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경제조선 전기수취 체제의 확립

공법 전세 제도로의 개편

전제상정소(田制詳定所)에 전지하기를, “토지 결복(結卜)의 개정 및 전품(田品)의 등급과 연분(年分)의 고하(高下)를 분간하여 조세 받는 법을 정하되, 먼저 충청도의 청안⋅비인과, 경상도의 함안⋅고령과, 전라도의 고산⋅광양 등 6고을에 금년부터 시험적으로 시행하고자 하니 그 조건들을 의논하여 올리라” 하였다.

전제상정소에서 의논하기를,

“1. 본국은 고려 때의 옛 법을 그대로 써서 토지를 3등급으로 나누어 모서리 방면의 수(數)를 쓰고 실제 면적을 계산하지 아니합니다. 또 지질의 비옥함과 척박함이 남쪽과 북쪽이 같지 않은데, 그 전품(田品)의 분등(分等)을 8도를 통틀어 표준으로 계산하지 않고 다만 1도(道)로 나누었기 때문에, 세 등급의 전지가 비옥함과 척박함이 같지 않아 납세의 경중이 매우 달라,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하게 되니 심히 옳지 못한 일입니다. 만약 여러 도의 전품(田品)을 전체적으로 살펴 6등급으로 나눈다면 전품이 바로잡히게 되고 조세도 고르게 될 것입니다.

1. 하등전(下等田) 1결의 면적은 57무(畝)로 기준을 삼고 먼저 그 소출(所出)의 수량을 정하는데, 대체로 상상년(上上年)의 1등 논[水田]의 소출을 80석으로 정하고, 6등 수전의 소출을 20석으로 정하고, 그 사이의 4등급을 고르게 나누어 2등 수전의 소출을 68석, 3등 수전의 소출을 56석, 4등 수전의 소출을 44석, 5등 수전의 소출을 32석으로 정하였습니다. 밭[旱田]은 수전의 수량에 기준하여 전례에 따라 절반으로 정하였습니다. 가령 상상년의 논의 세납이 쌀 20말[斗]이면, 밭의 세납은 황두로는 20말, 밭벼로는 10말로 정하는 방식입니다.

1. 1결의 면적 57무(畝)의 수세도 역시 이에 의하여 20분의 1 비율로 합니다. 상상년(上上年)의 1등 전지의 조세는 30말, 2등 전지의 조세는 25말 5되, 3등 전지의 조세는 21말, 4등 전지의 조세는 16말 5되, 5등 전지의 조세는 12말, 6등 전지의 조세는 7말 5되입니다.

1. 연분을 9등으로 나누고 10분 비율로 정하여 전실(全實)을 상상년(上上年)으로 하고, ……(중략)…… 2분을 수확하면 하하년이 됩니다. 상중년 1등 전지의 조세는 27말로 하고 ……(중략)…… 6등 전지의 조세는 1말 5되입니다.

1. 6등의 전지를 다 57무(畝)로 1결을 삼되, 이에 의하여 조세 징수를 각각 다르게 하자면 절목이 번잡할 뿐 아니라, 토지의 비례로 군대에 나가고 부역에 응하는 등의 일에 계산하기도 매우 곤란하니, 마땅히 전례에 의하여 토지의 넓고 좁음을 등급마다 각기 다르게 분정(分定)하고 동과(同科)로 수조(收租)할 것입니다. 가령 6등 전지의 조세 7말 5되에 따라서 동과(同科)로 결(結)을 정하면, 1⋅2등의 전지는 너무 좁게 되고, 1등 전지의 조세 30말에 따라서 동과로 결(結)을 정하면, 5⋅6등의 전지는 너무 넓게 되어서, 이로 말미암아 넓고 좁음이 알맞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57무(畝)로 정한 수로써 미루어 절충하여, 20말로써 동과(同科)로 결(結)을 정하면, 6등 전지의 1결은 152무(畝), ……(중략)…… 1등 전지의 1결은 38무가 됩니다. 조세액은 상상년은 20말, 상중년은 18말, 상하년은 16말, 중상년은 14말, 중중년은 12말, 중하년은 10말, 하상년은 8말, 하중년은 6말, 하하년은 4말로 되옵니다.

