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경제고려 시대농업 기술의 발달

농업 장려 정책

(태조 원년) 가을 7월에 조서를 내려, “태봉의 임금이 백성을 괴롭히고 제 욕심을 채워서 오직 거둬들이기만 하고 예전 제도를 따르지 않아 토지 1경(頃)에 조세를 6석이나 받으며, 역(驛)에 소속된 호(戶)에 실[絲]을 3속(束)이나 부과하였다. 마침내 백성들이 농사를 걷어치우고 길쌈을 그만두게 만들어 떠돌아다니고 도망치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니 앞으로는 조세의 부과는 마땅히 천하에 공통된 법을 써서 항상 사용하게 하라” 하였다.

『고려사절요』권1, 태조신성대왕 무인 원년 추7월

우왕 원년(1376) 2월 고을 수령의 성적을 매기는 법을 다음과 같이 명령하였다. “전야(田野)의 개간, 호구의 증가, 부역의 공평함, 소송 절차의 간명함, 도적이 없어진 것 등 다섯 가지로써 성적의 우열을 가리도록 한다. 자리에서 물러날 때는 반드시 신임 관리가 부임해 오기를 기다려서 업무를 인계한 다음 그곳을 떠나 임금을 알현하도록 하라.”

『고려사』권75, 「지」29 [선거3] 전주 선용수령

광종 24년(973) 12월에 왕이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진전(陳田)을 일구어 경작한 사람은 그 토지가 사전(私田)일 때는 첫해 수확을 경작자에게 모두 주고 2년째부터 비로소 밭 주인과 절반씩 나누게 한다.공전(公田)일 때는 3년간은 경작자에게 다 주고 4년째부터 법제에 따라 조세를 징수한다.”

……(中略)……

(예종) 6년 8월에 왕이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3년 이상 묵은 토지를 일구어 얻은 수확은 2년간 전부 땅 부치는 집에 주고 3년째에는 땅 주인과 절반씩 나누게 한다. 2년간 묵은 토지에 대해서는 수확량의 1/4은 땅 주인이 가지고 나머지는 땅 부치는 집에서 가지도록 한다. 1년간 묵은 토지는 그 수확의 1/3은 땅 주인이 가지고 나머지는 땅 부치는 집에서 가지도록 하였다.

『고려사』권78, 「지」32 [식화1] 전제 조세

성종 5년(986) 5월에 교(敎)하기를, “국가는 백성으로써 근본을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써 하늘을 삼는다. 만약 만백성의 마음을 회유하고자 하면 오직 농사의 세 가지 일을 빼앗지 말아야 한다. 아아, 너희 12목과 여러 주(州)와 진(鎭)의 수령들은 지금부터 가을까지 모두 마땅히 잡다한 일을 그만두고 오직 권농에만 힘쓰라. 내가 장차 각지에 사자를 보내 점검하여 전야(田野)의 황폐함과 개간된 상태, 목(牧)과 수령의 근면함과 태만함을 가지고 근무 성적을 평가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6년 6월에 주(州)와 군(郡)의 병기(兵器)를 거두어 농기구로 만들었다.

……(中略)……

(문종 3년) 12월에 동북로 병마사(東北路兵馬使)가 아뢰었다. “영흥진(永興鎭)의 군인 성후(成厚) 등 320여 인이 장(狀)을 올려 말하기를 진(鎭)의 장수이자 상사직장(尙舍直長) 정작염(丁作鹽)이 농사와 양잠을 권장하고 부역을 균등하게 하며 성곽을 수리하고 무기를 잘 준비했다고 합니다. 또 모래와 자갈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에 잡곡을 심도록 권유하여 한 해에 200여 곡(斛)을 거두어 공로와 고과가 으뜸이오니, 비록 임기가 다 되었으나 유임시켜 주시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왕이 기뻐하여 모두 이를 허락하였다.

……(中略)……

명종 3년(1173) 윤(閏) 정월에 7도 안찰사5도 감창사(監倉使)를 모두 권농사(勸農使)를 겸하게 하였다. 18년 3월에 제서(制書)를 내리기를, “때에 맞추어 농사를 권장하고 힘써 제방과 저수지[堤偃]를 수축하여 물을 잘 저장해두었다가 공급하게 하여 농토가 황폐해지지 않도록 하며 백성들의 먹을거리를 풍족하게 하라. 또한 뽕나무 묘목을 절기에 맞추어 심으며 옻나무[漆]⋅닥나무[楮]⋅밤나무[栗]⋅잣나무[栢]⋅배나무[梨]⋅대추나무[棗]⋅과일나무[菓木]도 모두 각각 적합한 때에 심어 이익이 되도록 하라”고 하였다.

