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정치근대다양하게 전개된 민족 운동

물산 장려 운동에 대한 비판

중산 계급의 이기적인 운동

사회주의자가 본 물산 장려 운동

이성태 투고

……(중략)……

이 문제는 근일 우리 조선에서 일어난 상당한 규모의 운동으로 보인다. 게다가 소위 지식층 중산 계급은 이 운동만이 외래 침입자에 대한 방어책이 되고, 그래서 조선인 생활의 유일한 구제 방법이라고 떠든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든지 저 자본계급, 중산계급적 운동의 표리를 감시하고 비판할 의무와 계급 투쟁의 전략상 절실한 필요를 느낀다.

……(중략)……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진화 정도가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중산계급은 몰락할 것을 예상하고 이것이 새로운 사회 현실의 주요 조건이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소멸하는 중산 계급은 무산 노동자로 몰락하고 또 몰락하는 만큼 한편으로는 자본이 집중되어 무산 노동자의 수는 격증하고 마침내 사회적 변혁이 일어나서 자본주의의 사회는 붕괴하고 사회주의적 사회가 그에 대신해 도래할 것을 예언했다.

……(중략)……

중산 계급의 멸망! 이것은 자본주의 진화의 법칙이며 역사적 필연이다.

……(중략)……

당사자–곧 중산 계급–로서는 자기의 생명이 빈사 상태에 놓인 것을 보며 결코 이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역사적 필연의 장을 멈춰 보려 하고, 또 저들을 양성하고 결국 몰살시키는 자본주의 사회의 법칙에 대해 무비판적인 태도로 절망적 최후의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중략)……

나는 이러한 의미에서 물산 장려 운동의 중산 계급적 연극을 관람하는 것이며,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계급적 이해관계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현재 물산 장려 운동의 사상적 도화수가 된 것이 누구인가? 저들의 사회적 지위로 보나 계급적 의식으로 보나 결국 중산 계급임을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적어도 중산 계급의 이익에 충실한 대변인인 지식계급이 아닌가. 또 솔선하여 물산 장려의 실행적 선봉이 된 것도 중간 계급이 아닌가. 실상을 말하면 노동자에게는 이제 새삼스럽게 물산 장려를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벌써 오랜 옛날부터 훌륭한 물산 장려 계급이다. 그들은 자본가 중간 계급이 양복이나 비단옷을 입는 대신 무명과 베옷을 입었고, 저들 자본가가 위스키나 브랜디나 정종을 마시는 대신 소주나 막걸리를 먹지 않았는가?

……(중략)……

이만하면 물산 장려 운동이 중산 계급적 운동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산 장려란 무엇인가

……(중략)……

우리의 생산기관을 발달시켜 산업을 진흥시키며 생활의 경제적 독립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고 한다.

……(중략)……

물론 이 점에서는 어떤 계급에서도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를 위해’

……(중략)……

표방하는지 계급적 경계선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물산 장려 운동의 사상적 배경에는 민족적 혹은 애국적 감정을 고취⋅고조시키는 일종의 정치적 색채가 묻어난다.

……(중략)……

조선의 소수 자본가 중산 계급의 수중에 일체의 경제적⋅정치적 권리를 집중시켜 그 지배권을 장악하자는 것이다.

……(중략)……

실상 저들 자본가 중산 계급은 외래의 자본주의적 침략에 위협을 당하고 착취당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민족적이라는 미사여구로 동족 안에 있는 상반적인 양극단의 계급적 의식을 가려 버리고 일면으로는 애국적이라는 의미에서 외화(外貨) 배척을 말하는 것이며, 그 이면에는 외래의 경제적 정복 계급을 축출하여 새로운 착취 계급으로서 자신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려는 것이다. 이래서 저들은 민족적⋅애국적인 척하는 감상적 미사여구로 눈물을 흘리며 저들과 이해관계가 전혀 다른 노동 계급의 후원을 갈구하는 것이다.

