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정치삼국 시대삼국의 국제관계

원광의 걸사표

(진평왕) 30년(608) 왕이 고구려가 자주 국경을 침략하는 것을 걱정하여 수나라에 군사를 요청해 고구려를 치고자 원광(圓光)에게 명하여 걸사표(乞師表)를 짓도록 하였다. 원광이 말하기를, “자기가 살고자 남을 멸하는 것은 출가한 승려[沙門]로서 (적합한) 행동은 아니지만, 제가 대왕의 땅에서 살고 대왕의 물과 풀을 먹고 있으니 감히 명을 따르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면서 (글을) 지어 아뢰었다.

……(중략)…… (611년) 왕이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 표(表)를 올려 군사를 청하였는데, 수나라의 양제(煬帝)가 이를 허락하였다. 군사를 움직인 일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도 실려 있다.

삼국사기』권4, 「신라본기」4 진평왕 30⋅33년

王患高句麗屢侵封埸, 欲請隋兵以征高句麗, 命圓光修乞師表. 光曰, 求自存而滅他, 非沙門之行也, 貧道在大王之土地, 食大王之水草, 敢不惟命是從, 乃述以聞.

……(中略)…… 王遣使隋, 奉表請師, 隋煬帝許之. 行兵事在高句麗紀.

『三國史記』卷4, 「新羅本紀」4 眞平王 30⋅33年

이 사료는 원광(圓光)이 수나라에 군사를 요청하는 걸사표(乞師表)를 짓게 된 동기와 과정을 보여 준다. 진평왕(眞平王, 재위 579~632)은 고구려의 잦은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수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고자 원광에게 걸사표를 짓도록 하였다. 여기에는 원광이 중국에 유학을 다녀왔다는 점이 크게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진평왕의 입장에서는 중국 사정에 밝은 사람이 표문을 짓기를 원하였을 테고, 거기에 적합한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원광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점은 반대로 진평왕 대까지만 하더라도 신라에서 외교 문서를 능통하게 작성할 수 있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음을 알려 준다.

사료에 나와 있듯이 원광은 고구려를 정벌하기 위해 표문을 짓는 것은 승려로서 적합한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범강경보살계(梵綱經菩薩戒)』의 11번째 경계(輕戒)에서 승려가 군사 사절(軍事司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 구절이 있는데, 원광이 말한 승려로서 적합하지 않은 행동이란 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보다 오히려 불도(佛道)에 어긋나는 것임을 스스로 인정하였다. 원광의 이러한 태도는 그가 현실과 어느 정도 타협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다만 원광이 불법보다 세속의 법을 더 우위에 두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승려로서의 도리를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가 걸사표를 짓는 과정에서 얼마나 고뇌하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원광은 자신이 표문을 짓게 된 계기가 다름 아닌 국왕의 명에 의한 것이라는 점도 함께 언급하였다. 즉 승려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왕의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 점은 단순히 원광에게만 국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진평왕 대에 이르면 신라의 영토 내에 살고 있는 사람은 모두 왕의 신민(臣民)이라는 의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식은 국왕에 대한 충성으로 이어지는데, 원광이 중국에서 귀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귀산(貴山) 등에게 지어 주었다는 세속오계(世俗五戒)의 첫 번째가 사군이충(事君以忠)이었다는 사실은 그 좋은 예다. 이와 같은 임금에 대한 충성은 신라가 고구려의 침략을 독자적으로 막아 내기에 역부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백제와 고구려를 물리치고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원광법사의 행적에 관한 종합적 고찰」,『신라문화』28,김복순,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2006.
「신라 원광법사의 여래장사상과 교화활동」,『영향상사학』11,박미선,영향상사학회,1998.
「원광과 진평왕대의 점찰법회」,『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12,신종원,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1991.
「원광법사와 삼기산 금곡사」,『사총』17⋅18합,정영호,고려대학교 사학회,1973.
「원광의 생애와 사상-『삼국유사』「원광전」의 분석을 중심으로-」,『태동고전연구』12,최연식,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1995.
저서
『신라사상사연구』, 이기백, 일조각, 1986.
편저
「원광과 그의 사상」, 이기백, 전북사학회 영향연구실 편, 1979.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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