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경제근대일제의 경제 침탈

화물차 가는 소리(신고산타령 개작 민요)

신고산이 우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

지원병 보낸 어머니 가슴만 쥐어뜯고요

어랑어랑 어허야 양곡 배급 적어서 콩깻묵만 먹고 사누나.

신고산이 우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

정신대 보낸 어머니 딸이 가엾어 울고요

어랑어랑 어허야 풀만 씹는 어미 소 배가 고파서 우누나.

신고산이 우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

금붙이 쇠붙이 밥그릇마저 모조리 긁어 갔고요.

어랑어랑 어허야 이름 석 자 잃고서 족보만 들고 우누나.

조동일, 『한국문학통사』5, 지식산업사, 2005

신고산이 우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

지원병 보낸 어머니 가슴만 쥐어 뜯고요

어랑어랑 어허야 양곡 배급 적어서 콩깨묵만 먹고 사누나.

신고산이 우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

정신대 보낸 어머니 딸이 가엾어 울고요

어랑어랑 어허야 풀만 씹는 어미소 배가 고파서 우누나.

신고산이 우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

금붙이 쇠붙이 밥그릇마저 모조리 긁어 갔고요.

어랑어랑 어허야 이름석자 잃고서 족보만 들고 우누나.

조동일, 『한국문학통사』5, 지식산업사, 2005

이 사료는 「신고산타령」의 일부이다. 「신고산타령」은 함경도 민요로, 후렴에 ‘어랑’이라는 구절이 들어가 「어랑타령」이라고도 한다. (지금은 「신고산타령」 외에 「어랑타령」이 별도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어랑이란 함경북도 경성군에서 동해로 흐르는 길이 103.3㎞의 어랑천에서 유래된 말이다. 이 민요는 「궁초댕기」와 함께 관북 지방, 즉 함경도 산간 지방의 메나리조 정서가 깊이 새겨진 애원성(哀怨聲) 민요이다. 신고산(新高山)은 함경남도에 있는 경원선의 한 정거장 이름이다. 이곳에서 2㎞ 정도 떨어진 곳에 고산(高山)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철도가 생기면서 신고산이라는 역이 새로 생기고 원래의 고산은 구고산(舊高山)이 되었다. 이 때문에 「신고산타령」이란 제목 자체가, 이 민요가 최근까지도 변화해 왔음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

「신고산타령」은 함경도를 기원으로 하고 있지만 충청도까지 전파되면서 다양한 가사의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 현재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가사들은 다음과 같다.

(1)

신고산이 우르르 함흥차 떠나는 소리에 / 잠 못 드는 큰애기는 담보짐만 싼다네 …

산수갑산 머루다래는 얼크러설크러졌는데 / 나는 언제 님을 만나 얼크러설크러질거나 …

가을바람 소슬하니 낙엽이 우수수 지고요 / 풀벌레는 울고 울어 이내 심사를 달래네 …

(2)

신고산이 우루루루 함흥차 가는 소리에 / 구공산 큰애기 반봇짐만 싼다네 …

삼수갑산 머루 다래는 얼크러설크러졌는데 / 나는 언제 님을 만나 얼크러설크러지느냐 …

공산야월 두견이는 피나게 슬피 울고요 / 강신의 어린 달빛 쓸쓸히 비춰 있네 …

상갯골 큰애기 정든 님 오기만 기다리고 / 삼천만 우리 동포 통일되기만 기다린다 …

(1)과 (2)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함흥차’는, 위에서 설명했듯이 이 민요가 철도가 부설된 이후 만들어진 최신 민요임을 보여 준다. 특히 이 가사들에서 철도는 공통적으로 매우 부정적 이미지를 보여 주고 있다. 당시 철도는 학도병⋅정신대⋅강제 공출 물자를 실어 나르는 침략의 통로 그 자체였다. 또한 (1), (2)에서는 서민의 일상을 뒤흔드는 굉음, 또한 어쩔 수 없이 임과 헤어지고 고향을 떠나기 위해 짐을 싸야 하는 이별의 이미지가 나타나 있다. 이는 함흥철도가 애초부터 일제의 침략적 경제개발을 위해 건설된 것이었으며, 일제가 떠난 이후에는 곧바로 분단⋅전쟁⋅피난 등의 사건을 통해 철도를 경험해야만 했던 서민들의 삶이 반영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2)의 경우 마지막 절에 ‘동포’⋅‘통일’ 등의 구절이 포함된 것으로 보아 해방 및 분단 이후에 변화된 양상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노골적인 정치적 내수사는 이 민요가 순수한 구전민요라기보다는 다양한 정치조직에 의해 개사되어 이용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그만큼 이 민요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특히 본 사료인 ‘화물차 가는 소리’는 그러한 양상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조동일이 간행한 『한국문학통사』5권에 수록된 본 사료는 「신고산타령」의 앞 대목과 여음을 그대로 두고 중간 부분을 개작한 민요로 위에 소개한 가사들과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1절에 나타난 ‘화물차’는 구체적으로 학도 지원병을 태우고 만주로 떠나는 기차이며, 지원병들의 어머니들이 이 화물차 소리를 듣고 겪어야 했던 슬픔을 말하고 있다. 2절에서는 같은 화물차에 정신대로 차출된 소녀들과 그녀들의 어머니들을 보여 준다. 3절에서는 전쟁 물자로 공출해 간 집안의 귀금속 및 쇠붙이들이 무기가 되어 만주 지역으로 실려 가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여음에서는 양곡 배급이 적어 콩깻묵밖에 먹을 게 없는 빈곤함, 쇠죽조차 쑤어 줄 수 없는 열악한 식량 상황, 창씨개명을 강요받고 이름마저 빼앗긴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를 노래하고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볼 때 이 민요는 일제 강점기, 구체적으로 말하면 1930년 이후 중일 전쟁이 발발한 뒤 일본의 약탈적인 식민 통치가 강화되면서 나타난 암울한 사회상을 보여 주고 있다. 지극히 ‘운동적’으로 짜인 가사는, 이 노래가 다른 민요들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었다기보다는 현실적인 필요를 가지고 단기간에 개작되었음을 보여 준다. 이 같은 민요는 일제의 폭력적 무단 통치 아래 면면히 계승, 재창조되어 ‘항일 문학’이자 ‘민족의 지하 방송’과 같은 구실을 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논문
「신고산 타령과 어랑천」,『통일한국』84,고태우,평화문제연구소,1990.
「일제하 우리 저항시의 저류」,『논문집』20,안용도,서울산업대학교,1984.
저서
『한국문학통사』, 조동일, 지식산업사, 1994.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