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경제고려 시대전시과 제도와 조세 제도

전시과의 시행

태조 23년(940)에 처음으로 역분전(役分田) 제도를 설정하였는데, 삼한을 통합할 때 조정의 관료와 군사에게 그 관계(官階)의 높고 낮음을 논하지 않고 그 사람의 성품과 행동의 착하고 악함과 공로가 크고 작은가를 참작하여 차등 있게 주었다.

경종 원년 11월에 비로소 직관(職官)산관(散官)의 각 품(品)의 전시과를 제정하였는데 관품(官品)의 높고 낮은 것은 논하지 않고 다만 인품(人品)만 가지고 전시과의 등급을 결정하였다.

자삼(紫衫) 이상은 18품(品)으로 나누었다.

1품 전지(田地)와 시지(柴地) 각각 110결

2품 전지와 시지 각각 105결

3품 전지와 시지 각각 100결

4품 전지와 시지 각각 95결

5품 전지와 시지 각각 90결

6품 전지와 시지 각각 85결

7품 전지와 시지 각각 80결

8품 전지와 시지 각각 75결

9품 전지와 시지 각각 70결

10품 전지와 시지 각각 65결

11품 전지와 시지 각각 60결

12품 전지와 시지 각각 55결

13품 전지와 시지 각각 50결

14품 전지와 시지 각각 45결

15품 전지 42결, 시지 40결

16품 전지 39결, 시지 35결

17품 전지 36결, 시지 30결

18품 전지 33결, 시지 25결

문반(文班) 단삼(丹衫) 이상은 10품으로 나누었다. ……(中略)……

비삼(緋衫)은 8품으로 나누었다. ……(中略)……

녹삼(綠衫) 이상은 8품으로 나누었다. ……(中略)……

전중(殿中), 사천(司天), 연수(延壽). 상선원(尙膳院) 등 잡업(雜業) 단삼(丹衫) 이상은 10품으로 나누었다. ……(中略)……

비삼(緋衫) 이상은 8품으로 나누었다. ……(中略)……

녹삼(綠衫) 이상은 8품으로 나누었다. ……(中略)……

무반(武班) 단삼(丹衫) 이상은 5품으로 나누었다. ……(中略)……

이하(以下) 잡직 관리(雜吏)에게도 각각 인품에 따라서 차이를 두고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이 해(경종 1년) 전시과 등급에 들지 못한 자는 모두 전지 15결을 주었다.

목종 원년 3월 각 군현의 안일호장(安逸戶長)에게 직전(職田)의 절반을 주었다.

12월 문무 양반 및 군인들의 전시과를 개정하였다.

제1과 전지 100결, 시지 70결【내사령, 시중】

제2과 전지 95결, 시지 65결【내사시랑평장사, 문하시랑평장사, 치사시중】

제3과 전지 90결, 시지 60결【참지정사, 좌우복야, 검교태사】

제4과 전지 85결, 시지 55결【6부 상서, 어사대부, 좌우산기상시, 태상경, 치사좌우복야, 치사태자태보】

제5과 전지 80결, 시지 50결【비서감, 전중감, 소부감, 장작감, 개성윤, 상장군, 산(散)좌우복야】

제6과 전지 75결, 시지 40결【좌우승, 제시랑(諸侍郞), 간의대부, 대장군, 산(散)6상서】

……(중략)……

제18과 전 20결【산전전부승지(散前殿副承旨), 태상사의, 태상재랑, 국자전학, 지반, 주약, 약동, 군장관, 통인, 청두, 직성, 전구관, 당인, 추장, 감선, 인알 등 유외잡직(流外雜職), 제보군(諸步軍)】

이 범위 안에 들지 못한 자에게는 모두 전지 17결을 지급하고 이를 항구적으로 지켜야 할 법식으로 제정하였다.

……(중략)……

문종 30년에 양반 전시과를 다시 개정하였다.

제1과 전지 100결, 시지 50결【중서령, 상서령, 문하시중】

제2과 전지 90결, 시지 45결【문하시랑, 중서시랑】

제3과 전지 85결, 시지 40결【참지정사, 좌우복야, 상장군】

제4과 전지 80결, 시지 35결【6부 상서, 어사대부, 좌우 상시(常侍), 태자첨사, 태자빈객, 대장군】

제5과 전지 75결, 시지 30결【7시경(七寺卿), 비서감, 전중감, 국자좨주(國子祭酒) 상서좌우승, 사천감, 태자소첨사, 제위장군(諸衛將軍)】

제6과 전지 70결, 시지 27결【이부(吏部)의 제조시랑(諸曹侍郞), 장작감, 소부감, 군기감, 태의감, 좌우서자(左右庶子), 좌우유덕(左右諭德), 제중랑장(諸中郞將)】

