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경제근대개항 후의 사회⋅경제적 변동

지주제와 농업 경영

- 소작인이 혹 경작하는 데 게을러서 논밭이 황폐해지거나, 타작을 할 때 정확하게 하지 않고 곡식을 숨기거나 하면 마땅히 소작을 취소해야 할 것이다. 이는 농가에서 배격해야 할 일이다. 논밭에 힘을 기울여 농사를 열심히 짓고 수확을 정확하게 하여 분배를 상세하게 하면 마땅히 소작을 계속 유지하도록 할 것이다. 이는 농가에서 권장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게으른 사람은 징벌하고 근면한 자를 사용하는 것이 실로 공정한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 위협을 하려고 혹 올해에는 이모씨에게 소작을 주고 내년에는 또 한모씨에게 소작을 주고 그 다음 해에도 그렇게 한다면 비록 근면한 농부라도 1~2년만 논밭을 대충 관리할 것이니, 어찌 성심을 다하여 힘써 경작하겠는가? …

- 경작을 게을리하거나 타작할 때 협잡을 부리는 사람은 비록 가까운 친척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소작을 옮겨서 장래에 동일한 잘못이 일어나지 않도록 징계해야 한다. 농사를 열심히 짓고 타작을 정직하게 하는 사람은 설령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꼭 소작을 계속 주어서 자주 옮기는 폐해를 방지해야 한다. … 이 장토(庄土)는 사람은 많은데 땅은 좁아서 경작지가 충분하지 않고 일할 거리가 많지 않으며 농업을 주로 한다. 이 때문에 비록 소작인의 논밭이라도 자신의 물건처럼 아끼며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긴다. 그리고 항상 소작을 뺏길까 두려워서 마름을 보기를 맹호를 보듯이 한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어찌 인내하지 않고 쉽게 소작을 옮기겠는가? 그러므로 잘못이 있지 않다면 절대로 소작을 옮기지 말 것이다.

- 설혹 청탁을 받거나 뇌물을 받고서 다른 사람이 경작하던 논밭을 청탁인에게 옮겨 준다면, 청탁한 사람들은 기뻐하여 감사할 것이다. 그러나 소작을 빼앗긴 사람은 비록 빌린 땅이라고 하더라도 애지중지하며 오랜 세월 동안 경작하며 먹고 살았는데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빼앗기니 그 분함이 어떠하겠는가. 그러므로 한때의 생색을 위해서 끝없는 원한을 만들지 마라. …

- 타작을 많이 겪어 보지는 못했지만, 지역마다 달라서 혹은 풍속이 어리석거나 혹은 인심이 예전과 같지 않아서 타작할 때 혹은 몰래 빼돌려서 감추는 폐단이 있다. 궁벽한 곳에 있는 사람들은 마음이 욕심 때문에 막혀서 다만 눈앞의 작은 이익만 알고 훗날의 큰 해를 알지 못하니 어찌 개탄하지 않겠는가. … 타작을 할 때 한두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보고 확인한다. 어찌 (속임을) 알지 못하겠는가. 비록 타작 감독관을 잠시 속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마을 사람이 함께 아는 바니 어찌 오랫동안 속일 수 있겠는가? … 그러므로 촌민들이 이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단단히 단속하여 혹시라도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할 것이다.

- 혹시 잘못을 저지른 일이 있으면 소작을 옮겨야 한다. 나이 든 농민들에게 널리 물어서 농사를 열심히 잘 짓는 사람으로 대신하도록 한다. 훗날의 폐단을 막기 위해서라도, 안면이 있다고 해서 잘못을 그대로 봐주면 안 된다.

- 종자(種子)는 타작마당에서 그대로 제하여 주어서, 다음 춘분 때의 번거로움이나 소작인들의 의심이 없도록 하라.

