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정치삼국 이전단군 이야기와 고조선

고조선의 정치구조

좌장군(左將軍)이 양군(兩軍)을 합쳐서 즉시 조선(朝鮮)을 공격하였다. 조선상(朝鮮相) 노인(路人), 상(相) 한음(韓陰), 니계상(尼谿相) 참(參), 장군(將軍) 왕겹(王唊)이 함께 모의하여 말하였다.

『사기』권115, 「조선열전」55

『위략(魏略)』에 따르면 “처음 우거(右渠)가 아직 격파되기 이전에 조선상(朝鮮相) 역계경(歷谿卿)이 간하였지만, 우거가 듣지 않았다. 이에 역계경은 동쪽 진국(辰國)으로 갔다. 이때 민(民)으로 따라가 옮긴 자가 2000여 호(戶)였다”고 하였다.

『삼국지』권30, 「위서」30 오환선비동이전

左將軍已幷兩軍, 卽急擊朝鮮. 朝鮮相路人⋅相韓陰⋅尼谿相參⋅將軍王唊,

……(中略)……

相與謀曰.

『史記』卷115, 「朝鮮列傳」55

魏略曰, 初右渠未破時, 朝鮮相歷谿卿以諫, 右渠不用. 東之辰國. ……(中略)…… 時民隨出居者二千餘戶.

『三國志』卷30, 「魏書」30 烏丸鮮卑東夷傳

이 사료는 고조선 멸망기의 것으로 상(相)⋅장군(將軍)의 관명이 전하고 있다. 『사기(史記)』와 『한서(漢書)』 「조선열전(朝鮮列傳)』에는 이 외에도 위만(衛滿) 집권 이후 고조선의 관직으로 대신(大臣)과 비왕(裨王)이 보이며, 『삼국지(三國志)』에도 인용된 『위략(魏略)』에는 위만 집권 이전 고조선의 관직으로 대부(大夫)와 박사(博士)가 보인다.

이러한 관명은 고조선의 정치 구조를 짐작하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상(相)’의 관명이 주목된다. 이 사료에는 모두 4명의 상이 이름과 함께 전하는데, 조선상(朝鮮相) 노인(路人)⋅상(相) 한음(韓陰)⋅니계상(尼谿相) 참(參)⋅조선상(朝鮮相) 역계경(歷谿卿)이다. 이 외에도 한나라가 고조선의 왕험성을 함락시킨 후 행한 논공행상을 보면, 고조선의 상 2명과 상의 아들 1명이 한나라의 열후(列侯)로 봉해졌다. 이와 같이 상이 역사책에 등장하는 횟수가 다른 여러 관명과 비교해 가장 많기는 하지만, 고조선의 상 관직이 언제부터 운용되었는지는 아직까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다만 위만의 집권 이후 상이 자주 보인다는 점에서 적어도 고조선 후기의 정치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관직의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상 제도는 고대 중국에서 비롯되었는데, 진(秦)⋅한(漢)대의 ‘상’은 승상(丞相)으로 나라의 정무를 총괄하는 최고위 관직이었다. 고조선의 상 관명도 이러한 고대 중국의 상 제도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고조선의 상은 진⋅한의 승상과 차이가 있었다. 진⋅한의 승상은 황제가 임면권(任免權)을 가진 관료적 존재였다. 그런데 조선상 역계경은 우거왕(右渠王)과 이견이 있자 무리 2000호를 이끌고 남쪽의 진국(辰國)으로 이주해 갔다고 한다. 이로 보아 고조선의 상은 우거왕이 임명한 관료라기보다는 나름의 세력 기반을 보유한 수장과 같은 존재였다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고조선의 관명이 니계⋅역계와 같은 지역명으로 이름이 붙여졌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이들은 니계⋅역계를 출신지로 보기도 하고, 혹은 그러한 지역 집단의 대표자였다고 보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이러한 사실은 고조선의 중앙 정치가 여러 지역 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여러 지역 집단이 연합해 고조선의 국가 체제를 구성하고, 국왕과 각 지역 집단의 대표자의 합의를 통해 중앙 정치가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고조선의 왕위 계승이 부자 상속을 원칙으로 하였고, 태자와 왕자를 구분하고 있다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왕권은 여러 지역 집단의 대표자보다는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하여 장군 왕겹(王唊)의 존재를 주목해 볼 수 있는데, 그는 왕실 직속 부대의 지휘관으로 국왕의 관료적 존재였다고 여겨진다. 고조선의 왕권은 이러한 관료적 존재를 통해 다른 지역 집단을 압도하였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고조선의 왕권은 지방의 여러 세력을 직접 통치하는 대신 여러 지역 집단의 대표자와 연합해 중앙 정치를 운영해 나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고조선의 왕권은 나름의 관료 조직을 갖추고 다른 여러 지역 집단의 대표자보다 한층 우위에 있으면서, 지방에 있는 여러 세력을 통제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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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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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
『단군과 고조선사』, 노태돈 편저, 사계절,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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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과 고조선』, 이형구 편저, 살림터,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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