 되는 농촌은 빠른 시일 내에 일어납니다. 그저 앉아서 못 사는 게 팔자 소관이라고 한탄하고 나아가서는 정부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아서 못 산다고 원망이나 하고 자기가 못 사는 게 남에게 책임이나 있는 것처럼 불평이나 하는 농민들은 몇 백년 가도 일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후략)
「지방장관회의(한해 대책회의) 유시」, 1970년 4월 22일, 대통령기록관 기록컬렉션 연설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