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경제조선 후기실학자의 토지 개혁론

유형원의 균전론

농부 한 사람마다 1경(頃)을 받아 점유한다【일전(一佃)은 곧 농부 네 사람이 받게 된다】. 법에 의거하여 조세를 거둬들인다【그 조세는 토지의 품질이 높고 낮음에 따라 많고 적음이 있다. 아래를 보면 자세하다】. 4경마다 군인 1명을 뽑는다.【농부 네 사람 중에서 씩씩하고 튼튼한 사람 1명을 골라 군인으로 삼고, 농부 세 사람은 보인(保人)으로 삼는다. 그 기병과 보병 및 보조(保助) 등에 대한 법식은 아래 및 병제에 자세하다】.

유생으로서 처음 입학한 자【즉 증광생 또는 외사생이라고도 칭하는데】는 2경, 내사에 들어간 자【즉 내사생】는 4경과 병역을 면제한다. 【충의위⋅충순위의 위사는 외사생으로 대우하고, 내금위의 위사 또는 무선이라고도 칭하는 자, 적자로서 종친이거나 음서의 자격이 있는 자는 내사생으로 대우한다. 학교의 내사⋅외사는 학제에 자세하다. 충의위⋅충순위⋅내금위는 아래 및 병제에 자세하다. 적자이거나 종친이거나 음서의 자격이 있는 자는 아래에 자세하다. 무릇 병역에서 면제된 자도 그 토지의 조세는 모두 위와 같다.】 현직 관리로서 9품 이상부터【모두 실직을 따르고, 물론 계는 무시한다.】 칠품까지는 6경, 관품이 높아질수록 더하여 정이품에 이르면 곧 12경이고, 모두 병역을 면제한다【6품 이상은 8경, 3품 이상은 십경, 정이품 이상은 십이경이다. 무릇 품직자로서 토지를 받는 자는 벼슬을 그만두고 토지를 반납해도 역시 병역은 면제한다】. 벼슬을 하는 자가 벼슬을 하면 곧 녹을 받는다【각 품의 녹의 액수는 녹제에 자세하다.】 벼슬을 그만두고 집에 거주해도 역시 그 토지가 재산이다【현직 관리는 강상(綱常)을 범하거나 도덕을 어지럽히거나 공물을 착복하는 것 등의 큰 죄가 아니면 그 받은 토지를 거두어들이지 않는다.】 이서와(吏胥)과 복례(僕隷)로서 관직에 복무하는 자는 서울에서는 그 봉급을 넉넉히 주어 그 가족을 충분히 부양할 수 있게 한다【무릇 서울에 있는 이서(京吏)이나 복례(隷)는 토지를 받지 않고 봉급만 있으며 서리(書吏)와 조례(皁隷) 등의 봉급은 각기 차등이 있다. 녹제에 자세하다. 지방에서는 봉급과 토지를 섞어서 정하고, 두 사람이 1경이다. 지방의 아전과 복예는 지금의 양에 의거하여 봉급과 토지를 섞어서 정하고, 봉급은 서울의 경우보다 적게 하고, 토지는 사람마다 50묘이다. 각 주⋅현⋅진⋅역의 아전과 복예는 모두 그 정해진 수에 따라 토지의 수를 정한다. 아울러 녹제에 자세하다】. 역시 병역은 면제한다【무릇 직역이 있는 자는 모두 병역을 면제한다】.

