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정치근대개항과 불평등 조약

조⋅일 수호 조규 부록, 조⋅일 무역 규칙

조일 수호 조규부록

일본국 정부는 지난번 특명전권변리대신(特命全權辨理大臣) 육군중장 겸 참의개척 장관(參議開拓長官) 구로다 기요타카(黑田淸隆)와 특명부전권변리대신(特命副全權辨理大臣) 의관(議官)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를 파견하여 조선국에 가서 조선국 정부에서 파견한 대관 판중추부사 신헌(申櫶)과 부대관(副大官) 도총부 부총관 윤자승(尹滋承)을 강화부에서 만나, 일본력(日本曆) 메이지(明治) 9년 2월 26일, 조선력(朝鮮曆) 병자년(1876) 2월 2일에 협의하여 타당하게 처리하고 상호간에 조인하였다. 이번에 그 수호 조규 제11관의 취지에 비추어 일본국 정부는 이사관(理事官) 외무대승(外務大丞) 미야모토 고이치(宮本小一)에게 위임하여 조선국 경성에 가서 조선국 정부에서 위임한 강수관(講修官)인 의정부 당상 조인희(趙寅熙)를 만나 논의하여 정한 조관을 아래에 열거한다.

제1관. 각 항구에 주재(駐在)하는 일본국 인민관리관(人民管理官)은 조선국 연해 지방에서 일본국 배가 파선되어 긴급할 경우, 지방관에게 알리고 해당 지역의 연로(沿路)를 통과할 수 있다.

제2관. 사신(使臣) 및 관리관이 발송하는 공문, 서신 등 우편을 통한 비용은 사후에 변상한다. 인민을 고용하여 보낼 때에는 각각 그 편의에 따른다.

제3관. 논의하여 결정한 조선국 각 통상 항구에서 일본국 인민이 택지를 빌려 거주하는 자는 땅 주인과 상의하여 금액을 정해야 하며, 관청에 속한 땅에서는 조선국 인민과 동등하게 조세를 바친다. 부산 초량항(草梁項)의 일본관(日本館)에 종전에 설치한 수문(守門)과 설문(設門)은 지금부터 철폐하고 새로 정한 영역의 경계상에 푯말을 세운다. 다른 두 항구도 이 규례에 따른다.

제4관. 이후 부산 항구에서 일본국 인민이 통행할 수 있는 도로의 이정(里程)은 부두에서부터 계산하여 동서남북 각 조선의 이법(里法)상 직경 10리로 정한다. 동래부 중의 한 곳에 있어서는 특별히 이 이정 안에서 오갈 수 있다. 일본국 인민은 마음대로 통행하며 조선 토산물과 일본국 물품을 사고 팔 수 있다.

제5관. 의정된 조선국 각 항구에서 일본국 인민은 조선국 인민을 고용할 수 있다. 조선국 인민이 그 정부의 허가를 받은 경우 일본국에 가는 데에도 장애가 없다.

제6관. 의정된 조선국 각 항구에서 일본국 인민이 병으로 죽었을 때에는 적당한 땅을 선택하여 매장할 수 있으나 초량 부근에서만 할 수 있다.

제7관. 일본국 인민은 본국의 현행 여러 화폐로 조선국 인민이 소유한 물품과 교환할 수 있으며, 조선국 인민은 그 교환한 일본국의 여러 화폐로 일본국에서 생산한 여러 가지 상품을 살 수 있다. 그러므로 조선국의 지정된 여러 항구에서는 인민들 사이에 서로 통용할 수 있다.

조선국 동전은 일본국 인민이 운수 비용에 사용할 수 있다. 양국 인민으로서 감히 사적으로 화폐를 주조한 자에게는 각각 그 나라의 법률을 적용한다.

제8관. 조선국 인민이 일본국 인민으로부터 사들인 상품이나 받은 각종 물건은 마음대로 사용해도 무방하다.

제9관. 수호 조규 제7관의 기재에 따라 일본국 측량선이 작은 배를 띄워 조선국 연해를 측량하다가 혹 비바람이나 썰물을 만나 본선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 해당 지역의 이정(里正)은 부근 인가에 무사히 지낼 수 있도록 하며, 필요한 물품이 있을 때에 관청에서 지급하고 추후 계산하여 갚아 준다.

제10관. 조선국은 해외의 여러 나라와 통신(通信)을 한 적이 없으나 일본은 이와는 다르다. 수호한 지 1년이 되었고 동맹을 맺어 우의가 있다. 이후 여러 나라의 선박이 풍랑을 만나 연해 지방에 표류해 오는 경우 조선국 인민은 돌봐 주지 않으면 안 된다. 해당 표류민이 본국으로 송환하기를 희망하면 조선국 정부는 각 항구의 일본국 관리관에게 넘겨주어 본국으로 송환하고 해당 관원은 이를 승낙해야 한다.

