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정치근대개화와 자주 운동

최익현의 강화도 조약 체결 반대 상소

도끼를 들고 궐 앞에 엎드려 척화를 논하는 상소【병자년(고종 13, 1876) 1월 22일】

……(전략)……

신은 적의 선박 소식을 듣고 생각하기를, 조정에서 마땅히 정한 공론이 있어 신속하게 흉한 무리들을 쓸어내되 시일을 끌지 않으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소식을 탐지한 지 며칠이 되어도 오히려 들리는 말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외부에서 떠드는 소문에 첫째도 화친을 구하는 데 뜻이 있고, 둘째로도 화친을 구하는 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똑같이 분하게 여기고 사방이 어수선합니다. 이 말이 실로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안으로는 정사를 다스리고 밖으로는 외적을 방어하는 것이 본래부터 정해진 계책일진대 위와 같은 설은 단지 민간에 와전된 것입니까. 만일 와전된 것이라면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어찌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만약 사실이라면 적을 위하는 것이 되고 국가를 위한 계책이 아닙니다. 이 말이 시행된다면 전하의 일이 잘못될 것입니다.

대저 정자(程子)와 주자(朱子)는 아성(亞聖)입니다. 그들의 말은 믿을 수 있으니, 의당 오늘날 군자들의 소견보다도 나을 것입니다. 정자는 강화(講和)하는 것이 중화(中華)를 어지럽히는 길이라 하였고, 주자는 강화하는 계책이 결행되면 삼강(三綱)이 무너지고 만사가 망치게 될 것이니 이는 큰 환란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정자와 주자의 교훈으로써 오늘날 일을 헤아려 본다면, 적과 강화하는 것은 반드시 난리와 멸망을 가져오는 까닭이 되니 만에 하나라도 요행인 것은 없습니다.

대략 세어 보아도 다섯 가지 폐단이 있으므로 신은 청컨대 죽음을 무릅쓰고 조목조목 열거하겠습니다. 바라건대 주상께서는 방도를 찾아보소서.

신이 가만히 듣건대, 강화가 그들이 애걸하여 나왔다면 강함이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써 우리가 저들을 제어할 수 있으니, 그러한 강화는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화가 우리의 약점을 보여서 나왔다면 이는 주도권이 그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도리어 우리를 제어할 것이니, 그런 강화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신은 감히 모르겠습니다만, 이번의 강화가 저들의 애걸에서 나온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약점을 보여서 나온 것입니까. 우리가 편하게 지내느라 방비가 없다가, 두렵고 겁이 나서 강화를 구하는 것이라면 목전에 닥친 일을 우선 종식시키려는 계책입니다.

무릇 사람들이 모두 보고 있어서 비록 숨기려고 하지만 될 수 없습니다. 저들은 우리의 방비가 없고 약함을 보이는 실상을 알고서 우리와 강화를 맺는다면, 향후에 한없는 욕심을 무엇으로 채워 주겠습니까. 우리의 물건은 한정이 있지만 저들의 요구는 끝이 없습니다. 한 번이라도 응해 주지 못하면 사나운 노기가 뒤따르며 침략하며 유린하여 앞서의 일을 모두 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강화가 난리와 멸망을 부르는 까닭이 되는 첫째 이유입니다.

일단 강화를 맺고 나면 적들이 욕심 내는 것은 물화(物貨)를 교역하는 데에 있습니다. 저들의 물화는 대부분 지나치게 사치스럽고 기이한 노리개로, 손으로 만든 것이어서 한정이 없습니다. 반면 우리의 물화는 대부분 백성의 생명이 달린 것으로 땅에서 생산되어 한정이 있습니다. 이 같이 피와 살이 되어 백성의 목숨이 걸려 있는 유한한 물화를 가지고 저들의 사치스럽고 기이하며 마음을 좀먹고 풍속을 해치는 물화와 교환한다면, 해마다 그 양이 수만에 이를 것입니다. 그러면 몇 년 지나지 않아 동토(東土) 수천 리에 전답은 황폐해지고 집은 다 쓰러져 다시 보존하지 못하게 되고, 나라도 반드시 뒤따라 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강화가 난리와 멸망을 부르는 까닭의 둘째 이유입니다.

