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정치근대독립 협회와 대한제국

독립 협회 서

독립 협회 서(序)

지금 우리 대조선국 사람들이 독립 협회를 만든 것은 무엇 때문인가? 독립이라는 것은 크게 분발하여 행하는 것이다. 협회를 거론한 것도 또한 크게 발분하여 나온 것이다.

……(중략)……

지금 우리의 형세는 이미 자유롭다. 이미 자유했으니 또한 이미 독립한 것인데 왜 독립을 목적으로 하여 협회를 만든다고 하는 것인가?

……(중략)……

무릇 무지한 어린아이는 연장자가 끌어안고 이끌면서 날마다 아버지, 어머니를 대신 말해 주면 이 어린아이가 귀가 뚫리고 입이 열려서 아버지, 어머니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 말을 배우는 첫걸음이다.

……(중략)……

지금 억조창생을 생각할 때 독립의 취지를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 많은 무지한 사람을 배우게 하여 지식이 있게 만드는 것은 협회를 만들어 독립, 독립이라고 대신 말해 주는 것이 제일 좋다. 날마다 무수히 독립이라는 말을 널리 알리고 계속 설득하는 것은, 나이든 사람이 어린이를 대신해 아버지, 어머니라고 말하여 날마다 무수히 부모라는 말로 어린이의 무지함을 일깨워 주는 것과 같다.

……(중략)……

우리는 지금 무수히 독립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실로 한 글자도 우리가 갖는 것이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알고 스스로 행하며 독립하고 협력하여, 실제 권리를 다 가지도록 하고 새롭게 되어 국체(國體)를 다스리기에 이르며 빛과 같이 찬란하여 하늘의 해같이 되도록 하면, 비로소 지금 우리 독립 협회의 아득한 시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중략)……

근래 동지 몇 사람이 독립 협회를 건설하고자 의논할 때 여러 사람이 좋다고 찬성하니 장차 성장하여 원만한 성과가 있을 것이다. 그 규례를 요약하면 세계의 문자로 간행된 책들을 한문 혹은 국문으로 간행하여 읽기에 편하도록 하며, 농학⋅의학⋅군사학⋅수학⋅화학⋅기상학⋅역학⋅천문학⋅지리학⋅기계학⋅격치학(格致學)⋅정치학 등의 제반 학문의 서적을 듣고 보는 대로 수집하여 차례대로 참고한다.

……(중략)……

또 당대의 누구든지 경륜 있는 이야기나 지략 있는 주장을 본회에 보내 오면 한문, 국문, 국한문을 막론하고 도리에 맞고 고명(高明)하여 세상의 교화에 기여할 수 있을 만한 것이면 모두 기재하고 이를 모아 책으로 만들어 매월 배포한다.

……(중략)……

조심히 말하건대 독(獨)하면 능히 입(立)할 수 있고, 독(獨)하지 못하면 입(立)할 수 없다. 협(恊)하면 능히 회(會)할 수 있고, 협(恊)하지 못하면 회(會)할 수 없다. 그러나 독(獨)하면서 협(恊)하지 못하면 자만에 빠진 것이며, 입(立)할 수 없다. 협(恊)하면서 독(獨)하지 못하면 지도자가 없게 되는 것으로 회(會)할 수 없다. 그러므로 독립을 말하고 협회를 말하여 두 의리가 각각 이루어지면 능히 독(獨)하고 입(立)하고 협(恊)하고 회(會)하여 8가지 덕이 서로 어우러질 것을 이를 통해 알 수 있다. 지금 이 네 글자의 이름은 다만 중국 문장의 면목일 뿐만 아니라 실로 백성의 예악(禮樂)을 교화시키는 자리이니 어찌 손과 발로 춤추며 계속 노래를 부르지 않겠는가?

……(중략)……

오직 바라기는 평상 위의 모든 분이 총총히 참여하여 사해에 들리고 만대에 울리는 소리를 음악을 만들기를 바란다.