……(중략)…… 제18과 전지 17결【한인(閑人), 잡류(雜類)】

무산계(武散階)

전지 35결 시지 8결.【관동대장군(冠軍大將軍), 운휘장군(雲摩將軍).】

전지 30결.【장무장군(掌武將軍), 선위장군(宣威將軍), 명위장군(明威將軍).】

전지 25결.【영원장군(寧遠將軍), 정원장군(定遠將軍), 유기장군(遊騎將軍), 유격장군(遊擊將軍).】

전지 22결.【요무교위(耀武校尉), 요무부위[同副尉], 진위교위(振威校尉), 진위부위[同副尉], 치과교위(致果校尉), 치과부위[同副尉], 익휘교위(翊摩校尉), 익휘부위[同副尉].】

전지 20결.【선절교위(宣折校尉), 선절부위[同副尉], 어모교위(禦侮校尉), 어모부위[同副尉], 인용교위(仁勇校尉), 인용부위[同副尉], 배융교위(陪戎校尉), 배융부위[同副尉].】

전지 17결.【대장(大匠), 부장(副匠), 잡장인(雜匠人), 어전부악건(御前部樂件), 어전부악인[樂人], 지리업승인(地理業僧人).】

별사(別賜)

전지 40결 시지 10결.【대덕(大德)27).】

전지 35결 시지 8결.【대통(大通).】

전지 30결.【부통(副通).】

전지 25결.【지리사(地理師).】

전지 20결.【지리박사(地理博士).】

전지 17결.【지리생(地理生), 지리정(地理正).】

시지(柴地)

1일 노정, 개성(開城), 정주(貞州), 백주(白州), 염주(塩州), 행주(幸州), 강음(江陰), 토산(兎山), 임강(臨江), 신은(新恩), 마전(麻田), 적성(積城), 파평(坡平), 창화(昌化), 견주(見州), 사천(沙川), 봉성(峯城), 임진(臨津), 장단(長湍), 교하(交河), 동성(童城), 고봉(高峯), 송림(松林), 통진(通津), 덕수(德水).

2일 노정, 안주(安州). 동주(洞州), 봉주(鳳州), 수주(樹州), 포주(抱州), 양주(楊州), 동주(東州), 수안(遂安), 토산(土山), 당성(唐城), 인주(仁州), 김포(金浦), 양골(梁骨), 동음(洞陰),황평(荒坪), 승지(僧旨), 황선(黃先), 도척(道尺), 아등갑(阿等岬), 안협(安俠), 수안(守安), 공암(孔岩).

『고려사』권78, 「지」32 [식화1] 전제 전시과

太祖二十三年初定役分田, 統合時朝臣軍士, 勿論官階, 視人性行善惡功勞大小, 給之有差.

景宗元年十一月, 始定職散官各品田柴科, 勿論官品高低, 但以人品定之.

紫衫以上作十八品.【一品田柴各一百一十結 二品田柴各一百五結 三品田柴各一百結 四品田柴各九十五結 五品田柴各九十結 六品田柴各八十五結 七品田柴各八十結 八品田柴各七十五結 九品田柴各七十結 十品田柴各六十五結 十一品田柴各六十結 十二品田柴各五十五結 十三品田柴各五十結 十四品田柴各四十五結 十五品田四十二結柴四十結 十六品田三十九結柴三十五結 十七品田三十六結柴三十結 十八品田三十二結柴二十五結】

文班丹衫以上, 作十品. ……(中略)……

緋衫, 作八品. ……(中略)……

綠衫以上, 作十品. ……(中略)……

殿中⋅司天⋅延壽⋅尙膳院等雜業丹衫以上, 作十品. ……(中略)……

緋衫以上, 作八品. ……(中略)……

綠衫以上, 作十品. ……(中略)……

武班, 丹衫以上, 作五品. ……(中略)……

以下雜吏, 各以人品, 支給不同. 其未及此年科等者, 一切給田十五結.

