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정치삼국 시대신라의 체제 정비와 영토 확장

왕호의 변화로 본 신라의 성장

『삼국사(三國史)』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라에서는 왕을 부르기를 거서간(居西干)이라고 하는데, 진(辰)의 말로 왕이며 혹 귀인(貴人)을 부르는 칭호라고도 한다. 또 차차웅(次次雄) 혹은 자충(慈充)이라고도 한다. 김대문(金大問)은 말하기를, “차차웅은 방언에서 무당을 이른다. 세상 사람들이 무당은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숭상하므로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공경하게 되어 마침내 존장자(尊長者)를 일컬어 자충(慈充)이라 하였다. 또 이사금(尼師今)이라고도 하는데, 잇금을 이른 말이다.”라고 하였다. 처음 남해왕(南解王)이 돌아가시자 아들인 노례(弩禮)가 왕위를 탈해(脫解)에게 사양하였다. (탈)해가 이르기를, “나는 성스럽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빨이 많다고 들었다.”고 하면서 이에 떡을 물어 시험하였다. 예로부터 이와 같이 전한다. 혹자는 (왕을) 마립간(麻立干)【입(立)은 수(袖)라고도 쓴다】이라고도 부른다. 김대문이 말하기를, “마립(麻立)이라는 것은 방언으로 궐(橛)이라고도 하는데, 궐표(橛標)는 벼슬에 따라 설치되므로 곧 왕의 궐이 위(位)를 따라 설치하므로 왕의 궐이 주(主)가 되고 신하의 궐은 아래에 배열하게 되어 이로 인해 이름 붙여졌다.”라고 하였다.

사론(史論)에서 말하기를, “신라에서 거서간차차웅으로 불린 사람이 1명, 이사금으로 불린 사람이 16명, 마립간으로 불린 사람이 4명이다. 신라 말의 이름난 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이 『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을 지으면서 모두 무슨 왕[某王]이라 칭하고 거서간 등은 언급하지 않았는데, 어찌 그 말이 야비하므로 부르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하겠는가? 지금 신라의 일을 기록하면서 방언을 그대로 두는 것 또한 마땅하다. 신라인들은 무릇 추봉(追封)된 사람을 갈문왕(葛文王)으로 부르는데, 자세하지는 않다.”라고 하였다.

삼국유사』권1, 「기이」2 제2남해왕

按三國史云. 新羅稱王曰居西干, 辰言王也, 或云呼貴人之稱. 或曰次次雄, 或作慈充. 金大問云, 次次雄方言謂巫也. 世人以巫事鬼神尚祭祀, 故畏敬之, 遂稱尊長者爲慈充. 或云尼師今, 言謂齒理也. 初南解王薨, 子弩禮讓位於脫解. 解云, 吾聞聖智人多齒, 乃試以餅噬之. 古傳如此. 或曰麻立干【立一作䄂】. 金大問云, 麻立者, 方言謂橛也, 橛標准位而置, 則王橛爲主, 臣橛列於下, 因以名之.

史論曰, 新羅稱居西干⋅次次雄者一, 尼師今者十六, 麻立干者四. 羅末名儒崔致逺, 作帝王年代暦, 皆稱某王, 不言居西干等, 豈以其言鄙野不足稱之也. 今記新羅事, 具存方言, 亦冝矣. 羅人凢追封者, 稱葛文王, 未詳.

『三國遺事』卷1, 「紀異」2 第二南解王

이 사료는 다양한 신라 왕호의 유래와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라에서는 거서간(居西干)차차웅(次次雄)이사금(尼師今)마립간(麻立干) 등 다양한 왕호(王號)가 사용되었다.

사료에 따르면 거서간은 진한(辰韓)의 말로 왕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거서간의 구체적인 어원은 분명치 않다. 원래 간(干)이란 용어는 고대 동북아시아 여러 부족 사이에서 수장(首長)을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거서간으로 불린 혁거세6촌장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음을 감안하면 거서간6촌장을 비롯한 여러 간을 대표하는 간, 즉 여러 간이 대표로 받드는 수장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삼국유사』 권1의 왕력(王曆)편에 따르면 남해 차차웅거서간으로 부르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는 곧 거서간차차웅의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알려 준다. 김대문은 차차웅이 무당을 일컫는 방언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당시의 왕이 제사장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적어도 남해 차차웅 때까지는 왕이 수장이란 의미와 함께 제사장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당시의 신라가 제정일치 사회였음은 물론이고 신정정치(神政政治, Theocracy)적인 성격이 강한 사회였음을 나타낸다고 생각된다.

이와 달리 이사금의 경우 김대문은 이가 많은 연장자의 의미로 풀이하였다. 여기에 대해 이사금은 선왕의 대를 물려받은 임금이란 의미의 사왕(嗣王)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지만, 어쨌든 유리가 탈해(脫解)보다 나이가 많아 먼저 왕위에 올랐다는 설화는 여러 부족장이 모여 자신들을 대표하는 장을 선출하는 전통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 물론 무조건 나이가 많은 사람을 장으로 선출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대등한 인물이 있을 경우 연장자를 선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으로 이해해도 무리는 없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면 왕호를 이사금으로 부르던 시기는 씨족사회 이래로 혈연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연령에 따른 풍부한 경험을 가진 사람을 대표자로 선정하던 연로 정치(年老政治, Gerontocracy)의 성격을 띠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김대문은 마립간의 마립(麻立)은 방언으로 ‘말뚝’이란 뜻을 가지는데, 말뚝은 위계에 따라 설치되므로 왕의 말뚝이 주(主)가 되고 신하의 말뚝은 그 아래에 배열되었기 때문에 마립간이란 용어가 생겨났다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근래에는 마립간을 우리말의 머리[頭]나 마루[宗] 등과 어원이 같다고 이해하는 견해가 많다. 즉, 마립간은 으뜸이 되는 간(干) 또는 우두머리 간으로 볼 수 있으므로, 대수장(大首長) 내지 최고 지배자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하겠다. 『삼국유사』에서는 17대 나물왕/내물왕(奈勿王)부터, 『삼국사기』에서는 19대 눌지왕(訥祗王)부터 각각 마립간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어느 쪽을 따르더라도 마립간이란 왕호의 등장은 김씨의 왕위 세습을 비롯해 이전에 비해 왕권이 한층 강화된 때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따라서 마립간은 연장자의 의미를 지닌 이사금에 비해 정치 지배력이 더욱 강화된 통치자의 의미를 지녔다고 이해된다. 다만 마립간에 대한 김대문의 해석도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김대문의 해석에 주목하면 바로 신라의 합좌(合坐) 제도에 대한 일면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왕호의 유래나 의미에 대한 김대문의 해석은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신라 사회의 여러 복합적 양상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마땅히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신라의 왕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서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 순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왕호의 변화는 단순한 칭호의 변화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었다. 왕호에는 신라의 발전 과정과 그에 따른 왕권의 성장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에서 초기 신라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신라 상고기의 왕권과 관등」,『동국사학』30,김희만,동국사학회,1996.
「김대문과 그의 사학」,『역사학보』77,이기백,역사학회,1978.
저서
『한국사학의 방향』, 이기백, 일조각, 1978.
『한국고대사연구』, 이병도, 박영사, 1976.
편저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1(고조선⋅삼국), 서의식⋅강봉룡, 솔출판사, 2002.
「성립과 발전」 ; 「나제동맹의 결성과 정치적 발전」, 이우태, 국사편찬위원회, 2003.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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