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경제근대정부와 민간의 식산흥업 노력

근대 기업에 대한 이해

요즈음 서양 제국에서는 모두 회사를 설립하여 상인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데, 이는 실로 부강의 기초라 하겠다. 대저 상업이란 한 고장에 없는 것을 영영 없도록 하는 것도 아니며 한 고장에 있는 것을 독점하여 자기 소유를 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곳에 있는 물건을 저쪽 없는 곳에 공급하는 것이다. 또 저쪽에 남는 물건을 부족한 이쪽에다 보태 주는 것이니, 이는 하늘이 사람을 기르고 사람이 생을 누리는 방법이다. 이를 버리고 하지 않으면 농업⋅공업이 모두 피폐해져, 하늘은 사람을 기르지 못하고 사람은 생을 보존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성인(聖人)이 『주역(周易)』의 서합(噬嗑)1)의 상(象)을 보아 사람들에게 낮에 시장에 가 교역하기를 가르친 것이다.

그러나 동방의 상인들은 지금까지 4000여 년을 지내 오는 동안, 단지 한 사람 단독으로 무역하고 바꿀 줄만 알았지,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경영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상업이 성하지 못하고, 나라 형세가 떨치지 못한 지가 오래였다. 저 서양은 그렇지 않아서 한 사람 혼자 힘으로 무역할 수 없으면 반드시 10명이 함께하고, 10명의 힘으로도 되지 않으면 반드시 100명, 1000명이 함께한다. 그래서 크고 작은 일이 성사되지 않음이 없다.

……(중략)……

대저 회사란 여러 사람이 자본을 합하여 여러 명의 농공(農工)⋅상고(商賈)의 사무를 잘 아는 사람에게 맡겨 운영하는 것이다.

……(중략)……

또 정부에서 그 사업을 장려하여 날로 발전하게 한 회사도 있다. 그러므로 각국 정부가 어떤 회사가 국가에 이로운 것으로 판단되면, 장려하는 방법이 매우 많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정부와 회사가 서로 계약하는 것이다. 만약 회사가 큰 손해를 입거나 본래의 자본금에서 결손이 나면 정부가 반드시 결손을 보상하여 사원으로 하여금 항상 본래의 자본금을 축내지 않게 하는 것이다. 더러는 정부가 회사의 이익을 보증하기도 하는데, 회사의 이익이 자본금의 이자 수익에도 못 미칠 때는, 정부에서 돈을 내어 그 이식을 충당해서 사원으로 하여금 항상 자본에 대한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크고 작은 회사들이 앞을 다투어 생겨 날로 번성하고 있다.

지금 서양 제국에는 바다에 화륜선이 달리고, 육지에는 화차(火車)가 달리며, 전선을 설치하고 가로등을 켜 그 조화를 무엇이라 이름 지을 수가 없다. 그 대요는 사해(四海)에 출병(出兵)시켜 만국과 통상을 하여 천하에 부강을 떨치고 이웃 나라에 위엄을 보이는 것이 고금 이래로 없던 일이다. 이런 일은 모두 회사가 설립된 이후부터 있게 되었다.

……(중략)……

이제 회사 규칙 5조항을 다음에 적어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제1조.

……(중략)……

고표(股票)을 발매하는데, 만일 회사의 자본금으로 1만 냥이 필요하면 1장의 정가가 10냥짜리 고표 1,000장을 만들어 세상 사람들이 마음대로 와서 매입하게 하는데, 고표를 사는 사람을 사원이라 한다.

제2조. 회의에서 회계 사무에 능숙한 사람을 뽑아 회사 일을 맡긴다. 혹 고표를 많이 산 사람 몇 사람이 사무를 맡기도 하는데, 역원(役員)이라 이름 한다.

제3조. 역원의 회의에서 매 1년의 회계 사무와 이익의 다소를 신문에 발표하여 사원에게 의욕을 갖도록 하는 한편 이익금을 나눠 보낸다.

제4조. 사원 중에 혹 본전을 빼서 다른 데 투자하기 위해 자기의 고표를 사사로이 다른 사람에게 파는 일을 회사에서 금지하는 법은 원래 없다. 또 고표를 사사로이 파는 규례는 회사의 성쇠와 관계가 있다. 만일 회사의 이익이 매년 많으면 고표의 값이 올라 처음에 10냥짜리 고표가 11~20냥이 되기가 어렵지 않다. 혹은 회사의 이익이 비용 충당에 모자라거나 본전에 결손이 나면, 비록 1000냥짜리 고표도 휴지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므로 회사에는 특별히 부지런하고 유능한 역원을 뽑아서 항상 회사 일을 살피게 한다.

