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 이르기를, “성인의 큰 보배는 위(位)요, 천지의 큰 덕은 생(生)이니, 무엇으로 위를 지킬 것인가? 바로 인(仁)이다. ”라고 하였다. 천자는 천하의 봉공(奉貢)을 누리고, 제후는 그 나라[境內]의 봉공을 누리니, 모두 부귀가 지극한 사람들이다. 현능(賢能)한 사람들은 지혜를 바치고, 호걸들은 힘을 바치며, 백성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맡은 일에 복무하면서 오직 인군(人君)의 명령만 따를 뿐이다. 이것은 위(位)를 얻었기 때문이니, 큰 보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천지는 만물에 대하여 생육(生育)하는 일에 한결같이 할 뿐이다. 대개 그 일원지기(一原之氣)
본래 ‘일원지기(一元之氣)’로 쓰지만, 여기서는 명나라 황제 주원장(朱元璋)의 이름을 피휘(避諱)하여 글자를 바꿈
의 기(氣)가 끊임없이 널리 흐르는데, 만물의 생성은 모두 이 기를 받아 굵기도 하고 가늘기도 하고,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여 제각기 형태를 지니고 제각기 본성을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천지는 만물을 생성시키는 것을 본심으로 삼으니, 이른바 ‘만물을 생성시키는 마음’이란 바로 천지의 큰 덕인 것이다. 인군의 위(位)는 높기로 말하면 높고, 귀하기로 말하면 귀하다. 그러나 천하는 지극히 넓고 만민(萬民)은 지극히 많다. 만일 하나라도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마도 크게 염려할 일이 생기게 될 것이다.
하민(下民)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그들을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혜로 그들을 속일 수 없다.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복종하게 되고, 그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배반하게 되는데, 그들이 배반하고 따르는 그 사이는 털끝만큼의 차이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사사로운 뜻[私意]으로써 구차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도를 어기고 명예만을 구하여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 얻는 방법 역시 인(仁)일 뿐이라 말하는 것이다.
인군(人君)은 천지가 만물을 생육시키는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고 ‘불인인지정(不忍人之政)’1)
을 행하여, 천하 사방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기뻐하여 인군을 마치 자기 부모처럼 우러러볼 수 있게 한다면 오래도록 안녕과 부귀, 존경과 광영의 즐거움을 누릴 것이요, 위험과 패망, 전복과 추락의 근심이 없게 될 것이다. 인(仁)으로써 위(位)를 지킴이 어찌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1)
『맹자(孟子)』 공손추상(公孫丑上)에 나온 말로,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정치’란 인정(仁政)을 뜻한다.
바라옵건대 오직 주상 전하께서는 천리와 인심에 순응하여 보위(寶位)를 신속히 바르게 하셨으니, 인은 심덕(心德)의 온전한 것이 되고 사랑[愛]은 곧 인의 발로라는 것을 아셨다. 그리하여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여 인을 체득하고, 사랑을 미루어서 백성들에게 미쳤으니, 인의 체(體)가 서고, 인의 용(用)이 행해진 것이다. 아! 위(位)를 보유하시어 천만세에 길이 전해질 것을 어찌 믿지 않으랴!
『삼봉집』권7, 『조선경국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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