- 논밭이 있는 곳에 집이 가장 가까운 소작인이 제일 좋고 … 집이 가장 먼 사람이 가장 좋지 않다. …

- 타작 감독관이 내려온 후 곧바로 각 처의 소작인들에게 타작을 시키되 감독관의 지휘에 따라서 모든 일을 상의하여 조처한다. 소작인 관련 일에 대해서 감독관이 누구의 청탁을 받고 이유 없이 소작을 옮긴다거나, 혹은 다른 소작인이 경작한 논 중에서 몇 두락을 청탁한 사람에게 옮겨 주는 등의 잘못을 저지른다면, 소작인들과 맺은 약속이 헛된 것이 되어 버릴 뿐만 아니라 비웃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 마름의 일에 관해서는, 서울 인근 지역에서 타작할 때 20말을 한 섬이라 하고, 쌀로 만든 후에는 8말이 되는 것으로 계산하는 것이 통례다. 이 때문에 8말이 되게끔 계량하여 섬을 만드는 것도 또한 통례였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한 되, 한 말의 이익을 얻으려고 타작할 때에 후하게 받아 와서 고쳐서 계량하는 잘못을 저지른다. 계량을 고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다.

- 계량을 고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어떤 사람은 의심하거나 비웃을 것이다. 혹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의심하거나 비웃는 사람은 그것이 마땅히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것이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옳고 그름을 생각해 봐라. 어찌 옳은 것을 버리고 그른 것을 따를 것인가? …

- 볏섬은 봄 동안 돈으로 바꾼다. 처음에 고쳐서 계량한 벼는 쌀로 만들었을 때 8말짜리의 온전한 한 섬[石]이 되지 못한다. 풍년일 때에는 금액을 적당히 줄여서 팔 것이다. 그런데 흉년일 때에는 비록 다른 사람의 벼 값과 같은 가격에 판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벼가 다 팔린 뒤에 가장 마지막에 부득이 사간다면, 온전한 섬이 아니어서 사 가는 사람이 책망을 할 것이다. 그러나 벼를 쌀로 만들 때8말이 온전히 한 섬이 되도록 한다면, 어찌 값을 줄일 염려나 책망을 받는 안타까움이 있겠는가. 이대로 준행할 것이다.

- 볏섬 값이 지금 비싸고 싼 것이 일정하지 않다. 만약 가격이 쌀 때 팔았다가 며칠 못 되어 가격이 오르면, 이미 판 돈이 아직 상납이 안 되었을 때 일부러 받지 않다가 값이 오를 때 받아 낸다면 어찌 의심을 받지 않겠는가? 이는 다름 아니라 협잡하는 폐단이 있기 때문이다. …

- 볏섬을 팔 때 인근 동네의 친지들이 사갈 경우에, 혹 정한 볏섬값대로 돈을 가져오지 않은 채 주인에게 사정을 봐 달라고 하면서 간청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인정에 얽매여 마지못해서 기한을 받고 볏섬을 줬다가 기한이 지나도 돈을 받지 못하면 끝없이 독촉해도 차일피일 미뤄서 곤란하고 책망 받는 지경에 이르고, 심지어 인정을 상하게 되는 안타까움에 이른다. …

- 마름과 소작인은 서로 꾸짖으면서도 함께 돕는 사이다.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불의를 따르지 말고, 목전의 욕심 때문에 불신에 빠지지 말며, 잘못을 저질러 서로 반목하는 데 이르지 말고, 사사로이 청탁하여 서로 무정하게 여기기에 이르지 말고, 함께 하며 서로 의지하여 피차 격조하지 말고 마음을 지키며 화평하라. …

『권농절목』

一. 作人或有怠惰於畊田, 田畝荒蕪, 不精於打租, 租束隱匿則宜乎移作而此是農家之所痛惡者也. 至若勤力於田畓, 稼穡穟穰, 精實於收穫, 均分消詳則當爲仍作而此是農家之所稱善者也. 然則懲惰用勤, 實是公正也. 不此之爲而欲其威脅, 或有今年, 移作于李某, 明年又移作于韓某, 又明年亦如是則雖勤農之人, 一二年姑息之田畓, 豈有誠心力畊者乎. …

一. 怠惰畊田與挾雜打租之人, 雖爲族戚之近, 斷當移作, 以懲將來也. 筋力稼穡與精實打租之人, 設有嫌寃之隙, 斷不移作, 以防數差也. … 此庄, 人多地狹, 田土不贍, 生涯不廣, 農業爲主故, 雖貰人之田畓, 愛之如己物, 重之如命脈而常有移作之慮, 畏其舍音, 視若猛虎. 顧此情地, 豈有無難移作之不忍者乎. 然則有過之外, 切勿移作事.