……(중략)……

우리 노동 계급이 요구하는 것은 외래의 정복 계급만 배척하여 동족 안에 있는 착취계급의 지배를 받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도 또한 노동 계급의 적인 것을 의식하고 그의 지배까지도 전멸시켜 노동 계의 사회를 실행하려는 것이다.

……(하략)……

(물산 장려 운동을 각 방면으로 고찰하기 위해 이 글을 게재함. 편집자)

〈동아일보〉, 1923년 3월 20일

물산 장려 운동에 대한 논쟁

사실을 제대로 보라.

조선물산 장려 운동이 일어나자 조선 전체는 미연히 호응하여 어떤 사람은 단체나 조합을 조직하며, 어떤 사람은 새로운 생산 방법을 생각해 내어 그 생산품을 성황리에 판매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그 운동을 선전하며 그 실행 방법을 강구하는 중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을 보며 기뻐하지 않을 수 없으며, 더더욱 그 발전을 바란다. 지금 일부 인사들 사이에서 물산 장려 운동에 대한 약간의 회의와 비평이 들리고 있다. 물론 사회 안에서 비평은 당연히 있을 것이며, 그 내용과 이유를 검토하여 운동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 물산 장려 운동에 대한 반대측 의견을 종합하건대 크게 두 가지 논점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일본인측이나 또는 관청의 일부분에서 물산 장려 운동을 일종의 일본 제품 배척 운동으로 간주하고 불온한 사상이라고 공격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소위 사회주의자 중 일부 논객이 주장하는 것인데 물산 장려 운동은 유산계급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무산계급에는 아무 관련이 없으니 유산 계급만의 운동으로 남겨 버리자는 것이다. 이상 두 논자는 나름대로 자유롭게 관찰하여 각자의 주장을 하겠지만, 우리는 두 주장이 이 운동의 진행에 다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어떤 지방에서는 지방관청이 은연중에 압박을 가해 물산 장려 운동의 선전을 금지하는 일도 있다. 우리는 지방관청의 독단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풍문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태도로 일본 제품 배척 운동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실로 기괴한 심리다. 조선 사람이 경제적으로 자각⋅자립하여 혹은 소비를 절약하며 혹은 식산에 힘쓰는 것은 곧 물산 장려 운동의 근본정신이다. 조선인의 생활 복리를 조장하고 도모한다는 관청의 취지와 무엇이 모순되는가. 물론 우리도 인정하지만, 물산 장려 운동의 철저한 실행으로 일본 제품에 다소의 영향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피치 못할 필연적인 대세이다. 조선인의 경제 발전을 위해 피치 못할 일이라면 또한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단순한 이론에 색안경을 끼고 대하는 것은 모두 관청 특유의 편견에 불과하다. 만일 조선 총독부의 관청이 일본 상인의 출장 대리인이라면 모르겠지만, 조선인의 복리를 증진하는 것이 그 정신이라면 차라리 그 대세를 인정하고 도와야 할 일 아닌가. 그 다음 일부 사회주의자의 주창하는 이론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물론 무산계급의 해방을 절규하는 것은 우리도 대찬성이다. 될 수만 있으면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이 그 단계를 뛰어넘어서라도 속히 실현되기를 갈망하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의 소위 필연성은 인정할 수 없다. 현재 우리의 경제 단계를 고려해야 하지 않는가. 우리의 경제조직이 소위 자본주의적 단계에 이르렀는가? 혹은 당신들이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의 본체가 생산력을 부정하는가? 또는 무산계급이 투쟁심만 기르면 조선인 전체가 배부르게 살 것인가? 우리의 관찰에 따르면 당신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소위 마르크스주의는 결코 이와 같이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설혹 마르크스의 주장이 당신들의 이론과 조금도 틀림없다 하더라도 세계는 여전히 민족 대 민족, 국가 대 국가의 대결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물론 유산 계급 대 무산 계급 간의 백병전이 격렬한 것은 우리도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프랑스가 독일의 루르 지방을 점령할 때 프랑스 무산 계급과 독일 무산 계급이 악수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그러면 조선의 무산 계급이 먼저 힘쓸 바는 무엇인가. 즉 계급의 분열 투쟁을 획책하는 것보다는 먼저 조선인의 경제적 실력을 배양하는 것이 당면한 문제가 아닌가. 만일 조선물산 장려 운동이 조선인 자체의 경제력을 증진하는 데 일조한다면 우리는 100가지 난관을 돌파하고라도 이 운동의 실현에 주력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인 전체의 경제력 증진에 유효한 이 운동이 어찌 일부 유산 계급에만 이익이 되고 무산 계급에는 아무 이익이 없다고 하는가. 설혹 논자의 주장과 같이 물산 장려 결과 그 이윤의 대부분이 일부 유산 계급에 의해 농단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조선인의 부력(富力)이 집중되면 소위 혁명 단계의 대세를 촉진하는 데 유력한 요인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소위 경제 단계가 진행되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라는 최후 결론에 이르게 되고, 또 물산 장려 운동의 결과가 자본주의를 향한 일보 진전이라고 한다면 이 또한 필연적인 경로일 뿐이다. 그 대세를 거역하지 못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주장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분명하며, 이것이 사회 진화의 당연한 경로라 할 것이다. 요컨대 우리가 주장하는 이상은 조선인의 경제적 실력을 기르는 것이며, 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조선인 자체의 생산 증진이 가장 급선무임을 확신한다. 동시에 그 방법으로 조선물산 장려 운동이 적절함을 단언하는 바이다.