穆宗元年三月, 賜郡縣安逸戶長職田之半. 十二月, 改定文武兩班及軍人田柴科. 第一科田一百結柴七十結【內史令⋅侍中】 第二科田九十五結柴六十五結【內史⋅門下侍郞平章事⋅致仕侍中】 第三科田九十結柴六十結【叅知政事⋅左右僕射⋅檢校太師】 第四科田八十五結柴五十五結【六尙書⋅御史大夫⋅左右散騎常侍⋅太常卿⋅致仕⋅左右僕射太子太保】 第五科田八十結柴五十結【秘書⋅殿中⋅少府⋅將作監⋅開城尹⋅上將軍⋅散左右僕射】 第六科田七十五結柴四十五結【左右丞⋅諸侍郞⋅諫議大夫⋅大將軍⋅散六尙書】 ……(中略)…… 第十八科田二十結【散殿前副承旨⋅大常司儀⋅齋郞⋅國子典學⋅知班⋅注藥⋅藥童⋅軍將官⋅通引⋅廳頭⋅直省⋅殿驅官⋅堂引⋅追仗⋅監膳⋅引謁等流外雜職, 諸步軍】

不及此限者, 皆給田十七結, 以爲常式.

……(中略)……

文宗三十年, 更定兩班田柴科. 第一科田一百結柴五十結【中書令⋅尙書令⋅門下侍中】 第二科田九十結柴四十五結【門下侍郞⋅中書侍郞】 第三科田八十五結柴四十結【叅知政事⋅左右僕射⋅上將軍】 第四科田八十結柴三十五結【六尙書⋅御史大夫⋅左右常侍⋅太子詹事⋅太子賓客⋅大將軍】 第五科田七十五結柴三十結【七寺卿⋅秘書⋅殿中監⋅國子祭酒⋅尙書左右丞⋅司天監⋅太子少詹事⋅諸衛將軍⋅右少詹事】 第六科田七十結柴二十七結【吏部諸曹侍郞⋅將作⋅少府⋅軍器⋅太醫監⋅左右庶子⋅左右諭德⋅諸中郞將】 ……(中略)…… 第十八科田十七結【閑人⋅雜類】

武散階 田三十五結柴八結【冠軍大將軍⋅雲摩將軍】 田三十結【掌武將軍⋅宣威將軍⋅明威將軍】 田二十五結【寧遠將軍⋅定遠將軍⋅遊騎將軍⋅遊擊將軍】 田二十二結【耀武校尉⋅同副尉⋅振威校尉⋅同副尉⋅致果校尉⋅同副尉⋅翊摩校尉⋅同副尉】 田二十結【宣折校尉⋅同副尉⋅禦侮校尉⋅同副尉⋅仁勇校尉⋅同副尉⋅陪戎校尉⋅同副尉】 田十七結【大匠⋅副匠⋅雜匠人⋅御前部樂件⋅樂人⋅地理業僧人】

別賜 田四十結柴十結【大德】 田三十五結柴八結【大通】 田三十結【副通】 田二十五結【地理師】 田二十結【地理博士】 田十七結【地理生地理正】

柴地 一日程 開城⋅貞州⋅白州⋅塩州⋅幸州⋅江陰⋅免山⋅臨江⋅新恩⋅麻田⋅積城⋅坡平⋅昌化⋅見州⋅沙川⋅峯城⋅臨津⋅長湍⋅交河⋅童城⋅高峯⋅松林⋅通津⋅德水 二日程 安州⋅洞州⋅鳳州⋅樹州⋅抱州⋅楊州⋅東州⋅遂安⋅土山⋅唐城⋅仁州⋅金浦⋅梁骨⋅洞陰⋅荒坪⋅僧旨⋅黃先⋅道尺⋅阿等岬⋅安俠⋅守安⋅孔岩.

『高麗史』卷78, 「志」32 [食貨1] 田制 田柴科

이 사료는 고려 전기 토지제도의 중심을 이루었던 전시과의 변화 과정을 보여 준다. 전시과는 문무의 모든 관리부터 부병(府兵)⋅한인(閑人)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관직에 복무하거나 직역을 부담하는 자들에게 지위에 상응하는 전토(田土)와 시지(柴地)를 나누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전시과의 ‘전(田)’은 곡물을 생산하는 토지를 뜻하고, ‘시(柴)’는 땔감을 채취하는 산림을 가리킨다.

전시과 제도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975년(경종 1년)의 일이었다. 그리하여 시정전시과(始定田柴科)라 하였는데, 전시과가 처음 시행된 배경은 광종(光宗, 재위 949~975) 때의 정치적 변화와 관련이 있다.