제11관. 이상 10관의 장정(章程) 및 통상 규칙은 다 같이 수호 조규와 동일한 권리를 가지며, 양국 정부는 이를 준수해서 감히 어기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

그러나 이 각 관(各款) 가운데 양국 인민이 교제 무역을 실천함에 있어 지장이 있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개정치 않으면 안 된다. 양국 정부는 속히 논의안을 작성하여 1년 전에 통보하고 협의하여 개정한다.

대일본국 기원(紀元) 2536년 메이지(明治) 9년(1876) 8월 24일

이사관(理事官) 외무대승 미야모토 고이치(宮本小一)

대조선국 개국(開國) 485년 병자년(1876) 7월 6일

강수관(講修官) 의정부 당상 조인희(趙寅熙)

국회도서관입법조사국, 『입법참고자료. 16-20』 v. 18. 구한말조약휘찬 상, 1964, 20~23쪽

조일 무역 규칙

제1칙. 일본국 상선(일본국 정부 소관의 군함 및 통신 전용의 모든 배는 제외한다)이 조선국에서 승인한 모든 무역 항구에 들어올 때에는 선주나 선장은 반드시 일본국 인민 관리관이 발급한 증서를 조선국 관청에 제출하되 3일을 넘어서는 안 된다. 이른바 증서라는 것은 선주가 휴대한 일본국 선적(船籍)의 항해 증명서 같은 것인데, 항구에 들어온 날부터 나가는 날까지 관리관에게 교부한다. 관리관은 곧 각 문건들을 접수하였다는 증표를 발급해 준다. 이것이 일본국의 현행 상선 규칙이다. 선주는 본 항구에 정박하는 동안에 이 증서를 조선국 관청에 제출하여 일본국 상선임을 밝힌다. 이때에 선주는 그 기록부도 제출한다. 이른바 기록부라는 것은 선주가 본 선박의 이름, 본 선박이 떠나 온 지명, 본 선박에 적재한 화물의 톤 수, 섬(石) 수(선박의 용적에 대해서도 함께 산정(算定)한다), 선장의 성명, 배에 있는 선원 수, 타고 있는 여객의 성명을 상세히 기록하고 선주가 날인한 것을 말한다. 이때에 선주는 또 본 선박에 적재한 화물에 대한 보단(報單)과 배 안에서 사용하는 물품의 장부를 제출한다. 이른바 보단이란 것은 화물의 이름 혹은 그 물품의 실명(實名), 화물 주인의 성명, 기호 번호를(기호 번호를 쓰지 않은 화물은 이 규정에서 제외한다) 상세히 밝혀 보고하는 것이다. 이 보단 및 제출하는 여러 문서는 모두 일본 국문으로 쓰고 한역(漢譯) 부본(副本)은 첨부하지 않는다.

제2칙. 일본국 상선이 항구에 들어온 배의 화물을 부릴 때에 선주나 화물주인은 다시 그 화물의 이름 및 원가(原價), 무게, 수량을 조선국 관청에 보고해야 하고, 관청에서는 보고를 받으면 곧 화물을 부리라는 준단(准單)을 속히 발급해 주어야 한다.

제3칙. 선주, 화물 주인은 제2칙의 승인을 받은 다음에 그 화물을 부려야 하며, 조선국 관리가 검열하려고 하면 화물 주인은 감히 거절하지 못한다. 관리도 조심스럽게 검열하여 혹시라도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제4칙. 출항(出港)할 화물의 주인은 제2칙의 입항 때 화물보단 양식에 따라 화물을 실을 배의 이름과 화물 이름, 수량을 조선국 관청에 보고한다. 관청에서는 속히 허가하고 항구에서 나가는 화물에 대한 준단을 발급해야 한다. 화주는 준단을 받으면 즉시 화물을 본 선박에 싣는다. 관청에서 그 화물을 검사하려고 하는 경우 화물 주인은 감히 거절하지 못한다.

제5칙. 일본국 상선이 항구에서 나가려 할 때에는 전날 오전에 조선국 관청에 보고하고 관청에서는 보고를 받으면 전날에 수령한 증서를 돌려주고 출항 준단을 발급해야 한다. 일본국 우편선이 규정된 시간 안에 출항할 수 없을 때에도 관청에 보고해야 한다.

제6칙. 이후 조선국 항구에 거주하는 일본 인민은 양미(糧米)와 잡곡을 수출, 수입할 수 있다.

