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정치근대개화와 자주 운동

유길준의 한반도 중립화 주장

중립론 을유【乙酉 : 1885】

무릇 국가의 중립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전시 중립이고 둘째는 항구 중립이다. 중립이라는 것은 만국의 가운데 있으면서 여러 나라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음을 말한다. 전시 중립이라는 것은 갑⋅을의 두 나라가 어떤 사건으로 서로 다투어 전쟁을 벌이면 그 인근의 여러 나라가 중립 선언을 하여 군사를 엄히 단속하고 수비하여 갑⋅을 두 나라가 국경을 통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아 당사국 간에 전쟁하여 서로 승부를 가르도록 한다. 그러므로 어떤 한 나라가 약소하여 중립의 울타리를 지킬 수 없게 되면 이웃 나라가 혹 협의하고 대신 거행하여 자기 나라를 보호하는 계책으로 삼는다. 이것은 불가피한 형세 때문에 생긴 것으로 공법(公法)이 허용하는 것이다.

항구 중립이라는 것은 한 나라의 위치가 각국의 요충지를 차지하고 부강하지만 후세 사람들이 스스로 지킬 수 없고 형세가 급박해져서 강대국의 수중에 들어가면 시국의 큰 방향을 뒤흔들어 이웃 나라에 화가 미치므로 여러 나라가 조약을 협정하여 그 나라를 중립으로 만든다. 평시와 전시를 막론하고 타국의 군사가 그 나라의 국경에 진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만약 조약을 위반하는 나라가 있으면 여러 나라가 함께 공격하여 그 죄를 밝힌다.

유럽의 벨기에⋅불가리아와 흑해의 두서넛 섬이 혹 중립국이거나 중립지이다. 공법에는 자주국만이 중립의 권한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벨기에의 경우는 확실히 그러하지만 불가리아는 터키에 조공을 바치는 작은 나라이다. 흑해의 섬은 여러 나라에 제각각 예속되어 나라가 되지 못하면서도 이러한 권한을 가졌다. 이것은 공법만 가지고 이를 흐리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지리는 아시아의 인후(咽喉)에 처해 있어서 그 위치는 유럽의 벨기에와 같고, 중국에 조공하던 지위는 터키에 조공하던 불가리아와 같다. 그러나 대등한 의례로 각국과 조약을 체결할 권한은 불가리아에는 없으나 우리나라에는 있고, 조공을 하는 지위에서 다른 나라로부터 책봉을 받는 일이 벨기에는 없지만 우리나라에는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형세는 실로 벨기에와 불가리아 양국의 전례(典例)와 견줄 만하다. 불가리아가 중립 조약을 체결한 것은 유럽 여러 대국들이 러시아를 막으려는 계책에서 나온 것이었고, 벨기에가 중립 조약을 체결한 것은 유럽의 여러 대국이 서로 자국을 보전하려는 계책이었다. 이를 가지고 논한다면,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중립국이 된다면 실로 러시아를 방어하는 큰 기틀이고 또한 아시아의 여러 대국이 서로 보전하는 정략이 될 수 있다.

대개 러시아는 만여 리에 달하는 거칠고 추운 땅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100만 명의 정예 병력으로 날마다 그 영토를 넓히는 데 여념이 없다. 중앙아시아 지역의 작은 나라들을 회유하여 보호 아래에 두기도 하고 혹은 그 독립권을 담임하여 인정한다고 말하였지만, 맹세한 피가 마르기도 전에 결국 그 토지를 군현(郡縣)으로 삼고 그 인민을 노예로 만들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병탄하고자 하는 것은 본래 인간 사회에서 해 보고 싶은 마음이지만 러시아는 그 중에도 특히 무도(無道)하기 때문에 천하가 탐욕스럽고 포악한 나라로 지목하고 있다. 그 호랑이와 이리 같은 마음이 더욱 왕성해져 그칠 줄 모른다. 교인(敎人)들의 일을 빙자하여 터키에 군사를 끌고 가서 멸망시키려고 하였다.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하여 지키고 장차 터키를 잠식해 가자, 유럽의 토대인 영국과 프랑스 등 여러 나라가 일제히 일어나 터키를 도와 그 칼날을 막고 그 계획을 저지시켰다. 러시아인이 강대한 여러 이웃 나라들과 반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드디어 그 군대를 동쪽으로 옮겨 많은 병사를 블라디보스토크에 주둔시키고 시베리아 철로를 가설하기에 이르렀다. 그 비용이 매우 거대해 얻는 것이 잃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니, 그들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는 지혜로운 자가 아니라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위태로움은 아슬아슬한 지경에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위기의 절박함이 얼마나 심한 것인가. 우리가 금일과 같은 형세로도 오히려 만국의 사이에서 토지와 인민을 보존할 수 있는 것은 중국이 내려준 바이다. 러시아인이 우리를 노린 지 오래되었으나 아직 감히 움직이지 않는 것은 비록 세력균형의 법칙이 저지한 바라고는 하지만 실지로는 중국을 두려워하여 그런 것이다.