저들이 비록 왜인(倭人)이라고 하나 실은 양적(洋賊)입니다. 강화가 한번 이루어지면 사학(邪學)의 서책과 천주(天主)의 초상이 교역하는 속에 뒤섞여 들어오게 되고, 조금 지나면 선교사가 전수하여 사학이 온 나라에 퍼지게 될 것입니다. 포도청에서 살피고 검문하여 잡아다 처벌하려 한다면 저들이 사납게 노하고 게다가 강화로 맺은 맹세가 허사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고 불문에 부치게 되면 조금 지나서는 집집마다 사람마다 사학을 받아들여 아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로 여기지 않고 신하는 임금을 임금으로 여기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예의는 시궁창에 빠지고 사람들이 변하여 금수(禽獸)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강화가 난리와 멸망을 부르는 까닭의 셋째 이유입니다.

강화가 이루어진 뒤에는 저들이 육지로 올라와 서로 왕래하고 혹은 집을 짓고 강토에서 살려고 할 것인데, 우리가 이미 강화하였으므로 거절할 말이 없습니다. 거절할 수 없어서 내버려 두면 재물이나 비단과 부녀자들을 힘으로 빼앗거나 겁을 주어 취하는 등의 일을 마음대로 할 것이니,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저들은 얼굴만 사람이지 마음이 짐승과 같아서 조금만 뜻에 맞지 않으면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이고 짓밟을 것입니다. 열부(烈婦)나 효자가 애통하여 하늘에 호소하며 복수해 주기를 바라지만 위에 있는 사람들은 강화를 깨뜨릴까 두려워 감히 그 호소를 들어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따위의 일은 온종일 말하여도 모두 열거할 수 없습니다. 사람의 도리가 말끔히 사라지게 되고 백성은 하루도 살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강화가 난리와 멸망을 부르는 까닭의 넷째 이유입니다.

이 말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걸핏하면 병자호란 때의 남한산성 일을 끌어다가 말하기를, ‘병자년에 강화한 뒤에 피차가 서로 좋게 지내어 삼천리 강토가 오늘에 이르도록 반석 같은 안정을 보존하였으니, 오늘날 저들과 강화하여 우호를 맺는 것만 어찌 유독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가’ 라고 하는데, 신은 이들의 말이 어린아이들의 견해와 다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병자년의 강화는 크게 의리를 해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의를 아는 사람은 천지 사이에 바로 설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문정공(文正公) 김상헌(金尙憲)과 충정공(忠正公) 홍익한(洪翼漢) 등이 배척을 주창하여 여러 번 죽는다 해도 주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청나라 사람들의 뜻은 중국의 황제가 되어 사해(四海)를 호령하는 데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대략이라도 중국의 우두머리를 흉내내고 인의(仁義)의 이름을 비슷하게 빌렸으나, 이것은 오랑캐로 그칠 뿐입니다. 오랑캐이므로 도리가 어떤지를 묻지 않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기만 하면 피차가 사이가 좋아져서 지금까지 내려왔습니다. 비록 그들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이 있더라도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아량이 있어 침해하거나 학대하는 염려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 왜적들로 말하면, 재화와 여색만 알고 사람의 도리가 조금도 없으니, 진실로 금수일 뿐입니다. 사람과 금수가 강화를 맺어 우호를 이루어 같이 떼 지어 있으면서 근심과 염려가 없기를 보장한다는 것은, 신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는 강화가 난리와 멸망을 부르는 까닭이 되는 다섯째 이유입니다.

……(중략)……

생각하건대 혹시 전하의 뜻이, ‘저들은 왜인(倭人)이지 양적(洋賊)이 아니다. 저들이 말한 바는 이미 옛날과 같은 우호 관계를 맺자는 것 외에 다른 뜻이 없다고 했으니, 왜와 더불어 옛날과 같은 우호 관계를 맺는 것이 어찌 도의(道義)에 해롭겠는가’ 하는 데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나 신의 우매한 소견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설령 저 사람들이 참으로 왜인이지 양적이 아니라 하더라도, 지금 왜인들의 모습은 옛날과는 현저하게 다르니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옛날의 왜인들은 이웃 나라였으나 지금의 왜인들은 외적(外賊)입니다. 이웃 나라와는 강화할 수 있지만 외적과는 강화할 수 없습니다.

