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경제근대일제의 경제 침탈

조선 지세령

지세령

다이쇼 3년(1914) 3월 16일 제령 제1호

개정 다이쇼 7년(1918) 6월 제9호, 11년(1922) 3월 제4호, 쇼와 3년(1928) 12월 제10호, 9년(1934) 4월 제7호, 15년(1940) 3월 제30호

지세령은 메이지 44년(1910) 법률 제30호 제1조 및 제2조에 따라 칙재(勅裁)를 받아 이를 공배포한다.

지세령

제1조 토지의 지목은 그 종류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별한다.

1 밭, 논, 대지(垈地), 못과 늪, 잡종지(雜種地)

2. 임야, 신사 및 사찰 부지, 분묘지, 공원지, 철도 용지, 수도 용지, 도로, 하천, 인공 수로, 저수지, 제방, 성곽, 철도 선로, 수도 선로

……(중략)……

제2조 세무서에 토지대장을 비치하고 지세에 관한 사항을 등록한다.

제3조 지세는 토지대장에 등록한 지가(地價)의 1000분의 15를 1년 세액으로 한다.

……(중략)……

제6조 지세는 다음에 기재한 자로부터 이를 징수한다.

1 담보권 또는 담보의 성질을 가진 전당권을 목적으로 한 토지에서는 담보권자 또는 전당권자

2 20년 이상 존속 기간을 정한 지상권을 목적으로 한 토지에서는 지상권자

3 위 경우 이외의 토지에서는 소유자

……(중략)……

제7조 지세는 1년 납부액을 둘로 나누어 다음의 납기에 이를 징수한다. 단 납세 의무자가 한 개의 부읍면(府邑面)에 있는 지세의 1년 납부액이 2원 이하일 때에는 조선 총독이 정한 바에 따라 제1기 또는 제2기에 한꺼번에 징수할 수 있다.

제1기 12월 1일부터 12월 28일까지

제2기 다음 해 2월 1일부터 2월 말일까지

……(중략)……

제7조-3 지세의 납기가 시작되었을 때 납세 의무자(법인은 제외)의 주소지인 부읍면 및 인접 부읍면 안에 있는 전답 지가(地價)의 합계 금액이 그 동거하는 가족의 몫을 합산하여 50원 미만일 때에는 조선 총독이 정한 바에 따라 그 전답의 해당 납기분의 지세는 면제한다. 단, 소작에 부친 전답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중략)……

제8조 국가⋅도⋅부⋅읍⋅면 또는 조선 총독이 지정한 공공단체에서 공용 또는 공공의 필요를 위해 공급하는 토지에서는 지세를 면제한다. 단, 유료로 임차한 토지는 해당되지 않는다.

……(중략)……

제12조 지가(결수)를 수정한 토지는 그해부터 수정한 지가에 따라 지세를 징수한다. 단, 그해에 관계된 지세의 납기일이 시작한 후에 지가(결수)를 수정했을 때에는 다음 해 지세부터 수정한 지가(결수)에 따라 지세를 징수한다.

제13조 세무 관리는 토지의 검사를 행하며, 또한 납세 의무자 및 토지 소유자에 대해 필요한 사항을 심문할 수 있다.

제14조 납세 의무자가 지세를 포탈했을 때에는 100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태료에 처하며, 토지의 상황에 따라 세액을 정하여 포탈한 지세를 추징한다. 단, 자수한 자는 형을 면제한다.

제15조 제14조의 범죄가 납세 의무자가 그 죄를 알지 못한 상황에서 토지의 관리인 또는 임차인의 행위 때문에 일어났을 때에는 그 관리인 또는 임차인을 제14조의 벌에 처한다. 단, 자수한 자는 형을 면제한다.

위 조항의 상황에서 지세는 납세 의무자로부터 징수한다.

