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경제고려 시대경제생활

수공업자의 활동

○ 여러 아문(衙門)에 소속된 수공업 장인들, 즉 공장에게 주던 별사(別賜)는 모두 300일 이상 공사에 참여한 자에게 지급하는데 문종(文宗) 30년에 정하였다.

○ 군기감(軍器監)은 쌀 10석(石)【피갑장 지유(皮甲匠指諭) 1⋅모장 지유(牟匠指諭) 1⋅화장 지유(和匠指諭) 1】, 7석【피갑장 행수지유부승지(皮甲匠行首指諭副承旨) 1⋅모장 행수선절교위(牟匠行首宣節校尉) 1⋅화장 행수교위(和匠行首校尉) 1⋅백갑장 행수부위(白甲匠行首副尉) 1⋅장도장 행수배융부위(長刀匠行首陪戎副尉) 1⋅각궁장 배융교위(角弓匠陪戎校尉) 2】, 6석【칠장 좌우행수교위(漆匠左右行首校尉) 2⋅연장 좌우행수(鍊匠左右行首) 2】, 벼 15석【백갑 행수대장(白甲行首大匠) 1⋅장도 행수부장(長刀行首副匠) 1⋅노통부장(弩筒副匠) 1⋅기화업 행수교위(旗畵業行首校尉) 1】, 12석【전장 좌우행수교위(箭匠左右行首校尉) 2⋅전두장 행수부위(箭頭匠行首副尉) 1】, 10석【피장 지유교위(皮匠指諭校尉) 1⋅행수대장(行首大匠) 1】이다.

○ 중상서(中尙署)는 쌀 15석【화업 지유(畵業指諭) 1】, 10석【소목장 지유승지행수교위(小木匠指諭承旨行首校尉) 각 1】, 8석【위장 지유승지(韋匠指諭承旨) 1⋅홍정장 행수교위(紅鞓匠行首校尉) 1⋅주홍장 지유교위(朱紅匠指諭校尉) 1】, 7석【조각장 지유전전(彫刻匠指諭殿前) 1⋅행수교위(行首校尉) 1⋅나전장(螺鈿匠) 1】, 6석【칠장 좌우행수교위(漆匠左右行首校尉) 2】, 벼 12석【화장 교위(花匠校尉) 1⋅지장 행수부위(紙匠行首副尉) 1】, 10석【주렴장 행수(珠簾匠行首) 1⋅죽제장 행수교위(竹篨匠行首校尉) 1⋅어개장 교위(御盖匠校尉) 1⋅황단장 교위(黃丹匠校尉) 1⋅소장 행수교위(梳匠行首校尉) 1⋅마장 행수교위(磨匠行首校尉) 1】이다.

○ 장야서(掌冶署). 쌀 10석【은장 지유전전(銀匠指諭殿前) 1⋅화장 지유내전전(和匠指諭內殿前) 1】, 7석【은장 행수교위(銀匠行首校尉) 2⋅화장 행수교위(和匠行首校尉) 2】, 6석【백동장 행수부위(白銅匠行首副尉) 1⋅적동장 부위(赤銅掌副尉) 1⋅경장 행수교위(鏡匠行首校尉) 1⋅피대장 행수교위(皮帶匠行首校尉) 2】, 벼 12석【금박장 행수교위(金箔匠行首校尉) 1⋅행수대장(行首大匠) 1⋅생철장 좌우행수대장(生鐵匠左右行首大匠) 각 1】이다.

『고려사』권80, 「지」34 [식화3] 녹봉 제아문공장별사

○ 諸衙門工匠別賜, 並以役三百日以上者給之, 文宗三十年定.

○ 軍器監. 米十石【皮甲匠指諭一, 牟匠指諭一, 和匠指諭一】. 七石【皮甲匠行首指諭副承旨一, 牟匠行首宣節校尉一, 和匠行首校尉一, 白甲匠行首副尉一, 長刀匠行首陪戎副尉一, 角弓匠陪戎校尉二】. 六石【漆匠左右行首校尉二, 鍊匠左右行首二】. 稻十五石【白甲行首大匠一, 長刀行首副匠一, 弩筒副匠一, 旗畫業行首校尉一】. 十二石【箭匠左右行首校尉二, 箭頭匠行首副尉一】. 十石【皮匠指諭校尉⋅行首大匠各一】.