일본도 우리에게 뜻이 없었던 적이 없지만 그 형세가 부족한 바가 있고 힘도 미치지 못함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보존하기에도 겨를이 없으니 어찌 감히 중국과 다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나라가 의지하면서 나라를 위하는 것은 중국이 돌보아주는 데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혹자는 “중국이 우리나라를 병탄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고 하지만, 이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실로 중국이 이를 하려 했다면 왜 고생스럽게 여러 나라와 조약을 맺도록 권해 놓고 이제 와서 그 뜻을 비로소 펼치려 하겠는가. 중국이 먼 나라 사람을 대하는 것은 예부터 지금까지 대개 관대하게 하여 단지 조공을 받고 책봉을 하였을 뿐 스스로 자치하도록 하고 나머지는 다시 묻지 않았다. 혹자는 “미국은 우리나라와 우의가 두터우니 의지하여 도움을 받을 만하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은 멀리 대양의 저편에 있으며 우리나라와 별로 깊은 관계도 없다. 더구나 먼로주의를 표명한 후에는 유럽이나 아시아의 일에 간섭할 수 없게 되어 설사 우리나라가 위급해지더라도 그들이 말로는 도움을 줄 수 있을지언정 군대를 동원해 구원해 줄 수는 없다. 천 마디 말이 한 발의 탄환만 못하다는 말도 있으므로미국은 통상국으로서는 친할 수 있지만, 위급함을 구해 주는 우방으로서는 믿을 바가 못 된다. 그러나 중국만은 우리나라가 몇천 년 동안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아온 나라이며, 의관과 문물을 모두 다 모방하였고, 풍속과 싫어하고 좋아함도 서로가 비슷하거나 같다. 그 사람됨은 성인 기자(箕子)가 남긴 풍습을 지켜 왔고, 지리적으로도 베이징의 동쪽 울타리이다. 가까이 붙어 온 관계가 깊으므로 의지하고 믿는 것이 돈독했다. 비록 다소 시무(時務)에는 뒤떨어졌다고는 하나 최근에 도움을 요청한 한 가지 일을 보아도 평소의 애호함을 알 수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대해 종종 중국을 모방하여 심하게 행동하니 내륙 무역과 해변의 어채(漁採) 및 한성 개잔(開棧) 등은 종종 우리나라가 이미 그 폐해를 두루 입고 있다. 이번에 중국군이 200리 밖에 주둔했는데도 일본군이 멀리서 몰려와 도성으로 들어가 마치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였다. 이는 우리나라를 깔본 것뿐만 아니라 저들의 방자한 행동은 중국을 경시하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진실로 우리가 힘이 있으면 역습을 하여 그들을 모두 죽여 버리지 못할 바도 아니지만 한마디 힐난도 못 하고 벌벌 떨면서 사이가 나빠질 것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우리나라 인민이 자강하지 못한 책임으로 다시 누구를 탓하겠는가.

가령 일본군이 금일 철수하여도 우리가 몹시 기뻐할 것이 아니며, 100년 동안 우리나라에 주둔한다 해도 더욱더 근심할 필요가 없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들이 비록 금일 철수해도 내일 다시 오고 싶으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오고자 한다면 어찌 구실이 없음을 근심하겠는가. 지금부터는 비단 일본만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천하에 군대를 보유한 모든 나라가 다 이와 같이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잠시 철병한다 하더라도 이는 단지 눈앞의 군대를 철수할 뿐이며 각국이 품고 있는 칼날이 사라지지 않았다.

