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경제조선 후기농업 생산력의 증대

상업적 농업

밭에 모든 곡식을 심는 것은 오직 그 땅에 알맞아야 한다. ……(중략)…… 대개 그 종류는 9가지 곡식 뿐만은 아니다. 모시⋅삼⋅참외⋅오이와 온갖 채소, 온갖 약초를 심어 농사를 잘 지으면 한 이랑 밭에서 얻는 이익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서울 안팎과 번화한 큰 도시에 파⋅마늘⋅배추⋅오이 밭 따위는 10묘의 땅에서 얻은 수확이 돈 수만을 헤아리게 된다. 서도 지방의 담배 밭, 북도 지방의 삼밭, 한산의 모시밭, 전주의 생강 밭, 강진의 고구마 밭, 황주의 지황 밭에서의 수확은 모두 상상등전(上上等田)의 논에서 나는 수확보다 그 이익이 10배에 이른다. 그리고 근년에는 인삼을 또 밭에 심어서 그 남는 이익이 혹 천만이나 되는데, 이것은 전지 등급으로 말할 수 없다. 비록 항상 심는 것으로 말하더라도 잇꽃과 대청은 그 이익이 매우 많아 ……(중략)…… 오직 목화밭이 아니더라도 이익이 5곡보다 배가 된다.

무릇 이와 같은 종류를 매년 업종으로 휴식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땅의 비옥함과 메마름에 관계없이 상상등전으로 하여 조속(耡粟)만 징수할 뿐만 아니라 공부(貢賦)도 논의할 만하다. ……(중략)…… 다만 남도 지방의 담배 밭은 서도 지방과 달라 산비탈 버려진 땅에 옆으로 돌계단처럼 만들어 심고, 또 한 해를 쉬어 심기도 하고 땅을 옮겨 심기도 하여 일정하지 않으니, 이와 같은 것은 그 전세(田稅)를 화전(火田)과 비교함이 마땅하고, 공부는 서도 지방의 연초 밭과 비교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연초라는 것은 금하는 물건이니 그 이익을 매우 억제해도 불가할 것이 없다.

좋은 곡식류 중 밭에 심는 것으로 첫째 산도, 둘째 메조, 셋째 여러 가지 기장, ……(중략)…… 넷째 여러 가지 피, ……(중략)…… 다섯째 촉서, ……(중략)…… 여섯째 대두, ……(중략)…… 일곱째 소두, ……(중략)…… 여덟째 녹두, 아홉째 대맥(보리), 열째 소맥, 열한째 교맥(메밀), ……(중략)…… 열둘째 영당맥, ……(중략)…… 열셋째 한피, ……(중략)…… 열넷째 호마(참깨), ……(중략)…… 열다섯째 청소(들깨), ……(중략)…… 열여섯째 옥촉서, 열일곱째 의이인데, 만약 수도를 합하면 18종류이다. 청소(들깨) 이상 15종류는 모두 식용으로, 일상 양식으로 하며 팔아서 재물이나 이익으로 만든다. 공전이 비록 귀중해도 심는 것은 그 땅에 알맞은 것에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15종류를 섞어 심어서 사전(私田)과 똑같이 함이 마땅하며, 기장⋅피⋅콩⋅보리로 한정할 수는 없다. 그리고 도읍과 가까운 데에는 파⋅마늘⋅오이 따위 채소를 오직 그 땅에 알맞은 대로 심는다. 모시⋅삼⋅목화⋅남초⋅생강⋅지황 따위도 오직 알맞은 대로 심는다.

경세유표』권8, 지관수제, 전제11, 정전의3

田種百穀, 惟其所宜. ……(中略)…… 蓋其所種, 不惟九穀而已. 枲麻瓜蓏, 百菜百藥, 苟善治之, 一𤲪之田, 獲利無算. 京城內外, 通邑大都, 葱田蒜田, 菘田瓜田, 十畝之地, 算錢數萬.【十畝者, 水田四斗落也, 萬錢爲百兩.】 西路煙田, 北路麻田, 韓山之苧麻田, 全州之生薑田, 康津之甘藷田, 黃州之地黃田, 皆視水田上上之等, 其利什倍. 近年以來, 人蔘又皆田種, 論其贏羨 或相千萬, 此不可以田等言也. 雖以其恒種者言之, 紅花大靑, 其利甚饒, ……(中略)…… 不唯木棉之田, 利倍於五穀也. 凡如此類, 若其歲歲業種, 無所休息者, 不問其土性之肥瘠, 竝當執之爲上上等, 不唯耡粟是徵, 抑亦貢賦可議. ……(中略)…… 唯南方煙田, 異於西路【煙者南草地,】 山阪棄地, 橫割如磴, 及其移種, 又間年休息, 遷徙無常, 若是者, 其田稅宜視火田, 其貢賦宜視西煙. 然且煙之爲物, 在所禁絶, 深抑其利, 靡不可也. 嘉穀之類, 種於旱田者, 一曰山稻, 二曰黃粱, 三曰諸黍, ……(中略)…… 四曰諸稷, ……(中略)…… 五曰薥黍, ……(中略)…… 六曰大豆, ……(中略)…… 七曰小豆, ……(中略)…… 八曰菉豆, 九曰大麥, 十曰小麥, 十一曰蕎麥, ……(中略)…… 十二曰鈴鐺麥, ……(中略)…… 十三曰旱稗, ……(中略)…… 十四曰胡麻, ……(中略)…… 十五曰靑蘇, ……(中略)…… 十六曰玉薥黎, 十七曰薏苡, 若竝水稻, 十有八種也. 靑蘇以上, 十有五種, 皆食之, 爲恒糧, 販之爲財利. 公田雖尊, 其種當隨土宜. 十有五種, 宜許雜種, 一如私田, 不可限之以黍稷菽麥. 其近於都邑者, 葱蒜瓜菜, 惟其宜也. 枲麻苧麻木棉南草生薑地黃 惟其宜也.