1. 6등급의 전지 결복(結卜)의 실지 면적을 평방으로 계산할 때는 1면에 대한 숫자에 가끔 몇 치[寸] 몇 푼[分]의 끝수가 있어서 계산이 매우 곤란하게 되므로, 6등급의 전지를 매(每) 1면(面)마다 백으로 평분하여 그 땅에 대한 계량의 척도로 합니다. 1등 전지의 척(尺)은 주척(周尺) 4척 7촌 7분이고, ……(중략)…… 6등 전지의 척은 주척 9척 5촌 5분이니, 이렇게 하면, 척(尺)은 6등급의 긴 것과 짧은 것이 있으나, 수량은 다 (그 척으로)100척을 1면(面)으로 하고, 1만 척을 적(積)으로 하는 것이니, 비록 계산에 익숙하지 못한 자라도 계산하기가 어렵지 아니합니다.

1. 각 도 감사는 각 고을마다 연분(年分)을 살펴 정하되, 재상(災傷) 외의 곡식의 실(實)⋅불실(不實)이 비록 다 같지 아니할지라도 총합하여 10분으로 비율을 삼아서, 전실(全實)을 상상년, ……(중략)…… 2분실을 하하년으로 합니다. 수전과 한전을 각각 등급을 나누어서, ‘아무 고을 수전 아무 등년(等年), 한전 아무 등년(等年)’으로써 아뢰게 하고, 1분실(分實)은 9등분에는 미치지 아니하니, 마땅히 조세를 면제할 것입니다.

1. 각 도 감사의 보고를 혹 의정부에나 육조에 내려서 의논한 후에 아뢰어서 그 연분(年分)을 정하든지, 혹은 조관(朝官)을 파견하여 다시 심사한 후에 아뢰어서 연분을 정하든지 그때마다 의논해서 분부에 따라 시행할 것입니다.

1. 정전(正田) 내의 묵은 전지[陳荒田]는 다 해마다 경작할 수 있는 토지인데, 사람들이 혹은 토지를 많이 가지고서 해를 갈아 묵히기도 하고, 혹은 농사를 게을리 해서 경작하지 아니하기도 하여 토지가 묵는 것이 많으니 심히 옳지 못합니다. 이러한 것은 일부 묵은[內陳] 것이나 전부 묵은[全陳] 것을 막론하고 다 조세를 받을 것입니다.

1. 속전(續田) 내에 만약 묵은 땅이 있으면 수령들로 하여금 경작자의 신고서[告狀]를 받아서 친히 심사한 후에 감사에게 보고하게 하고, 감사나 수령관(首領官)이 다시 그 수량을 조사하여 위에 아뢰고 조세를 면제할 것입니다.

1. 정전(正田)1)이나 속전(續田)2) 안에 수해로 침몰된 토지도 역시 경작자의 신고를 받아서 수령이 친히 답사하여 감사에게 보고하고, 감사나 수령관이 사실을 조사하여 서울에서 내려오는 관원의 고험(考驗)을 받은 후에, 우선 그 관리로 하여금 결복(結卜)의 수량을 문서에 기록하게 하고, 위에 아뢰어 면세하게 할 것입니다.

1. 재해를 입은 전지 중에 단편적인 재해를 제외하고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10결(結) 이상의 넓은 면적이 전부 손상(損傷)된 전지는 수령이 친히 심사하여 감사에게 보고하고, 감사가 위에 아뢴 후에, 파견된 경차관(敬差官)이 재해의 수량을 위에 아뢰어서 분부에 따라 조세를 감면하게 할 것입니다.