압록강과 두만강 사이에는 날마다 은밀히 내달리며 만국이 영향을 미치는 군대들의 각축이 그칠 날이 없다. 러시아인의 우려는 이로 인해 더욱 커졌다. 무릇 미얀마와 월남 같은 나라는 그 유무가 중국과 크게 관계가 없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가 발호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중국의 위엄을 오히려 손상시켰다. 지금 러시아가 우리나라에게 하는 행위 또한 영국이 미얀마에게, 프랑스가 베트남에게 하려 했던 것과 같은 것이다. 가령 우리나라가 지키지 못하면 중국의 근심과 걱정은 이가 빠지고 입술이 위태로워지는 것과 같이 또한 심할 것이니, 어느 겨를에 위엄을 논하겠는가. 설사 중국이 우리나라를 평소에 적국시하였다 하여도 영국과 프랑스가 우리 영토를 탐낸다면 오히려 피 흘려 싸워서 이를 보존하는 것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책이 될 수 있다. 하물며 4000년간 관계를 맺어 왔고 수백 년간 섬겨 온 나라가 아닌가. 내란 같은 작은 문제에도 구원해 주었는데 하물며 외부로부터의 근심으로 인한 존망의 시기임에랴.

중국은 장차 어떤 계책으로 우리나라를 보존하려는가. 만일 러시아인이 행동하기를 기다려 출병하여 멀리서 구원하려 한다면 선후가 이미 갈려서 승패를 알 수 없다. 설혹 러시아인을 내몰아 국경 밖으로 물리친다 해도 병력과 군량미를 소모하여 폐해가 매우 클 것이니 좋은 계책이 아니다. 만약 군대를 미리 파견하여 우리나라 북방에 진주시켜 대비하려 한다면 바로 러시아인에게 구실을 주게 되며, 일본 또한 반드시 오늘과 같은 망동을 할 것이니, 그것은 도리어 평지에 풍파를 일으켜 그 환란의 기회를 돕는 것이다. 그런즉 어찌하면 좋겠는가. 그것은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중립국이 되는 데 있다.

대개 한 나라가 자강할 수 없어서 여러 나라와의 조약에 의지해 간신히 자국을 보존하고자 하는 계책도 매우 구차한 것이니 어찌 즐겨할 바이겠는가. 그러나 국가는 자국의 형세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억지로 큰소리를 치면 끝내 이로운 것이 없다. 사람은 멀리 내다보는 근심이 없으면 반드시 가까운 근심이 있게 되며, 나라에는 작은 난리가 있어야 큰 업적을 세울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통상을 한 이후 지금까지 근심이 없다 할 수 없으며 난리가 없다고도 할 수 없다.

오직 중립 한 가지만이 진실로 우리나라를 지키는 방책이다. 그러나 이를 우리가 먼저 제창할 수 없으니 그것은 중국에 요청하여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 만일 중국이 혹 일을 핑계 삼아 즉시 들어 주지 않으면 오늘 청하고 내일 또 청해서 중국이 맹주가 되어 영국⋅프랑스⋅일본⋅러시아 등 아시아 지역과 관계가 있는 여러 나라와 회동하고 이 자리에 우리나라를 보내어 공동으로 맹약을 체결하기를 구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입장만 위한 것이 아니고 중국에게도 이익이 되며 여러 나라가 서로 보존하는 계책이기도 한 것인데 어찌 근심만 하면서 이를 행하지 않는가. 유럽의 대국들이 러시아를 막아 자국을 보존할 계책에 급급하다가 벨기에와 불가리아 양국의 중립이 한 번 제창되자 모두 동의하여 잠깐 사이에 성취되었는데 어찌하여 아시아 지역의 대국들은 단지 우려만 할 줄 알고 이를 꾀할 바를 알지 못하는가.

지난날에는 본래 그럴 기회가 없었으나 지금 그 시기가 왔고 기회가 합당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이때 기회를 이용하여 중국에 요청하면 일이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러시아인의 옥백(玉帛) 사이에 있는 흉심을 은밀히 꺾어 살벌한 기운을 담소로 바꿀 수 있고, 중국은 단 하나의 군사를 쓰지 않고도 동쪽을 염두에 두는 근심을 영원히 끊을 수 있으며, 우리나라는 장성(長城)처럼 믿을 수 있으니 가만히 앉아서도 만세의 이득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 일관된 방략은 중국에 달려 있을 뿐이고 우리나라가 믿을 만한 나라도 중국만 한 나라가 없다. 우리 정부가 간절하게 이를 요청하기 바란다.

