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정치근대개화와 자주 운동

개화의 등급-서유견문

개화란 인간 세상의 천만 가지 사물이 지극히 선하고도 아름다운 경지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중략)…… 오륜의 행실을 독실하게 지켜서 사람 된 도리를 안다면 이는 행실이 개화된 것이며, 국민들이 학문을 연구하여 만물의 이치를 밝힌다면 이는 학문이 개화된 것이다. 나라의 정치를 바르고도 크게 하여 국민들에게 태평한 즐거움이 있으면 이는 정치가 개화된 것이며, 법률을 공평히 하여 국민들에게 억울한 일이 없으면 법률이 개화된 것이다. 기계 다루는 제도를 편리하게 하여 국민들이 사용하기 편리하면 기계가 개화된 것이며, ……(중략)…… 이 여러 가지 개화를 합한 뒤에야 개화를 다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다. ……(중략)…… 대강 그 등급을 구별해 보면 세 가지에 지나지 않으니, 개화하는 나라, 반쯤 개화한 나라, 아직 개화하지 않은 나라이다.

개화한 자는 천만 가지 사물을 연구하고 경영하여, 날마다 새롭고 또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기약한다. 이와 같이 하기 때문에 그 진취적인 기상이 웅장하여 사소한 게으름도 없고, 또 사람을 접대할 때도 말을 공손히 하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여, 능한 자를 본받고 능치 못한 자를 불쌍하게 여긴다. ……(중략)…… 반쯤 개화한 자는 사물을 연구하지 않고 경영하지도 않으며 구차한 계획과 고식적인 의사로써 조금 성공한 경지에 안주하고, 장기적인 대책이 없는 자이다. ……(중략)…… 사람을 접대할 때 능한 자에게 칭찬하는 일이 적고, 능치 못한 자는 깔본다. ……(중략)…… 그러므로 국민이 저마다 자신의 영화와 욕심을 위해 애쓸 뿐이지, 여러 가지 개화를 위해서 마음을 쓰지는 않는 자들이다. 아직 개화하지 않은 자는, 즉 야만스러운 종족이다. 천만 가지 사물에 규모와 제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애당초 경영하지도 않는다. ……(중략)……

개화하는 일을 주장하고 힘써 행하는 자는 개화의 주인이고, 개화하는 자를 부러워하여 배우기를 즐거워하고 가지기를 좋아하는 자는 개화의 손님이며, 개화하는 자를 두려워하고 미워하면서도 마지못하여 따르는 자는 개화의 노예이다. ……(중략)…… 노예가 되면 언제나 남의 지휘에 따를 수밖에 없으므로 부끄러운 일이 적지 않을뿐더러, 조금이라도 실수하는 일이 있으면 그 토지와 국민도 보전할 수 없어 개화한 자의 더부살이가 되기 쉬우니 ……(중략)…… 개화를 좋아하면서도 본받지 않고 부러워하면서도 배우지 않으며 두려워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면 남의 노예가 되어 개화하는 지휘에 복종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마음을 합하여 경계하고 삼가야 한다.

개화는 실상의 개화와 허명의 개화로 분별된다. 실상의 개화는 사물의 이치와 근본을 깊이 연구하고 고증하여 그 나라의 처지와 시세에 합당케 하는 경우이다. 허명의 개화는 사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서도 남이 잘된 모습을 보면 부러워서 그러든지 두려워서 그러든지, 앞뒤를 헤아릴 지식도 없이 덮어놓고 시행하자고 주장하여 돈은 적지 않게 쓰면서도 실용성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이다. ……(중략)…… 그러므로 남의 장기를 취하려는 자는 결코 외국의 기계를 사들이거나 기술자를 고용하지 말고, 반드시 자기 나라 국민으로 하여금 그 재주를 배우도록 하여 그 사람이 그 일에 종사케 하는 것이 좋다. ……(중략)……