제7칙. 항세(港稅). 연외장(連桅檣) 상선 및 증기(蒸氣) 상선의 세금은 5원(圓)이다(모선에 부속된 각정(脚艇)은 제외한다). 단외장(單桅檣) 상선의 세금은 2원이다(500석 이상의 화물을 실을 수 있는 것이다). 단외장 상선의 세금은 1원 50전(錢)이다(500석 이하의 화물을 실을 수 있는 것이다). 일본국 정부에 소속된 모든 선박은 항세(港稅)를 납부하지 않는다.

제8칙. 조선국 정부나 인민들이 지정된 무역 항구 외의 다른 항구에서 각종 물건을 운반하려고 일본국 상선을 고용할 때, 고용주가 조선국 인민이면 조선국 정부의 준단을 받은 후에야 고용할 수 있다.

제9칙. 일본국 선척이 통상을 승인하지 않은 조선국 항구에 도착하여 사사로이 매매할 경우에는 해당 지역 지방관이 조사하여 부근의 관리관에게 교부한다. 관리관은 모든 돈과 물품을 일체 몰수하여 조선국 관청에 넘겨준다.

제10칙. 아편과 담배 판매를 엄격히 금지한다.

제11칙. 양국에서 현재 정한 규칙은 이후 양국 상인의 무역 형편 여하에 따라 각 위원이 수시로 참작해서 협의하여 개정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양국 위원이 각각 날인하면 그날부터 준행한다.

대조선국 개국(開國) 485년 병자년(1876) 7월 6일

강수관(講修官) 의정부 당상 조인희(趙寅熙)

대일본국 기원(紀元) 2536년 메이지(明治) 9년(1876) 8월 24일

이사관(理事官) 외무대승 미야모토 고이치[宮本小一]

국회도서관입법조사국, 『입법참고자료. 16-20』 v. 18. 구한말조약휘찬 상, 1964, 114~117쪽

朝日修好條規附錄

日本國政府曩遣特命全權辨理大臣陸軍中將兼參議開拓長官黑田淸隆, 特命副全權辨理大臣議官井上馨, 詣朝鮮國, 朝鮮國政府派大官判中樞府事申櫶, 副大官都總府副總管尹滋承, 會同于江華府, 日本曆明治九年二月二十六日, 朝鮮曆丙子年二月初二日, 協議妥辨, 互相調印. 今照其修好條規第十一款旨趣, 日本國政府委任理事官外務大丞宮本小一, 詣朝鮮國京城, 朝鮮國政府委任講修官議政府堂上趙寅熙會同, 擬議其所定立條款, 開列于左.

第一款, 各港口駐留日本國人民管理官, 於朝鮮國沿海地方, 日本國諸船致敗緊急, 得告地方官, 往過該地沿路.

第二款, 使臣及管理官所發之文移書信郵致費銀, 事後辨償, 或雇人民專差, 各從其便.

第三款, 在議定, 朝鮮國通商各口日本國人民之租賃地基居住者, 須與地主商議, 以定其額, 屬官地者納租, 與朝鮮國人民同. 若夫釜山草梁項日本館, 從前設有守門設門, 從今廢撤, 一依新定程限立標界上. 他二港口, 亦照此例.

第四款, 嗣後於釜山港口, 日本國人民可得聞行道路里程, 自埠頭起算, 東西南北各直徑十里【朝鮮里法】爲定. 至於東萊府中一處, 特爲往來於此里程內, 日本國人民隨意聞行, 可得賣買土宜及日本國物産.

第五款, 在議定, 朝鮮國各口日本國人民, 可得賃雇朝鮮國人民 若朝鮮國人民得其政府之允准, 來於日本國, 亦無礙.

第六款, 在議定, 朝鮮國各口日本國人民, 如病故, 可得撰適宜之地以埋葬, 一依草梁遠近爲之.

第七款, 日本國人民, 可得用本國現行諸貨幣, 與朝鮮國人民所有物交換. 朝鮮國人民, 用其所交換之日本國諸貨幣, 以得買日本國所産之諸貨物. 以是在朝鮮國指定諸港, 則可得人民互相通用. 朝鮮國銅貨幣, 日本國人民得使用運輸之事. 兩國人民, 敢有私鑄錢貨者, 各用國律.

第八款, 朝鮮國人民所買得於日本國人民貨物, 或其贈遺之各物, 隨意使用無妨.

第九款, 從修好條規第七款所載, 有日本國測量船, 放小船, 測量朝鮮國沿海, 或際風雨, 或退潮, 不能歸本船, 該處里正, 安接近地人家, 如有需用物品, 自官辨給, 追後計償.