『고려사』권79, 「지」33 [식화2] 농상

(太祖 元年) 秋七月, 詔曰, 泰封主以民從欲, 惟事聚斂, 不遵舊制, 一頃之田, 租稅六碩, 置驛之戶, 賦絲三束. 遂使百姓, 輟耕廢織, 流亡相繼, 自今租稅征賦, 宜用天下通法, 以爲恒例.

『高麗史節要』卷1, 太祖神聖大王 戊寅 元年 秋7月

辛禑元年二月, 敎. 守令考績之法, 以田野闢⋅戶口增⋅賦役均⋅詞訟簡⋅盜賊息五事, 爲殿最. 其遞任者, 必待新官交付, 去任朝參.

『高麗史』卷75, 「志」29 [選擧3] 銓注 選用守令

光宗二十四年十二月, 判. 陳田墾耕人, 私田則初年所收全給, 二年始與田主分半. 公田限三年全給, 四年始依法收租.

……(中略)……

(睿宗) 六年八月, 判. 三年以上陳田, 墾耕所收, 兩年全給佃戶, 第三年, 則與田主分半. 二年陳田, 四分爲率, 一分田主, 三分佃戶. 一年陳田, 三分爲率, 一分田主, 二分佃戶.

『高麗史』卷78, 「志」32 [食貨1] 田制 租稅

成宗五年五月, 敎曰, 國以民爲本, 民以食爲天. 若欲懷萬姓之心, 惟不奪三農之務. 咨爾十二牧⋅諸州鎭使, 自今至秋, 並宜停罷雜務, 專事勸農. 予將遣使檢驗, 以田野之荒闢, 牧守之勤怠, 爲之褒貶焉. 六年六月, 收州郡兵, 鑄農器.

……(中略)……

(文宗 3年) 十二月, 東北路兵馬使奏. 永興鎭軍成厚等三百二十餘人狀告, 鎭將⋅尙舍直長丁作鹽, 勸農桑, 均賦役, 修城郭, 備戰具. 又於沙石不耕之地, 勸種雜穀, 歲收二百餘斛, 功課爲最, 雖已考滿, 願借留任. 王嘉歎, 並許之.

……(中略)……

明宗三年閏正月, 以七道按察使⋅五道監倉使, 皆兼勸農使. 十八年三月, 下制, 以時勸農, 務修堤堰, 貯水流潤, 無令荒耗, 以給民食. 亦以桑苗, 隨節栽植, 至於漆⋅楮⋅栗⋅栢⋅梨⋅棗⋅菓木, 各當其時, 栽以興利.

『高麗史』卷79, 「志」33 [食貨2] 農桑

이 사료들은 고려 왕조에서 농업을 중요시하고 그 생산자인 농민의 생업 안정에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농업 생산력 향상 및 안정을 꾀하고자 하였음을 보여 준다.

먼저 918년(태조 1년) 7월 태조(太祖, 재위 918~943)는 “궁예의 취렴(聚斂)이 과도하여 백성들이 밭 갈고 베 짜는 일을 할 수 없어 유랑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비판하면서, 남자는 농사짓고, 여자는 베를 짜는 ‘남경여직(男耕女織)’을 기본으로 삼았다. 이후 고려 왕조는 기본적인 권농 정책을 중농(重農)에 입각한 무본역농(務本力農)⋅역전(力田)의 방향으로 전개하였다. 태조는 즉위한 뒤 농업과 농민의 안정을 위하여 요역과 부세를 가볍게 하는 취민유도(取民有度) 정책을 취함과 동시에 농상을 권장하였다.

