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廣]徳)은 분황[사]의 서쪽 마을에 숨어 살면서 짚신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으며 처자를 데리고 살았다.
『삼국유사
'삼국유사' 관련자료
강수(强首, ?~692)가 일찍이 부곡(釜谷)의 대장장이 집 딸과 정을 통하였는데[野合],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매우 두터웠다. 나이 20세가 되자 부모가 중매를 통해 용모와 덕행이 있는 마을 여자와 장차 결혼시키려 하였다. 강수가 사양하며 다시 장가들 수 없다고 하였다. 아버지가 노하여 말하기를, “너는 이름이 나 있어서 나라 사람이 알지 못하는 이가 없는데, 미천한 자를 배필로 삼는 것은 또한 수치가 아니겠느냐?”라고 하였다.
『삼국사기
'삼국사기' 관련자료
신라 제35대 경덕 대왕(景德大王, 재위 742~765)이 천보(天寶) 13년(754) 갑오(甲午)에 황룡사(皇龍寺)
종을 주조하였다. 길이는 1장 3촌 이요, 두께는 9촌, 무게는 49만 7,581근이었다. 시주는 효정이왕(孝貞伊王) 삼모부인(三毛夫人)이요, 장인(匠人)은 이상택(里上宅) 하전(下典)이었다. ……(중략)…… 또 이듬해 을미(乙未)에 분황[사]의 약사 동상(藥師銅像)을 주조하였는데, 무게가 30만 6,700근이고 장인은 본피부(本彼部) 강고(强古) 내말(乃末)이었다.
'황룡사(皇龍寺)' 관련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