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8, 925년) 12월에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켰다.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粟末靺鞨)인데,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 때 고구려인 대조영(大祚榮, ?~719)
이 달아나 요동(遼東)을 차지하고 지키니 당나라 예종(睿宗)이 발해군왕(渤海郡王)으로 봉하였다. 그 뒤에 스스로 발해국이라 칭하고 부여(扶餘)⋅숙신(肅愼) 등 10여 국을 아울러 차지하였다. 문자⋅예악(禮樂)과 관부(官府) 제도가 있었고, 5경(京)⋅15부(府)
⋅62주(州)
를 두었으니, 땅이 사방 5000여 리(里)이며 인구는 수십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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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우리 국경과 인접하여 있었는데, 거란과는 대대로 원수지간이었다. 거란주(契丹主)가 군사를 크게 일으켜 발해를 공격하여 홀한성(忽汗城)을 포위하고 발해를 멸망시켜 동단국(東丹國)이라 고쳐 부르니, 발해국의 세자 대광현(大光顯)과 장군 신덕(申德), 예부경(禮部卿) 대화균(大和鈞), 균로사정(均老司政) 대원균(大元鈞), 공부경(工部卿) 대복예(大福譽), 좌우위장군(左右衛將軍) 대심리(大審理), 소장(小將) 모두간(冒豆干), 검교개국남(檢校開國男) 박어(朴漁), 공부경(工部卿) 오흥(吳興) 등이 나머지 무리들을 이끌고 오니, 전후로 도망쳐 온 자가 수만 호였다. 왕은 이들을 매우 후하게 대접했는데, 대광현에게는 왕계(王繼)라는 성명을 내려 주고 종실의 적(籍)에 붙여서 그 선대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그를 보좌하던 사람들에게도 모두 작위(爵)를 내려 주었다.
『고려사절요』권1, 태조신성대왕 을유 8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