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정치통일 신라와 발해발해의 건국과 발전

발해의 중앙 관제

관제(官制)에는 선조성(宣詔省)이 있는데, 좌상(左相)⋅좌평장사(左平章事)⋅시중(侍中)⋅좌상시(左常侍)⋅간의(諫議)를 두었다.

중대성(中臺省)에는 우상(右相)⋅우평장사(右平章事)⋅내사(內史)⋅조고사인(詔誥舍人)을 두었다.

정당성(正堂省)에는 대내상(大內相) 1명이 좌상(左相)⋅우상(右相)의 위에 두어졌다. 좌사정(左司政)⋅우사정(右司政) 각 1명이 좌평장사(左平章事)⋅우평장사(右平章事)의 아래에 두어졌는데, 복야(僕射)와 비슷하며 좌윤(左允)⋅우윤(右允)은 [좌(左)⋅우(右)] 이승(二丞)과 비슷하다.

좌육사(左六司)에는 충부(忠部)⋅인부(仁部)⋅의부(義部)에 각 1명의 경(卿)이 사정(司政)의 아래에 두어져 있다. 지사(支司)인 작부(爵部)⋅창부(倉部)⋅선부(膳部)에는 부(部)마다 낭중(郞中)과 원외(員外)가 있다. 우육사(右六司)에는 지부(智部)⋅예부(禮部)⋅신부(信部)와 지사(支司)인 융부(戎部)⋅계부(計部)⋅수부(水部)가 있는데, 경(卿)과 낭(郞)은 좌(左)[육사(六司)]에 준하니 [이는] 육관(六官)과 비슷하다.

중정대(中正臺)에는 대중정(大中正) 1명이 있는데, 어사대부(御史大夫)와 비슷하며 사정(司政)의 아래에 두어졌고, 소정(少正) 1명이 있다.

또 전중시(殿中寺)와 종속시(宗屬寺)가 있는데 [시(寺)마다] 대령(大令)이 있으며, 문적원(文籍院)에는 감(監)이 있다. 영(令)⋅감(監) [아래에는] 모두 소령(少令)⋅소감(少監)이 있다.

태상시(太常寺)⋅사빈시(司賓寺)⋅대농시(大農寺)에는 시(寺)마다 경(卿)이 있다.

사장시(司藏寺)⋅사선시(司膳寺)에는 시(寺)마다 영(令)과 승(丞)이 있다.

주자감(冑子監)에는 감(監)과 장(長)이 있다.

항백국(巷伯局)에는 상시(常侍) 등의 관원이 있다.

……(중략)…… 대개 [발해의] 직제가 중국(中國) 제도를 본받았음은 이와 같다.

『신당서』권219, 「열전」144 북적 발해

官有宣詔省, 左相⋅左平章事⋅侍中⋅左常侍⋅諫議居之.

中臺省, 右相⋅右平章事⋅內史⋅詔誥舍人居之.

政堂省, 大內相一人, 居左右相上. 左⋅右司政各一, 居左右平章事之下, 以比僕射, 左⋅右允比二丞.

左六司, 忠⋅仁⋅義部各一卿, 居司政下. 支司爵⋅倉⋅膳部, 部有郞中⋅員外. 右六司, 智⋅禮⋅信部, 支司戎⋅計⋅水部, 卿⋅郞準左, 以比六官.

中正臺, 大中正一, 比御史大夫, 居司政下, 少正一.

又有殿中寺⋅宗屬寺, 有大令, 文籍院有監, 令⋅監皆有少.

太常⋅司賓⋅大農寺, 寺有卿.

司藏⋅司膳寺, 寺有令⋅丞.

冑子監有監⋅長.

巷伯局有常侍等官.

……(中略)……大抵憲象中國制度如此.

『新唐書』卷219, 「列傳」144 北狄 渤海

이 사료는 북송(北宋) 대에 구양수(歐陽脩, 1007~1072) 등이 편찬한 『신당서(新唐書)』에 수록된 발해의 중앙 관제(官制)에 관한 내용이다. 아쉽게도 발해는 자신들의 손으로 남겨 놓은 사료가 없기 때문에 발해사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발해가 존속한 시기와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편찬된 중국 측 사료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신당서』 발해전에는 발해 중앙 관제의 명칭과 소속 관직, 관원 수 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전한다.

