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정치근대흥선대원군의 통치

흥선대원군의 정치 개혁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후 어느 공회 석상에서 음성을 높여 여러 대신에게 말하기를 “나는 천리(千里)를 끌어다 지척(咫尺)을 삼겠으며 태산(泰山)을 깎아 내려 평지를 만들고 또한 남대문을 3층으로 높이려 하는데, 여러 공들은 어떠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많은 재상들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는데 김병기가 머리를 들고 말하길, “천리를 지척으로 하려면 지척이 될 것이고, 남대문을 삼층으로 하려면 삼층이 될 것입니다. 대감이 지금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습니까? 하지만 태산은 본디 태산인데 어찌 쉽게 평지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대원군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말하길, “혼자 잘난척 하는군.”이라 하였다. 대저 천리 지척이라는 함은 종친을 높인다는 뜻이요, 남대문 3층이라 함은 남인을 천거하겠다는 뜻이요, 태산 평지라 함은 노론을 억압하겠다는 말이다.

『매천야록』권1, 갑오이전 상

雲峴之始得政也, 甞因公會, 盛氣向諸宰曰, 吾欲引千里爲咫尺, 吾欲剗泰山爲平地, 吾欲高南大門三層, 於諸公何如. 衆不知所以爲對, 金炳冀奮首言曰, 千里亦咫尺則咫尺矣, 南大門亦三層則三層矣. 大監今曰, 何事不可爲, 若泰山則自泰山也, 豈易平地哉. 炳冀出, 雲峴凝思久之曰, 渠自可兒. 盖千里咫尺者, 右宗親也, 南大門三層者, 闡南人也, 泰山平地者, 抑老論也.

『梅泉野錄』卷1, 甲午以前 上

이 사료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노론을 누르고 남인을 기용하여 정치를 안정시키려 했음을 보여 주는 『매천야록(梅泉野錄)』의 일부 내용이다. 『매천야록』은 구한말 학자 황현(黃玹, 1855~1910)이 1864년(고종 1년)부터 1910년(대한제국 융희 4년)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역사책이다. 1910년 8월 22일 한일병합 조약이 체결된 후부터 황현이 자결할 때까지의 부분은 문인 고용주(高墉柱, 1865~1930)가 추가로 기록한 것이다.

흥선대원군세도 정치 시기의 무너진 왕권을 바로세우고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한 개혁 정책을 실시하였다. 특히 안동 김씨 일족을 축출하고 능력에 따른 인재를 등용하려 하였다. 이를 위해 비변사의 기능을 축소하고 정치 기능은 의정부로, 군사 기능은 삼군부로 부활시켰다. 이는 전통적 통치 체제를 재확립하여 국가 기강을 확립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흥선대원군」,『한국사시민강좌』13,유영익,일조각,1993.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치와 그 한계성」,『동학연구』11,이문수,한국동학학회,2002.
「흥선대원군의 정치개혁」,『한국사학』16,이현희,한국정신문화연구원,1996.
저서
『고종대 정치변동 연구』, 연갑수, 일지사, 2008.
『한국 근대사의 재조명』, 황선희, 국학자료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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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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