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경제삼국 시대삼국의 수취제도와 역역

고구려의 수취 제도

인세(人稅)는 포(布) 5필과 곡(穀) 5석(石)이다. 유인(遊人)은 3년마다 한번 세를 내는데, 10인이 함께 세포(細布) 1필을 낸다. 조(租)는 상등호(上等戶)가 1석이고 차등호(次等戶)가 7두(斗)이며 하등호(下等戶)가 5두이다.

『수서』권81, 「열전」46 동이열전 고려전

人稅布五匹⋅穀五石. 遊人則三年一稅, 十人共細布一匹. 租戶一石, 次七斗, 下五斗.

『隋書』卷81, 「列傳」46 東夷列傳 高麗傳

이 사료는 6세기 중반~7세기 초 고구려의 조세에 대해 알려 주는 내용이다. 당시 고구려의 조세제도는 수취 대상에서 크게 두 종류로 구분되는 점이 특징적이다. 인세(人稅)라고 하여 일반민을 대상으로 한 수취 규정이 있고, 또한 유인(遊人)이라고 하여 그와 구분되는 존재가 등장한다. 유인은 사전적으로 ‘놀고먹는 자’ 혹은 ‘여행객’의 의미를 가진다. 이들은 3년에 한번 세를 낸다는 점이나 10인이 함께 세포를 부담한다는 점에서 일반 백성보다 조세의 부담이 훨씬 적었다. 그래서 이들을 빈민으로 보는 견해, 말갈을 비롯한 유목민으로 보는 견해, 유녀(遊女)와 유사한 의미에서 광대 집단으로 보는 견해,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난민(難民)으로 보는 견해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고구려 조세제도의 또 다른 특징은 3등급으로 호(戶)를 구분해 조(租)를 수취하였다는 점이다[戶租]. 이는 가호(家戶)의 토지 소유 면적에 따른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3등호제 실시는 3~4세기 고구려 농업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사회 분화가 발생한 결과였다. 고구려에서는 사람마다 포와 곡이 부과되는 인두세와 함께 토지를 매개로 한 조세 수취가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이 사료에 보이는 호조(戶租)의 차액은 적은 편이어서 토지 소유의 많고 적음을 충분히 감안하지는 못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삼국 및 통일신라의 세제 연구』, 김기흥, 역사비평사, 1991.
『조선사회경제사』, 백남운 저⋅하일식 역, 이론과 실천, 1994.
『한국 고대의 생산과 교역』, 이현혜, 일조각, 1998.
『한국고대사회경제사』, 전덕재, 태학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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