유길준전서』4 정치경제편, 외교론, 중립론

中立論【乙酉】

凡國之中立有二道, 一曰戰時中立, 二曰恒久中立也. 中立者, 立於萬國之中, 不與於諸國戰爭之謂也. 何謂戰時中立. 甲乙二國, 有事相詰, 至於干戈相接, 則其隣近諸邦, 出中立之令, 嚴兵守備, 不許甲乙國過境, 而任自爲戰, 互決勝負也. 故若有一國弱小, 不能自守中立之柵, 則隣國亦或協議替行, 以爲自保之策. 此乃出於不得已之勢, 公法之所許也. 何謂恒久中立. 此有一國, 地據各國要衝而富强, 後人不敷自守, 爲勢所迫折, 而入於强國之手, 則撓時局之大權, 貽隣國之禍機, 故諸國協議立約, 以其國爲中立. 而毋論平時戰時, 不許他國兵之入其境, 若有犯約者, 則諸國共攻之, 以聲其罪也.

今歐羅巴洲之比利時發佳利亞及黑海之二三島, 或爲中立國, 或爲中立地, 公法曰, 惟自主之國, 能有中立之權. 如比利時則固然, 而發佳利亞, 乃贈貢於土耳基之一小國也. 黑海之島, 散隷各邦, 不成爲國, 而亦存是權. 此不可但以公法泥之也.

