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정치삼국 이전단군 이야기와 고조선

고조선의 성장과 변화

【『위략(魏略)』에 이르기를 “옛 기자(箕子)의 후예인 조선후(朝鮮侯)는 주(周)나라가 쇠약해지자 연(燕)나라가 스스로 높여 왕이 되어 동쪽[기자조선]을 침략하여 땅을 빼앗으려는 것을 보고, 조선후 역시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도리어 연나라를 공격하여 주나라 왕실을 받들고자 하였다. 조선의 대부(大夫) 예(禮)가 간언하자 곧 그만두었다.. 조선후가 예를 시켜 서쪽의 연나라를 설득하니 연이 그만두고 공격하지 않았다. 이후 조선후의 자손이 점점 교만하고 포학해지자, 연나라는 곧 장군 진개(秦開)를 보내 조선의 서쪽을 공격해 2000여 리의 땅을 빼앗고, 만번한(滿番汗)에 이르러 경계를 삼았다. 조선은 마침내 쇠약해졌다”라고 전한다.】

『삼국지』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

【魏略曰. 昔箕子之後朝鮮侯, 見周衰, 燕自尊爲王, 欲東略地, 朝鮮侯亦自稱爲王, 欲興兵逆擊燕以尊周室. 其大夫禮諫之, 乃止. 使禮西說燕, 燕止之. 不攻. 後子孫稍驕虐, 燕乃遣將秦開攻其西方, 取地二千餘里, 至滿番汗爲界, 朝鮮遂弱.】

『三國志』卷30, 「魏書」30 烏丸鮮卑東夷傳

이 사료는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 인용되어 있는 『위략(魏略)』의 일부이다. 『위략』은 3세기 후반 서진(西晉, 265~316)의 어환(魚豢)이 편찬한 중국 삼국 시대 위(魏)나라의 역사서이다. 현재 원본은 남아 있지 않지만, 『삼국지』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 그 내용이 일부 인용되고 있다. 『위략』은 『삼국지』 「동이전」을 편찬하는 데에 중요한 기본 자료였다고 이해되는 만큼 사료적 가치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위략』에 보이는 고조선과 연(燕)나라의 관계는 대체로 기원전 4세기 후반~기원전 3세기 전반의 사실로 보인다. 『사기(史記)』에 따르면 진개(秦開)가 고조선을 공격한 것은 연나라 소왕(昭王, 기원전 311~270년) 대의 일이기 때문이다. 연나라는 중국 전국 시대(戰國時代)의 7웅(七雄) 중 하나로 불릴 정도로 국력이 강성하였다. 그런 연나라를 고조선이 먼저 공격하려 했다는 사실은 고조선의 군사력이 연나라에 뒤지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또한 수치가 정확한지는 알 수 없지만, 고조선이 서쪽 땅 2000리를 빼앗겼다고 한 것으로 보아 고조선의 영역이 넓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4세기 후반~3세기 전반의 고조선은 연나라에 맞설 만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상당한 정도의 영역을 확보하고 있었다. 따라서 국가 체제도 어느 정도 정비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컨대, 연나라 공격을 중단하도록 간언하였던 예(禮)가 대부(大夫)였다는 점으로 미루어 고조선에 이미 관료 조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연나라 장군 진개의 공격으로 고조선이 쇠퇴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자세한 내용은 알기 어렵다. 다만, 이후 고조선의 중심지가 요동(遼東) 지역에서 한반도 북부 지역으로 이동하였다는 견해가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한국 고대사 속의 고조선사』, 송호정, 푸른역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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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사연구』, 이종욱, 일조각, 1993.
『동이전의 문헌적 연구』, 전해종, 일조각, 1980.
『고조선⋅고구려사 연구』, 조법종, 신서원, 2006.
『고조선사⋅삼한사연구』, 천관우, 일조각, 1989.
편저
『고조선사 연구 100년-고조선사 연구의 현황과 쟁점』, 고조선사연구회⋅동북아역사재단 편, 학연문화사, 2009.
『단군과 고조선사』, 노태돈 편저, 사계절, 2000.
『한국사 시민강좌』2, 이기백 외, 일조각,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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