一. 設令或受其請囑, 或受其微物而依囑人之所言, 某作人之所農田畓, 移給于所囑之人則所囑之作人, 喜悅致賀, 然, 見奪之作人, 雖貰作之田畓, 愛之重之, 多年畊食, 忽地無故見奪, 其所憤惋, 當何如哉, 然則爲其一時之生色, 受其無限之埋寃 …

一. 打租, 所經不廣, 然, 處處不同, 或因風俗之愚蠢, 或緣人心之不古, 打租之場, 或有暗取隱匿之弊, 此, 絶峽之民, 識見茅塞, 但知目下之小利, 不知日後之大害, 寧不慨嘆哉 … 打租之場, 非一二人所爲之事則十目所視, 十手所指, 安有不知者乎, 雖曰監打官之暫時見欺, 然, 一洞之所共知則豈能長久欺情乎 … 然則斷斷無峽民此等之弊而或其毋至犯科事.

一. 移作, 倘有犯科則不可仍置也, 廣問其老農, 以勤畊善作之人, 塡代而拘於顔私, 勿爲曲從, 以杜後弊事.

一. 種子. 打租之場, 仍爲除給則無明春分之煩, 亦無作人致疑之慮矣. 以此遵行事.

一. 田畓所在之處, 家近作人則最善, … 家遠作人則最忌, …

一. 監打官下來後, 卽其知委于各處作人而打租, 依其監打官之指揮, 其外凡百事務, 相議措處矣. 至於作人之事, 監打官, 或受其某某人之私囑, 有無故移作之擧, 或某作人之所農畓中幾斗落, 割給于所囑之人則此是例事, 然, 若如是則所約諸條, 非徒歸於虛地, 難免取其痴笑矣 …

一. 舍音, 近畿打租二十斗爲一石而作米則以八斗者, 乃是通行之規也. 打租之場, 以八斗作米量斗量作石者, 亦是常例也. 或者取其升斗之利, 打租之時, 厚捧輸來, 有改量之弊則改量, 的是曲事也. …

一. 不爲改量事. 或有疑恠冷笑之人, 或有宜當固然之人矣. 疑恠冷笑之人則知其當食之物也. 宜當固然之人則知其非倘來之物也. 然則是非兩道辦矣. 豈有捨是而從非者乎 …

一. 租包春間作錢也. 當初改量之租則應非作米八斗之完石故, 年豊之時, 減價幾許然後, 斥賣而歲歉之時, 雖與他人之租, 同價斥賣, 然, 他處租包無所存然後, 最末, 不得已買去而非完石之故, 買去人處, 應有責言矣. 今此租則作米八斗量作石者也. 何患減價之慮, 何有責言之嘆, 以此遵行事.

一. 租包價, 近者, 高歇無常, 若値價歇之時, 斥賣而不幾日, 價高則已爲放錢條, 姑未受納而巧値價高, 豈不受疑乎. 此無他, 或有挾雜之弊故也. …

一. 租包作錢之際, 隣近洞親知間買去之時, 或租包價, 不得準數持來而不足條, 擔當其主人之意, 恳請則主人, 拘於顔面, 不得已受其定限出給而過期不納則雖無限督促而此日彼日, 以至困責, 幾乎傷情之嘆 …

一. 舍音與作人, 相戒而共濟, 莫因目下之微利而蹈於不義, 莫因眼前之嗜慾而溺於無信, 勿爲犯科而至於反面, 勿爲私囑而至於無情, 同類相依, 無彼此間隔以存心和平 …

『勸農節目』

이 사료는 개항기 마름이 장토(庄土) 및 소작인(小作人)을 관리하는 방법을 기록한 일종의 지침서다. 표지에는 『권농절목(勸農節目)』이라는 제목만 밝혀져 있으며, 서문에 ‘광서 13년(光緖十三年: 1887년) 정해 7월(丁亥七月)’이라고 적혀 있어 작성된 날짜를 알 수 있다. 누가 작성해서 누구에게 준 책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으며, 본문의 내용 중에 ‘근기지방(近畿地方)’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경기도 지방에 있는 장토의 소유자가 마름에게 준 책으로 보인다. 전반부는 한문으로 적혀 있으며, 후반부는 그에 대한 한글 번역문이다.

