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시대별현대문화대중 문화의 발달

1970년대 도시 빈민층의 애환-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어머니⋅영호⋅영희,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나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에는 ‘다섯 식구의 목숨’이 포함되어 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는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이 모든 것을 잘 참았다. 그러나 그날 아침 일만은 참기 어려웠던 것 같다.

“통장이 이걸 가져 왔어요”

내가 말했다. 어머니는 조각마루 끝에 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게 뭐냐?”

“철거 계고장예요”

“기어코 왔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니까 집을 헐라는 거지? 우리가 꼭 받아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이제 나온 셈이구나!”

어머니는 식사를 중단했다. 나는 어머니의 밥상을 내려다보았다. 보리밥에 까만 된장 그리고 시든 고추 두어 개와 졸인 감자.

나는 어머니를 위해 철거 계고장을 천천히 읽었다.

……(중략)……

나는 바깥 게시판에 적혀 있는 공고문을 읽었다. 거기에는 아파트 입주 절차와 아파트 입주를 포기할 경우 탈 수 있는 이주 보조금 액수 등이 적혀 있었다. 동사무소 주위는 시장바닥과 같았다. 주민들과 아파트 거간꾼들이 한데 뒤엉켜 이러 몰리고 저리 몰리고 했다. 나는 거기서 아버지와 두 동생을 만났다.

……(중략)……

형은 점심을 굶었다. 점심 시간이 삼십분 밖에 안 되었다. 우리는 한 공장에서 일했지만 격리된 생활을 했다. 노동자들 모두가 격리된 상태에서 일만 했다. 회사 사람들은 우리의 일 양과 성분을 하나하나 조사해 기록했다. 그들은 점심 시간으로 삼십 분을 주면서 십 분 동안 식사하고 남는 이십 분 동안은 공을 차라고 했다. 우리들은 좁은 마당에 나가 죽어라 공만 찼다.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간격을 둔 채 땀만 뻘뻘 흘렸다. 우리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했다. 공장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원하기만 했다. 탁한 공기와 소음 속에서 밤중까지 일을 했다. 물론 우리가 금방 죽어가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작업 환경의 악조건과 흘린 땀에 못 미치는 보수가 우리의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그래서 자랄 나이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발육 부조 현상을 우리는 나타냈다. 회사 사람들과 우리의 이해는 늘 상반되었다. 사장은 종종 불황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와 그의 참모들은 우리에게 쓰는 여러 형태의 억압을 감추기 위해 불황이라는 말을 이용하고는 했다. 그렇지 않을 때는 힘껏 일한 다음 노-사가 공평히 나누어 갖게 될 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희망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를 주지 못했다. 우리는 그 희망 대신 간이 알맞은 무말랭이가 우리의 공장 식탁에 오르기를 더 원했다. 변화는 없었다. 나빠질 뿐이었다. 한 해에 두 번 있던 승급이 한 번으로 줄었다. 야간 작업 수당도 많이 줄었다. 노동자들도 줄였다. 일 양은 많아지고 작업 시간은 늘었다. 돈을 받는 날 우리 노동자들은 더욱 말조심을 했다. 옆에 있는 동료도 믿기 어려웠다. 부당한 처사에 대해 말한 자는 아무도 모르게 쫓겨났다. 공장 규모는 반대로 커갔다. 활판 윤전기를 들여오고, 자동 접지 기계를 들여오고, 옵셋 윤전기를 들여왔다. 사장은 회사가 당면한 위기를 말했다. 적대 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지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었다. 사장과 그의 참모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중략)……

쇠망치를 든 사람들은 무너진 담 저쪽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어머니가 싸놓은 짐을 하나하나 밖으로 끌어냈다.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 조리⋅식칼⋅도마들을 들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나왔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공구들이 들어 있는 부대를 메고 나왔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 앞에 쇠망치 대신 종이와 볼펜을 든 사나이가 서 있었다. 그가 아버지를 보았다. 한꺼번에 달라붙어 집을 쳐부수었다. 어머니는 돌아앉아 무너지는 소리만 들었다. 북쪽 벽을 치자 지붕이 내려앉았다. 지붕이 내려앉을 때 먼지가 올랐다. 뒤로 물러섰던 사람들이 나머지 벽에 달라붙었다. 아주 쉽게 끝났다.

