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貞元) 14년 무인(戊寅, 798) 4월 13일에 청제(菁堤)를 수리하고 그를 기록한다. 못의 둑이 상하였다고 하므로 소내사(所內使)에게 살펴보게 하셨다. 구장(玖長)
파손된 부분의 길이로 추정
은 35보(步), 안립홍지심(岸立弘至深)
안(岸)에서 홍(弘)에 이르기까지 깊이, 곧 수리된 부분의 높이로 추정
은 6보 3척(尺), 상배굴리(上排掘里)
수문의 기능을 갖는 목통(木桶)으로 추정
는 12보였다. 이와 같은 것을 2월 12일 시작하여 4월 13일 사이에 수리를 마쳤다. 모두 합하여 부척(斧尺)이 136, 법공부(法功夫)가 1만 4140명이며, 이 가운데 전칠각조역(典漆角助役)은 절화(切火)⋅압탁(押★{(口+彐)/木})
압량(押梁)이라는 소국으로서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으로 추정되며 신라에게 복속됨
두 군(郡)에서 각각 □인(□人)을 일으켰다. 지휘한 소내사는 상간(上干) 연(年) 내말(乃末), 사수(史須) 대사(大舍), 가대수(加大守) 수량(須梁) 옥순(玉純) 내말이다.「영천 청제비(정원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