〈동아일보〉, 1923년 3월 31일

中産階級의 利己的運動

社會主義者가 본 物産獎勵運動

李星泰(寄)

……(前略)……

이 問題는 近日 우리 朝鮮에서 일어난 어느 程度의 大規模의 運動처럼 보이고 게다가 所謂 知識의 中産階級들은 이 運動만이 外來의 侵入者에게 對한 防禦策도 되고 그래서 朝鮮人生活의 唯一한 救濟의 方途라고 든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든지 저 資本階級 中産階級的 運動의 表裏를 檢察하고 批判할 義務와 階級鬪爭의 戰略上의 切實한 必要를 感한다

……(中略)……

맑스는 資本主義의 進化의 度가 成熟하면 成熟할수록 中産階級은 沒落될것을 豫想하고 그래서 이 豫想으로써 新社會現實의 主要條件이 된다고 말하엿다 그러고 그 消滅되는 中産階級은 無産勞働者로 墮落되고  墮落되는 그만치 一方으로는 資本이 集積되고 無産勞働者의 數는 激增되야 맛참내 社會的變革이 일어나서 資本主義의 社會는 崩壞되고 社會主義的 社會가 그에 代하야 到來할 것을 豫言하엿다

……(中略)……

中産階級의 滅亡! 이것은 資本主義進化의 理法이오 歷史的必然이라

……(中略)……

當事者 - 곳中産階級 - 의處地로서는 自己의生命이 瀕死狀態에 臨하는 것을 보며 决코그에 自若할수업는것이다 이래서 저들은 歷史的必然의幕을 멈추어보려고도하고 저들을 養成하고 그래서저들을 沒死케하는 資本主義社會의理法에對하야 無批判한態度로 絶望的最後의努力을試해보려한다

……(中略)……

나는 이러한 意味에서 物産獎勵運動의 中産階級的 演劇을 觀覽하는것이며 그裏面에 숨어잇는 階級的利害關係를 檢察하려는 것이다

……(中略)……

現下 物産獎勵運動의 思想的導火手가된것이누구인가 저들의社會的地位로보아  저들의 階級的意識은아무리 하여도 中産階級을 버서나지아니하엿스며 적드래도中産階級의利益에忠實한代辯人인 知識階級이아닌가 率先하야 物産獎勵의(그것도어느程度)實行的先鋒이된것도中産階級이아닌가 實狀말하면 勞働者에게는 인제새삼스럽게 物産獎勵를 말할必要가업는것이다 그네는발서오랜옛날부터훌륭한物産獎勵階級이다 그네는資本家 中産階級이洋服이나 비단옷을입는대신에 무명과 베옷을입엇고 저들資本家가 우이쓰키나 란데나 正宗을마시는代身에燒酒나막걸니를 먹지안엇는가