그런데 『신당서』 발해전에는 각 관부가 어떠한 기능을 수행하였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다만 중앙 관제를 나열한 말미에 “대개 [발해의] 직제가 중국 제도를 본받았다”고 한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발해의 중앙 관제는 당(唐)나라 관제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발해 중앙 관부의 기능과 역할은 당나라 직제와의 비교를 통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발해 중앙 관제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선조성(宣詔省)에는 좌상(左相), 좌평장사(左平章事), 시중(侍中) 등의 관직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관직명으로 보아 당나라에서 정책 심의와 왕명 출납 등을 맡았던 문하성(門下省)에 비견된다. 그리고 중대성(中臺省)은 당나라에서 정책의 수립을 맡았던 중서성(中書省)에, 정당성(正堂省)은 당나라에서 행정을 집행하였던 상서성(尙書省)에 각각 해당되었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정당성이 행정 집행을 담당하였던 까닭에 좌육사(左六司)와 우육사(右六司)는 정당성에 소속되어 있었다. 좌사(左司)와 우사(右司)는 충부(忠部)⋅인부(仁部)⋅의부(義部)⋅지부(智部)⋅예부(禮部)⋅신부(信部)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동안의 연구를 통해 충부는 당나라에서 관리의 임명과 인사 등을 담당하였던 이부(吏部)에, 인부는 재정과 경제 관련 업무를 담당한 호부(戶部)에, 의부는 의례 등을 담당한 예부(禮部)에 비견될 수 있다. 또 지부는 군사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던 병부(兵部)에, 예부는 법률과 관련한 업무를 담당하였던 형부(刑部)에, 신부는 토목과 건설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던 공부(工部)에 각각 해당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중정대(中正臺)는 『신당서』 발해전에 당나라의 어사대(御史臺)와 비슷하다고 언급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감찰 업무를 담당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밖에도 전중시(殿中寺)는 당(唐)의 전중성(殿中省)처럼 국왕의 복식과 음식 등 의식주 문제를, 종속시(宗屬寺)는 당 종정시(宗正寺)처럼 국왕의 친인척 관리를, 문적원(文籍院)은 당 비서성(秘書省)과 같이 서책류의 관리와 비문⋅제문 작성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당나라의 것과 명칭이 동일한 태상시(太常寺)는 예악(禮樂)과 제사를, 사빈시(司賓寺)는 당의 홍려시(鴻臚寺)처럼 외국 사신의 접대를, 대농시(大農寺)는 당 사농시(司農寺)처럼 곡식과 전국의 창고 관리를, 사장시(司藏寺)는 당 태부시(太府寺)처럼 재화의 보관과 무역 업무를 담당하였으며, 사선시(司膳寺)는 당의 광록시(光祿寺)처럼 궁중의 음식을, 주자감(冑子監)은 당의 국자감(國子監)처럼 교육 기관의 기능을, 항백국(巷伯局)은 당의 내시성(內侍省)과 같이 후궁의 명령 전달과 환관들의 편의 제공을 각각 관장하였을 것이다.

『신당서』 발해전의 말미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발해의 중앙 관제는 기본적으로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채용한 것은 아니었다. 가령 3성(省)의 경우 발해와 당나라는 명칭은 물론이고 지위에도 차이가 있었다. 당나라에서는 문하성과 중서성이 상서성보다 우위에 있으면서 상서성은 문하성과 중서성의 관할 하에 있었다. 반면 발해는 당나라 상서성에 비견되는 정당성의 장(長)인 대내상(大內相)이 선조성중대성의 장이라고 할 수 있는 좌상(左相)과 우상(右相)보다 서열상 위에 있었다. 따라서 당나라와 달리 발해에서는 행정 집행 기관인 정당성이 최고 권력 기구로 자리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중앙 행정 업무를 담당하였던 충⋅인⋅의⋅지⋅예⋅신부도 당나라의 이⋅호⋅예⋅병⋅형⋅공부와 명칭상 차이가 있으며, 다른 관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한 당나라에서는 전중성⋅비서성⋅내시성은 문하성⋅중서성⋅상서성과 함께 6성에 해당할 정도의 지위를 가졌지만, 발해에서는 전중시⋅문적원⋅항백국이 중앙 관제의 서열상 성(省)보다 낮은 지위에 있었다. 아울러 6부에 소속된 하부 관서가 당나라는 24개였던 데 반해 발해는 12개에 불과하였다. 이처럼 발해의 중앙 관제는 당나라의 제도를 수용하되, 단순히 당나라의 제도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조직을 변형하여 운영하였다. 따라서 발해는 당나라와 차이가 있는 독자적인 통치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발해정치외교사』, 김종복, 일지사, 2009.
『발해 문왕대의 지배체제 연구』, 김진광, 박문사, 2012.
『발해정치사연구』, 송기호, 일조각, 1995.
편저
「발해의 중앙 제도」, 김동우, 동북아역사재단, 2007.
「중앙통치조직」, 한규철, 국사편찬위원회, 1996.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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