……(중략)…… 지나친 자는 아무런 분별도 없이 외국의 것이라면 모두 다 좋다고 생각하고 자기 나라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심지어는 외국 모습을 칭찬하는 나머지 자기 나라를 업신여기는 폐단까지도 있다. 이들을 개화당이라고 하지만 이들이 어찌 개화당이랴. 사실은 개화의 죄인이다. 한편 모자라는 자는 완고한 성품으로 사물을 분별치 못하여, 외국 사람이면 모두 오랑캐라 하고 외국 물건이면 모두 쓸데없는 물건이라 하며, 외국 문자는 천주학이라고 하여 가까이하지도 않는다. 자기 자신만이 천하제일이라고 여기며, 심지어는 피해 사는 자까지도 있다. 이들을 수구당이라고 하지만 이들이 어찌 수구당이랴. 사실은 개화의 원수이다. ……(중략)…… 개화하는 데는 지나친 자의 폐해가 모자라는 자보다 더 심하다. ……(중략)…… 입에는 외국 담배를 물고, 가슴에는 외국 시계를 차며, 의자에 걸터앉아 외국 풍속을 이야기하거나 외국 말을 얼마쯤 지껄이는 자가 어찌 개화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는 개화의 죄인도 아니고 개화의 원수도 아니다. 개화라는 헛바람에 날려서 마음속에 주견도 없는 한낱 개화의 병신이다.

……(중략)…… “후세 사람이 옛날 사람에게 미치지 못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중략)…… 사람의 지식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신기한 것과 심묘한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옛사람들은 육지를 오가면서 걷는 대신 말이나 수레를 탔다. 천 리 먼 길을 열흘이나 보름의 여행으로 간신히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빠른 화륜차 덕분에 반나절 품만 들이면 된다. ……(중략)…… 이처럼 신기하고 신묘한 이치는 옛날에 없었다가 요즘에야 비로소 생긴 것이 아니다. 천지 간의 자연스러운 근본은 예나 이제나 차이가 없지만, 옛사람들은 그 이치를 다 밝혀 내지 못했고 요즘 사람들은 깊이 연구하여 터득한 것이다. 이를 통해 본다면 요즘 사람의 재주와 학식이 옛사람보다 훨씬 나은 듯하지만, 실상은 옛사람이 처음 만들어 낸 것에다 윤색한 것일 뿐이다. ……(중략 )…… 우리나라의 고려청자는 천하에 유명한 것이고, 이충무공의 거북선도 철갑선 가운데는 천하에서 가장 먼저 만든 것이다. 교서관의 금속활자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 낸 것이다. ……(중략 )…… 그러나 후배들이 앞사람들의 옛 제도를 윤색치 못하였다.

유길준전서』1 『서유견문』, 제14편, 개화의 등급

大槩 開化라  者 人間의 千事萬物이 至善極美 境域에 抵홈을 謂홈이니 ……(中略)…… 五倫의 行實을 純篤히 야 人이 道理 知則 此 行實의 開化며 人이 學術을 窮究야 萬物의 理致 格則 此 學術의 開化며 國家의 政治 正大히 야 百姓이 泰平 樂이 有 者 政治의 開化며 法律을 公平히 야 百姓이 寃抑 事가 無 者 法律의 開化며 器械의 制度 便利히 야 人의 用을 利게  者 器械의 開化며, ……(中略)…… 此屢條의 開化를 合 然後에 開化의 具備 者라 始謂디라 ……(中略)…… 大綱 其層級을 區別건 三等에 不過니 曰開化 者며 曰半開化 者며 曰未開化 者라

開化 者 千事와 萬物을 窮究며 經營야 日新고 又日新기 期約니 如此홈으로 其進取 氣像이 雄壯야 些少의 怠惰홈이 無고 又人을 待 道에 至야 言語 恭遜히 며 形止를 端正히 야 能 者 是傚며 不能 者 是矜고 ……(中略)…… 半開化 者 事物의 窮究도 不行며 經營도 不有야 苟且 計圖와 姑息 意思로 小成 域에 安고 長久 策이 無호 ……(中略)…… 人을 接待기 能 者 許與홈이 少고 不能 者 凌侮야 ……(中略)…… 故로 國人이 各其 一身의 榮華와 慾心을 經綸고 屢條의 開化에 心을 不專 者며 未開化 者 即野蠻의 種落이니 千事와 萬物에 規模와 制度가 無有더러 當初에 經營도 不爲고 ……(中略)……