今我邦以地, 則處亞洲之咽喉, 若比利時之於歐羅巴, 以位則爲中國之貢邦, 如發佳利亞之於土耳基. 然用同等之禮, 結約各國之權, 發佳利亞之所無, 而我邦有之, 在貢邦之列, 受冊他邦之事, 比利時之所無, 而我邦有之. 是故我邦之體勢, 實兼比發兩國之典例也. 發佳利亞之約爲中立者. 歐洲諸大國, 出於防俄之計, 而比利時之約爲中立者, 歐洲諸大國, 相爲自保之策也. 由是論之, 我邦爲亞洲中立國, 則實防俄之大機, 而亦亞洲諸大國相保之政略也. 夫俄之爲國, 跨有萬餘里荒寒之土, 精兵百萬, 日務拓疆. 誘中亞諸小國, 而或寘保護之下, 或謂擔認其獨立之權, 盟血未乾, 遂皆郡縣其土地, 奴隷其人民. 强者之欲 並弱, 大者之欲呑小國, 人世之技癢, 然而俄特無道之甚, 故天下目之, 以貪暴也. 其虎狼之心, 猶且耽耽不已. 假托敎徒之事, 搆兵於土耳基, 而欲滅其國. 據君斯坦丁堡, 將以爲蚕食, 歐洲之基, 英法諸國, 群起而援土, 遏其鋒而沮其計. 俄人知不可與諸强隣爲仇, 遂東其兵, 以重兵鎭海蔘威, 而至架西伯利亞之鐵路. 其費甚鉅, 得不償失, 則其意之所在, 不俟智者而可辨, 然則我邦之危, 其迫在呼吸乎. 我邦以今日之勢, 猶在萬國之間, 得保其土地人民者, 中國之所賜也. 俄人睥睨我久矣, 而姑且不敢動者, 雖曰爲均勢之法所沮, 實畏中國而然也. 日本亦未嘗無意於我, 而顧其勢有所不足, 力有所未及, 自保之不暇, 安敢與中國抗哉. 故曰我邦之所恃而爲國者, 在於中國之顧護也. 或曰安知中國又不欲呑倂我乎, 此則不然. 苟中國之欲爲是也. 何苦而勸訂諸國之約, 乃到今日, 而始行其志哉. 中國待遠人之道, 自古迄今, 槩從寬柔, 只收其貢冊其封, 而使自爲治, 餘不復問也. 或曰合衆國與我甚厚, 可倚而爲援, 曰否. 合衆國遠在重溟之外, 與我別無深重關係. 而且自蔓老約後 不能干涉於歐亞之事, 如我有急, 則彼或以言詞相助, 不敢用干戈相救. 語云千言不如一丸. 是故合衆國, 則可親以爲通商之國, 不可恃以爲緩急之友, 而中國惟我幾千年奉貢受冊之國, 衣冠文物, 悉皆摹倣, 俗尙好惡, 互相比同. 其人則箕聖之餘風, 其地則燕京之東蔽也. 親附之深, 故倚信之篤. 今者請援之一事, 亦可見平素之爱好, 而雖曰少有未達於時務. 日本之待我, 動效中國而駕軼之, 自內地之貿易, 海邊之漁採, 漢城之開棧, 種種如是, 我已偏受其害, 而此次中國之兵, 在於二百里之外, 日本之兵, 長駈而入城. 若無人然, 是非但藐視我邦, 彼其肆然, 有輕中國之志可見也. 苟我有力, 則雖逆擊而盡斃之, 無所不可, 而不能發一詞相詰, 惴惴然惟恐失和, 此則我邦人民, 不能自强之責也. 復誰尤哉. 使日本之兵, 今日撤去, 我不足深喜也, 百年留住我, 不必加憂也. 其故何也. 彼雖今日去, 而明日欲復來則可來. 彼欲其來, 何患無辭. 自是之後, 非獨日本爲然, 天下有兵之國, 皆將如是. 故雖使今日暫行撤兵, 此只去眼前之兵, 而各國意中之鋒未銷. 鴨豆兩江之間, 日隱隱馳逐, 萬國影響之兵馬而無已時也. 俄人之憂其從此愈大乎. 夫緬甸安南之屬, 其有無, 不甚重輕於中國. 然而英法跋扈之擧, 猶損中國之聲威. 今俄之於我邦, 亦欲英於緬, 而法於安. 使我邦失守, 則中國之患, 如齒亡唇危且甚矣, 奚暇論聲威哉. 使中國之於我邦, 素雖相仇視, 如英法之嫉土, 猶爭血爭而保存之, 以爲自衛之方策. 況有四千年關係, 而數百年服事者乎. 內亂之小, 而猶且相救, 況外憂存亡之機乎. 凡事貴防於未然. 中國將用何計而保我乎. 若俟俄人之動, 而出兵遠救, 則先後之制已分, 勝敗未可知. 而設或駈俄出境, 劳師費餉, 罷弊滋甚. 究非良策也. 如欲預派重兵, 鎭我北邊而備之, 則適足以藉俄人之口實, 而日本之妄動, 又必如今日之爲, 是反生事於無事之日, 以保其禍亂之機也. 然則何爲而可乎. 其在我邦, 爲亞洲中立之國乎. 夫有國而不能自强, 願借諸邦之約, 僅僅欲爲自保之計, 亦區區之甚耳, 豈人所甘爲哉. 然而國貴自知其勢, 强爲大談, 終無益於事也. 人無遠慮, 必有近憂, 國以小亂, 或興大功. 我邦自通商後, 至于今日, 不可曰無憂, 而亦未可謂之無亂也. 唯中立之一事, 寔我邦保守之策. 而此不可自我而倡之, 則其宜請於中國而辦理之乎. 如中國或因事, 而未即聽準, 今日請之, 明日又請之, 乞中國之爲盟主, 會同諸國, 如英法日俄之有關係於亞土者, 而進我於其間, 共訂其盟款乎. 此非獨爲我邦之地, 亦中國之利也, 諸國相保之計也, 何苦而不爲是哉. 歐洲諸大國汲汲於防俄自保之計, 比發兩國之中立, 一唱衆和, 成於咄嗟指顧之頃, 奈之何亞洲諸大國, 徒知憂之, 而不知所以計之乎. 向之時固未有其機耳, 今則可謂時到機合. 自我邦及今之時, 乘此之機, 請之中國, 則事可諧矣. 此乃陰折俄人之凶心於玉帛之間, 殺伐之氣, 可變以爲談笑, 而中國則不煩一兵, 永節東顧之憂也. 我邦則恃如長城, 坐收萬世之利也. 其終始方略, 惟在中國, 而我邦之所親信, 又莫如中國. 願我政府懇懇請之.

『兪吉濬全書』4 政治經濟編, 外交論, 中立論

유길준(兪吉濬, 1856~1914)이 「중립론」을 집필한 것은 1885년(고종 22년) 말이다. 그는 미국 유학 중 갑신정변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소환 명령을 받고 귀국하자마자 유폐되었다. 그의 「중립론」은 이 시기에 집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는 갑신정변 이후 1885년 3월 영국의 거문도 점령, 청일 간의 톈진 조약 체결과 그에 따른 공동 철병, 5월 제1차 조러 밀약 사건 폭로 등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팽팽한 긴장 속에 전개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10월 위안스카이(袁世凱, 1859~1916)가 조선에 부임했고, 조선에 대한 속방화 정책을 심화할 목적으로 조선의 안전을 청국에 의지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였다. 조선으로서는 독자적인 주권 수호를 도모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만 할 시기였다.