왜인들이 외적임을 과연 무엇으로 진실로 아는가 하면, 그들은 양적들의 앞잡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양적의 앞잡이가 된 것을 무엇으로 분명하게 볼 수 있는가 하면, 왜와 서양 두 무리의 마음이 서로 통하여 중국을 횡행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몇 해 전 중국 베이징 총리아문(總理衙門)에서 보내 온 글에 ‘프랑스⋅미국 두 나라가 왜인과 같이 행동하고 있다’는 말이 있었고, 지난해에 동래의 역관(譯官)들이 전하는 말에, ‘왜인들이 신사를 세울 것을 청하고, 다른 복색의 사람들을 단속하지 말도록 하기 바란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지금 온 왜인들은 서양 옷을 입었고 서양 대포를 사용하며 서양 배를 탔으니, 이는 모두 서양과 왜가 한 몸이 되었다[倭洋一體]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또한 더구나 지난달 베이징에서 자문(咨文)이 온 것은 오로지 이번 왜인 선박이 온 것 때문인데, 그 속에 ‘병인년에 패하여 돌아갔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병인년에 패하여 돌아간 자들이 서양이고 왜가 아니었다면, ‘서양이 바로 왜요, 왜가 바로 서양이다’라고 한마디로 결정할 수 있으니, 저들이 소위 ‘왜인이지 서양 사람이 아니다’는 것을 또한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므로 우매한 신은 단연코, ‘설령 저들이 참으로 왜인이고 서양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분명히 서양 오랑캐의 앞잡이요 지난날의 왜인은 아니다’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왜와 옛 우호를 맺는다는 것이, 얼른 듣기에는 아무런 해가 없을 것 같으나, 왜와 더불어 옛날과 같이 우호 관계를 맺는 날은 바로 서양과 강화를 맺는 날이 됩니다. 서양과 화친을 맺음이 필연코 혼란과 멸망을 불러들인다는 것은 이미 위에서 아뢴 바와 같으니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중략)……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조금 더 살펴보시고 시급히 큰 계책을 정하시어,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고 유능한 사람을 써서 오로지 정사를 닦아 외적을 물리치는 데 뜻을 두소서. 신하들 사이에 하나라도 주화(主和, 강화)를 주장하여 나라를 팔아 넘기고 금수(禽獸)를 몰아다가 사람들을 잡아먹게 하는 계책을 세우는 자가 있으면 통절하게 배척하여 큰 죄를 주시고 결단코 관대히 용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토로장군(討虜將軍) 손권(孫權)이 책상을 내리쳤던 용기1)와 같이 하시면, 비록 벙어리⋅소경⋅절름발이라도 기운이 백배나 생겨 모두 전하를 위하여 한 번 죽기를 원할 것이며, 보잘것없는 흉악한 무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소탕할 기회가 있게 될 것입니다.

……(후략)……

『면암집』, 『면암선생문집』권3, 소, 지부복궐척화의소

1)토로장군(討虜將軍) 손권(孫權)이 책상을 내리쳤던 용기 : 중국 후한(後漢) 말 삼국 시대 토로장군을 지낸 손권이 조조(曹操)를 치기를 의논할 때 사람들이 모두 조조의 위세를 두려워하였고 일부 대신은 조조를 맞이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때 손권이 칼을 빼어 책상을 자르며 “여러 장수나 관리 중에 조조를 맞이하자고 말하는 자는 이 책상과 같이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持斧伏闕斥和議疏【丙子正月二十二日】

