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시대에 알천공(閼川公)⋅임종공(林宗公)⋅술종공(述宗公)⋅호림공(虎林公)
【자장(慈藏)의 아버지】
⋅염장공(廉長公)⋅유신공(庾信公)이 있었다. 이들은 남산(南山) 우지암(于知巖)에 모여 나랏일을 논의하였다. 이때 큰 호랑이가 좌중으로 뛰어드니 여러 공들이 놀라 일어섰는데, 알천공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담소를 나누며 태연하게 호랑이의 꼬리를 붙잡아 땅에 메쳐 죽였다. 알천공의 여력이 이와 같아서 상석에 앉았으나 여러 공들은 유신공의 위엄에 복종하였다.
신라에는 4영지(四靈地)가 있어 장차 나라의 큰일을 논의할 때 대신들이 그곳에 모여 논의하면 그 일이 반드시 이루어졌다. 4영지의 첫째는 동쪽의 청송산(靑松山)이라 하고, 둘째는 남쪽의 우지산(于知山)이라 하며, 셋째는 서쪽의 피전(皮田)이라 하고, 넷째는 북쪽의 금강산(金剛山)이라 하였다. 진덕여왕 때 비로소 설날 아침의 조례[正旦禮]를 행하였고, 처음으로 시랑(侍郞)의 칭호도 쓰기 시작하였다.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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