제5조. 또 다른 종류의 회사에서는 이런 것이 있다. 몇 사람이 스스로 자본을 내어 회사를 세우고 사원 모두가 회사 일을 맡는 제도이다. 혹 몇 사람이 낸 자본이 회사의 자본금에 미달하면 표권(票卷)을 산 사람은 매년 이익을 나누고, 또 본전은 몇 년 안에 갚는데, 만일 1000장의 표(票)의 본전을 20년 안에 갚는다면 매년 추첨을 하여 당첨자에게 50장의 본전을 갚아 퇴사(退社)하게 한다. 그러면 이런 회사는 20년 후면 몇 사람의 소유가 된다.

〈한성순보〉제3호, 1883년 11월 20일

1)역(易)에서 64괘의 하나로, 입 안의 음식을 씹어서 위 아래가 합치게 한다는 의미이다. 입속에 음식물이 있을 경우 위 아래 간격이 생긴다. 이는 부부와 군신 등 인간 관계가 틈이 생긴 것에 비유되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서합괘에서는 음식물처럼 사이에 끼어 이간질하는 자에게 형벌을 내려 다스리는 방법이 제시된다. 그 외에 물건을 교역할 때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서로 교환하여 융통한다는 의미도 있다. 이는 『계사전(繫辭傳)』 하(下)의 “한낮에 시장을 열어 천하의 백성을 이르게 하고 천하의 물화(物貨)를 모아 가지고 서로 바꿔 가서 각각 그 자리를 얻게 했다. 이것은 아마도 서합에서 취했을 것이다.”라는 내용에서 유래하였다.

今泰西諸國莫不設會而招商, 寔爲富强之基礎也. 盖商者, 不以方域之所無而廢其獨無, 不以方域之所有而擅其獨有. 必便此方之所有者, 以資彼方之所無, 又以彼方之所餘者以補此方之不足. 是天所以養人, 人所以養生. 舍是不由, 則農工俱病, 天不能養人, 人不能養生. 故古之聖人, 觀噬嗑之象, 敎人日中爲市交易而退也. 然東土之有商者, 至今爲四千餘載, 而只知一人之獨貿獨換, 終未知衆人之會議會辦, 商務之不旺, 國勢之不振, 坐此久矣. 彼泰西則不然, 有一人之不能獨貿獨換者, 則必十人共之, 有十人不能者, 則必千百人共之. 是以大小事務無不可籌.

……(中略)……

夫會社者, 衆人合本而托之數人, 辦理農工商賈之事務者

……(中略)……

自政府獎勵其業, 使之日進盛大. 故如各國政府認眞會社之有益於國家, 則獎勸之方甚多而. 其最要者有二一, 則政府與會社相約, 若會社有受大損及有欠本錢, 則政府必償欠損, 使社員常不失本錢, 或有政府保証會社之有益, 而會社得利不滿本錢之利息, 則自政府出金以充其息, 使社員常得本錢剩息之利益. 故大小會社, 接踵而起, 不難蒸蒸日上也.

今西洋諸國海駛輪船, 陸馳火車, 郵設電線, 街懸煤燈, 以洩造化, 莫名之機括, 兵出四海, 通商萬國, 富甲天下威視鄰邦, 以開古今未有之局面者, 皆會社而後始有此事也.

……(中略)……

古今記會規五欵于左以公同好. 第一欵

……(中略)……

發售股票, 如會社本錢要百萬兩, 則作股票千張, 每一張定價十兩, 使世人任其來買, 名曰社員. 第二欵, 議會中役員務, 選慣熟會社之事務者, 而任社事, 或有買票稍多者, 則便稍多者, 數人擔任事務, 亦名曰役員. 第三欵, 議爲役員者, 每將一年內會社之事務與利益之多少, 印諸新聞以示, 生意之興旺於社員, 且分送剰利. 第四欵, 議社員中, 如有欲抽本錢要他殖貨而已之股票私賣於他人者, 自社中元無可禁之例, 且股票私賣之規, 隨會社盛衰, 低昻其價也. 如會社每年利益稍致綽裕, 則股票價昻, 初雖十兩股票, 必價漲十一二三四五六七八九二十兩, 亦不難也. 或會社利源不充, 費項及有損本股, 則初雖千兩股票, 終不過等諸古紙. 故自會中另選勤幹役員, 常察會社也. 第五欵, 又有一種會社, 如數人相謀, 而自出本錢以結會社, 則其爲社員者, 槪皆擔任會社, 或數人所出本錢, 不足充會社本股, 則必發賣票卷, 以充其額, 然社員與賣票者, 約每年分利, 且還附本錢於幾年以內也. 如賣票千張, 約二十年內全還本錢, 則每年抽籖, 使得籖者, 還受五十張本錢, 而因脫會社, 故此等會社, 二十年之後盡歸數人所有也.

