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정치조선 전기중앙 집권 체제의 정비

육조의 권한 강화를 주청하는 상소

비로소 의정부의 업무를 육조(六曹)로 귀속하였다. 좌정승 성석린(成石璘) 등이 아뢰기를 …(중략)…

“우리 조정에서 의정부육조를 설치한 것은 중국 송나라 조정과 제도가 같은데, 그 당시에 논해지던 것들이 또 지금의 폐단과 일치합니다. 지금은 육조 판서 모두의 서열이 높아 일찍이 양부(兩府)를 역임한 자로 임명하고, 맡은 역할에 따라 각기 관장하는 일이 있으며, 또 소속된 관청이 있습니다. 의정부는 모든 것을 다 총괄함으로써 대체(大體)를 가지는 것인데, 지금은 번거롭고 자질구레하며 사소한 사무로 인해 수고로워서 도리어 육조에 소속된 것 같으니, 관청을 설치하고 직책을 나눈 근본을 크게 잃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일에 전례가 있는 것은 모두 각 조(各曹)에 맡기도록 하고, 각 조에서 특별한 예가 있는 경우에 의정부에 보고하면, 의정부에서는 경중을 참작하여 임금께 아뢸 것은 아뢰고, 하달할 것은 하달하며, 각 조에서 만일 착오가 있거나 막히는 것이 있으면, 의정부에서 근면과 태만을 고찰하여 시비를 결정하게 하소서. 이와 같이 하면 크고 작은 일이 서로 유지되고, 번잡하고 간단한 것이 서로 가지런해져, 재상은 사소한 업무에 시달리지 않고 담당 관리는 직무를 폐하는 데에 이르지 아니하여, 강목(綱目)이 거행되고 베풀어져 다스리는 도리가 거의 체통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종실록』권15, 8년 1월 3일(임자)

始以議政府庶務, 歸之六曹, 左政丞成石璘等上言, ……(中略)…… 我朝議政府六曹之設, 與宋朝同制, 其議論又切中今時之弊. 今六曹判書, 皆增其秩, 以曾經兩府者爲之, 其委任各有所掌, 又有其屬. 本府則無所不摠, 而持其大體者也, 今乃勞於煩冗細務, 反若六曹之所役屬, 大失設官分職之體. 自今凡事之有前例者, 皆委各曹, 有別例, 然後呈報本府, 本府參酌輕重, 應啓聞者啓聞, 應行移者行移, 其各曹所爲, 如有錯誤住滯者, 本府考察勤慢, 定奪是非. 如此則大小相維, 煩簡相濟, 宰相不勞於細務, 庶官不至於曠職, 綱擧目張, 其於治道, 庶幾得體矣. 從之.

『太宗實錄』卷15, 8年 1月 3日(壬子)

이 사료는 육조(六曹)의 권한을 강화하는 조치가 담긴 상소로, 이때의 조치는 태종의 왕권 강화 시도와 맥락을 같이 한다. 조선 건국 초 육조는 고려 말의 제도를 계승해서 정3품아문으로 성립되었다가 1405년(태종 5년) 정2품아문으로 격상하여 장관인 판서가 조정에 참여하면서 국정 수행의 중심 관서가 되었다. 이와 동시에 재정과 군기(軍器)를 관장하던 사평부(司平府)와 승추부(承樞府)를 폐지하고 그 사무를 호조와 병조로 이관했으며, 좌우 정승이 장악하던 문무관의 인사권을 이조와 병조로 이관하였다.

또한 같은 해 대언사(代言司)를 강화하여 동부대언을 증설하고 6대언으로 하여금 육조의 사무를 나누어 관장하도록 하였다. 이와 함께 의정부⋅사헌부⋅사간원⋅승정원⋅한성부 등을 제외한 90여 관아를 그 기능에 따라 육조에 분속하여 기능을 크게 강화하였다. 이에 의정부는 정책 의결권만을 가지고 행정적인 서무는 육조로 이관하여, 모든 행정 체계가 육조 중심으로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모든 정무를 육조에서 왕에게 직접 상계하도록 함으로써 실질적인 최고의 행정 관서가 되도록 한 것이다.

이어 1414년(태종 14년)에는 모든 정무를 육조에서 왕에게 직접 계문하도록 하고 의정부사대문서(事大文書)와 중죄수의 재심만을 관장하는 이른바 육조 직계제를 실시하였다. 따라서 그때까지 ‘왕-의정부-육조’ 체제이던 국정이 ‘왕-육조’로 전환되면서 왕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 집권이 크게 강화된다. 이와 같이 육조의 기능을 강화함으로써 공신 계열의 재상권을 약화시키는 반면 태종(太宗, 재위 1400~1418)의 왕권을 강화하여 조선은 국왕 중심의 집권 체제 로 정비되어 갔다.

세조(世宗, 재위 1418~1450) 때의 육조 직계제 부활도 같은 이유였다. 세종 이후 병약한 문종(文宗, 재위 1450~1452)이 일찍 죽고 단종(端宗, 재위 1452~1455)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의정부 대신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졌다. 이에 단종을 몰아내고 즉위한 세조는 강력한 전제 왕권을 행사하기 위해 의정부 서사제(議政府署事制)를 폐지하고 다시금 육조 직계제를 실시하였다. 세조태종 대보다 더욱 강력한 직계제를 실시하여 사형수에 대한 판결을 제외한 모든 업무를 육조에서 직계하도록 하였다.

이후에 간행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의정부가 모든 정무를 처결하고 육조가 이를 실행에 옮기도록 하는 의정부 서사제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실제 운영에서는 왕권의 강약과 결부되면서, 왕과 재상 간의 현실적인 역학 관계에 따라 의정부의 실제 기능은 그때마다 차이가 있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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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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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정치지배세력 연구』, 정두희, 일조각, 1983.
『조선 전기 정치사』, 지두환, 역사문화, 2001.
『조선 초기 언론사 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4.
『조선 초기 정치 문화의 이해』,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5.
『조선 초기 정치사 연구』, 최승희, 지식산업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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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관직과 정치』, 한충희, 계명대학교 출판부, 2008.
『조선 초기 육조와 통치 체제』, 한충희, 계명대학교 출판부, 1998.
『조선 초기의 정치 제도와 정치』, 한충희, 계명대학교 출판부, 2006.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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