……(하략)……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78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아버지는 난장이였다.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아버지를 보는 것 하나만 옳았다. 그 밖의 것들은 하나도 옳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어머니⋅영호⋅영희,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섯 식구의 모든 것을 걸고 그들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다. 나의 ‘모든 것’이라는 표현에는 ‘다섯 식구의 목숨’이 포함되어 있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는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이 모든 것을 잘 참았다. 그러나 그날 아침 일만은 참기 어려웠던 것 같다.

“통장이 이걸 가져 왔어요”

내가 말했다. 어머니는 조각마루 끝에 앉아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게 뭐냐?”

“철거 계고장예요”

“기어코 왔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니까 집을 헐라는 거지? 우리가 꼭 받아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이제 나온 셈이구나!”

어머니는 식사를 중단했다. 나는 어머니의 밥상을 내려다보았다. 보리밥에 까만 된장 그리고 시든 고추 두어 개와 졸인 감자.

나는 어머니를 위해 철거 계고장을 천천히 읽었다.

……(중략)……

나는 바깥 게시판에 적혀 있는 공고문을 읽었다. 거기에는 아파트 입주 절차와 아파트 입주를 포기할 경우 탈 수 있는 이주 보조금 액수 등이 적혀 있었다. 동사무소 주위는 시장바닥과 같았다. 주민들과 아파트 거간꾼들이 한데 뒤엉켜 이러 몰리고 저리 몰리고 했다. 나는 거기서 아버지와 두 동생을 만났다.

……(중략)……

형은 점심을 굶었다. 점심 시간이 삼십분 밖에 안 되었다. 우리는 한 공장에서 일했지만 격리된 생활을 했다. 노동자들 모두가 격리된 상태에서 일만 했다. 회사 사람들은 우리의 일 양과 성분을 하나하나 조사해 기록했다. 그들은 점심 시간으로 삼십 분을 주면서 십 분 동안 식사하고 남는 이십 분 동안은 공을 차라고 했다. 우리들은 좁은 마당에 나가 죽어라 공만 찼다.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간격을 둔 채 땀만 뻘뻘 흘렸다. 우리는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했다. 공장은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원하기만 했다. 탁한 공기와 소음 속에서 밤중까지 일을 했다. 물론 우리가 금방 죽어가는 상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작업 환경의 악조건과 흘린 땀에 못 미치는 보수가 우리의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그래서 자랄 나이에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발육 부조 현상을 우리는 나타냈다. 회사 사람들과 우리의 이해는 늘 상반되었다. 사장은 종종 불황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와 그의 참모들은 우리에게 쓰는 여러 형태의 억압을 감추기 위해 불황이라는 말을 이용하고는 했다. 그렇지 않을 때는 힘껏 일한 다음 노-사가 공평히 나누어 갖게 될 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희망은 우리에게 아무 의미를 주지 못했다. 우리는 그 희망 대신 간이 알맞은 무말랭이가 우리의 공장 식탁에 오르기를 더 원했다. 변화는 없었다. 나빠질 뿐이었다. 한 해에 두 번 있던 승급이 한 번으로 줄었다. 야간 작업 수당도 많이 줄었다. 노동자들도 줄였다. 일 양은 많아지고 작업 시간은 늘었다. 돈을 받는 날 우리 노동자들은 더욱 말조심을 했다. 옆에 있는 동료도 믿기 어려웠다. 부당한 처사에 대해 말한 자는 아무도 모르게 쫓겨났다. 공장 규모는 반대로 커갔다. 활판 윤전기를 들여오고, 자동 접지 기계를 들여오고, 옵셋 윤전기를 들여왔다. 사장은 회사가 당면한 위기를 말했다. 적대 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지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말이었다. 사장과 그의 참모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중략)……