……(中略)……

이만하면 物産獎勵運動이 中産階級的運動인것을알수가잇지아니한가

……(中略)……

物産獎勵란무엇인가

……(中略)……

우리의生産機關을 發達케하야 産業을振興식히며 生活의經濟的獨立을目標로하는것이라한다 勿論이點에잇서서는何階級에든지 아무異議가업는것이다 그러나 ‘누구를 爲하야’

……(中略)……

標榜하는지階級的境界線을分明히할必要가잇는것이다 그런대 物産獎勵運動의 思想的背景에는 民族的 或은 愛國的感情을 鼓吹 高調하는 一種의政治的色彩를 帶하고잇는事實이다

……(中略)……

朝鮮의 少數資本家中産階級의 手中으로 一切의 經濟的 政治的의 權利를 集中(○○)하야 그支配權을 掌握하자는 것이다

……(中略)……

實狀 저들資本家 中産階級이 外來의 資本主義的 侵略에 威脅을當하고 搾取되고잇는 經濟的征服關係의 儼然한 事實이 저들로하야금 엇절수업시 民族的이라는 美辭로써 同族안에잇는 搾取 被搾取의 相反하는 兩極端의 階級的意識을 掩蔽해버리고 一面으로는 愛國的이라는意味에서 外貨排斥을 말하는것이며 그裡面에서는 外來의經濟的征服階級을逐出하야 新搾取階級으로서의 自己가 그에代하려는것이다 이리하야 저들은民族的愛國的하는 感傷的美辭로써 눈물을흘리며 저들과 利害가 全然 相反한 勞働階級의 後援을渴求하는 것이다

……(中略)……

우리 勞働階級이 要求하는것은 外來의 征服階級만을 排斥하야 同族안에잇는搾取階級의 支配를 受하려는것이아니라 그도한 勞働階級의 敵인것을意識하고 그의支配지도 全滅케하야 勞動階級(○○○○)의社會를實行하려는 것이다

……(下略)……

(物産獎勵運動을各方面으로考察하기爲하야 이글을揭載함 編輯者)

