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정치조선 전기사림의 대두와 붕당 정치

을사사화

왕은 이르노라. 황천(皇天)이 재앙을 내려 큰 화가 거듭되고, 국가에 어려움이 많아 민심이 안정되지 않았다. 나는 변변찮은 자질로 처음으로 크나큰 제왕의 기업(基業)을 받았으니 모든 신료는 마땅히 마음과 힘을 다하고 각자의 직임을 다함으로써 다른 생각이 없어야 국가를 보호하여 위태롭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윤임(尹任, 1487~1545)은 화심(禍心)을 품고 오래도록 흉계를 쌓아 왔다. 처음에는 동궁(東宮)이 외롭다는 말을 주창하여 사림들 사이에 의심을 일으켰고, 중간에는 정유삼흉(丁酉三兇)1)의 무리와 결탁하여 국모를 해치려고 꾀하였고, 동궁에 불이 난 뒤에는 부도(不道)한 말을 많이 발설하여 사람들을 현란케 하여 걱정과 의심을 만들었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내심 스스로 불안해서 곡진하게 보존할 계책을 세우고 집권 대신과 결탁하여 종사를 위태롭게 하려던 자취가 드러났다.

유관(柳灌, 1484~1545)은 평소 윤임과 친밀하게 교유하며 대행왕(大行王)의 병환이 위독할 때에 정통(正統)은 저절로 돌아갈 데가 있음에도 ‘취품(取稟)해서 정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내가 대위(大位)를 계승한 뒤에는 수렴청정은 본래 옛 전례가 있는데도 ‘모후(母后)는 조정에 임어(臨御)할 수 없다’고 하였다.

유인숙(柳仁淑, 1485~1545)은 윤임과 혼인을 맺고 음모를 조성하며 속으로 권세를 잃을까 근심하였는데, 내가 즉위하자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여겨 몰래 사부(師傅)를 불러다가 나의 현부(賢否)를 물었으며, 나에게 병이 있다고 지칭하고 다른 사람이 혹시 내가 현명하다는 말이라도 하면 기뻐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이는 모두 몰래 다른 뜻을 품고 자기의 욕망을 이루려고 꾀한 것이니 죄가 종사에 관련되어 법으로 용서할 수가 없다. 진실로 율에 따라 죄를 정함이 마땅하다. 다만 선왕조의 구신(舊臣)이므로 차마 지나친 형벌을 가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에 윤임⋅유관⋅유인숙 세 사람에게는 사사(賜死)만 명한다. 이미 간인을 제거하는 법을 바로잡았으니 사유(赦宥)하는 은전(恩典)을 미루어 거행함이 마땅하다.

명종실록』권1, 즉위년 8월 28일(무오)

사신(史臣)은 논한다. 가령 하늘이 인종을 오래 살게 하였다면 비록 대소윤(大小尹)이란 설(說)이 있다 하더라도【대윤(大尹)은 윤임(尹任)을 가리키고, 소윤(小尹)은 윤원로(尹元老) 형제를 가리킨다. 윤임은 곧 장경왕후(章敬王后)의 아우이고 윤원로와 윤원형(尹元衡)은 대왕대비의 아우이다.】 절로 봄눈 녹듯 했을 것이고, 하늘이 명종에게 어진 보필을 주었다면 대소윤 사이에 틈이 있다고 하더라도 또한 화단(禍端)이 해소되어 난이 그치게 되었을 것이다. 모후(母后)가 어린 임금을 옹립하여 국가의 형세가 매우 위태로운 때에 유관(柳灌)이 대신으로서 국권을 담당하였는데 그는 충직함은 남음이 있지만 지혜가 부족한 탓으로 대소윤을 모두 파출하여 국난(國難)을 풀게 할 줄은 모르고 유독 윤원로를 다스리는 데만 급급하였으므로 그 자취가 흡사 대윤을 방조하고 소윤을 공격하는 것같이 되었다. 그래서 대비가 더욱 진노하게 되었고 윤원형의 무리도 구실을 얻게 되어 공적인 명분을 가탁하여 사적인 원한을 갚기 위해 살육과 찬적(竄謫)을 마구 자행하여 하늘이 행할 직분을 더럽혔으므로 그 재앙이 수십 년에 이르도록 그치지 않았던 것이다. 예로부터 외척이 권세를 다투어 서로 도모할 경우 국사를 크게 그르치는 데 이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모후의 마음으로는 비록 사사로운 마음을 다 씻어서 조정을 안정시키려고 한들 누구와 더불어 탕척할 것이며, 비록 대신들에게 의지하여 충성을 다해 나라를 도우려 한들 누구에게 의지하겠는가? 아, 마음 아픈 일이다.

명종실록』권1, 즉위년 7월 7일(정묘)

1)1537년(중종 32년)에 왕의 외척 윤원로 등이 흉물(凶物)이라고 하여 살해한 김안로(金安老)⋅허항(許沆)⋅채무택(蔡無擇) 등을 가리킨다.

