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께서 전지(傳旨)를 내리기를, “김종직(金宗直)
은 초야의 미천한 선비로 세조
조에 과거
에 합격하였고, 성종
조에 이르러 경연관(經筵官)
에 발탁하여 오래도록 시종(侍從)의 자리에 있었고, 끝에는 형조판서까지 이르러 은총이 온 조정을 기울였다. 병들어 물러가자 성종
께서 소재지의 수령으로 하여금 특별히 미곡(米穀)을 내려주어 남은 생을 다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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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제자 김일손(金馹孫)
이 찬수한 사초(史草)
내에 부도(不道)한 말로 선왕조의 일을 터무니없이 기록하고, 또 그 스승 김종직
의 「조의제문(弔義帝文)
」을 실었다. 「조의제문
」에 이르기를, 「정축년(1457, 세조
3) 10월 어느 날 나(김종직
)는 밀성(密城)으로부터 경산(京山)으로 향하여 답계역(踏溪驛)에서 잤는데, 꿈에 신령(神靈)이 칠장(七章)의 의복을 입고 헌칠한 모양으로 와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초나라 회왕(懷王) 손심(孫心)인데, 서초 패왕(西楚霸王)1)
에게 살해되어 빈강(郴江)에 묻혀있다. ”라 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꿈에서 깨어 놀라며 이르기를, ‘회왕(懷王)은 남초(南楚) 사람이요, 나는 동이(東夷) 사람으로 지역의 거리가 1만여 리가 될 뿐이 아니며, 세대의 선후도 역시 1000년이 휠씬 넘는데, 꿈속에 와서 감응하니, 이것이 무슨 상서로움일까? 또 역사를 상고해 보아도 시신이 강에 버려졌다는 말은 없으니, 정녕 항우(項羽)가 사람을 시켜서 비밀리에 쳐 죽이고 그 시체를 물에 던진 것일까? 이는 알 수 없는 일이다. ’ 하였다. 드디어 문장을 지어 그를 조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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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초 패왕(西楚霸王) : 항우(項羽, B.C. 232~202)를 말함. 중국 진(秦)나라 말기에 유방(劉邦)과 천하를 놓고 다툰 무장. 진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봉기하여 진군을 도처에서 무찌르고 관중으로 들어갔다. 진을 멸망시킨 뒤 서초 패왕이라 칭했으나 해하에서 유방에게 포위되어 자살하였다.
하늘이 법칙을 마련하여 사람에게 주었으니, 어느 누가 사대(四大)와 오상(五常)2)
을 높일 줄 모르겠는가. 중화(中華)라 하여 풍부하고 이적(夷狄)이라 하여 인색한 바 아니거늘, 어찌 옛적에만 있고 지금은 없겠는가? 그러기에 나는 동이의 사람이요 또 1000 년을 뒤졌건만, 삼가 초 회왕을 조문하노라.
2)
사대(四大)⋅오상(五常) : 사대는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도(道)와 하늘[天]과 땅[地]과 임금[王]이고, 오상은 오륜(五倫)인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을 말한다.
옛날 조룡(祖龍)
를 뒤따라서 군사를 일으켰네. 왕위를 얻되 백성의 소망을 따르니 끊어졌던 웅역(熊繹)
진시황
이 아각(牙角)을 농(弄)하니 사해(四海)의 물결이 피로 물들어 비록 전유(鱣鮪)와 추애(鰌鯢)와 같은 큰 물고기라도 어찌 보전할 것인가. 그물을 벗어나기에 급급하였네. 당시 육국(六國)의 후손들은 숨고 도망가 겨우 필부, 편맹(編氓)이 되었다. 항량(項梁)은 남쪽 초나라의 장수의 후예로, 어호(魚狐)2)
2)
어호(魚狐) : 어백호구(魚帛狐篝)의 준말로 진나라 말기에 난을 일으킨 진승(陳勝)을 가리킨다. 진승이 거사를 일으킬 때 그물에 걸린 물고기 뱃속에 ‘진승왕(陳勝王)’이라고 적은 종이를 넣어놓아 그 고기를 먹은 군졸들이 그 사실을 괴이하게 여긴데서 유래한 말이다.
