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경제통일 신라와 발해통일 신라의 활발한 국제 교류

민간 무역업자의 활약

우금리(禺金里)의 가난한 여자 보개(寶開)에게 장춘(長春)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바다의 장사치를 따라다녔는데,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가 민장사(敏藏寺)【이 절은 민장(敏藏) 각간(角干)이 (자기) 집을 내놓아 절로 삼은 것이다】 관음보살(觀音菩薩) 앞에 나아가 7일 동안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드렸더니, 장춘이 갑자기 돌아왔다. 그 까닭을 물으니 (장춘이) 말하기를, “바다 가운데서 회오리바람을 만나 배가 부서져 동료들은 모두 죽음을 면하지 못했습니다만, 저는 널판 쪽을 타고 오(吳)나라 해변에 가서 닿았습니다. 오나라 사람들이 저를 데려다가 들에서 농사일을 짓게 했습니다. (하루는) 고향에서 온 듯한 이상한 스님이 은근히 위로하고 저를 데리고 동행하는데, 앞에 깊은 개천이 있어서 스님은 저를 겨드랑에 끼고 훌쩍 뛰었습니다. 정신이 희미한 가운데 동네 사람들의 말소리와 우는 소리가 들리므로 살펴보니 벌써 여기 와 있었습니다. 초저녁 때 오나라를 떠났는데 여기에 이른 것이 겨우 술시초(戌時初)였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때는) 천보(天寶) 4년 을유(乙酉, 745) 4월 8일이었다. 경덕왕(景德王)이 이 소식을 듣고 절에 밭을 주고, 또한 재물과 폐백을 바쳤다.

삼국유사』권3, 「탑상」4, 민장사

禺金里貧女寳開, 有子名長春. 從海賈而征, 久無音耗. 其母就敏藏寺【寺乃敏藏角干捨家爲寺】, 觀音前克祈七日, 而長春忽至. 問其由緖, 曰, 海中風飄舶壞, 同侣皆不免, 予乗隻板歸泊吳涯. 吳人收之, 俾耕于野. 有異僧如郷里來, 弔慰勤勤, 率我同行, 前有深渠, 僧掖我跳之. 昬昬間如聞郷音與哭泣之聲, 見之乃已屆此矣. 日晡時離吳, 至此纔戌初. 即天寳四年乙酉四月八日也. 景徳王聞之, 施田於寺, 又納財幤焉.

『三國遺事』卷3, 「塔像」4, 敏藏寺

이 사료는 민장사(敏藏寺)라는 절에서 모시던 관음보살(觀音菩薩)의 영험함을 보여 주는 기록이나, 주인공인 장춘(長春)의 활동을 통해 신라에서왕성했던 민간 무역업자의 활약을 엿볼 수 있다.

신라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 대 왕경(王京)의 우금리(禺金里)에서 살던 장춘은 해상(海商)을 따라 장사를 다녔는데, 한 번은 바다로 나가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 이에 그 어머니 보개(寶開)가 민장사의 관음보살 앞에서 7일 동안 기도를 하였더니 장춘이 갑자기 돌아왔다. 장춘의 말에 따르면,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부서지고 함께 한 일행도 모두 죽었지만, 장춘은 살아서 중국 오(吳)나라 해변에 닿게 되었다. 거기서 농사일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고향에서 온 듯한 이상한 스님을 만나서 동행하게 되었다. 도중에 깊은 개천을 만나자 스님이 장춘을 겨드랑이에 끼고 훌쩍 뛰어 넘었는데, 정신이 희미한 가운데 동네 사람들의 말소리와 우는 소리가 들려서 살펴보니 신라 땅에 와 있었다고 한다. 초저녁에 오나라를 떠났는데, 술시(戌時) 초에 신라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장춘이 민장사 관음보살의 보살핌으로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을 통하여 관음보살의 영험함을 강조하고 있다. 관음보살은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또는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로도 불린다. ‘관음’과 ‘관세음’은 ‘세상의 소리를 듣거나 살핀다’라는 뜻이다. 관음보살은 중생의 소리, 마음속 괴로움의 소리를 잘 듣고 살핀다. 또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어디에나 나타나므로 자유자재하다라는 뜻의 관자재보살로 불리기도 한다.

신라 시대에는 조선술과 항해술이 발달하여 많은 사람이 해외로 오가면 장사를 하였다. 이 기록에 보이는 장춘의 이야기는 통일신라 시대 많은 민간인이 해외로 진출하여 장사(무역)에 종사하였음을 알려 주는 사례이다. 이들 신라의 해상(海商)들은 장춘처럼 신라에서 남해 바다를 거쳐 중국과 해외로 오갔다. 그들은 뛰어난 조선술과 항해술을 바탕으로 해상 교류를 하여, 당시 일본 사신이나 승려들이 중국으로 가고자 할 때에도 그들의 도움을 받을 정도였다. 이들은 신라의 상업 활동과 국제적인 교역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태풍과 파도 등에 의한 조난과 익사라는 위험이 항상 존재하였다. 그래서 항해의 안전을 바라는 마음에서 특히 불교의 관음 신앙을 신봉하였다. 장춘의 이야기처럼 관음보살은 현실 세계에서 인간의 바람을 즉각적으로 들어주는 존재였다. 관음보살의 이러한 현실적인 성격 때문에 신라 사회에서 관음 신앙은 신분에 관계없이 고루 수용될 수 있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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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한국 고대무역사 연구』, 윤재운, 경인문화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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