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일(渡日) 노동자의 격증
농한기도 아닌 이때에 도일(渡日) 노동자가 매일 7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는 가뭄의 영향이 얼마나 심각한지 말해 주는 것이다. 작년과 올해 계속된 무참한 가뭄은 삼남 지방의 비옥한 평야를 거의 불모지로 만들었다. 농민들이 땀으로 가꾼 전답을 버리고 직업을 찾아 일본에 건너가는 이가 이처럼 격증하고 있다. 그러나 700여 명 외에도 부산 부두에서 도항증(渡航證)을 얻지 못해 저지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하며, 우리는 새삼스럽게 그들의 암담하고 비참한 앞날을 예상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일본의 노동시장에도 인원이 남아 일본인 중에서도 실업자가 격증하는 상황이므로, 숙련되지 않은 조선인 노동자가 아무리 직업을 얻기 위해 건너가더라도 취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무제한으로 도항(渡航)하는 것은 저지할 수 있겠지만 저지하기만 하면 그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말할 필요도 없이 도일이 막힌 그들은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져 필경 떠돌며 구걸하는 인생이 되고 말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 당국은 이들에 대해 항상 있는 현상으로 간주하고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다. 긴축정책을 표방하는 하마구치(濱口) 내각이 조선 총독부
의 금년도 실행 예산을 삭감할 때 시대착오적인 귀족 구제비(貴族救濟費)는 250만 원이라는 거액은 용인하면서 마땅히 있어야 할 실업자들의 구제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으니 참 기이한 일이다. 이후 긴축정책 결과 노동계뿐 아니라 사업계 전반을 통해 얼마 동안 침체 상태가 계속되는 만큼 실업자도 따라 증가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어떠한 구제책도 세우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일이라 하겠다. 더욱이 우리 조선에서는 매년 계속되는 천재(天災)로 농촌 실업자가 격증하는 데다 긴축정책의 영향 때문에 더더욱 실업이 심각해질 것이다. 이에 대한 구제책이 있어야 할 줄로 믿는다.
'조선 총독부' 관련자료
그러나 긴축 정책 아래 이미 금년도 실행 예산도 많이 삭감된 오늘 실업자를 위한 토목이나 기타 사업을 일으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실업자를 그대로 방임한다면 그 결과는 묻지 않아도 알 것이다. 오늘까지의 통계에 따르면 재일 조선인이 40여만 명이라고 하는데 도일 노동자는 매년 평균 6,600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올해와 같은 가뭄이 심한 해는 얼마나 많이 격증될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보통 실업자들과 달리 불가항력적인 천재(天災) 때문이니 아무리 긴축을 강조하더라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구제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대정(大正) 13년(1924)의 가뭄과 그 다음 해의 가뭄 때에도 일찍 구제비로 187만 원의 임시예산을 편성했다. 이번에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가뭄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 정부 당국은 급하지 않은 곳에는 급하고, 급해야 할 곳에는 도리어 급하지 않은 까닭이 무엇인가. 조선 박람회비는 100만 원씩 하면서 이와 같은 가뭄으로 말미암아 생긴 실업자들에 대해서만 어떠한 대책도 강구하지 않는 것은 심하게 본말을 전도한 것이다.
『조선일보』, 1929년 8월 11일, 「도일 노동자의 격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