1. 앞에 말씀한 묵은 토지나, 수해로 침몰된 토지나, 재해를 입은 토지는 그 고을 수령이 만일 사고가 있어 친히 살필 수 없을 때는, 감사가 사람을 보내서 실지로 사실을 살필 것이며, 수령이 게을러서 친히 살피지 아니한 자와 경작지를 묵은땅으로 하거나, 묵은땅을 경작지로 하거나, 해 입은 토지나, 묵은 토지나, 침몰된 토지를 허황하게 거짓 보고한 자는 원전(元典)의 ‘실(實)을 손(損)으로 삼은 조문’에 의하여 죄를 다스릴 것입니다.

1. 그 밖의 여러 가지 전지는 이번 상정(詳定)으로 고치기 전까지는 우선 옛 기본법 그대로 하고, 계산의 끄트머리 남는 소수(小數)도 아울러 다 넣기로 할 것입니다.

1. 1자 5결(一字五結)3)의 법은 앞서부터 행하여 오는 격례(格例)에 의하여 시행할 것입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실록』권106, 26년 11월 13일(무자)

1)정전(正田) : 양안(量案)에 올려 있고 해마다 농사짓는 논밭을 의미한다.
2)속전(續田) : 토지가 척박하여 해마다 농사짓지 못하는 땅을 의미한다.
3)1자 5결(一字五結) : 토지의 한 필(筆)마다 천자문(天字文)의 글자 순으로 기호를 붙여 나가는데, 이를 자정(字丁)이라 한다. 1자정(字丁)을 5결(結)로 하는 법을 말함.

戊子/傳旨田制詳定所, 土田結卜改定及田品等第年分高下分揀收稅之法, 欲先於忠淸道淸安⋅庇仁 慶尙道咸安⋅高靈 全羅道高山⋅光陽等六官, 自今年試之, 其可行條件擬議以聞.

田制詳定所議以爲,

一, 本國因高麗之舊, 三等之田, 皆用方面之數, 不計實積. 地之膏塉, 南北不同, 而其田品分等, 不通計八道, 只以一道分之, 故三等田膏塉不同, 納稅輕重頓異, 富者益富, 貧者益貧, 深爲不可. 若通考諸道田品, 分爲六等, 則庶幾田品得正, 收稅以均.

一, 下田一結之地, 其積五十七畝, 以此爲準, 先定所出之數, 大率上上年一等水田所出, 以八十石爲定, 六等水田所出, 以二十石爲定, 其間四等均分之, 二等水田所出六十八石, 三等水田所出五十六石, 四等水田所出四十四石, 五等水田所出三十二石. 旱田所出, 準水田之數, 依前例折半爲定. 假令上上年水田之稅, 收米二十斗, 則旱田之稅, 黃豆則二十斗, 田米則十斗之類.

一, 一結五十七畝收稅, 亦依此二十分而稅一, 上上年一等田稅三十斗, 二等田稅二十五斗五升, 三等田稅二十一斗, 四等田稅十六斗五升, 五等田稅十二斗, 六等田稅七斗五升.

一, 年分分爲九等, 十分爲率, 全實爲上上年, ……(中略)…… 二分實爲下下. 上中年一等田稅二十七斗, ……(中略)…… 六等田稅一斗五升.

一, 六等田, 皆以五十七畝爲結, 而依此收稅各異, 則非惟節目煩碎, 科田出軍賦役等事, 計算甚難, 當依前例, 結卜廣狹, 各異分定, 而同科收租. 如從六等田稅七斗五升, 同科定結, 則一二等之田過狹; 從一等田稅三十斗, 同科定結, 則五六等之田太廣. 由是廣狹不中. 故以五十七畝所定之數, 推而演之, 以二十斗同科定結, 則六等田之結一百五十二畝, ……(中略)…… 一等田之結三十八畝. 上上年收稅二十斗, 上中年收稅十八斗, 上下年收稅十六斗. 中上年收稅十四斗, 中中年收稅十二斗, 中下年收稅十斗. 下上年收稅八斗, 下中年收稅六斗, 下下年收稅四斗.

一, 以六等田結實積, 開方所得一面之數, 各有寸分之奇, 計算甚難, 故六等田每一面, 分爲百, 爲其田所量之尺. 一等田尺, 周尺四尺七寸七分; ……(中略)…… 六等田尺, 周尺九尺五寸五分, 如此則尺有六等長短, 而數則皆以百尺爲面, 萬尺爲積, 雖不熟算者, 計之無難.