『대조선 독립협회 회보』 창간호

獨立協會序

今我大朝鮮國人獨立協會 何爲而作也 獨立云者 大發憤之爲也 協會舉者 亦大發憤之出也

……(中略)……

□我之形勢 旣已自由矣 旣已自由 亦已獨立矣 何必以獨立爲目而協會之設乎

……(中略)……

且夫無知小兒 爲其長者 抱之提之 日以代言父也母也則 此小兒者 慣於耳而流於口 亦曰父也母也 當其初也

……(中略)……

念今億兆我衆 能知獨立之歸趣者 較無幾人矣 使此多多無知者 習而至於有知之法 莫如創始恊會 代言曰獨立也獨立也 日以無數獨立字 廣告繁諭 如長者之代小兒言曰 父也母也 日以無數父母字 開導小兒之迷昧也

……(中略)……

我今無數言獨立字者 實無一字之我有也 使我人人自知 人人自行人人獨立 人人恊會 摠持實地權利 維新至治國體 燦然有光 如日中天 始見今我獨立恊會之遙遙濫觴也

……(中略)……

頃者同志數人議欲建設獨立恊會 僉言歸好衆賛有成 將有長養圓滿之實就 而要其規例則槩取天下文字刋以漢文或國文務至披閱之便宜 而農學 醫學 兵學 數學 化學 氣學 重學 天文學 地理學 噐械學 格致學 政治學 如是等諸學書籍 及見聞盡數取集 取次叅證

……(中略)……

且於當世誰某人 經綸之說 智略之論之送於本會者 無論漢文 國文 半漢國文 卽取其符於道理 得於高明 足有涉於世敎者 並皆登諸搨本彙爲成書 課月分布

……(中略)……

竊謂獨則能立 不獨則不能立 恊則能會 不恊則不能會 然獨而不恊則失於我慢 不如不立也 恊而不獨則 失於無宰 不如不會也 故曰獨立曰恊會 二義各成 能獨能恊能立能會 八德相濟 由是觀之 今此四字命名 非徒華國文章之面目 實是化民禮樂之階庭 安得不手舞足蹈 繼之歌詠乎

……(中略)……

而惟願上床諸君子 咸作鏦鏦然錚錚然 聞四海之琴瑟 響萬代之笙簫也

『大朝鮮獨立協會會報』 創刊號

이 사료는 1896년(고종 33년) 7월 2일 조직되었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사회 정치단체인 독립 협회가 같은 해 11월 30일 순한글⋅국한문 혼용체⋅한문을 병용하여 국내에서 발간한 최초의 잡지인 『대조선 독립 협회 회보』 창간호에 실린 「독립 협회 서」 전문이다.

독립 협회는 1898년(대한제국 광무 2년) 12월까지 활동하면서 자주 국권, 자유 민권, 자강 개혁 등을 부르짖은 단체이다. 독립문 건립과 독립공원 조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창립하였다. 창립자인 서재필(徐載弼, 1864~1951)갑신정변 실패 후 미국으로 망명해 민주주의와 근대 문명을 익히며 의사 생활을 하던 중, 갑신정변 주모자들에 대한 반역죄가 사면되고 개화 정부가 들어섰다는 소식을 듣고 1895년(고종 32년) 말 귀국하였다. 과거 개화파로서의 경력, 그리고 미국에서의 성취와 경험을 바탕으로 서재필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적 개혁 사상으로 민중을 계발하는 한편 조선의 내정을 개혁하고자 하였다. 이에 감리교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인들과 선교사들, 개화에 친화적이면서 미국 혹은 일본에 친화적이었던 전⋅현직 관료들이 1차 포섭 대상이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구미파의 총본산인 정동구락부(貞洞俱樂部) 세력, 갑오개혁 주동 인물들의 모임인 건양협회(建陽協會) 세력, 자주 개화 정책을 추구하는 실무급 중견 관료층 세력 등이 그들이다.

한편 신지식인층도 독립 협회에 참여하였다. 개항 이래 해외 시찰과 해외 유학, 신교육, 신문과 서적 등을 통해 근대 사상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세계관과 지식 체계를 가진 신지식층도 성장하고 있었다. 이들은 근대 시민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은 서구적 지식층과 동도서기(東道西器) 사상에서 발전한 개신 유학적 지식층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이 그룹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으며 관료 그룹과 중첩되는 경우도 많았다.