이에 유길준은 영국의 거문도 사건, 러시아의 남하 정책, 미국의 입장, 중국의 보장, 일본의 침략 의도 등을 종합해 강대국들의 보장 아래 조선을 중립 지대화 하자는 「중립론」을 집필한 것이다. 유길준의 ‘한반도 중립론’은 조선에 대한 러시아와 일본, 특히 러시아의 침략을 예상하고, 이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능력과 미국의 관여도가 가지는 한계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구상한 것이었다.

조선 중립화론은 이미 갑신정변 직후부터 당시 외교협판으로 있던 묄렌도르프(Möllendorf, Paul George von, 1848~1901)의 청⋅일⋅러 3국의 보장에 의한 벨기에식 조선 중립화와 조선 주재 독일부 영사 부들러(Hermann Budler)의 스위스식 영세 중립국 안이 구상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조선 중립화론은 다른 열강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졌던 독일의 동아시아 정책의 산물이었다. 부들러가 자신의 의견을 외아문 독판 김윤식(金允植, 1835~1922)에게 공식 전달했으나 김윤식은 그 원본을 반환하면서, “청이 이유 없이 군대를 증원하거나 새로운 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일본도 평화 정책을 추구하므로 중립화론은 필요 없다. ”며 이 제안 자체를 거부하여 조선의 중립화론에 대한 인식은 진전되지 못하였다.

유길준의 「중립론」은 청⋅일과 구미 열강의 경쟁 속에서 어느 한 나라에도 의존하지 않는 가운데 벨기에식에 불가리아식 조건을 가미한 국제적 보장을 전제로 한 중립 구상이었다. 그는 청의 조선에 대한 정치적 지배라는 현실 속에서 중립론을 제기하며, 아주 현실주의적인 입장에서 이에 접근하였다. 요컨대 조선이 러시아나 일본의 침략으로 희생될 경우 청국에게도 엄청난 위기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청국의 군사적 능력과 미국의 대조선 개입 가능성 등을 입각해, 청국이 조선의 중립화를 지지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청국의 조선 속방화 정책은 동아시아에서 분란만 일으킬 뿐이며, 조선으로서도 중립국이 되어야만 안전과 주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 게다가 그는 시기적으로 적기라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유길준의 「중립론」은 대외적으로 발표되지 못했고, 조선 정부도 그의 이런 구상을 수용하지 않았다. 조선 정부는 러시아⋅미국 등의 나라에 조선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킴으로써 국제 사회에서 독립국으로 인정받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게다가 이듬해 제2차 조러 밀약 사건을 계기로 위안스카이(袁世凱)가 「조선대국론(朝鮮大局論)」을 집필하면서 조선의 안전을 보장하는 나라는 청국뿐이라는 것을 환기하고 조선 정부의 러시아 접근 시도에 완전히 쐐기를 박았다. 조선 중립화를 청국이 주동해 추진해야 한다는 유길준의 구상은 청국의 조선 속방화 정책 아래에서는 수용될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유길준의 조선 중립화론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조선은 이를 추진하지 않았고, 청국의 간섭이 강화된 상태에서 각국은 이런 흐름에 동의하며 중립화론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중립화론은 1897년 대한제국 등장 이후 고종을 중심으로 재차 추진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유길준의 한반도중립화론」,『분단시대의 역사인식』,강만길,창작과 비평사,1979.
「한말 조선에 대한 중립화 논의와 그 성격」,『역사교육논집』17,권영배,역사교육학회,1992.
「19세기 한반도의 중립화론에 관한 고찰」,『독립운동사의 제문제』,노무지,범우사,1992.
「거문도사건과 조선의 중립화론」,『강원사학』17⋅18,엄찬호,강원대학교 사학회,2002.
저서
『한국근대 대청정책사 연구』, 구선희, 혜안, 1999.
『구한말 한반도중립화론 연구』, 박희호, 동국대학교사학과 박사학위논문,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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