一, 各道監司每邑審定年分, 災傷外禾穀實不實, 雖不同, 摠合而十分爲率, 以全實爲上上年, ……(中略)…… 二分實爲下下年. 水田旱田, 各分其等, 以某縣水田爲某等年, 旱田爲某等年以啓, 一分實則未及九等之分, 當免租稅.

一, 各道監司啓本, 或下議政府六曹, 擬議啓聞, 定其年分, 或遣朝官, 更審後啓聞, 定其年分, 臨時擬議, 取旨施行.

一, 正田內陳荒之田, 皆每年可耕之地, 而人或多執, 互相陳荒, 或惰懶不耕. 由是田多陳荒, 甚爲不可. 內陳及全陳, 竝宜收稅.

一, 續田內, 如有陳荒之地, 令守令受作者告狀親審, 傳報監司, 監司首領官更覈其數, 啓聞免稅.

一, 正續田內因水沈沒之田, 亦令作者告狀, 守令親到審量, 傳報監司, 監司首領官覈實, 以待京官考驗, 姑令其官錄案結卜之數, 啓聞免稅.

一, 災傷之田, 除片段災傷外, 衆所共知連伏十結以上全損之田, 守令親審報監司, 監司啓聞後, 分遣敬差官, 災傷分數, 啓聞取旨, 減其租稅.

一, 右陳荒沈沒災傷之田, 其官守令, 如有故不得親審者, 監司差人, 親審覈實. 守令怠惰不行親審者, 及以起爲陳, 以陳爲起, 災傷陳荒沈沒之田, 妄冒呈報者, 依 『元典』以實爲損條治罪.

一, 雜位之田, 改詳定前, 姑將古基, 竝計奇零, 小數盡給.

一, 一字五結之法, 依已行格例施行. 從之.

『世宗實錄』卷106, 26年 11月 13日(戊子)

이 사료는 조선 전기인 세종(世宗, 재위 1418~1450) 대에 제정된 전세 제도인 공법(貢法)에 관한 내용이다. 조선 전기 전세 제도는 과전법의 조세 규정을 기본으로 하였다. 이전의 조세는 공전⋅사전을 막론하고 10분의 1인 30두였으며 수조권자인 관원이 풍년과 흉년에 따라 수확의 손실을 실제 답험해 조를 거두는 손실답험법이었다. 그런데 작황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전주의 자의적인 판단과 수조액 이외의 불법적인 수탈이 자행될 여지가 많았다. 이러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 세종공법이 제정되었다. 공법은 손실답험의 폐단을 지양하고 농업 생산력의 발전에 상응하는 객관적 기준에 의거한 전세 제도로 개혁을 꾀한 것이었다.

세종 초부터 공법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1430년(세종 12년)에 전국적으로 위로는 고관부터 아래로는 농민에 이르기까지 17만 명에게 설문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전국적으로 공법 시행을 찬성하는 품관, 촌민이 9만 8657명으로 찬성이 57% 정도이며, 반대는 7만 4149명으로 43% 정도였다. 그 중 토지 생산력이 높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우 6만 5864 대 664로 찬성이 절대 우세했으며 생산력이 낮은 함길도⋅평안도의 경우 1410대 3만 5912로 반대가 많았다. 이러한 여론 조사를 바탕으로 1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다각도로 시행 가능한 방안을 입안하고 토론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1444년(세종 26년) 공법이 확정, 발표되었다.

공법의 주요 내용을 보면 첫째, 이전에 비해 전품 등제가 더욱 세분화되었다. 고려 시기의 지역차가 전제된 상⋅중⋅하 3등 전품에서 1등전에서 6등전으로 등급을 세분화 했으며, 아울러 전품 간의 결당 넓이를 넓게 작정하여 6등전이 1등전의 4배가 되게 하였다.

