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왕 4년(645)] 여러 장수가 안시성(安市城)을 급히 공격하였다. 황제가 성 안에서 닭과 돼지 소리를 듣고 이세적(李世勣)에게 말하였다. “성을 포위한 지 오래되어 성 안에서 밥 짓는 연기가 날마다 줄어들었는데, 오늘 닭과 돼지가 매우 심하게 우니 이는 반드시 군사를 먹이고 밤에 나와서 우리를 습격하고자 하는 것이다. 마땅히 군사를 엄히 하여 그에 대비하도록 하라!”
그날 밤에 우리 군사 수백 인이 줄을 타고 성을 내려갔다. 황제가 이를 듣고 성 아래에 이르자 군사를 불러 갑자기 공격하니, 우리 군사 중 죽은 자가 수십 인이었고 남은 군사 역시 퇴각하였다. 강하왕(江夏王) 도종(道宗)은 군사를 감독해 성의 동남쪽 모서리에서 토산(土山)을 쌓고 성을 위협하였는데, 성 안에서도 또한 성벽을 높이 쌓고 그에 맞섰다. 사졸(士卒)은 번(番)을 나누어 교대로 전투하였는데, 교전이 하루에 6~7회 있었다. 충차(衝車)와 포석(礮石)으로 그 성첩(樓堞)을 무너뜨리면 성 안에서는 목책(木柵)을 세워서 그 무너진 곳을 막았다. 도종이 발을 다치자 황제가 친히 그에게 침을 놓아 주었다. 토산을 쌓기를 밤낮으로 쉬지 않았으니, 60일 동안 인력을 들인 것이 50만 명이었고 토산의 정상은 성에서 몇 길 떨어져 아래로 성 안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도종은 과의(果毅) 부복애(傅伏愛)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토산의 정상에 주둔하며 적을 대비하도록 하였는데, 토산이 무너지며 성을 눌러서 성이 무너졌다. 이때 부복애는 사사로이 인솔 부대를 떠나 있었는데, 우리 군사 수백 인은 성이 무너진 곳으로 나아가 싸워 토산을 빼앗고 점거하였으며 해자(垓字)를 파서 이를 지켰다. 황제가 노하여 부복애를 참수하고 이를 두루 돌리고, 여러 장수에게 명하여 안시성을 공격하도록 하였지만 3일 동안 이길 수 없었다.
……(중략)…… 황제는 요동이 일찍 추워져서 풀이 마르고 물이 얼므로 군사와 군마가 오래 머물기 어렵고, 또한 군량이 떨어져갔으므로 명하여 철군(撤軍)하도록 하였다.
『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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