고려 시대 농업 장려 정책은 986년(성종 5년) 5월 하교에 나오듯이, 농사를 중시하는 중농 이념 정립, 중앙에서의 권농 정책 방향 제시, 지방관의 권농 정책, 토지의 생산력 파악, 농우⋅농기구⋅종자 대여, 조세 제도의 안정된 운영, 개간에 대한 권리 보장 등이었다. 지방관 파견과 함께 그들에게 토지 개간과 농민 사회 안정 등의 임무를 부여하고, 지방에 있는 병기를 거둬 농기구를 만드는 권농 정책을 폈다. 나아가 지방관의 인사 고과에 농지를 얼마나 많이 개간 경작하도록 하느냐를 기준으로 삼기도 하였다.

이처럼 농사를 중요하게 여기고 이를 정책에 반영하고자 한 노력은 월령(月令), 즉 시령(時令)을 준수하라는 조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중앙과 지방에서 이를 유의하면서 봉행 6조(奉行六條)나 시무(時務) 등에 힘쓰도록 한 것은 결국 농민들이 때에 맞춰 해야 할 일과, 그에 따라 지방관과 중앙에서 해야 하는 것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농업 생산 구조를 안정시키려 한 노력이었다.

이렇게 볼 때 고려 시대 권농 정책의 기본적 성격은 농민들이 영농(營農) 기반을 갖추도록 하고 농사를 국가적으로 적극 보장하여 농업 생산 구조를 안정화하는 데 있었다. 고려 시대 권농 정책은 최대한 농민 생활을 안정시켜 농민 유랑을 막고 새로운 토지 개간보다 시기전(時起田)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진전(陳田)의 발생을 막는 데 주력하였다.

농업 생산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토지 생산력의 확인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넓은 토지와 생산력을 가진 지방 사회에 대한 양전(量田)과 세공액(歲貢額)의 분정(分定)이 필요하였다. 광종(光宗, 재위 949~975)은 양전 및 호구(戶口) 파악, 특산물 등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뒤 주현(州縣)의 세공액을 정하였다. 또한 재해 등을 입었을 때의 피해와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양전을 지역별로 다시 실시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은면(恩免)⋅재면(災免)으로 불리는 조세의 감면 규정은 농민들의 생업 안정을 도왔다. 은면은 주로 왕의 즉위와 행차, 전란으로 피폐해졌을 경우 등에 은전으로 베푼다는 의미로 시행되었다. 이때 조세와 함께 조(調)⋅역(役)과 상요(常徭)⋅잡곡 등이 면제되기도 하였으나 주된 면제 대상은 조세였으며, 그 범위는 반 년 분에서 수 년 분에 이르는 등 매우 다양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농민들에게 무본역농을 위한 이념적⋅정책적 지원을 하는 것이 대강의 내용이었다. 농사의 때를 지켜 백성을 동원케 한다는 ‘사민이시(使民以時)’를 중외에서 지키도록 하여 농사에 전념케 하였으며, 국가적 차원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기곡제(祈穀祭)를 올려 중농의 의지를 천지에 알렸다. 이뿐만 아니라 고려는 농기구 보급 및 제언 수리, 저수 관개, 수차 보급, 곡식 종자 분급 등을 실시하였다. 토질에 맞게 뽕나무나 밤나무⋅옻나무⋅닥나무를 심도록 하였으며, 중국 양잠서(養蠶書)를 수입하고 그에 대한 우리말 해석을 달고 원나라에서 간행한 『농상집요(農桑輯要)』를 수입하여 지방에서 이를 다시 판각해 보급하기도 하였다.

한편 둔전(屯田) 운영을 통해 개간을 도모하였으며, 12세기부터는 권농 내용도 불을 놓은 뒤 물을 대어 개간하는 화경수누(火耕水耨) 방법을 이용한 신전 개간, 제언 축조, 수로 개설 등이 계속 이루어져 개간 방향이 저습지(低濕地)나 해택지(海澤地)로 확대되었다.

이와 같이 고려 시대에는 국가 중심의 권농 정책이 전개되면서 농업 생산 구조가 안정을 찾았으며, 농업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점차 주기적으로 행했던 휴한(休閑) 농법에서 매년 경작 생산이 가능한 상경(常耕) 농법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곡물과 곡물, 곡물과 채소 등을 바꿔 가며 짓는 돌려짓기[輪作] 작부 체계도 갖춰 갔다 하겠다. 이러한 농업사의 성과는 농업 장려 정책, 즉 권농 정책에 힘입은 바 크다 여겨지며, 위의 사료들은 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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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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