조선 총독부, 『조선법령집람』 12집 재무, 14-15쪽

地稅令

大正三年三月十六日 制令第一號

改正 大正七年六月第九號, 一一年三月第四號, 昭和三年一二月第一0號, 九年四月第七號, 一五年三月第三0號

地稅令明治四十四年法律第三十號第一條及第二條ニ依リ勅裁ヲ得テ玆ニ之ヲ公布ス

地稅令

第一條 土地ノ地目ハ其ノ種類ニ從ヒ左ノ如ク區別ス

一 田, 畓, 垈, 池沼, 雜種地

二 林野, 社寺地, 墳墓地, 公園地, 鐵道用地, 水道用地, 道路, 河川, 溝渠, (溜池), 堤防, 城堞, 鐵道線路, 水道線路

……(中略)……

第二條 稅務署ニ土地臺帳ヲ備ヘ地稅ニ關スル事項ヲ登錄ス

第三條 地稅ハ土地臺帳ニ登錄シタル地價ノ千分ノ十五ヲ以テ一年ノ稅額トス

……(中略)……

第六條 地稅ハ左ニ揭クル者ヨリ之ヲ徵收ス

一 質權又ハ質ノ性質ヲ有スル典當權ノ目的タル土地ニ付テハ質權者又ハ典當權者

二 二十年以上ノ存續期間ノ定アル地上權ノ目的タル土地ニ付テハ地上權者

三 前二號以外ノ土地ニ付テハ所有者

……(中略)……

第七條 地稅ハ年額ヲ二分シ左ノ納期ニ於テ之ヲ徵收ス但シ納稅義務者ノ一府邑面ニ於ケル地稅年額二圓以下ナルトキハ朝鮮總督ノ定ムル所ニ依リ第一期又ハ第二期ニ於テ一時ニ之ヲ徵收スルコトヲ得

第一期 十二月一日ヨリ同月二十八日限

第二期 翌年二月一日ヨリ同月末日限

……(中略)……

第七條ノ三 地稅ノ納期開始ノ時ニ於テ納稅義務者(法人ヲ除ク)ノ住所地府邑面及隣接府邑面內ニ於ケル田畓ノ地價ノ合計金額カ其ノ同居家族ノ分ト合算シ五十圓未滿ナリトキハ朝鮮總督ノ定ムル所ニ依リ其ノ田畓ノ當該納期分ノ地稅ハ之ヲ免除ス但シ小作ニ付シタル田畓ニ付テハ此ノ限ニ在ラス

……(中略)……

第八條 左ニ揭クル土地ニ付テハ地稅ヲ免除ス

一 國, 道, 府, 郡, 面又ハ朝鮮總督ノ指定スル公共團體ニ於テ公用又ハ公共ノ用ニ供スル(土地ニ付テハ地稅ヲ免除ス)但シ有料借地ハ此ノ限ニ在ラス

……(中略)……

第十二條 地價(結數)ヲ修正シタル土地ニ付テハ其ノ年ヨリ修正地價(結數)ニ依リ地稅ヲ徵收ス但シ其ノ年ニ係ル地稅ノ納期開始後地價(結數)ヲ修正シタルトキハ翌年分ヨリ修正地價(結數)ニ依リ地稅ヲ徵收ス

第十三條 稅務官吏ハ土地ノ檢査ヲ爲シ又ハ納稅義務者若ハ土地所有者ニ對シ必要ノ事項ヲ尋問スルコトヲ得

第十四條 納稅義務者地稅ヲ逋脫シタルトキハ百圓以下ノ罰金又ハ科料ニ處シ土地ノ現狀ニ依リ稅額ヲ定メ逋脫シタル地稅ヲ追徵ス但シ自首シタル者ハ刑ヲ免ス

第十五條 前條ノ所犯ニ付納稅義務者其ノ情ヲ知ラサル場合ニ於テ土地ノ管理人又ハ借地人ノ行爲ニ基クトキハ其ノ管理人又ハ借地人ヲ前條ノ罰ニ處ス但シ自首スタル者ハ刑ヲ免ス

前項ノ場合ニ於テ地稅ハ納稅義務者ヨリ之ヲ追徵ス

……(下略)……

朝鮮總督府, 『朝鮮法令輯覽』 12輯 財務, 14-15쪽

이 사료는 1914년 3월 조선 총독부가 토지의 사적 소유에 대한 공적 통제라고 할 수 있는 지세(地稅)에 관해 새롭게 제정한 법률인 「조선 지세령(朝鮮地稅令)」이다. 조선을 정치적⋅경제적으로 장악하려는 나라의 입장에서 봤을 때, 조선에 있는 모든 제도 중에 가장 시급히 또 철저히 개혁해야 하는 부분이 바로 토지 제도였다. 조선은 전형적인 농업 국가로서, 국가의 재정, 정치 세력 기반 등 제반 권력이 모두 토지를 기반으로 한 농업 경제력에서 나왔다. 따라서 토지를 장악하고 토지 제도를 장악해야만 조선에 대한 통제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1905년(대한제국 광무 9년) 통감부가 성립된 후 일본은 지속적으로 조선의 토지제도를 개혁하기 위한 준비를 해 나갔다. 한일 병합 이후 일본은 1912년 「토지 조사령」을 발표하여 토지 조사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함으로써 전근대적으로 착종(錯綜)되어 있는 토지 소유 관계를 근대적으로 명확하게 재편해 나갔으며, 이를 통해 일본의 자본 및 인력이 조선에 진출하기 쉬운 상황을 만들어 갔다.

