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로 본 한국사분야별경제현대세계화 시대의 한국 경제

한국과 국제 통화 기금(IMF) 간의 차관 제공 합의 의향서

국제통화기금 대기성 차관 합의서(대한민국, 1997. 12. 5)

거시경제정책

1. 목적

▪ 이 프로그램 목표는 외부 경상 수지 적자를 1998년과 1999년도 GDP의 1% 이하로 줄이고, 물가상승률을 5% 이하로 줄이며, 1998년도에 실질 GDP 성장률을 3%로 제한하고, 대외 신뢰를 빠르게 회복하기를 바라며 1999년에는 잠재성장률 수준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2. 통화 및 환율 정책

▪ 현재 위기에 대한 정부의 해결책을 시장에 보여주기 위하여 통화 정책은 시장 안정을 회복⋅유지하고, 최근의 원화 절하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을 억제할 수 있도록 즉각 긴축 기조가 되어야 한다.

▪ 이러한 정책과 함께 최근 대량의 유동성 자금 투입이 환수되고 있고, 콜금리는 1997년 12월 1일의 12.5%에서 현재 21%까지 상승되고 있으며, 이 콜금리는 앞으로 며칠 동안 더 상승될 것이다.

▪ 1998년도의 통화 증가는 물가상승률을 5% 이하로 억제하는 것과 일치하는 금리로 제한될 것이다.

▪ 변동 환율 정책은 유지하며, 시장 개입은 급격한 변동을 완화하는 것에 국한한다.

3. 재정정책

▪ 1998년에는 통화 정책의 부담을 완화하고 금융 부문 구조조정을 위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하여 긴축 재정 정책이 유지될 것이다.

▪ 성장률의 둔화로 1998년 예산 적자는 GDP의 0.8% 수준으로 악화될 것이다. 금융부문 구조조정을 위한 비용은 GDP의 0.8%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소한의 재정 수지 균형을 맞추거나, 또는 약간의 흑자를 내기 위해 GDP의 1.5%에 해당하는 금융구조조정 비용을 마련할 것이다. 이것은 곧 결정될 세입과 세출 조치에 의해서 달성될 것이다. 이 조치들은 다음과 같다.

▪ 부가가치세율(VAT coverage)을 인상하고 면세를 없앤다.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www.imf.org)

REPUBLIC OF KOREA

IMF Stand-By Arrangement

Summary of the Economic Program

December 5, 1997

Macroeconomic Policies

1. Objectives

▪ The program is intended to narrow the external current account deficit to below 1 percent of GDP in 1998 and 1999, contain inflation at or below 5 percent, and--hoping for an early return of confidence--limit the deceleration in real GDP growth to about 3 percent in 1998, followed by a recovery toward potential in 1999.

2. Monetary policy and exchange rate policy

▪ To demonstrate to markets the authorities′ resolve to confront the present crisis, monetary policy will be tightened immediately to restore and sustain calm in the markets and contain the impact of the recent won depreciation on inflation.

▪ In line with this policy, the large liquidity injection in recent days has been reversed, and the call rate has been raised from 12 1/2 percent on December 1, 1997 to 21 percent today, and will be raised further in the next few days.

▪ Money growth during 1998 will be limited to a rate consistent with containing inflation at 5 percent or less.

▪ A flexible exchange rate policy will be maintained, with intervention limited to smoothing operations.

3. Fiscal policy

▪ A tight fiscal policy will be maintained in 1998 to alleviate the burden on monetary policy and to provide for the still uncertain costs of restructuring the financial sector.

▪ The cyclical slowdown is projected to worsen the 1998 budget balance of the consolidated central government by about 0.8 percent of GDP. The present estimates of the interest costs of financial sector restructuring is 0.8 percent of GDP. Offsetting measures amounting to about 1.5 percent of GDP will be taken to achieve at a minimum budget balance and, preferably, a small surplus. This will be achieved by both revenue and expenditure measures to be determined shortly. These may include, among others:

▪ increasing VAT coverage and removing exemptions;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www.imf.org)

이 사료는 1997년 12월 대한민국이 외환위기(국가부도위기)를 겪으며 국제통화기금(IMF)에 대기성 차관(Stand-By Arrangement)을 요청한 후, 국제통화기금이 대한민국 정부에 대기성 차관을 지원키로 한 합의서이다. 이는 의향서(letter of intent)를 제출하고 양해각서(memorandom of understanding)를 작성 후 1997년 12월 5일 대한민국 정부와 국제통화기금의 합의하에 발표되었다.

