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백(奉化伯) 정도전(鄭道傳)
, 의성군(宜城君) 남은(南誾), 부성군(富城君) 심효생(沈孝生) 등이 여러 왕자를 해치려 꾀하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참형을 당하였다. 처음에 임금이 정안군(靖安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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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
의 건국 공로는 여러 왕자 중에 견줄 만한 이가 없기 때문에 특별히 대대로 전해 온 동북면 가별치(加別赤) 500여 호를 내려 주었다. 그 후에 여러 왕자와 공신들을 각 도의 절제사로 삼아 시위(侍衛)하는 병마(兵馬)를 나누어 맡게 하니, 정안군은 전라도를 맡게 되고, 무안군(撫安君) 이방번(李芳蕃)은 동북면을 맡게 되었다. 이에 정안군이 가별치를 이방번에게 양보하니, 이방번은 이를 받고 사양하지 않았는데, 임금도 이를 알고 또한 돌려주기를 요구하지 않았다.
정도전
과 남은 등은 권세를 마음대로 부리고자 하여 어린 서자(庶子)를 꼭 세자로 세우려고 하여서 심효생에게 외롭고 한미(寒微)하면 제어당하기 쉽다고 이야기하고는 그 딸을 부덕(婦德)이 있다고 칭찬하며 세자 이방석(李芳碩)의 빈(嬪)으로 삼길 청하였다. 그리고 세자의 동모형(同母兄)인 이방번과 자부(姉夫)인 흥안군(興安君) 이제(李濟) 등과 같이 모의하여 자기편 당을 많이 만들고는, 장차 여러 왕자를 제거하고자 몰래 환자(宦者)
등이 또 산기상시(散騎常侍) 변중량을 사주하여 상소
를 올려 여러 왕자의 병권을 혁파할 것을 청하는 것이 여러 번에 이르렀지만 임금께서 윤허하지 않았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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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
김사행(金師幸)을 사주하여 중국의 여러 황자(皇子)를 왕으로 봉한 예에 따라 여러 왕자를 각 도에 나누어 보내기를 비밀히 계청(啓請)
임금께 아뢰어 청함
하게 하였으나, 임금이 대답하지 아니하였다. 그 후에 임금께서 정안군을 넌지시 타이르며 말하길, “바깥의 이야기를 너희들이 알지 않으면 안되니 마땅히 여러 형들에게 일러주어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것이다.”라 하였다. 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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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정안군이 도당(都堂)
도평의사사
으로 하여금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소(疏)를 올리게 하였다. “후계자를 세울 때에 장자로 하는 것은 만세(萬世)의 상도(常道)인데, 전하께서 장자를 버리고 어린 아들을 세웠으며, 정도전
등이 세자를 감싸고서 여러 왕자를 해치고자 하니 화(禍)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천지와 종사(宗社)
의 신령에 힘입게 되어 난신(亂臣)이 참형을 당하였으니, 원컨대 전하께서는 적장자(嫡長子)인 영안군(永安君)
을 세워 세자로 삼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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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疏)가 올라와서 이문화가 이를 읽기를 마치었는데, 세자도 임금의 곁에 있었다. 임금이 한참 만에 말하였다. “모두 내 아들이니 어찌 옳지 않음이 있겠는가?” 방석을 돌아보고 이르기를, “너에게는 편리하게 되었다” 하고는, 즉시 윤허를 내리었다. 대궐 안에 있던 정승이 무슨 일인가를 물으니, 이문화가 대답하였다. “세자를 바꾸는 일입니다” 노석주(盧石柱)가 교초(敎草)
교지의 초고
를 봉하여 이문화로 하여금 서명(署名)하게 하니, 이문화가 받지 않으므로, 다음에 이화(李和)에게 청하였으나 또한 받지 않으므로, 다음으로 자리에 있던 여러 정승에게 청하였지만 모두 받지 아니하였다. 이에 문화가 말하였다. “그대가 지은 글을 어찌 자기가 서명(署名)하지 않는가?” 석주는, “좋다” 하면서, 곧바로 서명하고 이를 소매 속에 넣었다. 조금 후에 노석주가 대궐에 들어가 명령을 받아 나오면서 말하였다. “교서(敎書)를 고쳐 써서 빨리 내리라고 하셨다.” 이문화가 말하였다. “어떻게 고쳐야 하는가?” 노석주가 말하였다. “개국 공신 정도전
과 남은 등이 몰래 반역을 도모하여 왕자와 종실(宗室)들을 해치려고 꾀하다가, 지금 이미 그 계획이 누설되어 공이 죄를 가릴 수가 없으므로, 이미 모두 살육(殺戮)되었으니, 그 협박에 따라 함께 행동한 무리는 죄를 다스리지 않을 것이라고 고치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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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중량(卞仲良)으로 하여금 이를 써서 올리게 하니, 임금이 시녀(侍女)로 하여금 부축해 일으키게 하고 압서(押署)하기를 마치자, 돌아와 누웠는데 병이 심하여 토하고자 하였으나 토하지 못하며 말하였다. “어떤 물건이 목구멍 사이에 있는 듯한데 내려가지 않는다”
정안군이 군기직장(軍器直長) 김겸(金謙)을 시켜 무기고를 열고 갑옷과 창을 내어 화통군(火㷁軍) 100여 명에게 주니, 군대의 형세가 조금 떨치었다. 갑사(甲士) 신용봉(申龍鳳)이 대궐에 들어가서 정안군의 말을 전하였다. “흥안군과 무안군은 각기 사제(私第)로 돌아갔는데, 의안군 이하의 왕자는 어찌 나오지 않는가?”
여러 왕자가 서로 눈짓하면서 말하지 아니하므로 다시 독촉하니, 이화 이하의 왕자들이 모두 나오다가, 이종(李淙)은 궁성(宮城)의 수문(水門)을 거쳐 도망쳐 나가고, 정신의(鄭臣義)만이 미적거리며 머무르므로 이를 재촉하니, 그제야 나왔다. 도당에서 이방석을 내보내기를 청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이미 주안(奏案)을 윤허했으니, 나가더라도 무엇이 해롭겠는가?”
이방석이 울면서 하직하니, 현빈(賢嬪)이 옷자락을 당기면서 통곡하므로 이방석이 옷을 떨치고서 나왔다. 처음에 이방석을 먼 지방에 안치(安置)하기로 의논했는데, 이방석이 궁성(宮城)의 서문을 나가니, 이거이(李居易)⋅이백경(李伯卿)⋅조박(趙璞) 등이 도당에 의논하여 사람을 시켜 도중에서 죽이게 하였다. 도당에서 또 이방번을 내보내기를 청하니, 임금이 이방번에게 일렀다. “세자는 죽었지만 너는 먼 지방에 안치하는 데 불과할 뿐이다” 이방번이 장차 궁성(宮城)의 남문을 나가려 하는데, 정안군이 말에서 내려 문안에 들어와 손을 이끌면서 말하였다. “남은 등이 처음에 우리 무리를 제거하게 된다면 너도 또한 마침내 화를 면할 수가 없기 때문에 내가 너를 부른 것인데, 너는 어찌 따르지 않았는가? 지금 비록 외방에 나가더라도 얼마 안 되어 반드시 돌아올 것이니, 잘 가거라. 잘 가거라”
장차 통진(通津)에 안치하려고 하여 양화도(楊花渡)
현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지역의 한강 북안에 있었던 나루터
를 건너 도승관(渡丞館)에서 유숙하고 있는데, 이방간(李芳幹)이 이백경(李伯卿) 등과 더불어 또 도당에 의논하여 사람을 시켜 방번을 죽이게 하였다. 『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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