광종 때 기존의 호족 및 공신 세력에 일대 타격을 가하였다. 노비안검법을 실시하여 그들의 경제적⋅군사적 기반을 약화시켰으며, 과거 제도를 실시하여 유교적 소양을 갖춘 신진 인사들을 등장시켰다. 또한 백관의 공복을 제정하여 여러 정치 세력을 관료 체제 안에 편입시키고자 하였다. 이 같은 개혁과 함께 기존 정치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였다. 그리하여 광종 말년에는 “구신(舊臣) 중에 살아남은 자가 겨우 40여 명이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들은 경종(景宗, 재위 975~981)의 즉위와 함께 재등장하였고, 광종 때 등용된 문신 관료들과 갈등을 빚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전시과가 출현하게 되었고, 이는 두 정치 세력이 어느 정도 타협을 본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광종 때는 정치적 변화 외에 경제적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우선 광종은 즉위 직후부터 주현(州縣)의 세공액(歲貢額)을 결정하여 전국적인 경제적 통제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정확하게 세금을 부과할 당사자를 조사하기 위해 관원을 파견하여 양전(量田)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진전(陳田)의 개간을 장려함으로써 새로운 부세원 개발과 확보에 노력하였다.

시정전시과의 내용을 살펴보면 직사(職事)가 있는 실직과 관계(官階)만 있고 관직이 없는 산계인 산관(散官)이 모두 수급 대상이었다. 또한 관품(官品)과 인품(人品)을 병행하여 사용한 급전제였다. 이는 태조(太祖, 재위 918~943) 때의 역분전(役分田) 정신을 계승하여 인품도 토지를 지급하는 기준으로 세운 것이다. 또한 전체적으로 전지와 시지의 지급량이 후대의 전시과에서보다 후한 편이었다. 시지의 경우 더욱 그러하며, 그 최고액과 최저액이 경정전시과(更定田柴科)의 거의 두 배에 이르렀다. 그리고 문반⋅무반⋅잡업 등으로 구별되는 관직 반열과 자삼⋅단삼⋅비삼⋅녹삼의 네 복색을 두 틀로 하여 전지가 지급되었다. 그런데 관직 반열보다 복색이 기본적인 틀이었다.

시정전시과는 이미 관료화된 집단과 아직 그렇지 못한 호족⋅공신 등의 비관료 집단 사이에 타협의 산물임과 동시에 모든 지배층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보수 및 대우 규정이었다. 이러한 제도 제정을 통해 관리들을 하나의 통치 체제 내에 흡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급의 유일한 기준은 아니었지만 관직이 중요한 지급 기준으로 활용됨으로써 훗날 관직을 중심으로 하는 분급 체제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경종 때 창설된 전시과는 998년(목종 1년) 12월에 개정되었다. 성종(成宗, 재위 981~997) 때는 관제 개편으로 인해 지방 세력, 즉 호족(향리)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짐으로써 중앙 집권적 관료 체제 정비가 상당히 진척된 시기였다. 그러므로 998년의 개정전시과(改定田柴科)는 지배 질서의 성장과 그에 따르는 관인 체제의 발전에 호응하여 이룩한 토지제도의 재정비였다.

개정전시과는 그 규정이 매우 간편하고 체계화되어 전체 관인을 한 계통 안에 망라한다는 특징이 있다. 문⋅무 양반을 중심으로 제정된 이 전시과는 종래의 공복이나 관계를 고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인품이라는 막연한 요소도 제거하고, 오직 관직과 위계의 높고 낮음만을 기준으로 18과로 나누어 지급하였다. 더구나 이 18과등은 정(正)⋅종(從) 9품의 18등급과 일정한 대응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관인 체제가 한층 진전되어 내부에 이미 계층제가 수립되었음을 말해 준다.

한편 개정전시과에서는 군인 전시과가 특별히 기록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고려의 군제 정비와 관련이 깊다. 그런데 문⋅무관의 관직에 차등을 두어 무관에 비해 문관의 우위가 나타나고 있다. 이와 함께 한외과(限外科)에 포함되어 있던 유외잡직(流外雜職)이 과내(科內)로 편입되어 제18과에 배치되고 있다는 것도 중요하다.

개정전시과는 1076년(문종 30년)에 이르러 또다시 전면적인 재편성을 하였다. 이를 경정전시과라 한다. 경정전시과목종 때의 체제를 이어받아 18과등제를 채택하였다. 하지만 경정전시과에서는 전시의 지급액이 줄어들었다. 또한 무반에 대한 대우가 현저히 상승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거란과의 전쟁을 거치며 무관에 대한 인식 변화가 나타났거나, 아니면 이들이 담당하는 일이 고역이라는 점을 감안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동안 지급 대상이 되었던 산직자(散職者)가 완전히 배제되었다. 이는 경정전시과가 실직주의에 입각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한 향직(鄕職)이 지급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것도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한외과가 폐지되었다. 한외과가 없어진 것은 수급 대상이 과내에 편입된 것을 의미할 뿐 아니라 제도의 완비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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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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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
「전시과 제도」, 김재명, 국사편찬위원회, 1993.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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