둘째, 전품등제에 따라 길이가 다른 6개의 양전척을 새 기준에서 마련하고, 각 등전의 결부적을 크게 조정하였다. 고려와는 달리 주척(周尺)을 기초로 마련한 양전척으로 지적을 파악하고 그 지적이 곧바로 결부가 되도록 하였다. 수등이척(隨等異尺)에 차등실적(差等實積), 그리고 동과수조(同科收租)의 원칙이 여기에서 수립되었다.

셋째, 당시 결의 실제 면적과 조세액이 고려 말에 비해 크게 늘어나고 세액이 20분의 1세인 최고 20두에서 최하 4두로 연분구등법에 의한 정액제로 개정되었다. 이는 농업 생산량을 실제와 가깝게 파악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공법은 새로운 기준에 의한 양전과 함께 시행되었다. 1444년 하삼도 6현에서 먼저 시행되었으며, 1450년(세종 32년)에는 전라도, 1461년(세조 7년)에 경기도, 이듬해 충청도, 그 다음 해 경상도, 1471년(세조 17년) 황해도, 1475년(세조 21년) 강원도, 1486년(성종 17년) 평안도, 1489년(성종 20년) 영안도의 순서로 시행되었다.

공법의 적용으로 농민들은 정액화 된 전세를 부담하게 되었다. 공법과전법의 10분이 1이라는 세율을 크게 완화하여 20분의 1로 줄인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산출 방식을 보면 토지 1결에서 생산할 수 있는 양을 피곡은 800두, 쌀은 400두라고 보고, 그것의 20분의 1인 미 20두를 최고 세액으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농사의 풍흉을 판단할 수 있는 척도인 연분구등에 따라 한 등급 당 미 2두씩 줄여서 가장 흉년일 때는 4두를 내도록 했다.

이러한 세율의 변화는 과전을 지급 받던 수조권자의 수입을 30두에서 20두로 크게 감소시켰지만, 납세자인 토지 소유권자에게는 유리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수조권자의 수입은 줄었지만 소유권자의 수입은 늘어난 것이다. 공법은 왕권과 국가 권력이 수조권자를 일정하게 견제하고 토지 소유권자를 보호함으로써 국가 경제의 기반을 토지 소유권자인 자영 소농민에 두고자 한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조치에도 왕실, 양반 지배층, 토호 등의 토지 겸병과 지주전호제의 확대를 수반하게 하는 원인은 조성되고 있었다. 수조권자에게 불리하고 소유권자에게 유리한 결부제의 개혁 내용은 과전 등 수조지 수조권의 축소, 위축으로 작용되고 반면에 토지 소유권, 특히 대토지 소유자인 지주층에게는 수입의 증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공법의 시행에도 여러 어려움이 따랐다. 전품 등분의 분간은 여전히 정확을 기하기 어려웠으며 개간 농지와 진황 농지 및 한지(閑地)를 구분하지 않고 양전하는 등 수세 책정이 무리하게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여러 문제는 이후 역대 조정이 수습해 가야 할 과제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과전법상의 답험손실과 수조」,『경제사학』5,김태영,경제사학회,1981.
「조선전기 공법의 성립과 그 전개」,『동양학』12,김태영,단국대학교 부설 동양학연구소,1982.
「과전법체제하의 토지생산력과 양전」,『한국사연구』35,김태영,한국사연구회,1981.
「과전법하의 자영농에 대하여」,『한국사연구』20,김태영,한국사연구회,1978.
「세종조 공법의 원리와 그 성격」,『한국사연구』106,최윤오,한국사연구회,1999.
저서
『조선전기 토지제도사연구』, 김태영, 지식산업사, 1983.
『조선시대농법발달연구』, 염정섭, 태학사, 2002.
『한국중세 토지제도사』, 이경식,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6.
『조선전기농업경제사』, 이호철, 한길사, 1986.
편저
「국가재정」, 이재룡, 국사편찬위원회, 2003.
『조선시대 농업사 연구』, 한국농업사학회 편, 국학자료원, 2003.

관련 사이트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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