본래 조선 시대 지세는 세종(世宗, 재위 1418~1450) 때 정해진 「연분구등법(年分九等法)」과 「전분육등법(田分六等法)」에서 시작해 조선 후기에 들어서 「결총제(結總制)」로 바뀌어 유지되었다. 조선의 농토를 산정하는 단위인 결(結)은 고정된 면적이 아니라 일정 수준의 농산물을 수확할 수 있는 면적을 상정한 것으로 토질의 비옥도, 농사의 풍흉에 따라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엄밀한 지세 수취를 위해서는 매년 토질 및 작황 상황, 토지 소유 상태 변화에 대한 엄밀한 조사가 필요했지만, 전근대 조선 사회에서는 그렇게 철저한 양전(量田)을 충분히, 자주 시행할 능력은 없었다. 따라서 결(結)을 징세 단위로 간주하는 한 현실적으로 지세 징수의 불확실⋅불공평은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보정하기 위해 여러 제도가 시행된 바 있다.

반면 조선 총독부가 1914년 발표한 「조선 지세령」은 지세 산정 기준으로 ‘토지 대장에 등록한 지가(地價)의 1000분의 15를 1년 세액’을 제시하였다. 즉 조선의 지세 징수는 ‘토지에서 생산한 곡물의 가격’을 기준으로 한 데 반해, 「조선 지세령」은 ‘토지 가격’ 자체를 기준으로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토지 측량, 개인의 토지 소유권에 대한 명확한 보장, 토지 거래 시장의 활성화 등 다양한 전제 조건이 필요했다. 토지는 생산되는 것이 아니므로 원가 및 적정 가격이 존재하지 않아서 적정 가격은 오직 거래를 통해서만 확인될 수 있다. 「조선 지세령」은 전통적인 조선의 농업 경제 구조 및 그 관념적 기반인 왕토 사상(王土思想)을 해체하고, 철저하게 개인의 사적 토지 소유에 기반한 근대 산업 경제를 창출하기 위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전통적 토지 제도가 ‘과도하게’ 해체되면서 농민들의 생활에 어려움이 발생하거나, 근대적 폐해가 통제되지 않은 채 사회에 만연하게 되었다는 점은 지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선의 토지 소유 형태에는 촌락 공동체의 공동 소유지가 상당히 존재했다. 특히 농업에 필수적인 저수지나 농촌 생활에 필수적인 연료⋅퇴비⋅식료품 등 임산 자원을 공급하는 임야지 등의 경우 상당한 자산을 갖고 있는 개인이 아니면 독자적으로 운영하기 어려운 데다 독점에 따른 촌락 공동체 내의 갈등과 폐해 때문에 공유지 형태로 존재했다.

그러나 이러한 토지들은 조선 토지 조사 사업을 통해 대부분 국유지로 편입되거나 대규모 자산을 가진 지주들에게 불하되었다. 본 사료의 제8조에서도 국공유 면세지로서 “국가⋅도⋅부⋅읍⋅면 또는 조선 총독이 지정한 공공단체에서 공용 또는 공공의 필요를 위해 공급하는 토지”라고만 규정하고 있다. 즉 어떤 토지가 공유지인지 아닌지는 조선 총독이 지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인식은 위에 언급한 「조선 토지 조사령」에도 그대로 드러나며, 이는 조선 향촌 사회의 공동체적 경제구조 혹은 도덕적 경제구조를 철저하게 파괴해 갔다.

이러한 공동체성에 대해 전근대성이라고 비판하는 주장도 있으나, 자본주의 역사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 유럽에서도 토지 ‘공유’가 존재하며, 이를 통해 지역 사회의 공동체적 경제구조가 형성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급격한 자본주의적 성장의 부작용을 완충할 수 있는 전통적 경제 구조의 주요 요소들이 과도하게 파괴됨으로써 조선 농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졌음은 부인할 수 없으며, 이는 자국민의 지지에 정치적 혹은 최소한 감성적으로 의존하는 자국 정부가 아니라 침략국 직예총독부가 추진한 정책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식민지시기 소작쟁의와 농업정책의 변화」,,전희진,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2000.
저서
『한말⋅일제초기의 토지조사와 지세개정』, 배영순, 영남대학교 출판부, 2002.
『한국의 지적사』, 서철수, 기문당, 2002.
『지적제도에 관한 공법적 검토』, 이현준, 단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6.
『한국 근대 토지제도의 형성』, 조석곤, 해남, 2003.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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