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경제통일 신라와 발해통일 신라의 활발한 국제 교류

『입당구법순례행기』 에 기록된 장보고

[개성(開成) 4년(839) 4월] 20일 이른 아침에 신라인이 작은 배를 타고 왔다. 문득 듣건대, “장보고(張寶高)가 신라 왕자와 공모하여 신라국을 징벌하고 곧 그 왕자를 신라국의 왕자로 삼았다.”라고 하였다.

『입당구법순례행기』권2, 839년 4월 20일

[개성 4년(839) 6월] 7일 정오경에 북서풍이 불기에 돛을 올리고 나아갔다. 오후 2시 무렵에 적산(赤山)의 동쪽 해변에 배를 대니 북서풍이 몹시 분다. 적산은 순전히 바위로 되어 있으며 매우 높은데, 곧 문등현(文登縣) 청녕향(淸寧鄕) 적산촌(赤山村)이다. 산 속에 절이 있어 그 이름은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인데, 이는 장보고가 처음 세운 것이다. 오랫동안 장전(莊田)을 갖고 있어 양식을 충당할 수 있었다. 그 장전에서는 1년에 500석의 쌀을 거두어들인다. (이 절에서는) 겨울과 여름에 불경을 강설하는데, 겨울에는 『법화경(法華經)』을 암송하고 여름에는 『금광명경(金光明經)』 8권을 강의하며 그것을 강설한 지는 꽤 여러 해가 되었다. 남⋅북쪽에는 바위 봉우리가 솟아 있고, 물은 정원을 관통하여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동쪽으로는 바다가 널리 열려 있고, 남⋅서⋅북쪽으로는 산봉우리가 벽처럼 이어져 있는데, 다만 남서쪽으로 비탈이 있다. 지금은 신라 통사(通事)인 압아(押衙) 장영(張泳) 및 임대사(林大使)⋅왕훈(王訓) 등이 전적으로 맡아서 관리하고 있다.

『입당구법순례행기』권2, 839년 6월 7일

[開成四年四月] 廿日早朝, 新羅人乘小舡來, 便聞 1)寶亮2)与新羅王子同心, 罸淂新羅國, 便令其王子作新羅國王子既了.

『入唐求法巡禮行記』卷2, 839年 4月 20日

[開成四年六月] 七日午時, 乹風吹, 举帆進行. 未申之際, 到赤山東邊泊舩, 乹風大切. 其赤山純是巖石, 高秀䖏. 即文登縣清寕3)郷赤山村. 山裏有寺, 名赤山法花院, 本張寶高初所建也. 長有㽵田, 以宛粥飯. 其㽵田一年淂五百石米. 冬夏講說, 冬講法花經, 夏講八卷金光明經, 長年講之. 南北有巖岑, 水通院庭, 従西而東流. 東方望海遠開, 南西北方連峯作壁, 但坤隅斜下耳. 當今新羅通事, 押衙張詠及林大使⋅王訓㝳專勾當.

『入唐求法巡禮行記』卷2, 839年 6月 7日

1)『번천문집』, 『삼국사기』에 의하면 은 張의 오기이다.
2)『번천문집』, 『삼국사기』에 의하면 亮은 高의 오기이다.
3)淨은 불필요한 연문이다.

이 사료는 일본 고승 엔닌[圓仁, 794~864]이 838~847년간 기록한 일기 형태의 여행기인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 가운데 신라의 대표적 해상 세력인 청해진(淸海鎭)의 장보고(張保皐, ?~846)와 관련한 내용이다.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과 중국 현장(玄奘)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와 함께 세계 3대 여행기로 손꼽힌다. 여기에는 9세기 중엽 당나라의 정치⋅경제⋅민속⋅종교⋅법제⋅지리 등 사회 전반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으며, 신라와 발해 및 일본에 관해서도 정사(正史)에 나오지 않는 귀중한 자료를 곳곳에 남기고 있다.

특히 신라와 관련한 기록은 2권과 4권에 있다. 보다 주목할 것은 2권인데, 여기에는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에 머물다가 오대산을 여행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특히 그는 신라방(新羅坊)에 많은 신세를 진 듯 “신라인 해상왕 장보고의 통치 아래 있던 중국 내 신라방이 자신에게 베풀어진 배려가 아니었으면 돌아가기 힘들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이 사료는 당시 신라⋅당나라의 사회상 및 신라방의 상황, 그리고 장보고 등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이용되고 있다. 신라방과 같은 산둥반도 일원에서의 신라인의 활동은 결국 신라의 항로 확보와 발달된 선박⋅항해술 덕분에 가능하였다. 특히 장보고는 신라의 해상 활동을 대표하는 인물로 청해진을 거점으로 해상 무역을 전개하였다. 그는 남서해안에 출몰하던 해적을 소탕하고 중국 내에는 적산포를 중심으로 초주(楚州)⋅연수(蓮水)⋅양주(揚州) 등지에 있던 신라 무역상을 하나의 교역망으로 편제하여 자신의 영향권에 두었다. 그리하여 신라⋅당나라⋅일본을 연결하는 국제무역을 독점하였던 것이다. 장보고의 국제적 위상 때문에 엔닌은 글 속에서 “평소에 받들어 모시지 못했으나, 오랫동안 고결한 풍모를 들었습니다. 엎드려 우러러 흠모함이 더해 갑니다.”라는 편지를 남겨 장보고에 대한 존경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입당구법순례행기』는 일본 승려의 구법 활동에 대한 기록이지만, 전 4권에서 등장하는 인물의 절반 가까이가 신라 사람이다. 또한 적산법화원의 강경(講經) 의식과 일일강(一日講) 의식, 송경(誦經) 의식 등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강경 법회의 수행 방법을 전하는 유일한 기록으로, 우리 불교사 연구에 있어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또한 당나라⋅신라⋅일본⋅발해의 종교(불교⋅도교), 정치, 외교, 법제, 민속, 궁중 비사, 천문, 지리, 언어 등에 관한 1차 사료로, 사실만을 나열한 보고서가 아니라 당시의 인정과 습속, 가치관, 세계관을 보여 주는 기록이다. 따라서 『입당구법순례행기』는 불교사 연구뿐 아니라 당시 동북아시아의 정치와 교통 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재당 신라인사회의 형성과 발전」,『한국사연구』140,고경석,한국사연구회,2008.
「청해진대사 장보고에 관한 연구-신라 왕실과의 관계를 중심으로-」,『진단학보』92,서윤희,진단학회,2001.
「장보고의 역사업적과 중국에서의 영향」,『신라사학보』13,유봉명,신라사학회,2008.
「엔닌의 입당구법과 재당신라인사회의 정보력」,『동국사학』46,이유진,동국사학회,2009.
「『도리기』「등주해행도」의 검토와 장보고 교관선의 항로」,『사총』49,최근식,고대사학회,1999.
저서
『재당 신라인사회 연구』, 권덕영, 일조각, 2005.
『9세기 후반 신라인의 해상활동』, 김문경, 해상왕장보고기념사업회, 2006.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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