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경제근대정부와 민간의 식산흥업 노력

황국 중앙 총상회의 상권 수호 운동

총상회

황국중앙총상회의 장정을 다음에 기재한다.

우리 황성 중앙의 각 점포는

성조께서 결정하신 처음에 그 터를 허락하셔서 나라의 기초를 세우셨고, 500년 동안 상업을 진작하여 열심히 받들었다. 요새 외국 상인은 발전하고 우리나라 상인의 생업은 쇠락하여 심지어 점포 자리를 외국 사람에게 팔아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면 중앙의 점포 터도 보호하기 어렵게 되며, 이것은 다만 상인들의 실업일 뿐만 아니라

국고와 민생이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우리가 충심으로 본회를 설치하고 규칙을 만들었으니 우리와 뜻이 같은 이는 서로 권하여 충애하는 마음으로 상업을 일으킬 기초를 튼튼하게 하고 국가를 부강하게 할 방침을 찾아 억만년 이어지길 바란다.

회 이름은 황국중앙총상회로 하고 중앙 각 점포가 함께 회의하여 점포의 경계를 정하되, 동쪽으로는 철물교, 서쪽으로는 송교, 남쪽으로는 작은 광교, 북쪽으로 안헌까지 외국인의 상업 행위를 허락하지 말고, 그 경계 밖의 우리나라 각 점포는 본회에서 관할할 것이다.

농상공부에서 허가한 인지는 본회에서 관리하니, 각 도 각 군의 장시⋅항구⋅포구⋅객주⋅회사가 상품을 교역할 때 부과한 무명잡세는 일단 금지하고 인지로 시행한다. 각종 물가의 등락은 본회에서 자세히 살피고 밝혀 좋은 대로 관할한다. 본회의 자본은 매표에 50원씩 정하되 금액은 각자 원하는 대로 납부하게 한다.

본회는 상업 기관이므로 저자의 규칙을 조정하여 사용하되 본회 사무소는 황성의 중앙에 두고 본회의 임원은 회장 1명, 부회장 1명, 주무 2명, 서기 4명, 회계 4명, 사무 30명, 사법 5명, 경찰 25명, 검찰 5명으로 한다.

본회를 설립한 후 회표를 정하여 회표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은 장사를 못 하게 한다. 통상 회의는 한 달에 한 번씩 음력 초2일에 하며 특별 사건이 있으면 임시 회의를 갖는다. 회표는 5각형으로 만들어 오제(五帝)의 다스림을 상징하게 하고, 3층으로 하여 삼왕(三王)의 제도를 기리도록 한다. 표의 앞에는 황국중앙총상회부국안민(皇國中央總商會富國安民) 11자를 새겨 항상 옷고름에 차도록 한다.

독립신문〉 1898년 9월 30일

춍샹회

황국 즁앙 춍샹회의 쟝뎡 대개를 좌에 긔 노라

우리 황셩 즁앙 각뎐은

셩죠 뎡졍 시던 쳐음에 긔디를 윤허 샤 나라의 긔쵸를 셰워 五百년 이에 샹무가 발달 야 각근히 봉공 더니 요이 외국 쟝 흥왕 고 본국 쟝의 업은 죠 야 심지어 뎐 리를 외국 사의게 방 경우에 당 얏스니 이럿코 말지 아니 면 일편 즁앙의 긔디도 보호키 어려오니 이것이 다 뎐민의 실업일  아니라

국계와 민의 젼판 업이 어 질지라

우리가 혈심으로 본회를 셜시 고 규칙을 내엿스니 우리와 이 가진이 셔로 권면 야 츙  으로 샹업의 흥융 긔쵸를 튼튼케 고 국가의 부강 방침을 확구 야 萬億년 무강케 공츅 홈

회 일홈은 황국 즁앙 춍샹회라 고 즁앙 각뎐이 통통히 회를 베프러 뎐의 디계를 뎡 되 동으로 쳘물교 셔으로 숑교 남으로 은 광교 북으로 안헌 지 외국 사들의 쟝 것은 허락지 말고 그 디계 밧긔 본국 각뎐은 본회에셔 관할  일이라

롱샹공부에셔 허가 인지 본회에셔 구관 니 각도 각군 쟝시 항구 포구 쥬 회샤 万물 교역  무명 잡셰 일방 금단 고 인지로 신 며 각항 물가이 무단히 오르고 나리것은 본회에셔 쟈셰히 피고 혀 죠홀로 관할 며 본회 쟈본은 一고에 五十원식 뎡 되 금 다쇼 각기 쇼원로  일이고

본회 쟝로 쥬쟝 니 져쟈 규칙을 가감 야 쓰며 본회 무쇼 황셩 즁앙에다 두고 본회 임원은 회쟝 一 부회쟝 一 쥬무 二 셔긔 四 회계 四 무 三十 법 五 경찰 二十五 검찰 五

