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경제고려 시대농업 기술의 발달

수리시설과 벼농사의 발달

(공민왕) 11년에 밀직제학(密直提學) 백문보(白文寶)가 차자(箚子)를 올려 아뢰었다. “강회(江淮)의 백성이 농사를 지을 때 홍수와 가뭄을 걱정하지 않는 것은 수차(水車)의 힘입니다. 우리 고려인 중 수전(水田)을 경작하는 자들은 반드시 봇[洑]물을 끌어들일 뿐 수차로 쉽게 댈 수 있음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논 밑에 도랑이 있어 8~10척의 깊이가 되지 않아도 내려만 보고 감히 물을 퍼 올리지 못하니 그 결과 묵힌 밭[汚萊之田]이 열에 여덟 아홉은 됩니다. 그러니 마땅히 계수관(界首官)에게 수차를 만들도록 하고 능력 있는 장인이 이를 본뜨게 하여 민간에 전하도록 한다면 가뭄에 대비하고 황무지를 개간하는 좋은 방책이 될 것입니다. 또 백성들이 씨 뿌리기와 모내기를 아울러 힘쓰게 되면 가뭄에 대비할 수 있고 곡식 종자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고려사』권79, 「지」33 [식화2] 농상

十一年, 密直提學白文寶, 上箚子. 江淮之民, 爲農而不憂水旱者, 水車之力也. 吾東方人, 治水田者, 必引溝澮, 不解水車之易注. 故田下有渠, 曾不足尋丈之深, 下瞰而不敢激, 是以汚萊之田, 什常八九. 宜命界首官造水車, 使效工取樣, 可傳於民閒, 此備旱墾荒第一策也. 又民得兼務於下種揷秧, 則亦可以備旱, 不失穀種.

『高麗史』卷79, 「志」33 [食貨2] 農桑

이 사료는 1362년(공민왕 11년)밀직제학(密直提學) 백문보(白文寶, 1303~1374)가 중국 강남 지방에서 수전 농업에 사용하는 수차(水車) 정보를 받아들여, 이를 만들고 민간에 보급하여 벼농사의 생산력을 높일 것을 청하는 글이다.

백문보는 충숙왕(忠肅王, 재위 1314~1330, 1332~1339) 대에 과거에 급제하고, 공민왕(恭愍王, 재위 1351~1374) 초에 전리판서, 1362년 밀직제학, 우왕(禑王, 재위 1374~1388)의 사부까지 역임했으며,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이달충(李達衷, ? ~1385)과 함께 예종(睿宗, 재위 1105~1122)인종(仁宗, 재위 1122~1146)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그가 밀직제학으로 있던 1362년을 전후로 왜구의 노략질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특히 1361년(공민왕 10년)에는 홍건적개경까지 쳐들어와 공민왕은 급히 안동까지 피난해야만 하였다. 1362년 개경을 되찾긴 했지만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농민들은 동요하고 있었다. 이에 농민들의 안정과 농업 생산력 향상을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강구되었다.

당시 고려는 일찍이 수전 농법을 실시하였는데, 수리 시설은 산골짜기 사이의 물을 막아 조성하는 보 형태나 제언(堤堰)이 전부였다. 그 뒤 연해안과 내륙 저습지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하거(河渠)방천제(防川堤) 등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전은 천변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홍수와 봄 가뭄에 취약하여 피해가 심하였다.

백문보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였다. 중국 강회(江淮)의 백성들은 가뭄을 근심하지 않는데, 우리나라는 보에 괸 봇물을 끌어다 쓰기 때문에 답고수저(畓高水底) 상태에서는 혜택을 보지 못해 농사를 망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해결 방안으로 중국 강남 지방에서 활용되던 수차의 도입과 보급에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10척 미만의 수차가 낮은 하천의 물을 끌어올려 가뭄의 피해를 극복하고 필요할 때 수리의 혜택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가뭄뿐 아니라 황전(荒田)을 개간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백문보의 제안이 있은 뒤 고려는 원나라 대사농사(大司農司)에서 편찬한 『농상집요(農桑輯要)』를 간행하였으며, 여러 가지 권농 정책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이는 신흥 사대부를 중심으로 강남 농법을 수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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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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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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