○ 中尙署. 米十五石【畫業指諭一】. 十石【小木匠指諭承旨⋅行首校尉各一】. 八石【韋匠指諭承旨一, 紅鞓匠行首校尉一, 朱紅匠指諭副尉一】. 七石【雕刻匠指諭殿前一⋅行首校尉一, 螺鈿匠一】. 六石【漆匠左右行首校尉二】. 稻十二石【花匠校尉一, 紙匠行首副尉一】. 十石【珠簾匠行首一, 竹篨匠行首校尉一, 御盖匠校尉一, 黃丹匠校尉一, 梳匠行首校尉一, 磨匠行首校尉一】.

○ 掌冶署. 米十石【銀匠指諭殿前一, 和匠指諭內殿前一】. 七石【銀匠行首校尉二, 和匠行首校尉二】. 六石【白銅匠行首副尉一, 赤銅匠副尉一, 鏡匠行首校尉一, 皮帶匠行首校尉二】. 稻十二石【金箔匠行首校尉一, 行首大匠一, 生鐵匠左右行首大匠各一】.

『高麗史』卷80, 「志」34 [食貨3] 祿俸 諸衙門工匠別賜

이 사료는 『고려사』 「식화지」 녹봉으로, 여러 아문에 소속된 수공업 장인, 즉 공장(工匠)들에게 별도로 쌀과 벼를 지급한 규정이다. 이 규정 전체를 보면 군기감, 중상서, 장야서 이 외에도 도교서(都校署), 상의국(尙衣局), 잡직서(雜織署), 액정국(掖庭局), 상승국(尙乘局), 태복시(太僕寺), 내궁전고(內弓箭庫), 대악관현방(大樂管絃房) 소속 공장까지 실려 있다. 다만 발췌한 사료에서는 병기를 만드는 일을 관장한 기구인 군기감, 왕실 소용의 각종 기완(器玩)을 관리 공급한 중상서, 은이나 백동 혹은 금박을 녹여 붙이는 일을 맡은 장야서에 속한 수공업자, 즉 공장들을 중심으로 별사를 내린 규정을 정리하고 있다.

이 규정은 1076년(문종 30)에 정해진 내용이다. 문종(文宗, 1019~1083, 재위 1046~1083)태조(太祖, 877~943, 재위 918~943)와 더불어 고려 시대의 가장 이상적인 군주로 꼽힌다. 국가 내외의 정세가 안정된 데다가, 이 시기에 여러 문물 제도 등이 잘 완비되었기 때문이다. 문종은 12년간에 걸쳐 흥왕사(興王寺)를 건립하려 노력하였다. 1067년(문종 21)에 낙성된 흥왕사의 규모는 2,800칸에 달할 정도로 컸다. 왕실 사찰인 만큼 그 화려함과 장엄함은 매우 뛰어났다. 이러한 사원을 만드는 데는 많은 공장이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문종이 300일 이상 공사에 참여한 공장에게 별도로 쌀 등을 지급하기로 결정을 내리는 배경이 되었다.