開化 事 主張야 務行 者 開化의 主人이오 開化 者 歆羡야 學기 喜고 取기 樂 者 開化의 賓客이며 開化 者 恐懼고 疾惡호 不得已야 從 者 開化의 奴隷니 ……(中略)…… 萬若 奴隷되 時 恒常 他人의 指揮 隨야 羞恥되 事端이 不少더러 些少라도 先手 境이 有면 其土地와 人民도 保全기 不能야 開化 者의 附庸되기 容易니 ……(中略)…… 愛好호 不效며 歆羡호 不學고 恐懼호 不悟면 他人의 奴隷되야 開化 指揮 服從 이니 國人이 心을 同야 戒愼 者가 此에 在홈이라

且 夫開化 實狀과 虛名의 分別이 有니 實狀 開化라  者 事物의 理致와 根本을 窮究며 考諒야 其國의 處地와 時勢애 合當케  者며 虛名開化라  者 事物上에 知識이 不足호 他人의 景況을 見고 歆羡야 然든지 恐懼야 然든지 前後 推量 智識이 無고 施行기로 主張야 財 費기 不少호 實用은 其分數를 抵기 不及홈이니 ……(中略)…… 故로 他人의 長技 取 者가 决斷코 外國의 器械 購買거나 工匠을 雇用지 勿고 必先 自己國人民으로 其才 學야 其人으로 其事 行홈이 可니 ……(中略)……

……(中略)…… 過 者 毫末의 分別도 無고 外國이면 盡善다야 自己의 國에 如何 事物이든지 不美다며 已甚기에 至야 外國의 景況을 稱道야 自己의 國을 慢侮 弊俗도 有니 此 開化黨이라 謂나 此豈 開化黨이리오 其實은 開化의 罪人이며 不及 者 頑固 性稟으로 事物의 分界가 無고 外國人이면 夷狄이라 고 外國物이면 無用件이라 고 外國文字 天主學이라 야 敢히 就近지 못며 自己의 身이 天下의 第一인 듯 自處나 甚기에 至야 避居 者도 有니 此 守舊黨이라 謂나 此豈 守舊黨이리오 其實은 開化의 讎敵이니 ……(中略)…… 開化 道에 至야 過 者의 弊害가 不及 者에셔 甚니 ……(中略)…… 若其口中에 外國卷烟을 含고 胸前에 外國時標 佩며 其身이 拚凳이나 交椅애 踞坐야 外國의 風俗을 閒話야 其言語 略解 者가 豈曰開化人이리오 此 開化의 罪人도 아니오 開化의 讎敵도 아니라 開化의 虛風에 吹야 心中에 主見업시 一箇 開化의 病身이라

……(中略)…… 或曰호 後人이 前人을 不及다나 然나 此 未達 談論이라 ……(中略)…… 人의 知識은 閱歷이 다록 新奇 者와 深妙 者가 疊出니 今에 此 證건 古人은 陸地徃來에 代步 物이 馬아니면 車라 千里長路 旬望의 旅行으로 艱辛히 得達더니 今人은 火輪車의 神速홈으로 半日의 工을 不費고 ……(中略)…… 抑此 新奇고 深妙 理致 舊世界에 不存고 今日에 始有者 아나오 天地間의 其自然 根本은 古今의 差異가無호 古人은 窮格기 不盡고 今人은 窮究야 攄到 者니 此를 由야 觀면 今人의 才識이 古人에 比야 越加듯나 然나 實狀은 古人의 草創 者 潤色 이라 ……(中略)…… 我邦에도 高麗磁器 天下의 有名 者며 李忠武의 龜船은 鐵甲兵船이라 天下의 最先刱出 者며 校書舘의 鐵鑄字도 天下의 最先創行 者라 ……(中略)…… 後輩가 前人의 舊規 潤色디 아니홈이로다

『兪吉濬全書』1 『西遊見聞』, 第14編, 改化의等級

이 사료는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이 지은 『서유견문(西遊見聞)』 가운데 제14편 「개화의 등급」으로 개화의 개념과 그 방법론을 논한 내용이다. 『서유견문』은 유길준이 1887년(고종 24년)부터 집필하기 시작해 1889년(고종 26년) 탈고하고, 1895년(고종 32년) 출판한 서적이다. 『서유견문』은 서구의 ‘근대’에 대해 소개하고 평가하면서, 조선의 근대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에 대해서 정치⋅경제⋅법률⋅교육⋅문화 등 각 분야에 걸쳐 구체적인 내용과 그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제시한 ‘근대화 전략서’라고 할 수 있다.

