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정치삼국 이전단군에 대한 인식

고려 후기의 단군 인식

그 후에 상소하여 말하였다. “……(중략)…… 또한 하늘의 운수는 순환하여 돌고 다시 시작합니다. 700년이 하나의 소원(小元)이 되고, 3600년이 쌓여 하나의 대주원(大周元)이 됩니다. 이는 황제(皇帝)⋅왕패(王覇)이난흥쇠(理亂興衰)의 주기(週期)입니다. 우리 동방은 단군(檀君)으로부터 지금까지 이미 3600년이 되었으니, 곧 주원(周元)의 기회입니다. 마땅히 요순(堯舜)과 육경(六經)의 도(道)를 쫓되 공리화복(功利禍福)을 논하지 마십시오. 이와 같이 하면 하늘(上天)이 진실로 돕고 음양(陰陽)이 때를 맞추어 국운이 길어질 것입니다”

『고려사』권112, 「열전」25 [제신] 백문보

後上䟽言事曰. ……(中略)…… 且天數循環周而復始. 七百年爲一小元, 積三千六百年爲一大周元. 此皇帝王覇理亂興衰之期. 吾東方自檀君至今已三千六百年, 乃爲周元之會. 宜遵堯舜六經之道, 不行功利禍福之說. 如是則, 上天純祐, 陰陽順時, 國祚延長.

『高麗史』卷112, 「列傳」25 [諸臣] 白文寶

이 사료는 백문보(白文寶, 1303~1374)가 조정에 올린 상소문 중 일부이다. 1363년(공민왕 12년) 공민왕의 목숨을 노린 흥왕사(興王寺)의 난이 발생하여 고려 사회가 혼란에 빠지자 백문보는 상소문을 통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책을 제시하였다. 그런데 이때 백문보가 고려의 역사를 주기설(週期說)에 입각해 단군(檀君)으로부터 그때까지를 3600년이라 주장한 점이 주목된다.

백문보가 단군의 건국 시점을 3600년 전으로 본 것은 일연(一然, 1206~1289)이나 이승휴(李承休, 1224~1300)의 이해와 차이를 보인다. 일연은 『위서(魏書)』를 인용해 단군의 즉위가 중국의 요(堯) 임금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소개하였고, 이승휴는 그로부터 신라의 경순왕(敬順王, 재위 927~935)이 고려 태조(太祖)에게 귀부한 시점(935년)까지 3288년이었다고 파악하였다. 일연의 경우 단군의 즉위 시점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았지만, 이승휴의 경우 백문보가 상소문을 올린 시점(1363년)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면 3600년이 아니라 3716년이 된다. 따라서 이승휴와 백문보의 설명에는 차이가 난다. 이러한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고려 시기 유행했던 도참설(圖讖說)에서 3600년을 대주원(大周元)으로 인식하고 그 속에서 고려의 역사를 이해하고자 했던 점을 고려해 보면, 백문보도 이와 같은 도참설에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백문보는 비록 고려 후기의 대표적인 성리학자였지만, 도참사상을 수용해 단군을 국조로서 주목한 것이다.

비단 백문보만 아니라 고려 후기 성리학자들은 단군을 국조(國祖)로 이해하였다. 이로써 고려 역사의 유구함을 제시하고 성리학적 정치 개혁의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고려 후기의 모든 성리학자가 단군 신화의 내용까지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신화적 색채가 짙은 단군 신화의 내용은 부정하고 고려의 국조로서 단군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고려 후기의 단군 이해 방식은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고려시대의 단군전승과 인식』, 김성환, 경인문화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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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사연구』, 이종욱, 일조각, 1993.
『조선전기사회사상연구』, 한영우, 지식산업사, 1983.
편저
『단군과 고조선사』, 노태돈 편저, 사계절, 2000.
『단군 : 그 이해와 자료』, 윤이흠 외 공저,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4.
『설화와 역사 : 이근최래옥교수화갑기념논문집』, 이근최래옥박사화갑기념논문집간행위원회 편, 집문당, 2000.
『한국의 역사인식』상⋅하, 이우성⋅강만길 편, 창작과 비평사, 1976.
『단군과 고조선』, 이형구 편저, 살림터, 1999.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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