쇠망치를 든 사람들은 무너진 담 저쪽에서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는 어머니가 싸놓은 짐을 하나하나 밖으로 끌어냈다.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가 조리⋅식칼⋅도마들을 들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나왔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공구들이 들어 있는 부대를 메고 나왔다. 쇠망치를 든 사람들 앞에 쇠망치 대신 종이와 볼펜을 든 사나이가 서 있었다. 그가 아버지를 보았다. 한꺼번에 달라붙어 집을 쳐부수었다. 어머니는 돌아앉아 무너지는 소리만 들었다. 북쪽 벽을 치자 지붕이 내려앉았다. 지붕이 내려앉을 때 먼지가 올랐다. 뒤로 물러섰던 사람들이 나머지 벽에 달라붙었다. 아주 쉽게 끝났다.

……(하략)……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78

이 사료는 주인공 ‘난장이’네 가족을 통해 1970년대 도시 빈민층의 좌절과 애환을 다룬 조세희(趙世熙) 연작소설의 일부다. 1975년 발표된 「칼날」부터 1978년 발표된 「에필로그」까지 총 12편으로 구성된 이 연작소설은 1978년 6월 5일 책으로 출간되었고, 1979년 제13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1979년 극단 세실이 처음 무대에 올렸으며, 1981년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동일 제목의 연작 12편 중 4번째에 해당하는 중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1970년대 낙원이 아니고 행복도 없는 ‘낙원구 행복동’에서 살아가는 ‘난장이’ 일가의 삶을 통해 도시 재개발 뒤에 숨은 도시 빈민들의 애환을 그리고 있다.

난쟁이인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영수⋅영호⋅영희 삼남매는 인쇄소 등에서 일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도시의 소외 계층이다. 어느 날 낙원구 행복동에 살고 있는 영수네 가족과 주민들은 통장으로부터 재개발 사업으로 인한 철거 계고장을 받는다. 철거는 간단히 끝나고, 입주권이 있어도 입주비가 없는 행복동 주민들은 거간꾼들에게 입주권을 판다. 투기업자들의 농간으로 입주권의 값이 뛰어 오르고 영수네도 입주권을 판다. 그러나 전셋값을 주고 나면 남는 것도 없고, 결국 아버지는 자살한다.

1960년대 이후 정부의 산업화 정책에 의해 사람들은 농촌을 떠나 서울로 몰려들었고, 서울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자 서울의 주택이 부족해, 서울 등 대도시 산동네에는 판잣집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정부는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산동네를 헐고 개발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개발 사업의 혜택을 챙긴 사람들은 건설업자와 부동산업자들이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이런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1969년부터 1971년 사이 정부는 ‘정착지 사업’을 비롯해 시민 아파트 건설 사업, 광주(현 성남시) 대단지 사업 등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살던 빈민들을 서울시 외곽과 경기도 지역으로 집단 이주시켰다. 1971년 8월 10일 이렇게 형성된 광주 대단지에서 ‘땅값을 내려 달라’는 요구 조건을 내건 시위가 벌어졌다. 이 사건으로 주민과 경찰 등 100여 명이 부상당했고, 재산 피해도 2000여만 원에 달했다.

또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1970년대 도시 노동자의 현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즉 생존에 필요한 최저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열악한 작업 환경, 고용자로부터 강요당하는 부당한 노동 행위, 노동조합 탄압 등 산업사회의 부정적 측면이 잘 드러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난쟁이 혹은 소외집단의 언어」,『상황과 상상력』,김병익,문학과 지성사,1979.
「산업시대의 문학」,『문학과 지성』 1979년 가을호,김우창,문학과 지성사,1979.
「노동문제의 문학적 인식」,『문학과 정신의 힘』,김주연,문학과 지성사,1990.
「조세희의 병신소설」,『우리 시대의 문학』,김현,문장,1980.
「도시 산업화시대의 문학」,『민중시대의 문학』,염무웅,창작과 비평사,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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