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현전
직제학 양성지(梁誠之)
가 상소
하기를, “공경히 생각하건대, 우리 주상 전하께서 그 문무(文武)의 특별히 뛰어난 자질로써 새로 보위(寶位)에 오르시어 정성을 다해 종묘
에 알현하시니, 이는 정히 정신을 가다듬고 다스림을 꾀하여 새로이 많은 정사를 바로잡을 때입니다. 신이 어리석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우선 조그마한 소견을 가지고 우러러 성총(聖聰)에 번거롭게 하는 바이니, 엎드려 바라건대 예감(睿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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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의 아랑 또는 임금의 너그러운 마음가짐의 의미
으로 굽어 살피소서. ……(중략)…… 1. 예법은 본국의 풍속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개 신은 듣건대 서하(西夏)1)
는 그 나라의 예속(禮俗)을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백 년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원호(元昊)
(世宗)도 또한 매양 상경(上京)의 풍속을 생각하며 종신토록 잊지 않았습니다. 요나라에서는 남부(南府)⋅북부(北府)가 있었고, 원나라에서는 몽관(蒙官)⋅한관(漢官)이 있었는데, 원나라 사람은 그 근본을 중히 여겼기 때문에, 비록 중원(中原)을 잃었어도 사막(沙漠)
1)
11세기 초에서 13세기 초까지 약 200여 년 동안 요⋅금⋅송 세 나라의 틈바구니에서 세력 균형을 이루며 독자적인 문명을 건설했던 사막의 왕국.
서하(西夏)의 경종(景宗)인 이낭소(李曩霄), 즉 이원호를 일컫는 말
는 본시 영웅이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금의(錦衣)와 옥식(玉食)은 번국(蕃國) 사람 체질에 편리한 것이 아니다’ 하였고, 금나라의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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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사막을 말함
이북의 본토는 예전과 같았습니다. 우리 동방 사람들은 대대로 요수(遼水) 동쪽에 살았으며, 만리지국(萬里之國)이라 불렀습니다. 삼면이 바다로 막혀 있고, 일면은 산을 등지고 있어 그 구역이 자연적으로 나누어져 있고, 풍토와 기후도 역시 달라서 단군 이래 관아(官衙)와 주군(州郡)을 설치하고 독자적인 언어와 문자[聲敎]를 써 왔으며, 전조(前朝)의 태조(太祖)
는 신서(信書)를 지어 백성들을 가르쳤는데, 의관과 언어는 모두 본국의 풍속을 준수하도록 하였습니다. 만일 의관과 언어가 중국과 더불어 다르지 않다면 민심이 정착되지 않아서 마치 제나라 사람이 노나라에 간 것과 같게 될 것입니다. 고려 말 불만을 품은 무리가 서로 잇달아서 몽고로 투화(投化)
⋅척석(擲石)3)
이라 할지라도 역시 옛 습속을 좇아도 불가할 것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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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화
한 것은 한 국가로서는 매우 온당치 않은 일입니다. 바라건대 의관은 조복(朝服)을 제외하고 반드시 다 중국 제도를 따를 필요는 없고, 언어는 서로 교류하는 것[通事] 이 외에 반드시 옛 습속을 변경하려 할 것이 아니며, 비록 연등(燃燈)2)
2)
불교 행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월 대보름 불을 켜고 부처에게 복(福)을 빌며 놀던 민속 의식
3)
오월 단오에 돌을 던져서 무예(武藝)를 겨루던 민속놀이의 하나. 대개 두 패로 나누어 강가에서 행하였다.
『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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