『經世遺表』卷8, 「地官修制」, [田制]11, 井田議3

이 사료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지은 상업적 농업에 대한 내용이다. 이 글이 실려 있는 『경세유표(經世遺表)』는 44권 15책으로 정약용이 전라남도 강진의 다산초당(茶山草堂)에서 1808년(순조 8년)부터 1817년(순조 17년)까지 10년 동안 쓴 미완성 작품이다. 『경세유표』는 『주례(周禮)』의 이념을 근거로 조선의 현실에 맞춰 중앙의 관제⋅전제⋅세제, 각종 행정 기구, 국가 경영 일반에 관한 일체의 제도⋅법규에 대해 먼저 개혁의 대강과 원리를 제시한 후 기존 제도의 모순, 실제 사례, 개혁의 필요성 등을 논리적이고 실증적으로 설명하였다.

상업적 농업은 농업 생산력이 발전하고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하기 시작한 조선 후기부터 시작되었다. 조선 후기 농업 생산력이 발달함에 따라 농민층 분해 현상이 촉진되어 토지 소유에 따라 부가 편재되고 소수의 부농과 다수의 빈농⋅무전 농민으로 양극 분해가 심했다. 그리하여 몰락 농민 다수는 다시 지주전호(地主佃戶) 관계의 전호로 되기도 했지만, 토지에서 유리된 농민들 가운데 일부는 농업 고용인으로서 지주⋅부농의 농업 경영에 고용되거나, 광산⋅수공업 촌락의 임노동자로 전화되었으며, 일부는 도시로 가서 상업에 종사하거나 품팔이꾼이 되었다. 이러한 농업 고용인이나 비농업 인구의 증가는 곡물과 면포의 상품화를 증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고추⋅생강이나 도시 주변의 소채 등의 작물, 연초를 비롯한 기호품 재배를 촉진시켰다.

또한 조선 후기 장시의 양적⋅질적 증가, 사상(私商)의 발달, 금속 화폐의 전국적인 유통 등은 상품 작물의 유통을 원활히 해 주고 그에 대한 이윤을 보장해 줌으로써 상업적 농업 발달을 촉진시켰다. 상업적 농업의 주요 작물은 쌀⋅콩⋅보리⋅조 등의 곡류, 명주류(明紬類)⋅면포류(綿布類)⋅마저류(麻苧類) 등의 직류(織類), 생강⋅지황(地黃)⋅홍화(紅花)⋅대청(大靑)⋅천궁(川芎)⋅자초(紫草)⋅인삼 등의 소채와 약재, 연초와 같은 기호품, 왕골로 짠 자리와 갈대로 짠 삿자리 등의 석류(席類)가 있었다. 이 가운데 곡물 이외의 일부 특정 작물이 먼저 상품작물이 되었고, 곡물의 상품화는 서서히 진행되었다.

특정 작물의 지역 분화와 주산지 형성은 사회적 분업의 진전에 따른 상업적 농업의 발달 정도에 따라 완결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18세기 중엽 이후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특정 작물에 대한 지역 분화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나라 특정 작물의 주요 산지와 작물로 유명한 것은 옥천⋅영동⋅공주⋅황간⋅회덕⋅황주⋅봉산 등의 면화, 임천⋅한산의 모시, 강진의 고구마, 대도시 부근, 특히 경성⋅개성⋅수원 부근의 소채, 전주의 생강, 황주의 지황(地黃), 개성⋅강계의 인삼, 안동⋅예안의 왕골, 전주의 닥나무와 종이, 청산⋅보은의 대추, 황주⋅봉산의 배 등이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주곡 작물을 재배하지 않고 특정 작물을 재배해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부를 축적할 수도 있었다.

상업적인 농업 경영에서는 더 많은 수입을 얻으려고 노력하게 되는데, 핵심이 되는 것은 농우와 품삯 등 농업 노동에 소요되는 자금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에 따라 김매기에 소요되는 노동력을 줄일 수 있는 농법이 개발되었으며, 토지로부터 이탈하는 농민들을 고공(雇工)과 같은 임노동자로 이용하는 농업 경영 방식이 확산되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정약용의 상업적 농업관」,『대동문화연구』18,안병직,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1984.
「조선후기 상품작물의 재배」,『외대사학』5,이영학,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연구소,1993.
저서
『증보판 조선후기농업사연구』Ⅱ, 김용섭, 일조각, 1990.
『증보판 한국근대농업사연구』상⋅하, 김용섭, 일조각, 1988.
『증보판 조선후기농업사연구』Ⅰ, 김용섭, 지식산업사, 1995.
『조선후기 사회경제사의 연구』, 송찬식, 일조각, 1997.

관련 이미지

정약용 초상

관련 사이트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링크연결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