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경제현대경제 개발 계획의 추진과 경제 성장

경제 기획원의 1973년 중화학 공업 개발 전략

중화학공업의 개발 전략

중화학공업화 계획의 추진은 60년대의 공업화 기반을 토대로 하여 민간의 주도와 창의성을 추진 모체로 하되, 정부에서는 재원 조달 계획, 입지 계획, 기술인력의 개발 등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시책을 수립, 실시할 것이다.

이의 주도 업종으로는 철강⋅비철금속⋅조선⋅기계⋅전자 및 화학공업을 선정하여 이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를 실현시키고, 다시 연관산업의 투자를 유발토록 할 것이며 이들 산업을 그 특성에 따라 적정한 입지를 선정하여 연관산업을 집단적으로 유치 개발함으로써 국토의 입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투자비를 절감하여 대외 경쟁력에 대응할 수 있는 국제규모의 시설을 갖추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공업기지계획을 수립, 실시할 것이다.

첫째 철강공업의 집중개발을 위하여 낙동강 하구 또는 아산만에 제2 제철기지를 설정한다.

둘째 온산에 비철금속 기지를 설정하여 동⋅아연⋅연⋅알루미늄 등 국제규모의 제련소 건설을 추진한다.

셋째 종합 기계공업 기지를 창원에 설정하여 기계공업 중 가장 취약부문인 소재공업, 요소부품 가공업의 건설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것이며 연관산업의 계속적인 개발 등 중화학공업화 계획의 중추사업으로 추진토록 한다.

넷째 수출산업으로 크게 부각되고 있는 조선공업의 개발을 위하여 거제도 일대에 조선기지를 설정한다.

다섯째 전자공업의 집중적⋅효율적 육성을 위하여 현재의 구미공업단지를 중심으로 187만 평 규모의 전자공업단지를 조성한다.

여섯째 원료 및 제품의 수송 등 입지조건이 양호한 여수⋅광양 지역에 종합화학 기지를 설정하여 석유화학공업을 비롯한 기초화학공업의 개발을 적극화한다.

이와 같이 중화학공업의 개발에 역점을 둠으로써 이의 생산 증가는 물론 그 연관산업 및 계열산업의 생산도 촉진되어 공업구조가 크게 고도화될 것이며 수출구조면에서도 중화학제품의 수출비중이 1972년의 27%에서 1981년에는 65%로 크게 높아질 것이다.

경제기획원, 『우리경제의 장기전망』, 1973

重化學工業의 開發戰略

重化學工業化計劃의 推進은 60年代의 工業化 基盤을 土臺로 하여 民間의 主導와 創意性을 推進母體로 하되 政府에서는 財源調達計劃 立地計劃 技術人力의 開發 등 綜合的이고 合理的인 施策을 樹立 實施할 것이다.

이의 主導業種으로는 鐵鋼 非鐵金屬 造船 機械 電子 및 化學工業을 選定하여 이에 대한 集中的인 投資를 實現시키고 다시 聯關産業의 投資를 誘發토록 할 것이며 이들 産業을 그 特性에 따라 適正한 立地를 選定하여 聯關産業을 集團的으로 誘致開發함으로써 國土의 立地 資源을 效率的으로 活用하고 投資費를 節減하여 對外 競爭力에 對應할 수 있는 國際規模의 施設을 갖추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工業基地計劃을 樹立 實施할 것이다.

첫째 鐵鋼工業의 集中開發을 위하여 洛東江河口 또는 牙山灣에 第2製鐵基地를 設定한다.

둘째 溫山에 非鐵金屬基地를 設定하여 銅 亞鉛 鉛 알미늄 등 國際規模의 製鍊所 建設을 推進한다.

셋째 綜合機械工業基地를 昌原에 設定하여 機械工業중 가장 脆弱部門인 素材工業 要素部品加工業의 建設을 優先的으로 推進할 것이며 聯關産業의 繼續的인 開發 등 重化學工業化計劃의 中樞事業으로 推進토록 한다.