다른 신흥 사회 세력의 하나는 시민⋅상인층이었다. 이 무렵 시전(市廛) 상인은 근대 상인으로 개편되어 갔으며, 각종 상회와 회사가 출현하면서 새로운 사회 세력으로 성장해 갔다. 이들의 면모에 대한 연구는 구체적으로 진행된 바 없으나 1898년 독립 협회와 황국중앙총상회가 연대하는 과정에서 그 면모를 일부 확인할 수 있다.

이들 신흥 세력 가운데 독립 협회 초창기 지도적 구실을 담당한 것은 관료층이었다. 창립총회에서 선임된 임원진은 고문에 서재필, 회장에 안경수(安駉壽, 1853~1900), 위원장에 이완용(李完用, 1856~1926), 위원에는 김가진(金嘉鎭, 1846~1922)⋅김종한(金宗漢, 1844~1932)⋅이상재(李商在, 1850~1927) 등 8명이다. 독립 협회의 사실상 대표 발기인이자 〈독립신문〉의 초대 주필이던 서재필은 고문이 되고, 대신 춘생문 사건(春生門事件)으로 실각했다가 아관파천 이후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복직한 안경수와 정동파 일원으로 미국 선교사들과 인맥을 형성해 왔던 이완용 등 관료들이 요직에 오른 것은, 독립 협회가 설립 초기에는 사실상 관변 단체로 기능했음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아직 근대적인 민간 협회가 존재하지 않았던 조선에서 을미사변과 아관파천이라는 극심한 정치적 격변기에 새로운 정치 사회단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과정이었으리라 추측된다.

독립 협회 서」의 저자는 초대 회장인 안경수였다. 그는 아관파천 이후 지금의 경찰총장에 해당하는 경무사에 임명되었으나, 갑오개혁 당시 일본이 주도한 정부에 가담했다는 명목으로 탄핵을 받고 중추원 1등 의관(議官)으로 전임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이후 안경수의 행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연구가 제시되었는데, 일본 정부 및 망명객 박영효(朴泳孝, 1861~1939)와 긴밀히 연결되어 활동했다는 것이 정설로 알려진다.

이 글은 독립 협회의 설립 취지로서, ‘어린아이와 같은 대중을 계몽하여 독립국의 국민이 되도록 하는 것’을 제시하였다. 어른이 어린아이를 계도하듯 지식과 실력을 갖춘 독립 협회가 무지몽매한 백성을 가르쳐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엘리트적이며 일방적인 대중 인인식은 지극히 관료적인 사고방식이면서 한편으로는 독립 협회의 중심 세력이던 개화 지식인들의 보편적인 성향이기도 하였다. 이는 이후 독립 협회의 사상적 한계를 노정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또한 조선은 이미 자유하며, 자유한 이상 독립한 것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다만 국민이 스스로 독립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 이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이 기고된 것은 1896년 11월로, 명성왕후가 시해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며, 고종은 아직 러시아 공사관에 있던 상황으로 자유와 독립을 스스로 천명하기에는 어려운 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표현이 나온 이유는 아관파천 이후 약화된 조선 정부의 입장을 세워 보려 했던 관료들의 욕구와, 청국 중심의 중화 사대 질서에서 벗어나 근대적 국가 관계를 형성하고자 했던 개화 지식인의 희망이 교차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이후 독립 협회 활동으로서 서양의 학문 및 국내의 훌륭한 주장들을 간행하여 소개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상기한 바 독립 협회의 대중 계몽적 지향과 아울러 1898년 이후 나타나는 정치 결사적인 성격이 설립 초기에는 나타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독립협회의 대외인식과 자주국권론」,『경주사학』17,김신재,동국대학교 국사학과,1998.
「독립협회의 대외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응」,,주진오,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1984.
「독립협회의 개화론과 민족주의」,『현상과 인식』20,주진오,한국인문사회과학원,1996.
「개화기 독립협회의 활동과 국민-만들기 프로젝트」,,최창석,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2004.
저서
『19세기 후반 개화 개혁론의 구조와 전개 :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주진오,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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