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정치근대일제의 국권 침탈과 국권 회복 운동

기유각서

약정서

한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는 한국의 사법과 감옥에 대한 사무를 개선하고 한국의 신민(臣民) 및 한국에 있는 외국 신민 및 인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확실하게 할 목적과 한국 재정의 기초를 공고하게 할 목적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조항을 약정한다.

제1조 한국의 사법과 감옥에 대한 사무가 완비되었다고 인정될 때까지는 한국 정부는 사법과 감옥에 대한 사무를 일본국 정부에 위탁한다.

제2조 일본국 정부는 일정한 자격을 가진 일본인과 한국인을 한국에 있는 일본 재판소와 감옥의 관리로 임용한다.

제3조 한국에 있는 일본 재판소는 협약 또는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한국 신민들에 대해서는 한국의 법규를 적용한다.

제4조 한국의 지방 관청과 관리는 각기 직무에 따라서 사법과 감옥 사무에서는 한국에 있는 일본의 해당 관청의 지휘, 명령을 받고 또는 이것을 보조한다. 일본국 정부는 한국의 사법과 감옥에 관한 일체 경비를 부담한다.

이상을 각각 본국 한국 정부의 위임을 받아 한국어와 일본어로 된 각서(覺書) 각 2장을 작성하여 이것을 교환하고 뒷날의 증거로 하기 위하여 이름을 적고 조인한다.

융희 3년 7월 12일

내각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

메이지 42년 7월 12일

통감 자작(子爵) 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

『순종실록』권3, 1909년(융희 3년) 7월 12일

(約定書)

韓國政府及日本國政府 韓國司法及監獄事務를 改善고 韓國臣民竝在韓國外國臣民及人民의 生命財産保護를 確實케 目的과 韓國財政의 基礎를 鞏固케 目的으로써 左開條款을 約定홈

第一條 韓國의 司法及監獄事務가 完備으로 認 時지 韓國政府 司法及監獄事務를 日本國政府에 委托홈

第二條 日本國政府 一定 資格을 有 日本人及韓國人을 在韓國日本裁判所及監獄의 官吏에 任用홈

第三條 在韓國日本裁判所 協約又 法令에 特別 規定이 有 者外 韓國臣民을 對야 韓國法規를 適用홈

第四條 韓國地方官廳及公吏 各其職務를 應야 司法及監獄事務에 在韓國日本當該官廳의 指揮命令을 承고 又 此를 補助홈. 日本國政府 韓國司法及監獄에 關 一切經費를 負擔홈

右上各其本國政府의 委任을 承야 覺書韓日文各貳度를 作成야 此를 交換고 後日의 證據로기 爲야 記名調印이라

隆熙三年七月十二日

內閣總理大臣 李完用 官章

明治四十二年七月十二日

統監子爵 曾禰(國)荒助 官印

『純宗實錄』卷3, 1909年(隆熙 3年) 7月 12日

이 사료는 1907년(순종 1년)에 체결된 ‘정미 7조약(丁未七條約)’의 추가 조치 사항을 시행하기 위해 사법 및 감옥 사무를 일본에 위탁한다는 내용으로, 1909년(순종 3년) 7월 12일 한국의 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의 2대 통감 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 사이에 맺어진 「기유각서(己酉覺書)」이다.

이 조약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일본 내각에 청의한 ‘한국 사법 및 감옥 사무 위탁에 관한 건’에 의해 추진된 것이다. 전문과 5개조의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각서 체결로 대한제국 사법권은 소멸되어 한반도에 식민지적 사법 제도가 탄생하였다. 이로써 법부(法部)와 재판소 및 형무소는 전부 폐지되고, 그 사무를 통감부의 사법청(司法廳)으로 이관하였다. 이로써 일본은 대한제국의 국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정치적 권력을 강탈해 갔다. 그리하여 직원은 일본인으로 임명되고 대한제국 사법권은 완전히 일본이 장악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항일 의병을 체포, 재판하기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져 한국의 항일 투쟁을 더욱 억압받게 되었다. 사실상 국망을 목전에 둔 것이다. 「기유각서」는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탄하는 전초 공작이었다고 하겠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구한말조약휘찬』상,,국회도서관입법조사국,국회도서관,1964.
편저
『조약으로 본 한국근대사』, 최덕수 외, 열린책들, 1989.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링크연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