『서유견문』은 전 20편으로 이뤄졌는데 크게 서론⋅본론⋅결론, 그리고 보론의 네 부분으로 구분될 수 있다.「개화의 등급」은 제14편 뒷부분에 실려 있다. 이 글은 당초에는 없었는데, 출판 직전 갑오경장을 주도하는 시점에서 개혁의 구체적인 방법과 의지를 담아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내용을 살펴보면, 개화에 대해 ‘인간 세상의 천만 가지 사물이 지극히 선하고도 아름다운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개화를 서구화로 설명하지 않고 이와 같이 철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유교적 관념에 충실한 조선의 관료와 지식인들에게 개화를 친숙하게 설명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서술 전략은 본 사료의 마지막에서도 확인된다.

이어 유길준은 개화의 등급을 개화한 자, 반만 개화한 자, 개화하지 못한 자로 나누고 있다. 이는 개화의 주인, 개화의 손님, 개화의 노예로도 표현되는데, 이러한 도식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문명(文明), 미개(未開), 야만(野蠻)의 구분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유길준이 후쿠자와의 영향을 받은 부분이라고 파악할 수 있다.

당시 조선의 지식인에게 개화를 주장할 때 가장 민감했던 부분은 조선에 개화가 필요하다는 주장 자체였다. 중화의 정통인 명이 여진족 국가인 청에게 멸망하면서, 유일하게 남은 소중화(小中華)로서의 자의식을 갖고 있던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정당하고 뛰어난 문화적 성취를 이룬 국가였다. 따라서 금수(禽獸)와 같은 오랑캐들이 조선에 개화를 요구하고 가르치려 한다는 사실 자체가 지극한 모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유길준이 설정한 개화의 등급 자체는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문제되지 않는다. 다만 조선이 그 중 어디에 위치하는가가 중요한데, 유길준은 의도적으로 이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있다. 유길준이 조선을 반개(半開)로 파악했을지, 미개(未開)로 파악했을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의 생각이 어떻든 이를 노골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었으리라 판단된다. 대신 유길준은 개화를 맹목적으로 과도하게 추구하는 사람들과 무조건 거부하는 사람들을 거론하면서 양비론(兩非論)을 전개한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연마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노력이 ‘옛 것’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유교 특유의 복고적 성격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변론하고 있다. 이를 위해 유길준이 사용하는 논리는 “천지 간의 자연스러운 근본은 예나 이제나 차이가 없지만, 옛사람들은 그 이치를 다 밝혀 내지 못했고 요즘 사람들은 깊이 연구하여 터득한 것이다. 이를 통해 본다면 요즘 사람의 재주와 학식이 옛사람보다 훨씬 나은 듯하지만, 실상은 옛사람이 처음 만들어 낸 것에다 윤색한 것일 뿐이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례로 금속활자⋅고려청자⋅거북선 등을 예로 들고 있다. 근대화를 유학의 철학적 세계관과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는 있지만, 과학기술의 발전도 조선 혹은 동양의 전통적 성취와 맥이 닿아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개화를 조선 지식인들에게 친숙하게 설명하려는 유길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서유견문』의 ‘(문명)개화’ 론과 번역의 정치학」,『국제어문』24,김현주,국제어문학회,2001.
저서
『유길준 개화사상의 연구』, 김봉렬, 경남대학교 출판부, 1998.
『유길준의 개화사상과 대외인식의 관한 연구』, 안용환, 명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유길준의 정치사상 연구 : 전통에서 근대로의 복합적 이행』, 정용화,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8.
편저
『유길준전서』1~5, 유길준전서편찬위원회, 삼신문화사, 1995.

관련 사이트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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