본회 셜립 후에 회표로 표쥰을 으되 회표 아니 찬이 쟝를 못게 고 통샹회 에 번식 음력 쵸二일노 며 특별 건이 잇거던 림시 회를 고 회표 五도시게 드러 五뎨 (帝)의 다 람을 응 고 三 (臺)지게 야 三왕(王)의 뎨도를  며 면에다 황국 즁앙 춍샹회 부국 안민(皇國中央總商會富國安民) 十一字를 삭여 항샹 옷에 찰 일

〈獨立新聞〉, 1898年 9月 30日

이 사료는 1898년(대한제국 광무 2년) 9월 30일 〈독립신문〉에 게재된 황국중앙총상회의 장정이다. 완성된 장정의 형태는 아닌 듯하나 현재 이외에 다른 기록은 확인할 수 없다. 황국중앙총상회는 1898년 전 군수인 구완희(具完喜, 1876~1945)가 서울의 각 전(廛) 상인을 중심으로 조직한 단체로, 외국 상인의 한성 진출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된 시전 상인들의 이권을 보호하기 위한 이익 단체 성격을 띠고 있다. 구성원으로는 독립 협회로부터 배척당해 면관된 전 참정 조병식(趙秉式, 1823~1907)을 회장으로, 전 참봉 이종래(李鍾來)를 부회장으로 각각 추대하였다. 독립 협회 영향을 받아 이를 모방하여 만든 ‘협회’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본 사료 첫머리에서 황국중앙총상회는 자신들의 존재 근거를 ‘성조(聖朝)께서 자신들에게 터를 내리신 것’에서 찾고 있다. 실제로 한성 내에서 시전 건설이 기획된 것은 1399년(정종 1년)이었으며 1410년(태종 10년)에 시전의 지역 경계를 정하고 1412년 실제 건물이 완공된 바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황국중앙총상회는 자신들이 조선에서 상행위를 허락받은 유일한 정통 상인이자 상무(商務)의 주체임을 자임하고 있다.

특히 황국중앙총상회가 옛 시전 상인들의 후신이었다는 사실은 본 사료의 다른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은 애초부터 정부에서 허가하지 않은 난전(亂廛)을 규제하기 위해 정부 허가 상인인 시전 상인들에게 도성 아래 10리 지역 내에서 금난전권(禁亂廛權)을 부여한 바 있다. 이러한 특권은 17세기 초반에 발생했다가 1791년(정조 15년)에 폐지되었다. 그런데 본 사료 중 “동으로는 철물교, 서로는 송교, 남으로는 작은 광교, 북으로는 안헌까지 외국인들의 상업 행위를 허락하지 말고, 그 경계 밖의 우리나라 각 점포는 본회에서 관할할 것이다”라는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종로 일대 시전 지역에 외국 상인의 상행위를 금지하는 ‘상권 수호’의 의미를 담고 있는 한편, 그 외 지역 점포에 대한 관할권을 황국중앙총상회가 갖겠다는 것으로, 정조(正祖, 재위 1776~1800) 이전의 금난전권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심지어 농상공부에서 상공업에 관한 세금을 부과할 때 사용하는 인지(印紙)도 황국중앙총상회가 관할할 것이며, 물가의 등락도 관리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이는 금난전권의 전국적인 확대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황국중앙총상회는 “외국 상인은 발전하고 우리나라 상인의 생업은 쇠락하여 심지어 점포 자리를 외국 사람에게 팔아 버리는 지경에 이른 것”에 대응하여 상권을 수호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였지만, 한편으로는 한성 내 시전 상인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부활, 확대하기 위해 설립한 이익 단체이기도 하였다.

황국중앙총상회가 실제로 상업적 영역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는 현재 확실히 알려진 바 없다. 대신 독립 협회와 연대해 노륙법(孥戮法)연좌제(連坐制)를 부활시키는 것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했고, 개혁 내각을 설립할 것을 요구했으며, 모함을 받아 감옥에 수감된 독립 협회 회원들의 석방 운동을 전개하는 등 당시 정국 속에서 매우 급진 개혁적인 정치 운동에 참여한 것이 발견된다.

본래 이익 집단으로 시작되었던 황국중앙총상회가 어떻게 독립 협회와 함께 정치 개혁 운동에 뛰어들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정황은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나 1898년 당시 독립 협회가 추진했던 민권 운동, 자주 독립운동이 소수 개화파 및 기독교인들을 넘어 보다 넓은 층으로 확산되었으며, 그 중요한 축으로 시전 상인들이 존재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본래 세도 가문 및 고위 관료와 유착되어 왔던 것으로 평가되는 시전 상인들이 당시 어떠한 상황에서 독립 협회와 연대하게 되었는지는 더 많은 정치사적 고찰이 필요하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근대 이행기 서울의 객주와 객주업」,『서울학연구』24,전우용,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2005.
저서
『독립협회연구: 독립신문⋅독립협회⋅만민공동회의 사상과 운동』, 신용하, 일조각, 1981.
『한국 회사의 탄생』, 전우용,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 2011.
편저
『한국사』12(근대민족의 형성 2), 강만길 외, 한길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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