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경제고려 시대전시과 제도와 조세 제도

전시과 제도와 토지 소유

권수평(權守平, ?~1250)은 안동(安東) 사람으로 그 행적이 미미하여 족보(族譜)를 알 수 없다. 그는 용모가 매우 아름다웠으며 성품이 온순하고 소박하여 옛사람의 풍모를 갖추었다.

일찍이 대정(隊正) 벼슬을 했는데 생활이 어려웠다. 그런데 당시 낭중(郞中) 자리에 있던 복장한(卜章漢)이란 사람이 억울하게 벌을 받아 귀양을 갔는데, 권수평이 그의 직전(職田)을 받아 몇 해 동안 그 토지에서 나는 곡식을 대신 받아먹었다. 그 후 복장한이 죄를 용서받고 석방되어 돌아왔는데, 권수평은 평소에 그를 알지 못하였으며 또 예전에 복장한이 가졌던 토지의 조세도 이미 강으로 운송한 때였다.

그러나 권수평은 조부(租簿) 목록을 가지고 복장한을 찾아가서 주니 복장한이 말하기를 “내가 유배가 있었으니 그대가 비록 나의 직전을 가지지 않았더라도 필경 다른 사람이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대가 나의 처지를 가엾게 여기고 그 토지를 돌려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데 어떻게 조세까지 받을 수 있겠소”라고 하였다. 그러자 권수평은 “다른 사람이 화를 당한 틈을 타서 그 토지의 소출을 먹고 산 것도 불의(不義)가 아닌가 걱정했는데 본인이 돌아온 마당에 어찌 차마 그것을 차지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드디어 그 조부를 내던졌다. 복장한도 받지 않고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렸으므로 결국 권수평은 조부에 돌을 매어 그 집 안으로 던지고 가버렸다. 이 광경을 목격한 마을의 어른들이 탄식하면서 “토지를 서로 빼앗는 것이 풍습이 된 요즘에 뜻밖에도 이런 분들을 보게 되었구나”라고 하였다.

『고려사』권102, 「열전」15 [제신] 권수평

權守平, 安東人, 跡微, 不知其族譜. 姿豊美, 性淳厚質直, 有古人風.

嘗爲隊正, 貧居. 有郞中卜章漢, 以非罪見竄, 守平遞食其田. 有年, 及章漢遇赦還, 守平素不相識, 且其田租, 已漕于江.

守平袖租簿, 就與之, 章漢曰, 當吾竄謫, 君雖不食, 豈無他人. 君今哀我, 還其田足矣, 何用租爲. 守平曰, 乘人之災, 食其田, 猶恐不義, 今旣還, 尙忍食耶, 遂投其簿. 章漢不受, 閉門而入, 守平竟以簿繫石, 擲之而去. 父老歎曰, 今爭奪成風, 不圖獲見若人.

『高麗史』卷102, 「列傳」15 [諸臣] 權守平

이 사료는 고종(高宗, 1213~1259) 대에 추밀원부사 지위까지 올랐던 권수평(權守平, ?~1250)이 전시과, 특히 군인전(軍人田) 운영의 모범적인 경영 방식을 보여 주고 있어 당시 군인전을 중심으로 하는 전시과 제도의 운영 방식을 알게 해 준다.

권수평은 『고려사』에 청빈한 관리의 표상으로 기록되는 인물이다. 그가 일찍이 대정(隊正)으로 가난하게 지낼 때, 낭중 복장한(卜章漢)이 죄 없이 귀양 가게 되자 그의 토지를 넘겨받아 몇 년 동안 조(租)를 받았다.

그 뒤 복장한이 사면되어 돌아오자 전혀 모르는 사이였지만, 그 토지에서 받은 전조(田租)가 이미 운반되어 왔는데도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조부(租簿)를 “다른 사람의 불행을 이용하지 않는다”며 복장한에게 가져다주었다. 복장한 또한 토지만 돌려받고 조부를 거절하자, 그것을 그 집에 던져 버리고 돌아왔다.

무신 정권의 성립과 전개에 따라 토지 쟁탈이 풍속이 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지적한 것을 보면, 무신 정권기에 들어서 전시과 제도가 무너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이 당시 보편적 상황이었음에도 권수평은 오히려 토지의 강제 탈점을 도모하지 않고 원래의 전주(田主)에게 돌려주었을 뿐 아니라 그해 받은 조세(군인전)까지 돌려주었던 것이다. 이는 토지 점탈이 흔히 발생하던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음이 사료에 나타난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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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고려토지제도사연구』, 강진철, 고려대학교 출판부, 1980.
『고려전기의 재정구조』, 안병우,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2.
『고려전기의 전시과』, 이경식,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7.
편저
「전시과 제도」, 김재명, 국사편찬위원회, 1993.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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