王若曰. 皇天降割, 大禍荐臻, 國家多艱, 群情未定. 予以眇質, 初受丕基. 凡在臣僚, 宜協心力, 各盡職而毋貳, 庶保邦於未危. 尹任包藏禍心, 久稔兇計. 始唱東宮孤單之說, 起疑士林, 中締丁酉三兇之流, 謀害國母, 東宮失火之後, 多發不道之言, 眩亂人聽, 搆成虞疑. 至于今日, 內自不安, 曲爲保全之計, 締結執權之臣, 謀危宗社, 情迹發露. 柳灌, 素與尹任更相交密, 當大行大漸之時, 正統自有所歸, 而灌曰: “稟定當立” 及孤嗣服之後, 聽政自有舊規, 而灌曰: “母后不可臨朝” 柳仁淑連婚尹任, 助成陰謀, 內蓄患失之心, 以孤之立, 爲不利於己, 潛招師傅, 問予之昏明, 指予爲有疾, 人或說予賢明, 顯有不悅之色. 是皆陰懷異志, 謀濟己欲, 罪關宗社, 在法罔赦. 固當依律定罪. 第以先朝舊臣, 深加不忍之心, 玆將尹任, 柳灌, 柳仁淑三人, 只令賜死. 旣正去奸之典, 宜推赦過之恩.

『明宗實錄』卷1, 卽位年 8月 28日(戊午)

史臣曰 使天降遐齡於仁宗, 則雖有大小尹之說, 【大尹指尹任, 小尹指尹元老兄弟. 任卽章敬王后之弟, 元老, 元衡卽大王大妃之弟.】 自當春融而氷釋, 使天賚良弼於明宗, 則雖有大小尹之隙, 亦可消禍而弭亂. 當母后擁幼主, 國勢岌岌之時, 灌以大臣當國, 忠鯁有餘, 而智識不足, 不知竝黜大小尹, 以紓國難, 獨急於治元老, 其迹似助大而攻小. 故大妃益怒, 而元衡輩, 亦得以藉口, 托公名報私讎, 大肆殺竄, 以饕天功, 其禍迄數十年而未艾. 自故外戚爭權而相圖, 未有不至於大僨者. 然則母后之心, 雖欲盡洗私以安朝廷, 誰與洗之? 雖欲賴大臣盡忠輔國, 誰與賴之? 嗚呼痛哉.

『明宗實錄』卷1, 卽位年 7月 7日(丁卯)

이 사료는 1545년(명종 즉위년), 윤원형(尹元衡, ?~1565) 일파인 소윤(小尹)이 윤임(尹任, 1487~1545) 일파인 대윤(大尹)을 숙청한 을사사화(乙巳士禍)를 기록한 글과 이에 대한 사관의 평가[史論] 내용이다.

을사사화는 1545년 왕실의 외척 세력인 대윤과 소윤의 반목으로 발생하여, 대윤이 소윤으로부터 받은 정치적인 탄압을 일컫는다.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尹氏, 1501~1565)의 친정 세력인 윤원로(尹元老)⋅윤원형 형제는 김안로(金安老, 1481~1537)에 의해 정계에서 쫓겨났다. 반대파를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김안로 일파는 위세를 떨치며 자신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자들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문정왕후를 폐출하려다 그의 숙부인 윤언임의 밀고로 귀양 간 뒤에 사사되었다.

김안로가 실각한 후 윤여필(尹汝弼)의 딸인 중종의 제1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의 친정인 대윤(大尹)과 윤지임(尹之任)의 딸인 제2계비 문정왕후의 친정인 소윤(小尹) 등 외척 간의 권력 다툼으로 비화하였다.

장경왕후에게 원자(元子) 호(岵)가, 문정왕후에게는 경원대군(慶源大君) 환(峘)이 각각 탄생하면서 윤원로⋅윤원형 형제[小尹]와 세자의 외척인 윤임 일파[大尹] 간의 갈등이 빚어졌는데, 이로써 왕실은 외척을 중심으로 세력이 양분되었다. 중종의 승하한 뒤에 인종(仁宗, 재위 1544~1545)이 즉위하자 외척인 윤임을 중심으로 하는 대윤파가 득세하였다. 인종은 사림의 명사(名士)를 신임하였기에 기묘사화 이후 다시 정권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때 정권에 참여하지 못한 사림은 소윤파에 가담하였다.

그런데 인종이 재위 8개월 만에 승하하자 명종(明宗, 재위 1545~1567)이 12세에 즉위하면서 모후인 문정왕후수렴청정을 하게 되었다. 이로써 정권은 소윤파인 윤원형에게로 넘어갔다. 윤원형윤임 및 그 일파인 영의정 유관⋅유인숙 등 대윤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비책을 꾸미는 동시에, 자신의 첩 난정(蘭貞)으로 하여금 문정대비에게 대윤 일파가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무고하였다. 대윤 일파는 역모죄로 몰려 윤임⋅유관⋅유인숙 등을 비롯해 대부분이 처형되어 몰락하였다. 이를 을사사화라 한다.

을사사화를 계기로 윤원형은 그 권세와 영화를 누렸으나, 1565년(명종 20년) 문정대비가 죽자 몰락하였다. 이후 신진 사류가 다시 정계에 복귀하여 사림 중심의 유교 정치가 개막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기묘사화의 유래에 대한 일고찰」,『청구학총』20,신석호,,1935.
저서
『이조 당쟁사 연구』, 강주진, 서울대학교 출판부, 1971.
『조선 중기 정치사 연구』, 김돈, 국학자료원, 2009.
『조선의 사화와 사상』, 조광, 일조각, 2004.
편저
『조선후기 당쟁의 종합적 검토』, 이성무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2.
『을사사화』, 최수자, 한국인물사연구원 편, 도서출판 타오름,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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