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는 말에 의하면 고려에서는 딸을 낳으면 곧 비밀로 하고, 오로지 소문이 날까 우려하여 비록 이웃이라도 볼 수 없다 합니다. 매번 중국에서 사신이 오면 얼굴빛을 바꾸면서 서로 돌아보고 말하기를 “왜 왔을까? 동녀를 구하는 것인가? 처첩을 데려가려는 건 아닌가?”라 합니다. 군리(軍吏)가 사방으로 집집마다 뒤지는데, 혹시 숨기거나 하면 그 이웃들을 잡아 두고 그 친족을 밧줄로 매어 채찍질과 몽둥이질을 하여 숨긴 딸을 찾은 뒤에야 멈춥니다. 한 번 사신이 올 때마다 나라 안이 소란해지니 닭과 개조차도 편안할 수 없습니다.
동녀를 모아서 선발할 때 곱고 추함이 같지 않으니, 사신의 욕심을 채워 만족시켜주면 비록 아름답더라도 놓아 주고는 다른 곳에서 동녀를 다시 찾습니다. 매번 동녀 하나를 찾으려고 수백 가(家)를 뒤지는데 오직 사신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고 감히 어길 수 없으니 황제의 명령을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일이 한 해에 한두 번 있기도 하고 해를 걸러 일어나기도 합니다. 동녀의 수는 많게는 40~50명에 이르는데, 선발되면 곧 부모와 친척들이 서로 모여 통곡하며 우는데 밤낮으로 그 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도성 문에서 송별할 때는 옷자락을 잡고 쓰러지기도 하고 길을 막고서 호소하며 울기도 합니다. 매우 비통하고 분하여 우물에 몸을 던져 죽기도 하고, 스스로 목을 매는 자도 나오며, 근심 걱정으로 혼절하여 쓰러지는 자도 있고, 피눈물을 쏟다가 실명하는 이도 있다 합니다. 이와 같은 일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처첩으로 데려가는 경우는 비록 이와 다르다고는 하더라도, 인정을 거스르고 원망을 사는 점은 다를 게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덕음(德音)을 내시어 감히 황제의 명령을 사칭하여 위로는 성청(聖聽)을 모독하면서 아래로 자기의 이익을 위해 동녀를 취하는 자 및 그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처첩을 취하는 자가 있으면 금지 조목을 명시하여 이후로 그런 일을 바라는 마음을 끊어 버리소서. 그리하여 황제의 조정에서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시는 덕화를 드러내 의리를 사모하는 외국(고려)의 심정을 위로해 주소서. 이렇게 하여 원망을 없애고 조화로운 기운을 불러들여 만물을 자라게 하신다면 그보다 다행은 없을 것입니다.
『가정집』권8, 서, 대언관청파취동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