〈東亞日報〉, 1923年 3月 20日

物産獎勵運動에對한論爭

事實을正觀하라

朝鮮物産獎勵運動이 一起함애朝鮮全道는靡然히響應하야 或은會와組合을組織하는等 或은生産方法에 新案을考出하야 그生産品을 盛히販賣하는等여러가지의方面으로 그主義를 宣傳하며 한그實行方法을 講究中이로다 吾人은 이와갓흔一般의實狀에鑑하고 窃히慶賀치안할수업는바라 더욱더욱그盛旺에向하기를 祝하는바어니와이제一部人士間에서 物産獎勵運動에對한 略干의懷疑와批評을聞할時에 勿論一般社會의高等批判은自在하려니와 그理由의內容을 檢討하야共磨의一資에供코자하는바라物産獎勵運動에對한 反對側意見을綜合하건대 大槪兩個論點이有한것갓도다 一은日本人側이나는官廳의一部分에서物産獎勵運動을 一種日貨排斥의性質로看做하고그不穩한思想인것을攻擊하는것이요又一은所謂社會主義者中의一部論客이 論하는바인데 物産獎勵運動은有産階級의利益을 圖謀하는것이요無産階級에는아무痛痒이업다는닭에 이運動을一部有産階級에만放任하자는 論據에在하도다 以上兩個論者의觀察은自由라 各自의主唱대로一任할바어니와 다만吾人이考慮하는點은以上兩個論法이該運動의 進行에 多少의影響이 밋칠가하는點이로다 現在엇더한地方에서는 地方官廳이隱然壓迫을加하야 主義의宣傳을禁止하는 事實도잇는것이라 우리는地方官廳의獨斷을 攻擊치안할수업는바어니와 即히風聲鶴唳의態度로日貨排斥의口實을造出하는것은 實로奇怪한心理라아니할수업도다 朝鮮사람이經濟的으로自覺自立하야 或은消費를節約하며 或은殖産에힘쓰는것이곳物産獎勵運動의 根本精神일진대 朝鮮人의生活福利를 助長圖謀한다는官廳의趣旨와 무엇이矛盾될바가잇는가 勿論吾人이認定하기는 物産獎勵運動의徹底한實行으로 日本物貨에多少의影響이 잇슬것을아는바로다 그러나이것은避치못할必然의大勢라 朝鮮사람의經濟發展을爲하야서는 이것이避치못할點이라하면 이亦犧牲에供치안할수업는바로다 이와갓흔單純한理論에一種色眼鏡을加하는것은 都히官廳固有의偏見에不過하도다 萬一朝鮮總督府의官廳이 日本商人의出張代理人이라면 모르거니와朝鮮사람의 福利를增進하는대그精神이잇다면寧히그大勢를助長할바가안인가그다음一部社會主義者의主唱하는바 理論에對하야서는如何한가 勿論無産階級의解放을絶呌함은 吾人도大賛成이라 될수만잇스면 맑스主義의革命階段이 그階段을여넘어서라도速히實現되기를 渴望하는바로다 그러나우리는 맑스의所謂必然을否定치못할바임으로 우리現在의經濟階段을考察할바가아닌가 우리의 經濟組織이所謂資本主義的階段에 至하얏는가否인가 或은諸君의主唱하는바 맑스主義의本體가生産力을否定하는가 또는無産階級이鬪爭心理만養成하면 朝鮮人全體는 배부르게살것인가 吾人의觀察에依하면 諸君의金科玉條視하는 所謂맑스主義가决코이와가치 單純치안할것이라設或맑스의主唱이 諸君의理論과一毫不差의 關係가잇다하야도 世界는依然히民族對民族國家對國家의 對對問題가第一의事實인것을 吾人은記憶하는바로다 勿論有産階級對無産階級間의 白兵戰이激烈한것은吾人도 認定하는바事實이어니와佛國의 루얼占領에 佛國의無産階級과獨逸의無産階級이 握手하얏다함을 聞치못하얏도다그러면 朝鮮의無産階級이 먼저힘슬바는무엇인가 即階級의分裂鬪爭을策하는것보담은 먼저朝鮮사람의 經濟的實力을培養하는것이 當面의問題가아닌가 萬一朝鮮物産獎勵運動이朝鮮人自體의 經濟力을增殖하는대一助가된다면 우리는百難을突破하고라도 이運動의實現에注力치안할수업는바로다 그러고朝鮮人全體의經濟力增殖에有効한 이運動이엇지 一部有産階級에만利益이되고 一般無産階級에는 아무利益이업다하는가 設或論者의主唱과가치物産獎勵의結果 그利潤의大部分이 一部有産階級에壟斷된다假定하드래도 朝鮮人의富力이얼만큼集中되면 所謂革命階段의大勢를促進하는데 有力한素因이되지안할가 그러고所謂經濟階段의必然的進行이 資本主義의最後結論이라하고 物産獎勵運動의結果가資本主義化의 一步라하면 이亦必然의經路라그大勢를 拒逆치못할것은맑스의主張을待치안코라도 이것이社會進化의當然한運路라할것이라 要컨대吾人의主張하는바는 朝鮮人의經濟的實力을圖하는데理想이잇스며 이理想의實現에는 朝鮮人自體의生産增殖이 第一急務인것을自信하는同時에 그必要한方法으로朝鮮物産獎勵運動의 適切한것을斷言하는바로다