第十款, 朝鮮國未曾與海外諸國通信, 而日本則異于此, 修好經年, 所締盟有友誼. 嗣後諸國船舶爲風波所窘迫, 漂到沿邊地方, 則朝鮮國人民須於理無不愛恤之. 該漂民, 望送還于其本國, 朝鮮國政府遞致各港口日本國管理官, 送還于本國, 該官員無不領諾之.

第十一款, 右十款章程及通商規則, 共有與修好條規, 同一權理, 兩國政府可遵行之, 無敢有違. 然而此各款中, 若兩國人民於交際貿易實踐, 有認頓爲障礙, 不可不釐革, 則兩國政府速作議案, 前一年報知之, 以協議改立.

大日本國紀元二千五百三十六年, 明治九年八月二十四日, 理事官外務大丞宮本小一.

大朝鮮國開國四百八十五年丙子七月初六日, 講修宮議政府堂上趙寅熙.

國會圖書館立法調査局, 『立法參考資料. 16-20』 v. 18. 舊韓末條約彙纂 上, 1964, 20~23쪽

(朝日貿易規則)

講修官趙寅熙與日本理事官宮本小一, 議定日本人民在朝鮮國諸港口貿易規則, 如左.

貿易規則【準據譯漢原本】

第一則, 日本國商船【除日本國政府所管之軍艦及專用通信之諸船】, 入朝鮮國, 準聽貿易諸港之時, 船主或船長, 須呈日本國人民管理官所發給之證書於朝鮮國官廳, 不出三日. 所謂證書者, 船主所帶日本國船籍航海公證之類, 自其進口之日至出口之日, 交付之管理官, 管理官卽付以接受各書證票. 是爲日本國現行商船成規. 船主本港碇泊中, 轉呈斯證書於朝鮮國官廳, 驗明爲日本國商船. 此時船主, 又呈其記錄簿. 所謂記錄者, 船主詳記本船之名, 發本船之地名, 本船所積載之噸數石數【其算定船舶容積之名】, 船長姓名, 船內水手之數目, 搭載旅客之姓名, 而船主鈐印者也. 此時船主, 又呈本船裝運貨物之報單及船內應用雜物之簿記. 所謂報單者, 詳細開明貨物之名, 或其物質之實名, 貨主之姓名, 記號番號【不用記號番號之貨物不在此例】, 報知之也. 此報單及呈明諸書之類, 悉用日本國文, 無副譯漢文.

第二則, 日本國商船起載進口船貨之時, 船主或貨主, 須更呈明其貨物之名及元價斤量數目於朝鮮國官廳, 官廳得呈明, 須速發給卸貨准單.

第三則, 船貨主得第二則准聽之後, 須起載其貨物, 朝鮮國官吏要驗明之, 貨主無敢拒之, 官吏亦須小心驗明, 無或敢爲之致毁損.

第四則, 出口之貨物, 貨主, 照第二則進口貨報單之式, 呈明落貨之船名及貨物之名數於朝鮮國官廳, 官廳須速准聽之, 發給出口貨准單. 貨主得准單, 卽落載于本船, 官廳如要驗査其貨物, 貨主無敢拒之.

第五則, 日本國商船要出口, 須於前日午牌前, 報知朝鮮國官廳, 官廳得報, 須還付前日所收領之證書, 以發給出口准單. 日本國郵便船得不由成規之時限出口, 亦必報知官廳.

第六則, 嗣後於朝鮮國港口住留日本人民糧米及雜穀, 得輸出入.

第七則, 港稅連桅檣商船及蒸氣商船稅金五圓【除附屬脚艇】, 單桅檣商船稅金貳圓【載得五百石以上貨物】, 單桅檣商船稅金壹圓五十錢【載得五百石以下貨物】. 屬日本國政府諸船舶, 不納港稅.

第八則, 朝鮮國政府或其人民, 除指定貿易口之外, 欲運輸各物件於他口岸, 得雇日本國商船, 雇主如係人民, 照朝鮮國政府准單而後雇役.

第九則, 日本國船隻, 如到不准通商朝鮮國口岸, 私爲買賣, 該處地方官査出, 交付就近管理官, 管理官將所有錢物, 一竝沒入交遞朝鮮國官廳.

第十則, 嚴禁鴉片煙販賣.

第十一則, 兩國現定規則, 嗣後從兩國商民貿易形況如何, 各委員得隨時酌量事情, 會商改正. 爲此兩國委員各鈐印, 卽日遵行.

大朝鮮國開國四百八十五年, 丙子七月初六日. 講修官議政府堂上 趙寅熙.