〈漢城旬報〉第3號, 1883年 11月 20日

이 사료는 1883년(고종 20년) 10월 통리아문 산하 박문국(博文局)에서 간행한 한국 최초의 근대 신문인 〈한성순보〉에 실린 「회사설(會社說)」 전문이다. 당시 〈한성순보〉는 사실 보도를 중시하는 오늘날의 신문과는 달리 서구 문물을 소개하여 조선인을 계몽하기 위한 논설 및 해외 소식들을 주로 게재하였다. 저자는 김옥균(金玉均, 1851~1894)으로 추측된다.

이 사료에서 설명하는 내용이 어떤 출전에 근거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한성순보〉 간행을 담당했던 박영효(朴泳孝, 1861~1939), 김옥균개화파들이 일본어는 이해했으나 영문은 알지 못했고, 또 이노우에 가쿠고로(井上角五郞) 등 일본인이 이 신문의 간행을 도왔던 것을 감안할 때 아마도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등 일본인 학자들의 저술을 참고했다고 판단된다.

이 기사의 필자는 회사의 정의를, “여러 사람이 자본을 합하여 여러 명의 농공(農工)⋅상고(商賈)의 사무를 잘 아는 사람에게 맡겨 운영하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동양 전통의 상행위와 서양 회사의 차이점에 대해서, 동양의 상행위에 대해서는 “동방의 상인들은 지금까지 4000여 년을 지내 오는 동안, 단지 한 사람 단독으로 무역하고 바꿀 줄만 알았지,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경영할 줄은 몰랐다’고 파악한 반면, 서양은 ‘한 사람 혼자 힘으로 무역할 수 없으면 반드시 10명이 함께하고, 10명의 힘으로도 되지 않으면 반드시 100명, 1,000명이 함께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다수인에게 자본금을 출자 받아 운영하는 주식회사의 형태를 서구적 회사 운영의 핵심으로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중국을 포함한 동양에도 공동 출자를 통해 주식회사와 유사한 형태의 상업 행위가 다수 있었던 것을 감안할 때, 이러한 설명은 서구 지상주의에 경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주주를 공모하는 기본적인 방법을 총 5조에 걸쳐서 명시해 놓았다. 그리고 이러한 기업 행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정부가 기업의 이익에 대해서 보증을 해 주든가 혹은 정부가 직접 기업과 계약을 맺는 지원 형태를 제시했다. 유길준이 저술한 『서유견문(西遊見聞)』에도 비슷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이를 통해 당시 개화파들이 근대적인 기업을 설립하기 위해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인지를 고민했던 내용을 추정할 수 있다. 이는 근대화를 추진하고자 했던 고종의 시도들이 ‘절용(節用)’이라는 유학 신료들의 명분에 번번이 부딪쳤던 당대의 논의 구도와도 관계가 있다.

박영효, 김옥균개화파는 그 중심에서 활동했던 인물로, 〈한성순보〉를 그들의 개화 사상을 확산하기 위한 기관지로 활용하려고 했다. 실제로 통리아문은 회사 설립을 권장하는 정책을 추진했으며, 주로 서울⋅인천⋅부산을 중심으로 다수의 상회사가 설립되었다. 1883년(고종 20년) 최초의 회사로서 서울에 장통회사(長通會社)⋅양춘국(釀春局)⋅태병국(兌餠局) 등이 설립되었고, 인천의 태평상회(太平商會)⋅대동상회(大同商會), 부산의 해산회사(海産會社)⋅기선회사 등이 설립되는 등 1884년(고종 21년)에 회사 수가 40여 개에 달하였다. 그러나 당시 설립된 회사들은 근대적인 법인격을 갖는 회사라기보다는 개인 기업에 불과하거나 동업자 조합 또는 협회가 많았고, 정부의 특권을 부여받은 특권 단체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이는 회사 설립에 관한 양식과 장정(章程)이 마련되지 않아, 각 회사가 개별적으로 통리아문에 신청하여 허가를 받으면 설립이 가능했기에 일정한 법적 규율과 양식에 제한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습은 〈한성순보〉나 『서유견문』 등을 통해 근대적 회사 제도를 도입하고자 했던 개화파들이, 실제로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정책화할 역량은 부족했음을 보여 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민족정체성 형성에 있어서 근대신문의 역할-한성순보와 한성주보를 중심으로-」,『한국민족운동사연구』21,이용성,한국독립운동사연구회,1999.
「최초의 근대신문 한성순보」,『언론연구논집』2,정진석,중앙대학교,1984.
저서
『서유견문』, 유길준, 서해문집, 2004.
편저
『한국사』12(근대민족의 형성 2), 강만길 외, 한길사, 1994.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