〈東亞日報〉, 1923年 3月 31日

이들 사료는 1920년대 전국적으로 벌어진 조선인 물산의 구매와 소비를 장려했던 물산 장려 운동에 관한 논쟁을 다룬 〈동아일보〉 기사이다. 그 중 첫 번째는 사회주의자의 입장에서 물산 장려 운동의 한계를 지적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투고자인 이성태(李星泰, 1901~?)는 제주도 출신으로 휘문 고등보통학교, 경성 청년 학관에서 수학한 경력이 있으며, 1920년 10월 상하이로 가서 〈독립신문〉 기자로 일하다 귀국해 『신생활』 기자로 활동하는 한편, 민중사(民衆社)를 조직하고 조선 공산당 설립에 관여하면서 코민테른에 직접 찾아가 결의를 받아 입국하는 등 사회주의 이데올로그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이성태는 이 글에서 물산 장려 운동을 ‘중산 계급’이 주도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바로 이 중산 계급이 계급 구조 속에서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에서 부침할 수밖에 없는 기생적 계급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물산 장려 운동이란 민족주의라는 내수사 속에서 중산계급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국내 노동 계급을 이용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나아가 중산 계급이 붕괴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역사 발전의 필연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철저하게 사적 유물론에 기반해 전개되는 것으로, 당시 조선 공산당 결성 그룹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자 그룹이 민족주의자 그룹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을 보여 준다. 이는 이후 1930년대 초⋅중반 신간회 해체론에서도 반복해 나타나며, 사회주의자 그룹과 민족주의자 그룹의 제휴와 협력이 지극히 어려웠음을 보여 준다.

한편 본 사료 중 두 번째는 약 10일 뒤 같은 〈동아일보〉에 게재된 기사이다. 앞의 이성태 기사가 외부 기고였던 것과 달리 이 기사는 〈동아일보〉 내부 필진이 작성한 기사였다. 당시 〈동아일보〉는 물산 장려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주체였으므로 외부 기고 형식의 비판에 대해 사측 차원에서 반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구체적으로 (1) 물산 장려 운동을 일본 제품 배척 운동으로 보는 조선 총독부 입장, (2) 물산 장려 운동을 계급주의적 관점에서 비판한 사회주의자의 입장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그 중 (1)에 대해서는 물산 장려 운동에 대한 협소한 의식을 ‘관청 특유의 색안경’이라고 치부하면서 “조선 총독부가 일본 상인의 출장 대리인이라면 모르겠지만, 조선인의 복리를 증진하는 것이 그 정신이라면 대세를 따라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조선의 식산을 발전시켜야 하며,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본 상인들이 다소 피해를 입는다 해도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다. 일본의 식민지 개발론을 역이용한 입장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실제 기사의 대부분은 (2)에 할애하고 있다. 이 기사의 부제인 ‘사실을 제대로 보라’는 바로 사회주의자들의 추상적 현실 인식에 대한 비판이다. 이 글의 필자는 마르크스주의 혁명 단계가 속히 이뤄질 것을 희망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조선은 현재 자본주의조차 제대로 이뤄 내지 못한 상황이므로 마르크스주의 혁명을 논할 단계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만약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물산 장려 운동이 유산계급만 부유하게 만들어 준다 해도 이는 역사적으로 혁명을 향한 일보 전진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실제로 세계를 움직이는 실체는 민족 대 민족, 국가 대 국가 간의 대립이며, 프랑스가 독일의 루르 지방을 점령할 때 프랑스와 독일의 무산계급이 서로 연대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음을 그 예로 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조선 자본주의의 발전은 ‘사회 진화의 당연한 경로’이며 가장 중요한 급선무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는 물산 장려 운동에 관해 소위 민족주의자들이 자유주의 사상에 입각해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사료로서 주목받는다.

1910년 국권 상실 후 조선은 일본 경제에 종속되었으며, 개화기 때부터 조선 시장에 대거 진출했던 일본 자본과 상품은 단시간에 한국의 경제권을 장악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의 산업을 발전시켜 자립을 도모하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3⋅1 운동 직후이며, 1920년대 초부터 전국적인 규모로 전개되었다. 1920년 봄 평양 기독교계의 민족 지도자들은 민족 기업 건설과 육성을 촉구하는 조직체 결성을 논의하였다. 그 결과 이 해 8월 평양야소교서원에서 조선 물산 장려회가 발족되었다.