大日本國紀元二千五百三十六年, 明治九年八月二十四日. 理事官外務大丞 宮本小一.

國會圖書館立法調査局, 『立法參考資料. 16-20』 v. 18. 舊韓末條約彙纂 上, 1964, 114~117쪽

이 사료는 1876년(고종 13년) 2월 조선과 일본 사이에 맺은 ‘조일 수호 조규(朝日修好條規)’ 혹은 ‘강화도 조약’의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같은 해 8월 24일(음력 7월 6일) 체결한 「조일 수호 조규 부록(朝日修好條規附錄)」과 「조일 무역 규칙(朝日貿易規則)」이다.

「조일 수호 조규 부록」은 전문 11조로 되어 있으며, 서울 청수관(淸水館)에서 협상이 진행되어 6월 16일부터 20일에 걸쳐 13회 회담을 통해 내용이 결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이 제시한 원안에 대해 우리 측이 반대한 세 조항이 삭제되었다. 조선 주재 일본 공사가 상주하는 외교관의 설치 조항을 삭제하고, 일본 관리에 한해 조선 내지 여행을 인정하며, 일본인의 자유 활동 지역인 유보 지역(遊步地域)을 개항장을 중심으로 10리 이내로 타결하였다. 다른 조항은 대체로 일본의 제안대로 약정되어 조인되었다.

또한 부록의 대부분은 「조일 수호 조규」와 비슷하게 조선 각 항구에서의 일본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한 일반적 규정이다. 특히 제7조에서, 일본의 지폐를 한반도에서 통용할 수 있게 한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당시 일본은 화폐의 금본위제가 시행되지 않았기에 일본 정부의 보증을 받을 수 없는, 즉 일본 영토 밖에서는 종잇조각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일본 지폐를 개항장 내에서 통용하게 함으로써 일본 상인들은 막대한 자금을 가지고 조선의 상권에 침투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조선의 화폐 제도는 이원화되어 조선 경제의 혼란 요인이 되었다. 또한 금이 섞여 있어 실질적 가치가 형식적 가치보다 다섯 배나 높았던 당시 조선 엽전이 일본으로 유출되는 길을 터놓았다.

한편 「조일 무역 규칙」은 「조일 수호 조규 부록」과는 달리 별다른 토론 없이 일본 측의 원안이 그대로 채택되었다. 전문 11개 조항으로 되어 있는 무역 규칙은 제1칙에서 입항 수속, 제2⋅3칙에서 수입 화물 통관 및 검사, 제4⋅5칙에서 출항 수속, 제6칙에서 미곡류 수출입 인정, 제7칙에서 항세(港稅) 면제, 제8칙에서 일본 선박 고용, 제9칙에서 밀수입자에 대한 치외법권, 제10칙에서 아편과 담배 반입 금지 등을 규정하고, 마지막 제11칙에서 무역 규칙의 개정 절차를 규정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1858년(철종 9년)에 조인된 「미일 무역 장정(美日貿易章程)을 대체로 모방한 것이었다. 무역 규칙이 체결됨으로써 일본의 조선에 대한 경제적 침략이 합법화되었다. 특히 11개 조항 가운데서도 제6칙의 미곡류 수출입 인정 조항은 조선의 경제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다. 제6칙은 원래 각 개항장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식량을 위해 미곡류 매입을 허용한다는 취지였으나 일본이 이를 각 개항장에서 일본인이 미곡류 수출입을 할 수 있다고 확대 해석하여 조선산 쌀을 대량으로 반출할 수 있는 근거로 삼은 것이다. 그 결과 조선의 미곡이 대거 일본으로 유출됨으로써 조선의 곡식 가격은 급등했으며, 이는 방곡령(防穀令)을 포함한 여러 가지 사회적 물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뿐만 아니라 이 규칙 외에 상품에 대해서 수출입세를 면제할 것, 국내통과세 및 기타 수수료를 징수하지 않을 것, 무역에 대한 관청의 간섭을 금지할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문을 추가로 교환함으로써 조선과 일본 간 무역 규칙의 불평등성은 더욱 심각해졌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조일수호조규 및 그 해설」,『국제법학회논총』7,노계현,국제법학회,1962.
「조일수호조규의 역사적 위치」,『한일관계사연구』18,윤소영,한일관계사학회,2003.
「조일수호조규(1876)의 재평가-전통적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관점으로부터-」,『서울국제법연구』11,이근관,서울국제법연구원,2004.
저서
『조약으로 본 한국근대사』, 최덕수, 열린책들, 2010.
편저
『구한말 조약휘찬』, 국회도서관 입법조사국, 국회도서관 입법조사국,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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