조선의 토지 제도에 내재된 철학은 ‘왕토 사상(王土思想)’으로, 기본적으로 모든 토지는 군주의 것이었다. 따라서 개인이나 기관은 국왕에게서 필요한 토지를 빌려서 사용하는 대신 정해진 세금을 바침으로써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재정을 부담한다는 것이, 조선을 처음 세웠던 유학 관료들이 구상했던 이상적인 토지제도 운영 방식이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는 원칙적으로 개인 대 개인 간의 토지 매매는 존재할 수 없었다. 건국 초기 조선 정부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에 의거해 고려 말기 권문세족이 독점하고 있던 대단위 토지들을 해체하여 자영농들에게 배분하는 방식으로 국가 경제를 재편해 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소규모 자영농 중심의 경제는 역사 속에서 크게 두 가지 위기를 맞게 된다. 임진왜란 이후 전 국토가 황폐화되고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자영농이 감소하는 대신 대규모 토지를 독점한 대지주가 나타나는 현상이 발생한다. 또한 농업 기술과 상품 화폐 경제가 발달되면서 미작 농업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였으며, 그 결과 지주-소작인 관계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다. 이는 조선 초기 유학 관료들의 구상과 달리 토지의 사적 소유를 전제 혹은 지향하는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조선의 토지 제도법은 사문화되고, 실제로는 사적 소유 관습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개항 당시 한국의 토지는 민유지(民有地), 관유지(官有地), 궁유지, 곧 궁방전(宮房田)으로 나눠져 있었다. 그 비율을 살펴보면, 1900년대 초 한국의 사회계층은 지주 계급이 1할, 자작농이 2~3할 정도, 소작농이 6~7할 정도를 점하였는데, 이로 보아 지주적 토지 소유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주적 토지 소유는 소작지의 황폐화와 같은 소극적 저항으로부터 소작료 거부 운동 등의 대지주 투쟁과 조선 정부의 통치 질서를 거부하는 농민 전쟁의 와중에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며, 세도 정치기부터 지주와 소작농 사이의 분쟁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따라서 지주의 입장에서는 향촌 사회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지키기 위해 농장 및 소작인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해 나갈 필요가 있었다. 본 사료는 그러한 맥락에서 작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본서의 내용 가운데 주요한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소작인의 선정 및 소작지의 이전에 관한 사항을 보면, 소작인의 선정 기준은 근면함과 농사기술, 그리고 집과 논밭과의 거리이다. 소작지 이전에 관해서는 게으르고 협잡하는 사람은 꼭 바꾸되 그 외에는 바꾸지 말 것과, 마름이 청탁⋅뇌물을 받는 일과 감타관(監打官)의 소작지 이전을 금하고 있다. 타작에 관해서는 소작인이 타작마당에서 속이는 일‚ 마름이 두량(斗量)을 속이는 일 등을 금지할 것을 밝혔다. 작전(作錢)의 경우는 곡식 가격의 변동이 심하니 유의해야 한다고 지시하고 있다. 그 외에 종자는 타작마당에서 줄 것, 작인과 마름이 서로 권면하며 도울 것 등이 있다. 소작인을 보호 혹은 통제한다는 취지에서 마름에게 다양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으며, 개화기 당시 지주들의 지주-소작인 관계에 대한 인식과 실제 관행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지주제의 성격과 근대화의 두 가지 길」,『역사비평』20,이호철,역사문제연구소,1992.
저서
『조선시대 양반가의 농업경영』, 김건태, 역사비평사, 2003.
『한국근현대농업사연구: 한말⋅일제하의 지주제와 농업문제』, 김용섭, 일조각, 1995.
『맛질의 농민들 : 한국근세촌락생활사』, 안병직, 일조각, 2002.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 이영훈,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4.
『조선후기사회경제사』, 이영훈, 한길사, 1988.
『농업경제사연구』, 이호철, 경북대학교 출판부, 1998.
『조선토지조사사업에 있어서의 근대적 토지소유제도와 지세제도의 확립』, 조석곤,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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