넷째 輸出産業으로 크게 浮刻되고 있는 造船工業의 開發을 위하여 巨濟島 一帶에 造船基地를 設定한다.

다섯째 電子工業의 集中的 效率的 育成을 위하여 現在의 龜尾工業團地를 中心으로 187萬坪 規模의 電子工業團地를 造成한다.

여섯째 原料 및 製品의 輸送 등 立地條件이 良好한 麗水 光陽 地域에 綜合化學基地를 設定하여 石油化學工業을 비롯한 基礎化學工業의 開發을 積極化한다.

이와 같이 重化學工業의 開發에 力點을 둠으로써 이의 生産 增加는 물론 그 聯關産業 및 系列産業의 生産도 促進되어 工業構造가 크게 高度化될 것이며 輸出構造面에서도 重化學製品의 輸出比重이 1972年의 27%에서 1981年에는 65%로 크게 높아질 것이다.

경제기획원, 『우리經濟의 長期展望』, 1973

이 사료는 한국 정부가 1972년부터 실시한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부터 본격적인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을 실시하기 위해 수립한 중화학공업 개발 전략이다.

한국의 1960년대 수출 주도형 공업화 전략과 경제개발계획 추진은 경제 규모의 양적 팽창과 수출 증대를 가져 왔다. 그러나 농업의 정체, 원료 및 중간재의 해외 의존도 증가, 외채 부담 증가로 인한 국제수지 악화 등의 부작용도 뒤따랐다. 또한 1970년대 초부터 선진국들이 경공업 제품 수출 규제를 시작하고 제1차 세계 석유파동이 일어나자 그 동안의 경공업 제품 중심의 수출 지향적 정책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이에 한국 정부는 경공업 중심 정책의 한계를 극복하고 중간재를 국내 공급으로 대체하기 위해 1972년부터 실시한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부터 본격적인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을 실시하였다.

정부는 기존의 중화학공업 수출 산업화를 위해 정부 주도의 특정 산업 지향형 대규모 투자와 종합적인 지원 체계를 갖추어 추진하였다. 1973년 5월, 범정부기구인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중화학공업 육성에 관한 지침」을 발표하였고, 1973년 12월 「국민투자기금법」을 제정하여 이를 뒷받침하였다. 정부는 구체적으로 철강⋅비철금속⋅석유화학 등 소재 산업과 조선⋅기계(자동차 포함)⋅전자 등 최종재 조립 장치 산업의 발전을 위해 1973~1981년간 약 2조 9800억 원(1970년 불변 가격기준)의 자금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러한 투자 규모는 동 기간 제조업 전체 투자의 64%에 해당하였다.

당시 정부는 재정 투융자 형식의 재정 지원과 함께 금융 지원 및 조세 감면을 통해 중화학 부문을 지원하였는데, 재정 지원과 함께 민간 기업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금융과 세제상의 우대 조치 등 지원 정책을 추진하였다. 특히 금융 지원은 앞서 제정되었던 개별 산업의 육성법에 의해 일정한 기준에 해당하는 업종과 기업에 대한 개별 공업 기금의 지원, 저리의 정책 금융 대출, 산업 지원 자금 형식의 저리 자금 대출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처럼 1970년대 초반 정부가 중화학공업 분야를 집중적으로 지원하자 한국의 제조업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선진국형 산업구조의 기틀을 잡아가기 시작하였다. 당시 정부의 집중 지원을 받은 중화학공업은 1970년대 연평균 20.9%의 높은 성장률을 달성했고, 1979년 중화학공업화율이 51.2%에 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수출에서 중화학공업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1970년 12.8%에서 1980년 41.5%로 증가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저서
『한국 중화학공업화 연구 총설』, 박영구, 해남, 2008.
『한국경제의 이해』, 이명규, 법문사, 2006.
편저
『한국경제의 이해』, 강인수 외, 교보문고, 2005.
『경제학대사전』, 편집부, 박영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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