창립총회에는 평양의 유지 70여 명과 교육자⋅종교인⋅실업인 및 청년들이 참석하였다. 평양 조선 물산 장려회는 당면 실천 과제로 경제계 진흥, 사회의 발전, 실업자 구제책, 국산품 애용, 근검 풍토, 실천성 양성을 내세웠으며, 몇 차례 강연회를 개최하면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평양에서 조선 물산 장려를 위한 조직체가 결성되자, 서울의 조선청년회연합회에서도 이 운동에 호응해 1922년 말부터 적극적인 활동을 전개하였다. 일간지를 통해 전국으로부터 조선 물산 장려 표어를 모집했으며, 국산품 애용을 장려하는 지방 순회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1923년 1월 서울 낙원동 협성학교(協成學校) 강당에서 조선 물산 장려회의 전국적 조직체가 탄생하였다. 창립총회에서는 이사 20명을 선출했는데, 독립운동가⋅교육자⋅종교인⋅기업인 등 각계각층 민족 지도자가 망라되었다. 이 회의에서 물산 장려회의 조직과 활동 방향이 정해졌다. 활동 지침으로는, 첫째 조선인의 산업적 지능 계발을 단련해 실업에 입각하게 하는 산업 장려, 둘째 조선인의 산품을 애용, 무육(撫育)해 조선인의 산업을 융성하게 하는 애용 장려, 셋째 조선인의 생활 및 기타에 관해 경제적으로 건설 또는 개선하기 위해 일반 사항을 조사⋅강구(講究)하고 그 실현을 지도⋅관철하는 경제적 지도 등의 목표를 정하였다.

창립 후 계몽 활동으로 1924년 2월 3일 서울 천도교당에서 대(對)민중 강연회를 개최했으며, 청중 2000여 명이 참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강연회에 이어 전국적 계몽 활동을 계획했고 또 설날을 기해 전국적으로 조선 8도의 특산 포(布)로 기를 만들어 앞세우고 가두 행렬을 실시하기로 했으나 이 가두 행렬은 조선 총독부의 탄압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전국을 순회하는 계몽 강연도 일제의 방해로 강연 도중 연사의 발언이 중지되거나 체포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물산 장려 운동은 대체로 활발하게 전국으로 확산되었으며, 평양⋅대구⋅부산⋅광주⋅함흥 등 대도시뿐 아니라 지방 소읍에까지도 지방 분회를 설립할 정도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운동은 1930년대 들어 일본이 만주 침략을 감행하고 국내외 정책을 강경 노선으로 재편하면서 큰 위기에 봉착하였다. 조선 총독부물산 장려 운동을 일종의 일화(日貨) 배척 운동이자 항일 민족 독립운동으로 간주하여 탄압하였다. 또한 조선인이 만든 상품만 소비하도록 권고한 결과 조선 상품의 가격이 크게 올랐으나 대승적 차원에서 조선 상품의 가격 인하는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결과적으로 조선인 기업가 및 자본가들만 이익을 얻는 등 운동 자체적인 한계도 지적되었다. 이로 인해 사회주의 계열 및 소비자 조합을 중심으로 ‘물산 장려 운동은 자본가들만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요컨대 물산 장려 운동은 일본의 경제적인 침략에 대응하여 민족 자본을 중심으로 자립적 경제권을 이뤄 내자는 부르주아적 운동으로서 유례없는 성과를 낳았으나, 당시 식민지 정세의 악화 및 운동 노선 자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1930년대 물산장려운동과 민족⋅자본주의⋅경제사상」,『동방학지』115,방기중,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2002.
「일제하 물산장려운동의 이념과 그 전개」,,윤해동,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1991.
「민족경제와 물산장려」,『논문집』16,이윤희,경희대학교,1998.
「일제하 물산장려운동의 조직과 기능」,『경희사학』16,이윤희,경희대학교 사학회,1991.
「물산장려논쟁을 통해서 본 민족주의세력의 이념적 편차」,『역사와현실』47,전상숙,한국역사연구회,2003.
저서
『지배와 저항 그리고 협력 : 식민지 조선에서의 일본제국주의와 조선인의 정치운동』, 김동명, 경인문화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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