1997년 4월 1일 한국금융연구원은 대한민국의 외환위기를 경고하고 나섰다. 정부 기관이 급격한 자본 유출로 인한 지불 능력 문제로 외환위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제기한 것이다. 이는 곧바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지만 당시 강경식(姜慶植) 경제부총리 등 재정경제원 간부진은 이를 묵살하면서 오히려 쓸데없는 연구로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고 역정을 냈다. 이러한 경고는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이나 민간 연구소 등 여러 곳에서 1997년 초부터 제기하였으나 이를 책임질 재정경제원은 거시 경제지표가 멕시코나 동남아국가와 달리 튼튼하다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그런데 재정경제원의 판단 착오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외 지급을 위해 당장 전액 현금화할 수 있는 준비 자산인 외환 보유고가 절름발이 형태로 운영되어 왔던 것이다. 1997년 10월 말 외환 보유고는 305억 달러였지만 이는 외형상 숫자에 불과했다. 같은 해 11월 5일 신규 외화 차입이 전면 중단된 상황에서 은행과 종합 금융 회사가 만기 재연장을 하지 못하면서 한국은행이 외환 보유고에서 털어 대신 갚아 주었는데, 그 금액이 매일 10억 달러 이상이 되었고, 결국 한국은행은 보유 외환의 유동화에 착수하였다.

하지만 보유고 중 국내 은행 외국 지점에 빌려 준 80억 달러 모두 대출 형태로 묶여 당장 현금으로 바꿀 수 없었다. 결국 가용 재원이 10여 일 분에 불과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국제통화기금(IMF)에 지원 요청을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통화 위기 직전까지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외환위기의 충격은 대한민국 경제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1997년과 1998년에 걸쳐 한보철강을 시작으로 삼미그룹⋅진로그룹⋅대농그룹⋅한신공영⋅기아그룹⋅쌍방울그룹⋅해태그룹 등 수많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도산하고 법정관리를 받아야만 했다. 이에 수없이 많은 사람이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되었으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부도도 줄을 이었다. 이러한 여파로 1997년 말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인 신한국당은 참패를 면치 못하였다.

이에 대한 몇 가지 원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1990년대 금융 자유화 및 금융 시장 발전으로 공개 시장 조작을 주된 통화 정책 수단으로 활용함에 따라 지급준비제도의 역할이 크게 축소되었다. 둘째, 당시 동남아시아의 연쇄적 외환위기 속에 대한민국 정부가 외환 관리 정책에 실패하였다. 셋째, 당시 기업들의 과도한 해외 단기 차입금과 잘못된 관치 중심의 경제 정책과 정치적 판단 때문에 부실기업이던 한보와 기아자동차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넷째, 정부는 1997년 9월 이후 계속된 외환 시장 불안정 속에서 원화 가치를 지키기 위한 인위적인 환율 방어를 시작하였고, 만기가 돌아오는 해외 차입금 규모가 점차 증가하여 외환위기가 초래되었다. 다섯째, 기업이 부도를 일으키자 외채를 끌어서 어음 할인한 종합 금융 회사들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었다. 여섯째, 국가 개입 위주였던 아시아 국가들이 개방 시장 정책을 시작했지만, 외환 관리 능력과 외환 보유량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국제 투기 금융 세력의 공격에 무력하였다.

1998년에 들어선 김대중(金大中, 1924~2009) 정부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 자율화 정책, 금융 개혁, 부실기업 퇴출, 대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구조 조정을 단행하였고, IT 육성 정책과 노동 시장의 유연성 확대 등을 도입하였다. 대한민국은 외환위기 2년을 겪으면서 실업률을 제외하고 성장⋅물가⋅경상수지 등에서 거의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였다. 주가는 외환위기 이전 수준보다 높아졌고, 금리는 낮아졌으며 환율도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내려갔다. 1998년에는 외환위기의 영향으로 내수가 위축되면서 큰 폭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지만, 1999년에는 예상보다 빠른 회복 속도를 보였다. 1998년 무역수지 흑자가 390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하였고, 1999년에도 239억 달러 흑자를 기록하였다.

대한민국 경제는 외환위기를 겪은 지 2년 만에 ‘고성장-저물가-경상수지 흑자’라는 목표를 달성하였다. 또한 1997년 IMF 구제금융 요청 당시 대한민국의 외채를 갚기 위해 시민 350만 명이 자발적으로 227톤의 금을 기부해 세계적인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 2000년 12월 4일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IMF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 이 글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 견해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적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편저
『외환위기 5년 한국경제 어떻게 변했나』, 김경원 외, 삼성경제연구소, 2003.
『한국의 IMF 프로그램 3년』, 신인석 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2000.
『경제를 살립시다 : 한강의 기적외환위기 극복 그리고 새로운 도약』, 재정경제부, 재정경제부, 2001.

관련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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