……(前略)……

臣聞賊船之報, 意謂廊廟之上, 當有定論, 迅掃兇醜, 不留時日. 廁聽幾日, 尙無所聞. 至於外間喧傳, 一則曰意在求和, 二則曰意在求和. 萬口同憤, 四境洶洶. 未知此說實有苗脉耶. 抑內治外禦, 本有定計, 而此特民間之訛言耶. 如其訛也, 公私豈不幸甚. 如其實也, 則是爲賊人地也, 非爲國家謀也. 此說施行則殿下之事去矣. 夫程朱亞聖也. 其言之可信, 宜賢於今之君子之見. 而程子以講和爲亂華之道, 朱子言講和之計决, 則三綱頹而萬事隳, 此大患之本也. 以程朱之訓, 揆今日之事, 則與賊講和, 所以必致亂亡之禍, 而無萬一之幸. 略數之有五端, 臣請昧死條列. 願聖明試求諸道焉. 臣竊聞之, 和出於彼之乞憐, 則是強在於我, 而我足以制彼矣, 其和可恃也. 和出於我之示弱, 則是權在於彼, 而彼反以制我矣, 其和不足恃也. 臣不敢知, 今者之和出於彼之乞憐耶, 出於我之示弱耶. 我之宴安而無備, 畏怯而求和, 爲目前姑息之計者. 夫人皆見之, 雖欲諱之, 不可得也. 彼知無備示弱之實, 而與我結和, 則向後谿壑之欲, 何以充之. 我之物有限, 而彼之求無已. 一有不副, 則狠怒隨之, 侵掠蹂躪, 前功盡棄. 此和之所以致亂亡者, 一也. 一日結和, 則彼賊所欲, 在於交易物貨. 而彼之物貨, 類皆淫奢奇玩, 生於手而無窮者也. 我之物貨, 類皆民命所寄, 産於地而有限者也. 以有限之津液膏腴民命所寄者, 易無窮之淫奢奇玩, 蠱心敗俗者, 而歲必以鉅萬計. 則不數年而東土數千里荒疇敗屋, 無復支存, 而國必隨之矣. 此和之所以致亂亡者, 二也. 彼雖託名倭人, 其實洋賊也. 和事一成, 則邪學之書, 天主之像, 混入於交易之中, 少焉師生傳授, 遍滿一國矣. 欲自捕廳譏詗捉誅, 則彼人之狠怒又加, 而講和之宿盟歸虛. 欲任之而勿問, 則少焉將見其家家邪學, 人人邪學, 子焉而不父其父, 臣焉而不君其君. 衣裳淪於糞壤, 而人類化爲禽獸矣. 此和之所以致亂亡者, 三也. 和成之後, 彼欲下陸, 交相往來, 或築室而居於境內, 則我業已講和, 無說以拒之. 拒之不得而任之, 則財帛婦女之攘奪劫取, 惟意所欲, 夫亦孰能禦之. 且彼人面獸心, 少不愜意, 殺人越人, 無復忌憚. 烈婦孝子, 哀痛呼天, 求爲復讐, 而在上者畏其失和, 不敢聽訟. 若此之類, 終日言之, 不可殫擧. 則人理蕩然掃地, 而生靈不可一日聊生矣. 此和之所以致亂亡者, 四也. 倡爲此說者, 動引丙子南漢事曰, 丙子講和之後, 彼此交歡, 千里封疆, 至今保磐石之安, 今日與彼和好, 何獨不然, 臣以爲此與兒童之見無異. 丙子之講和, 害義大矣. 衣裳之人, 不可立於天地之間矣. 是故, 如文正公臣金尙憲, 忠正公臣洪翼漢等, 倡言排之, 九死不改矣. 然淸人志在帝中國而撫四海, 故猶能略效中國之伯主, 假借仁義之近似, 則是止夷狄耳. 夷狄人也, 故卽不問道理如何, 若能以小事人, 則彼此交好, 式至于今. 雖有不愜彼意者, 有寬恕之量而無侵虐之患. 至若彼賊, 徒知貨色, 而無復毫分人理, 則直是禽獸而已. 人與禽獸, 和好同羣, 而保無憂虞者, 臣不知其何說也. 此和之所以致亂亡者, 五也.