이 규정에는 73종의 공장들 명칭이 정리되어 있다. 이 중 이 사료에 등장한 군기감이나 중상서, 장야서에 속한 공장들만 보더라도 피갑장(皮甲匠), 모장(牟匠), 화장(和匠), 백갑장(白甲匠), 장도장(長刀匠), 각궁장(角弓匠), 칠장(漆匠), 연장(鍊匠), 노통장(弩筒匠), 기화업(旗畫業), 전장(箭匠), 전두장(箭頭匠), 피장(皮匠), 화업(畫業), 소목장(小木匠), 위장(韋匠), 홍정장(紅鞓匠), 주홍장(朱紅匠), 조각장(雕刻匠), 나전장(螺鈿匠), 화장(花匠), 지장(紙匠), 주렴장(珠簾匠), 죽저장(竹篨匠), 어개장(御盖匠), 황단장(黃丹匠), 소장(梳匠), 마장(磨匠), 은장(銀匠), 백동장(白銅匠), 적동장(赤銅匠), 경장(鏡匠), 피대장(皮帶匠), 금박장(金箔匠), 생철장(生鐵匠) 등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공장들은 궁궐과 성의 건축 및 수리, 사원의 건축, 왕실 생활 용품 및 의장과 병기 등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였다. 때로는 1151년(의종 5) 4월 기록에 보이는 바와 같이 왕의 명에 따라 침향목(沈香木)으로 관음상을 만들기도 하였다. 원종(元宗, 1219~1274, 재위 1259~1274)충렬왕(忠烈王, 1236~1308, 재위 1274~1298, 1299~1308) 대에 있었던 일본 정벌 때에는 병선(兵船)을 만드는 일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이들 고려 시대 공장들은 주로 관영(官營) 수공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또 한편으로 지역 특산물과 관련된 수공업(所手工業)에도 공장들이 활동하였으며, 이외 비(非)관영 수공업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수공업자들의 호적에 해당하는 공장안(工匠案)에 기록되어 있었다. 1029년(현종 20)의 사례이긴 하지만 개경의 나성(羅城)을 축조하는 데 공장 8,450명이 동원되었다는 점에서 공장의 수가 상당히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1073년(문종 27)의 기록을 보면 군기 주부(軍器注簿) 최충행(崔忠幸)과 양온령동정(良醞令同正) 양운(梁惲) 등은 공인(工人)의 후손이었으나 조정의 반열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때 유사(有司)에서는 이러한 사례를 금지하자고 하였고, 이후 이들의 자손은 과거에 응시할 자격이나 국학(國學) 입학이 금해졌다. 공장들은 천한 재주를 가진 자로 대우받았던 것이며, 이에 신분 및 생업은 대를 이어야 했다. 다만 기술이 뛰어난 자의 경우 위의 사료에 보이는 바처럼 별사를 받을 수도 있었고, 무관의 위계 제도인 무산계(武散階)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공장들은 기본적으로 국가를 위하여 일정한 노동을 바쳐야 했다. 이 사료에서처럼 300일 이상은 아니더라도 상당 기간 노동에 동원되었다. 이는 관속이 아닌 공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관속이 아니므로 규정된 기간에만 동원되고 그 외에는 물품을 만들어 팔 수 있었다.

무신 정권기 때에는 관청 및 수공업자의 경우, 수많은 공사에 동원되거나 과중한 공납물 부담으로 인하여 도망가는 자도 있었다. 반면 고려 후기로 들어오면서 상업이 활발해지고 공물 대납 등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이를 배경으로 관청 및 수공업 체제는 점차 약화되었고 대신 민간 수공업이 활발해졌다. 이와 달리 고려 전기에 사원 건축에 많이 동원되었던 관청 소속 공장들은 고려 후기에도 계속해서 사원을 짓는 데 동원되었다.

위의 사료는 복역 기간이 긴 여러 아문 소속 공장들에게 특별히 쌀 등을 별도로 내려준 규정에 해당하지만, 고려 시대 다양한 수공업자의 존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고려전기 공장의 신분」,『사학연구』58⋅59 합집,김난옥,한국사학회,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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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전기 지배체제와 공장」,『한국사론』27,서성호,서울대학교 국사학과,1992.
「고려후기 사원수공업의 공장과 수공업장」,『한국중세사회의 제문제』,송성안,한국중세사학회,2001.
「고려시대 직조수공업과 직물생산의 실태」,『국사관논총』55,조효숙,국사편찬위원회,1994.
「고려시대의 공장」,『진단학보』40,홍승기,진단학회,1975.
저서
『고려후기 농업경제연구』, 위은숙, 혜안, 1998.
『조선 중세수공업사 연구』, 홍희유, 지양사, 1979.
편저
「수공업」, 김동철, 국사편찬위원회, 1996.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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