반계수록』권1, 전제 상, 분전정세절목

每一夫占受一頃【一佃則四夫所受】. 依法收稅.【其稅隨地品高下而有多少. 詳見下】. 每四頃出兵一人【四夫中擇壯健者一人爲兵, 而三夫爲保. 其騎步兵及保助等例, 詳下及兵制】. 士之初入學者【卽增廣生, 又稱外舍生】二頃, 入內舍者【卽內舍生】四頃, 免其出兵.【忠義忠順衛士, 視外舍生, 內禁衛士又稱武選及世嫡有親有蔭者, 視內舍生. 學內外舍, 詳學制. 忠義衛忠順衛內禁衛, 詳下及兵制. 世嫡有親有蔭, 並詳下. 凡免兵者, 其田稅則皆同上】. 職官九品以上【皆從實職, 勿論資階】. 至七品六頃, 遆加至正二品則十二頃, 並免出兵【六品以上八頃, 三品以上十頃, 正二品以上十二頃. 凡品職受田者 雖罷散歸田, 亦不出兵】. 仕者仕則受祿【各品祿數, 詳祿制】. 罷官家居, 亦資其田【職官非有反常敗道犯贓降敵等大罪, 不收其田】. 吏胥僕隷役於官者, 京則優給其祿, 足以養其老幼【凡在京吏隷, 不受田, 有其祿, 書吏皁隷等祿, 各有差. 詳祿制】. 外則祿田參定, 而二人一頃【外方吏隷, 量今之宜, 祿田參定, 祿減於京, 而田每人五十畝. 各州縣鎭驛吏隷, 皆隨其定額, 畫定田數. 並詳祿制】 亦免出兵【凡身有職役者, 皆免出兵】.

『磻溪隨錄』卷1, 田制 上, 分田定稅節目

이 사료는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 주장한 균전론(均田論)에 대한 내용이다. 유형원은 『반계수록(磻溪隨錄)』에서 토지 제도의 개혁을 가장 중요시하였다. 그는 토지 제도를 정비한 후 백성의 부담과 국가의 재정을 논하고, 그 기초 위에 정치와 국방과 교학의 제도를 논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유형원은 중국 서주(西周) 시대에 시행되었던 정전제(井田制)의 이상을 살리는 방향에서 균전제를 주장하였다. 그의 토지제도 개혁안은 토지국유제를 전제로 하여 농민 장정 1인당 1경의 토지를 지급하고, 선비와 관리에게는 2~12경의 토지를 차등 지급하자는 것이었다. 토지 분배는 우선 국가기관에 일정한 토지를 배정하고, 관리들은 품계에 따라 최고 12경에서 최하 2경의 토지를 주며, 농민에게는 장정 1인에게 1경씩 토지를 균등하게 나누어 준다는 것이었다.

1경은 약 40두락으로 장정 1인이 경작 가능한 면적이며, 동시에 조세를 내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면적이라는 것이다. 또 토지를 지급 받은 관리들도 자기 집 노동력을 이용해 직접 경작하게 하며, 소작을 금지시켜 소정의 분배된 토지 이 외에는 일체 겸병의 여지를 없애고자 하였다.

유형원의 균전론은 경지 정리를 시행하되 정전제 형식에 따라 토지를 가능한 한 정사각형으로 구획하고, 농로와 수로를 정비하자는 것이다. 또 토지 분배 절차에서 서민은 20세부터, 사족(士族)은 15세부터 지급하고, 여자에게는 원칙적으로 분배하지 않으며, 토지를 받은 자가 사망하거나 이사했을 때는 즉시 보고해 다시 분배하는 절차를 밟게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토지를 지급하거나 환수할 때는 증빙 문서를 작성하고, 동시에 토지대장에 기록해 관계 관청에서 보관하게 하며, 위반자는 엄벌해 문란을 방지하도록 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유형원의 균전론은 농민의 최저 생활을 보장하고 균등한 부담에 의해 국가의 재정을 확보한다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개혁론에도 역시 전근대적인 한계성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양반상민의 차별적 신분 계층이 인정되고 국가 기관 및 궁방전(宮房田) 등의 특권적 토지 소유자가 허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가 제기한 전제 개혁의 이념은 후대 실학자들에게 계승되어 다양하고 창의적인 개혁론을 제기하게 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조선후기 진보적 역사관의 성립-유형원의 변법사관-」,『국사관논총』93,김준석,국사편찬위원회,2000.
「반계 유형원 연구」,『근세조선사연구』,천관우,일조각,1979.
「조선후기 토지개혁론과 토지공개념」,『역사비평』66,최윤호,역사문제연구소,2004.
저서
『조선시대 농본주의사상과 경제개혁론』, 오호성, 경인문화사, 2009.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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