……(中略)……

臣竊惑焉. 殿下之意, 豈不曰彼來者旣是倭而非洋, 其所執言者, 旣曰修舊好而無他, 則與倭修舊好, 亦何害於道義云爾乎. 以臣愚見, 此有大不然者. 設使彼來者, 眞箇是倭而非洋, 倭人之情迹, 古今懸殊, 不可不察. 古之倭, 鄰國也, 今之倭, 冦賊也. 鄰國可和, 寇賊不可和也. 倭之爲冦賊, 果何以眞知也, 以其爲岸賊之前導矣. 其必爲洋賊之前導, 亦何以的見也, 倭洋二醜, 膓肚相連, 橫行于中州, 厥惟久矣. 年前北來揔理司文字, 有法美二國, 與倭幷出之說, 昨年東萊訓導輩傳說, 有倭人請立靈祠, 請勿禁異服人之語. 今倭人之來者, 服洋服, 用洋砲, 乘洋舶, 凡此皆倭洋一體之明證也. 且况去月北咨, 專爲今番倭舶之來, 而其中乃有丙寅敗歸之說. 丙寅敗歸者, 旣是洋而非倭, 則洋卽倭, 倭卽洋, 一言而可决矣, 彼所謂倭而非洋者, 亦何足信也. 是故, 臣愚斷然以爲設使彼來者, 眞箇是倭而非洋, 的是洋賊之前導, 而非復前日之倭也. 然則與倭修舊好云者, 驟聽雖若無傷, 而與倭修舊好之日, 直是與洋結和之秋也. 與洋結和之, 必致亂亡者, 旣如右所陳, 則如之何其可也.

……(中略)……

伏願殿下, 少加矜察, 亟定大策, 任賢使能, 專意修攘. 而朝紳之間, 一有爲主和賣國卛獸食人之計者, 則痛加嚴斥, 置之大辟, 斷不饒貸. 如孫討虜斫案之勇, 雖喑聾跛躄, 亦且增百倍之氣, 咸願爲殿下一死, 而小小㐫醜, 有不日掃盪之機矣. ……(後略)……

『勉庵集』, 『勉菴先生文集』卷3, 疏, 持斧伏闕斥和議疏

이 사료는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1833~1906)조일 수호 조규(朝日修好條規) 체결 직전인 1876년(고종 13년) 1월 23일 도끼를 들고 궁궐 앞에 엎드려 조약 체결을 반대하며 올린 글이다. 조약을 체결하려면 도끼로 자신의 목부터 자르라는 비장한 결의를 표명한 것이다.

상소에서 그는 일본과 수호 조약을 체결하면 안 되는 이유를 다섯 가지로 조목조목 열거하였다. 특히 일본이 과거의 일본이 아니라 서양의 앞잡이이므로 서양이 곧 일본이요, 일본이 곧 서양이라는 왜양일체론(倭洋一體論)을 주장함으로써, 정부 내에 일본과 서양을 분리하여 조약 체결은 과거 일본과의 외교를 회복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에 대한 강한 반대를 표시하였다. 아울러 서양의 2차 공산품에 맞서 조선이 1차 농산물을 가지고 교역하면 나라가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라는 주장은 당시 서양 각국과의 교역으로 야기될 부정적 측면을 선언한 셈이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도끼를 들고 국왕이 거동하는 길에 엎드린 것은 극히 해괴한 일이라고 하여 그를 전라도 흑산도로 유배하는 형벌을 내렸다.

상소문강화도 조약 체결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상소문으로, 스승 이항로(李恒老, 1792~1868)가 병인양요 당시에 올린 개항 반대 상소문을 계승하는 것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위정척사파의 외세에 대한 인식과 대응」,『태동고전연구』20,이상익,태동고전연구소,2004.
「한말 유생층의 현실인식과 의병투쟁; 최익현의 사상과 정치활동을 중심으로」,『국사관논총』15,이이화,국사편찬위원회,1990.
「면암 최익현의 위정척사론에 대하여」,『대구사학』1,홍순창,대구사학회,1969.
저서
『조선후기 화서 이항로의 위정척사사상』, 박성순, 경인문화사, 2003.
『화서학파의 사상과 민족운동』, 오영섭, 국학자료원,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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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시마 섬으로 끌려가는 최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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