주나라 때 초 땅에 처음 봉해진 인물
의 제사를 보존하였네. 건부(乾符)
천자의 표시로 갖는 부서(符瑞)
를 쥐고 남면(南面) 하니 천하에 진실로 미씨(芈氏)
초나라의 성씨
보다 큰 것이 없도다. 장자(長者)를 보내어 관중(關中)에 들어가게 하였으니 또한 족히 그 인의(仁義)를 볼 수 있노라. 양흔낭탐(羊狠狼貪)
항우를 가리킴
이 관군(冠軍)
초나라 회왕의 신하인 송의(宋義)
을 마음대로 죽였으니 어찌 잡아다가 제부(齊斧)
정벌하는 도끼
에 기름칠을 아니 하였는가. 아아, 형세가 너무도 그렇지 아니하였으니 나는 왕을 위해 더욱 두렵게 여겼네. 끝내 배신을 당하여 해석(醢腊)
젓갈과 포
이 되었으니 과연 하늘의 운수가 크게 어긋났도다. 빈의 산은 우뚝하여 하늘에 솟았으니 그림자가 해를 가리어 저녁에 가깝고, 빈의 물은 밤낮으로 흐르니 물결이 넘실거려 돌아올 줄 모르도다. 천지도 장구(長久)한들 한이 어찌 다하리. 넋은 지금도 표탕(瓢蕩)하도다. 내 마음이 금석(金石)을 꿰뚫었으니 왕이 문득 꿈속에 임하였네. 자양(紫陽)
주희(朱熹)를 말함
의 노숙한 필체를 따르니, 설레면서 공경히 사모하는구나. 술잔을 들어 땅에 부어 제사를 지내니 바라건대 영령은 와서 흠향하소서. 그 ‘조룡(祖龍)이 아각(牙角)을 농(弄)하였다. ’에서 조룡은 진시황인데, 김종직
이 진시황을 세조
에게 비한 것이요, 그 ‘왕위를 얻되 백성의 소망을 따랐다. ’에서 말한 왕은 초 회왕(楚懷王) 손심(孫心)인데, 처음에 항량(項梁)이 진(秦)나라를 치고 손심을 찾아서 의제(義帝)를 삼았으니, 김종직
은 의제를 노산(魯山)
에게 비한 것이다. 그 ‘양흔낭탐(羊狠狼貪)하여 관군(冠軍)을 함부로 무찔렀다. ’고 한 것은 김종직
이 양흔낭탐으로 세조
를 가리키고, 관군을 함부로 무찌른 것으로 세조
가 김종서
를 벤 것에 비한 것이요. 그 ‘어찌 잡아다가 제부(齊斧)에 기름칠 아니 했느냐. ’는 것은 김종직
은 노산
이 왜 세조
를 잡아 버리지 못했는가 지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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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배신을 당하여 해석(醢腊)이 되었다. ’는 것은 김종직
이 노산
이 세조
를 잡아 버리지 못하고, 도리어 세조
에게 죽었다고 하는 것이요. 그 ‘자양(紫陽)의 노숙한 필체를 따르니 생각이 설레면서 공경히 사모하는 도다. ’고 한 것은 김종직
이 주자(朱子)를 자처하여 그 마음에 부(賦)를 짓는 것을 『강목(綱目)』의 필(筆)에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김일손
이 그 문(文)에 찬(贊)을 붙이기를 ‘이로써 충분(忠憤)을 부쳤다.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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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건대, 우리 세조
대왕께서 국가가 위의(危疑)한 즈음을 당하여, 간신이 난(亂)을 꾀하여 화(禍)의 기틀이 일어나려는 찰나에 역적 무리들을 베어 없앰으로써 종묘
사직
이 위태롭다가 다시 편안하여 자손이 서로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니, 그 공과 업이 높고 커서 덕이 백왕(百王)의 으뜸이시다. 그런데 뜻밖에 김종직이 그 문도(門徒)들과 성덕(聖德)을 속이고 논평하여 김일손
으로 하여금 역사에 거짓을 쓰는[誣書]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이 어찌 하루 아침저녁의 연고이겠느냐. 속으로 불신(不臣)의 마음을 가지고 세 조정을 내리 섬겼으니, 나는 이제 생각할 때 두렵고 떨림을 금치 못하겠다. 동⋅서반(東西班)
3품 이상과 대간
⋅홍문관원으로 하여금 형을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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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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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 패왕(西楚霸王) : 항우(項羽, B.C. 232~202)를 말함. 중국 진(秦)나라 말기에 유방(劉邦)과 천하를 놓고 다툰 무장. 진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봉기하여 진군을 도처에서 무찌르고 관중으로 들어갔다. 진을 멸망시킨 뒤 서초 패왕이라 칭했으나 해하에서 유방에게 포위되어 자살하였다.
- 사대(四大)⋅오상(五常) : 사대는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도(道)와 하늘[天]과 땅[地]과 임금[王]이고, 오상은 오륜(五倫)인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을 말한다.
- 어호(魚狐) : 어백호구(魚帛狐篝)의 준말로 진나라 말기에 난을 일으킨 진승(陳勝)을 가리킨다. 진승이 거사를 일으킬 때 그물에 걸린 물고기 뱃속에 ‘진승왕(陳勝王)’이라고 적은 종이를 넣어놓아 그 고기를 먹은 군졸들이 그 사실을 괴이하게 여긴데서 유래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