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정치근대일제의 식민 정책과 민족의 수난

황국 신민 서사

황국 신민 서사(첫째, 아동용)

1. 우리는 대일본제국의 신민(臣民)입니다.

2. 우리는 마음을 합하여 천황 폐하에게 충의(忠義)를 다합니다.

3. 우리는 괴로움을 참고 몸과 마음을 굳세게 하여[忍苦鍛鍊] 훌륭하고 강한 국민이 되겠습니다.

황국 신민 서사(둘째, 중등학교 이상 일반인용)

1. 우리는 황국 신민이다. 충성으로써 군국(君國)에 보답한다.

2. 우리들 황국 신민은 서로 믿고 아끼고 협력하여[信愛協力] 단결을 공고히 한다.

3. 우리들 황국 신민은 괴로움을 참고 몸과 마음을 굳세게 하는 힘[忍苦鍛鍊力]을 길러 황도(皇道)를 선양(宣揚)한다.

조선 총독부, 『시정30년사』, 1940, 790쪽

皇國臣民ノ誓詞(其ノ一)

一, 私共ハ 大日本帝國ノ臣民デアリマス

二, 私共ハ 心ヲ合セテ 天皇陛下ニ 忠義ヲ盡シマス

三, 私共ハ 忍苦鍛鍊シテ 立派ナ强イ國民トナリマス

皇國臣民ノ誓詞(其ノ二)

一, 我等ハ 皇國臣民ナリ 忠誠以テ君國ニ報ゼン

二, 我等 皇國臣民ハ 互ニ信愛協力シ 以テ團結ヲ固クセン

三, 我等 皇國臣民ハ 忍苦鍛鍊力ヲ養ヒ以テ皇道ヲ宣揚セン

朝鮮總督府, 『施政三十年史』, 1940, 790쪽

이 사료는 1936년 부임한 미나미 지로(南次郞) 조선 총독이 1937년 중일 전쟁 이후 전시 체제하의 조선인을 일본의 ‘황국 신민화’하기 위해 조선인에게 외우게 한 「황국 신민 서사」이다.

일본은 조선인에 대한 황국 신민화를 위해 ‘국체명징(國體明徵)’, ‘선만일여(鮮滿一如)’, ‘교학진작(敎學振作)’, ‘농공병진(農工倂進)’, ‘서정쇄신(庶政刷新)’이라는 이른바 5대 정강(政綱)을 내세웠다. 미나미 총독은 이와 함께 「조선 교육 3강령」을 제시하였다. 「조선 교육 3강령」이란 ‘국체명징’, ‘‘내선일체(內鮮一體)’, ‘인고단련(忍苦鍛鍊)’이었다.

「황국 신민 서사」는 위의 인용 사료와 같이 2가지 형태로 이뤄졌는데, 하나는 초등학교 아동을 대상으로 한 것, 다른 하나는 중등학교 이상 생도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 내용은 ‘황국 신민’을 연성하는 본뜻, 즉 교육의 3대 강령을 일상생활에서 실천시키고자 하였다. 간결한 형태의 서원을 반복해서 낭송하여 뇌리에 각인시킴으로써 마음 속으로부터 충성심을 이끌어내고자 한 것이다. 이는 학교 교육에 국한하지 않고 넓게는 일반 국민의 일상생활을 규제하는 근본 신조로 강요하여 일반인의 회동 등에서도 낭송하게 하였다. 나아가 1939년 11월 조선교육회 주최로 학생, 아동, 관계 유지들로부터 갹출금을 모아 서울 남산의 조선 신궁에 ‘황국신민서사지주(皇國臣民誓詞之柱)’를 세워 일본 국왕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게 하였다. 일제는 「황국 신민 서사」와 함께 한국인의 신체도에 복종을 각인시키기 위해 ‘황국 신민 체조’(1937. 10. 8)를 만들어서 강요하기도 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중일전쟁 이후 전시체제와 수탈』(한국독립운동의 역사 7), 김승태,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8.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지배』, 박경식, 청아출판사, 1986.
편저
『한국사』50(전시체제와 민족운동), 국사편찬위원회, 국사편찬위원회, 2001.
조선 총독부, 『시정30년사』, 1940, 7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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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국 신민 서사를 암송하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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